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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장로교 통합과 합동의 차이(순복음, 침례교, 감리교 등)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과 합동의 차이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은 1912년 세워진 장로교 교단으로 '예장합동'이라고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7년 판)과 대소요리문답을 표준문서로 제정하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은 장로교 교단으로 '예장통합'이라고도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 외 자체적으로 신앙고백서를 작성하였다.
통합-합동 분열
1912년에 장로교회 총회가 처음 성립되고, 처음엔 하나의 장로교회였다.
그러나 1950년대부터 분열되었다.
4개의 교단으로 나뉘었고, 지속되어 현재는 수백 개 교단으로 나뉘었다.
1951년 분열 : 성경관 이견으로 김재준 박사를 필두로 분리
1952년 분열 : 고신 교단 : 한상동, 주남선 목사등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반대운동하다가 투고된 지도자 중심으로 분리
1953년 분열 : 기장 교단(한국기독교장로회=한신), 조선신학교 문제와 자유주의 신학에 따른 성경관차이로 분리
1959년 분열 : 예장합동 교단
예장통합 교단 : WCC가입문제 및 삼천 만환 사건으로 분리
1951년 분열
함경도 출신, 미국 프린스턴신학교 출신 김재준 목사는 기존 장로교 교리 극복하려고, 자유주의 기독교를 추구했다.
1940년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를 세웠다. 자유로운 해석을 추구하는 성서비평학(고등비평)을 가르쳤다.
김재준 VS 박형룡는 대립 되었다.
박형룡은 1945년 9월 8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제32회 총회의 결의에 의하여 인준된 조선신학원이 교수들의
신학사상이 자유주의화 되길래, 제35회 총회는 평양 조선예수교장로회 신학교의 전통을
계승한 장로회 신학교를 설립키로 하고 1948년 5월 서울 남산에서 장로회 신학교 개교했다.
조선신학교 VS 장로회신학교 대립하는 가운데 1949년 35차 총회에서
박형룡의 장로회신학교가 직영신학교로 승인을 받으며, 조선신학교는 사실상 '직영 취소' 처분을 받았다.
1951년 전쟁 중 진행된 36차 총회에서는 두 신학교의 직영을 취소하고 대구에 총회 직영의 새로운 신학교를 세우자는 안이 통과되었고 같은 해 9월 총회신학교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교수와 직원 대부분이 사실상 장로회신학교 출신으로 채워지자 이에 반발한 조선신학교 측이 36회 총회의 회의진행 방법과, 신학교 설립의 불법성을 제기하며 강력하게 항의했고 총회 결정에 불복해 1952년 '한국신학대학'(현 한신대)을 세웠다.
1952년 37차 총회는 김재준을 면직처분하고 조선신학교 출신 교역자의 채용 금지라는 결정을 내렸다.
1953년 김재준을 지지하는 인사들은 장로교 총회로부터 갈라져 나와 자신들이 '한국 장로교 법통의 총회'라고 선언하고 1954년 그 명칭을 대한기독교장로회(현 한국기독교장로회)로 변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52년 고신(고려파) 분립
한국 장로교회 제일 처음 분열된 고려파의 분립은 출옥 성도들이 신사참배에 대한 목회자들의 회개와 함께 교회 재건운동을 실시한데서 시작되었는데, 분열은 재건파들이 자신들이 주축이 되어 세운 고려신학교를 총회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운영하려고 한데서 가시화되었다. 고려신학교를 설립한 목회자들은 신사참배에 대한 총회 차원의 회개 운동이 이루어지지 않자 한국 교회가 지녔던 보수주의적인 신학의 재정립에 대한 총회의 관심이 결핍된 것을 우려한 나머지 고려신학교를 총회 지도 하에 두지 않으려고 했다. 이들의 취지는 신앙고백과 교회 헌법을 저버렸던 교회를 재건하려는 것이었으나 그것은 총회와는 관계없는 독자적인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 초대 교장을 맡았던 박형룡 박사는 고려신학교가 총회산하에 있어야 하며 전교회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견해 차이와 또 고려신학교가 교회분열의 가능성을 버리지 못하는 것을 보고서 박형룡박사는 1948년 고려신학교 교장직을 사임하고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결국 총회는 고려신학교를 총회가 인정하는 신학교로 보지 않았으며 고려신학교에 학생들을 추천하지 않게 되었다. 그로 인해 경남 노회가 다시 둘로 나눠지자 총회에서는 고려파 대표들을 총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했다. 이에 고려파는 따로 노회를 조직하여 경남 법통노회라고 하고 이듬해 1952년 고신측 독립 총노회를 조직하였다.
