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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5월 10일 화요일, 맑음.
*걷기- 29째 날
*사리아(Sarria) ~ 포르토마린(Portomarín)
*이동거리 : 22.5km.
*누적거리 : 706.5km.
어제 걸었던 길처럼 경치가 아름다운 이번 루트의 대부분도 쾌적한 오솔길이다. 비옥한 땅과 향기로운 과수원이 펼쳐지는 루트란다.
몬하르딘으로 가는 첫 번째 구간은 털 가시나무와 소나무 자연림을 통과한다. 탁 트인 시골길을 지나가지만 그늘이나 식수대가 별로 없단다. 초반에 약간의 오르막길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걷기에 어려움이 없는 구간이란다.
무엇보다도 100.000km 표지 석을 찾아보려고 맘먹는다. 출발이 조금 늦었다. 숙소에서 제공해 주는 아침을 먹었기 때문이다. 아침 6시 45분에 식당에서 빵과 샌드위치 그리고 커피와 과일로 아침을 해결했다. 버터를 약간 챙겼다. 아침 7시 출발이다.
루아 마이로르를 따라 층계를 올라간다. 산타 마리냐 성당을 지난다. 이곳에는 어떻게 보면 약간 음침하지만 흥미로운 중세의 순례자 벽화가 있다. 그 다음으로는 시청사를 지나친다. 여기에는 조그만 관광안내소가 있다.
맞은편은 유명한 순례자 전용 바인 타베르나 로페스가 있다. 길 꼭대기 왼쪽에는 13세기의 성 구세주 성당이 보인다. 성당 현관 위쪽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운 팀파눔(고대 건축에서 아치형 혹은 삼각형 공간)이다.
그 옆에 산 안톤 병원이 붙어있다. 여기서 우리는 오른쪽을 꺾어 13세기 사리아성의 유적을 지나게 된다. 원래 4개의 탑이 있었으나 지금은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 이 성은 15세기 귀족에 대항한 소작농의 봉기, 즉 이르만디뇨스로 인해 파괴되었다.
카르세르 전망대에 선다. 이제 새벽 기운에 깨어나는 아름다운 마을 풍경을 감상하며 돌로 만들어진 십자가를 오른쪽에서 지나간다. 14세기부터 이곳에 터를 잡았던 시장을 만난다. 여기서 다시 내리막으로 막달레나 수도원까지 간다.
외벽에 정교한 석고 조각이 된 이 수도원은 원래 13세기에 지어졌다가 훗날 성 아우구스투스 수도회 산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사벨 여왕 시대에 만들어진 고딕 양식 성당이다. 플라테레스코 양식의 문과 고딕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양식의 회랑이 있다.
플라테레스코 양식은 15세기 말~16세기 전기의 스페인 건축 양식으로 부조에 의한 풍부한 장식 문양이 금은 세공 플라테리아와 흡사한데서 유래한다. 모자이크 문양이 벽에 붙어있다. 인형 조형물도 담벼락 밑에 있다.
수도원 앞에 있는 공동묘지 옆을 지나간다. 숲길이 이어진다. 중년의 커플이 앞서서 걸어간다. 산티아고 113.460km. 계속 아래로 내려가 산 라사로 예배당 유적을 지나면 주도로를 건너 셀레이로 강 위로 난 다리에 닿는다.
아스페라(Ponte da Áspera) 다리다. ‘울퉁불퉁한 다리’ 라는 명칭답게 거칠게 절단한 돌로 만들어졌다. 기찻길 옆에 순례길 표지석이 두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는 기찻길 옆을 따라 걷는다.
다리를 건너 강과 철로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는다. 잡목 숲 오솔길이다. 산 미겔이라는 구역에서 철로를 건넌다. 넓은 들판이 펼쳐진다. 갓 베어낸 초지에 냄새 지독한 퇴비를 뿌린다. 퇴비가 물을 많이 탄 것 같다.
독한 냄새도 시골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고목나무 오솔길을 간다. 들판에 펼쳐진 길로 이어진다. 햇살이 가득하다. 긴 그림자가 앞에서 함께 간다. 그 다음 작은 시내를 건너고 아름다운 고대의 숲길을 따라 올라서니 멀리 아주 작게 긴 다리가 보인다.
고속도로인 것 같다. 파란 하늘에 비행기가 지나가면서 하얀 자국을 직선으로 만들어 놓았다. 사람이 없는 한적한 시골길이다. 참 멋진 농촌 풍경이다. 빌레이(Vilei) 마을이다. 고목나무가 마을 입구에 있다.
오래된 돌집은 알베르게와 식당으로 운영되고 있다. 모자와 조롱박, 조가비 등 기념품을 팔고 있다. 도로와 만난다. 여기서 0.9km를 더 가면 바르바델로다.
산티아고 113.074km. 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니 오른쪽에 보이는 고속도로 아래를 지나간다. 밑을 지난 후 철도 건널목을 통과한다. 가파른 