고려파가 시작한 영적 쇄신운동은 좋았으나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교권주의자들과의 의견 대립이 결국 분열로 나타나게 되었다. 고려파 분열을 교회의 거룩성과 순수한 신앙을 회복하자는 것, 개혁주의 신학과 전통을 올바로 살리자는 것 등의 좋은 취지에서 비롯되었으나 교회 분열과 교회 건물의 쟁탈전을 겪으며 처음 표방했던 그 순수성을 잃게 된 것과 사랑과 화평과 하나됨을 저버렸다는 면에서 문제점으로 남는다.
1953년 기장의 분립
기장파의 분립은 김재준 목사를 비롯한 신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세운 조선신학교로 인한 문제였다. 해방 후 총회 직영신학교로 인정 받은 조선신학교가 자유주의 신학을 가르치자 1948년에 박형룡을 비롯한 보수주의 목사들은 서울에서 총회 직영의 장로회신학교를 시작했다. 이후 1951년에 열린 36회 총회에서는 이 두 신학교를 다 폐쇄하고 하나의 총회 직영 신학교를 설립하도록 결정했다. 총회는 합동위원회를 구성하여 합동 7개 원칙을 결정하였는데 첫째 조항이 바로 신학교육은 순복음주의에 기초하고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조를 준수할 것이었다. 또 장로회 신학교 이사회에서는 합동 원칙에 대해 모세의 오경 저작을 부인하는 사람은 교수로 채용하지 말 것이며 자유주의 신학자 김재준은 당연히 교수진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회답을 보냈다. 조선신학교는 이런 회칙이 학교설립 이념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일이라고 하며 반대하였다. 결국 제37차 총회는 성경무오설을 부인한다는 이유로 김재준 목사의 제명을 가결하였고, 조선신학교 출신의 교역자 채용을 금지하도록 결정하였다.
1953년 제38차 총회에서 김재준 목사가 파면되자 조선신학교를 오옿하는 목사들은 이에 반발하여 호헌 총회를 열어 분리를 선언하였으며 다음 해인 1954년 그 명칭을 ‘한국기독교장로회’로 변경하게 되었다. 기장파의 분립은 이처럼 조선신학교 문제와 자유주의 신학에 따른 성경관의 차이 문제로 생긴 것이었다.
1959년 합동과 통합의 분립
WCC 가입문제로 찬성측(한경직 목사 중심의 통합측)과 반대측(박형룡 목사 중심의 합동측)이 대립하였다.
합동파가 60년 12월 13일 합동총회를 새로 조직한다.
통합파는 60년 12월 17일 새문안교회에서 통합총회를 새로 조직한다.
말씀 접근 차이
- 합동
웨스트민스터 신조를 신앙고백서로 사용,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
1장 9항의 “성경해석의 정확무오한 법칙은 성경 그 자체이다.
어떤 성구의 참되고 온전한 뜻에 관해서 문제가 일어날 때에는, 보다 더 명백하게 말하는 성경의 다른 구절을 살펴서 그 구절을 이해해야 된다”에 의거한다.(벧후1:20-21, 행15:15-16)
- 통합
웨스터민스터 신조를 공식적으로 부정하지 않고 신조를 상대화한다. 이미 자체적인 신앙고백서를 만들어 사용한다.
통합은 성서 해석에서 하나의 해석을 주장하는 웨스트민스터 신조와 달리, 성서해석의 다양성과 현실성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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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오순절. 순복음. 성공회. 구세군
교단 : 1개의 헌법이나 단일한 조직을 갖추고 대외적으로 법적 주체가 되는 단체
교파 : 법적 주체는 아니지만, 같은 역사 전통과 공통요소를 공유한 교단 모두를 지칭한다.
450년 후 서방 교회가 로마 카톨릭과과 개신교로 분열.
1507년 루터가 95개조 반박문 비텐베르크 성 교회 문에 게시하며 시작되었다.
물론 이전 종교개혁자들도 비슷한 목소리를 내긴 했다. 로마 카톨릭은 개신교가 전통 교회에 이탈한 것이라 보지만, 개신교는 초대 교회의 정신에서 궤도를 이탈한 가톨릭교회에서 빠져나와 초대 교회의 정신과 교리로 돌아간 사건으로 본다. ‘개신교’ 용어 자체는 1529년 제2차 슈파이어 의회에서 생겼다.
청교도(‘퓨리턴’이라고도 한다.)
16-17세기 영국 및 미국 뉴잉글랜드에서 칼뱅주의의 흐름을 이어받은 프로테스탄트 개혁파를 일컫는 말.
16세기 종교개혁이래 가톨릭교회에서 분파한 각종 기독 교회에 귀속한 사람들을 프로테스탄트(개신교도)라고 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합신) - 총신대학교. 합동신학대학원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 장로회신학대학교, 서울장신대학교, 대전신학대학교, 영남신학대학교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예장고신) - 고신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천안)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예장대신) - 대한신학교, 대신대학원, 인준(안양대학교, 안양신학대학원)
대한예수료장로회 백석(예장백석) - 백석대학교, 안양대학교, 백석신학교, 대신총회신학교, 백석예술대학, 백석문화대학
기독교대한감리회 - 감리교신학대학교, 목원대학교, 배재대학교
기독교대한성결교회총회 - 서울신학대학
기독교한국침례회총회 - 침례신학대학교
통합보수. 보수통합. 고신합동. 고신개혁. 합동성민. 합동근본. 합동개혁. 합동한신 등.
감리교
18세기 영국에서 창립된 프로테스탄트의 한 교파. 창시자는 존 웨슬리(Wesley, J.)이다.
기원은 기도와 금식, 성경 공부와 선행의 방법을 실천한 옥스퍼드 대학교 학생들의 홀리클럽 모임에서 찾을 수 있다.
홀리클럽 일원이었던 존 웨슬리(1703-1791)는 영국 성공회에서 1728년에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되었다.
올더스게이트에서 극적 회심을 경험한 웨슬리는 조지 휫필드와 함께 회심과 거룩한 삶을 향한 도전 메세지를 전했다.
1744년 웨슬리 형제와 4명의 성공회 성직자, 4명의 평신도가 모여 처음 연회를 조직하였고 이것이 감리교회의 기본조직이다. 영국교회의 사제였던 웨슬리는 그의 선교에 대한 영국교회의 반대가 심해지자, 영국교회를 떠나 순회전도를 하며 그가 믿는 복음을 설교하는데 전념하였다.
미국 감리회를 위하여 신앙 25개 조를 채택한 1774년의 제 1연회 이후 웨슬리와 휘트필드는 칼뱅의 예정설에 대한 의견
차이로 분리되어 웨슬리는 감리교로, 휘트 필드파는 칼뱅감리교로 각각 분리 되었다. 한편 미국에 전파된 감리교는
1784년에 독립교파를 형성하였으나 남북전쟁의 영향으로 남북으로 분리되었다.
미국감리교회는 한국선교로 매클레이를 파송했다.
1884년 6월 27일 미국 감리교 선교사 매클레이가 서울에 와서 당시 개화당의 지도자인 김옥균을 통하여 고종에게 감리교회의 선교사업에 대한 윤허를 요청하였고, 고종은 교육사업과 의료사업에 국한시켜 이를 허락하였는데, 1884년 7월 3일이었다.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 아펜젤러부부가 장로교의 언더우드와 함께 1885년 4월5일 부활주일 인천에 상륙함으로 본격화 됐다. 한 달 후 감리교의 의료 선교사인 스크랜턴이 서울에 도착하였고, 아펜젤러는 정동의 그의 집에서 그 해 8월3일부터 한국인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배재학당이다.
감리교회는 한 개 교단으로 시작했기에 감리교가 명칭이었다.
그런데 미국 감리교회가 1800년대 중반 ‘노예 문제’로 북감리교회와 남감리교회로 분열되어 각각 교단이 되었다.
감리교는 2개 교단을 동시에 지칭하는 교파의 명칭으로 사용된다.
성결교
성결교회는 19세기 '성결운동'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자생교단이다.
교회가 거룩함을 향한 열정을 잃어버렸다고 느낀 이들이 웨슬리의 성화론에 근거하여 성결한 삶의 비전을 회복하고자 한 운동이다. 특별히 피비 파머(1807-1874), 찰스피니(1792-1875)가 영향을 미쳤다.
성결을 중요 개념으로 삼고, '두번째 은혜' 혹은 '두번째 축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완전한 성화의 단계를 묘사한다.
두 번째 축복은 회심 후 성령 세례로 말미암아 발생한다.
크게 2그룹으로 나뉜다.
1. 중생, 성결 같은 웨슬리안 복음을 강조한 그룹 -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주류
2. 신유, 재림의 복음도 강조한 그룹, 4중복음 강조(중생,성결,신유,재림) - 급진파 성결 그룹
1번의 대표적 교단은 나사렛 성결교회라 불리는 나사렛 교회
2번은 C&MA, 만국성결교회 등이다.
성결교회의 모체가 되는 동양선교회는 만국성결교회에 주된 후원을 받았다.
심프슨의 영향을 받은 동양선교회 소속 선쇼가사들이 일본에서 사역하고 있을 때 당시 거기서 유학중이던 김상준, 정빈이 동양선교회 전도관에서 공부한 후 한국에 와서 1907년 조선야소교동양선교회를 세운 것이 우리나라 성결교회의 기원이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헌법에 따르면 성결이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고 거듭난 후에 믿음으로 순간적으로 받는 것이라고 한다. 성령세례를 받으면 원죄에서 정결하게 씻음 받고 성별하여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데 현저한 능력을 받게된다. 신유는 신자가 하나님의 보호로 항상 건강하게 지내는 것과 병들었을 때에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나음을 얻는 것을 가리킨다. 성결교회는 병을 낫기 위하여 기도하거나 안수하는 일을 당연한 특권으로 간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약을 부인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침례교
최초 침례교회는 존스미스(1570-1612) 암스테르담에 세운 '신자의 교회'(1609)이다.
성도 중 토마스 헬위스(1575-1616)가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 1612년 런던에 영국최초 침례교회를 설립한다.
예수의 피가 모든 사람을 위해 흘려졌다고 믿는 '일반속죄론'을 받아들였다.
또 하나의 기원은 청교도 헨리 제이컵(1563-1624)이 1616년 세운 교회와 관련있다.
존 스필즈버리 등이 유아 세례를 반대하고 신자의 침례를 주장하며, 새로운 교회를 설립하는데 이것이 또 다른 침례교의 시작.
이들은 '특수속죄론'을 주장했기에 '특수 침례교회'라고 불렸다.
구원론적 관점에서 볼때 일반 침례교회는 알미니우스주의를, 특수 침례교회는 개혁주의를 받아들였다.
웨슬리의 부흥운동에 자극받아 결국 신학적 차이를 극복하고 1891년 양교단이 통합된다.
현재 침례교는 개혁주의와 알미니안주의, 장로교적 구원론과 감리교적 구원론이 공존한다.
오순절
오순절 교회는 결속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1개 교단에서 나뉜 것도 아니고 같은 신앙고백에 동의한 이들이 모인 것도 아니다.
편의상 오순절 교회라고 통칭하지만, 실제 각 교단과 교회의 특색은 매우 다양하다.
오순절 교회를 하나의 교파로 묶을 수 있는 특징은 성령세례에 대한 공통된 이해다.
오순절 운동은 성령 세례의 일차적인 증거는 방언이라고 한다.
오순절 운동은 교단 형성 목적으로 일어나진 않았지만, 다양한 교단이 독립적으로 형성되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하나님의 성회' 교단은 1914년 탄생했다.
한국에 들어와 세워진 교단이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이고 여기 순복음 교회가 속해있다.
교단 특징은 오중복음(중생, 성령충만, 신유, 축복, 재림), 삼중축복(영혼이잘됨, 범사에잘됨, 강건하게됨)이다.
순복음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다 믿고 받아들이는 충만한 복음이란 뜻.
순복음은 다음 7가지를 신앙의 기초로 삼는다.
1. 갈보리 십자가 신앙
2. 오순절 성령 충만 신앙
3. 땅 끝까지 전하는 신앙
4. 좋으신 하나님 신앙
5. 병을 짊어지신 예수님 신앙
6. 다시 오실 예수님 신앙
7. 나누어 주는 신앙.
성공회
16세기 종교개혁 영향으로 영국 헨리8세부터 시작했다.
헨리 8세는 교황의 수위권 거부하고 왕의 수위권을 내세워 성공회를 만들었다.
성공회는 세계각국 38개 독립적 자치적 지역 성공회 교회(관구)로 이뤄져 있다.
미국에선 주교 감독제 교회라는 의미에서 ‘Episopal Church'로 부른다.
후계자 에드워드 6세 때 성공회 신앙 요약한 “42개 신조” 만들었다.
1553년 에드워드 6세때 작성된 42개조 신조와 1563년 엘리자베스 1세 때 작성된 39개조 신조를 신앙고백서로 받는다.
42개조 신저는 피터 마터 버미글리(1499-1562)와 마트린 부서와 같은 개혁신학자들 중심으로 작성되었기에 그 내용이
개혁주의와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성공회 안에는 고교회파, 광교회파, 저교회파 등 다양한 신학적 흐름이 있어서 신학을 하나로 통일해서 말할수는 없다.
구세군
1829년 영국 노팅엄에서 태어난 윌리엄 부스(1829-1912)는 1858년 감리교회 목사로 전도사역을 시작했다.
구세군도 새로운 교단을 만들것을 의도하고 시작되진 않았다.
1865년 동부런던에 기독교 선교회가 설립될때만 해도 이 운동은 교회를 돕기 위한 선교단체의 개념으로 출발했다.
윌리엄부스의 목표는 교회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가난한 이들과 노동계층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부스와 선교회 사역으로 회심한 이들을 기존교회가 받아들이지 않자 그들을 보살피고 양육할 교회 형태의 공동체가 필요하게 되었다. 결국 기독교선교회는 1878년 명칭을 '구세군'으로 변경하고 본격적으로 교회 형태로 발전해나갔다.
구세군은 1896년부터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자선 냄비 사역을 시작했고, 1908년부터는 우리나라에서도 구세군 사역을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영국에 국제 본부가 있고 대장과 참모총장이 있다. 세계를 5개 지역으로 나눈다.
한국 구세군은 아시아태평양부에 소속되어있고 공식명칭은 구세군대한본영이다.
기본은 감독제 구조로서 목사의 계급이 다양하게 나뉜다.
목사는 2년간 사관학교에서 훈련 받아야 하고 사관은 부위 계급으로 시작하여 5년이 되면 정위, 15년이되면 참령으로 진급한다.
그 이상은 부정령, 정령, 부장 등의 계급으로 진급한다.
카톨릭과 동방정교회 공통점
1. 세례성사(세례), 견진성사(입교), 성체성사(성찬), 고백성사(고해), 혼인성사(결혼), 성품성사(성직자 임직), 병자성사(병치유, 죽음준비) 한다.
- 개신교는 세례와 성찬만 한다.
2. 성만찬 때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믿는다
3. ‘성화상’ 사용에 긍정적이다. ‘성화’란 그리스도 마리아, 천사, 성인들이나 교회 역사상 성스러우 ㄴ사건을 재현한 그림이고, ‘성상’은 그런 조각이다. 동방 정교회는 성화를 ‘이콘’이라 부르며 중요히 여긴다.
4. 로마 카톨릭은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임신’을 받아들이고 동방정교회는 그렇지 않지만, 둘 다 마리아에게 특별 지위를 부여한다.
- 개신교는 마리아를 포함한 성인에게 과도한 존경을 보내는 것을 반대한다.
5. 성경권위
정경을 결정하고 해석 주체도 교회라 믿는다. 로마는 최종 권위가 교황, 정교회는 공의회에 있다.
- 개신교는 교회가 성경 위에 있을 수 없다.
동서 교회의 대분열 - 로마 카톨릭 교회(서방교회)와 동방 정교회(동방교회)는 1054년 공식적으로 분열
로마적 특징을 지닌 서방, 그리스적 특징을 지닌 동방은 기독교 초기부터 문화적, 신학적 다른 분위기 속에 발전했다.
분열 이유 : ‘교회 운영 주도권 경쟁’
구원의 이해에 있어서, 아주 정확하진 않지만 간단 정리
인간의 책임 - 로마카톨릭교회, 동방정교회, 감리교회, 성결교회, 오순절교회, 구세군
하나님의 주권 - 루터교회, 장로교회
공존 - 성공회, 침례교회
교세 차이 및 소속교회와 목회자
- 합동측
노회 134개 / 교회 11,112개 / 목사 8,264명(강도사 : 421명, 전도사 : 7,217명) / 교인 2,912,4716명 (2009년)
- 합동측에 소속된 교회와 목회자
사랑의교회, 충현교회, 남서울은혜교회, 수영로교회, 새에덴교회, 열린교회, 삼일교회, 충현교회, 예수사랑교회, 상암월드교회, 왕성교회, 안산동산교회, 분당우리교회, 분당중앙교회, 오륜교회, 제자교회, 강남교회 등이 있으며, 교단 소속 목회자로는
故옥한흠 목사, 홍정길 목사, 정필도 목사, 길자연 목사, 소강석 목사, 김남준 목사, 김인중 목사, 오정현 목사, 최종천 목사,
전병욱 목사, 이찬수 목사, 김은호 목사, 고문산 목사 등이 있다.
- 통합측
노회 64개 / 교회 8,305개 / 목사 16,257명 / 교인 2,852,125명 (2011년)
- 통합측에 소속된 교회와 목회자
새문안교회, 영락교회, 명성교회, 소망교회, 온누리교회, 새문안교회, 연동교회, 동안교회, 높은뜻(연합)교회, 새벽교회,강북제일교회, 포항기쁨의교회, 큰은혜교회, 두레교회, 주안장로교회, 가나안교회, 주님의 교회, 남부교회, 구미교회, 신촌교회, 고척교회 등이 있으며, 교단 소속 목회자로는 故한경직 목사, 故하용조 목사, 김삼환 목사, 곽선희 목사, 박원호 목사, 최일도 목사, 김진홍 목사, 이승영 목사, 김동호 목사, 황형택 목사, 박진석 목사, 장경덕 목사, 김대동 목사, 이규호 목사, 조동천 목사, 이재철 목사(현재 무소속), 조재호 목사 등이 있다.
- 감리교
금란교회(김홍도 원로목사), 숭의교회, 광림교회, 선한목자교회(유기성 목사), 만나교회(김병삼 목사), 부평교회,
임마누엘교회, 한사랑교회, 기쁜교회, 목양감리교회(김완중 목사) 외.
- 침례교
수원중앙침례교회(김장환 원로목사), 강남중앙침례교회, 지구촌교회(이동원 원로목사), 대전중문교회(장경동 목사)외
기독교장로회(기장): 한신교회(이중표 원로목사 시무), 경동교회(박종화 목사), 향린교회, 초동교회, 한우리교회, 한백교회 외.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부산삼일교회, 부산포도원교회(김문훈 목사) 외.
오순절: 여의도순복음교회(조용기 목사), 인천순복음교회(최성규 목사) 외.
초교파: 할렐루야교회(김승욱 목사), 갈보리교회(이웅조 목사), 우리들교회(김양재 목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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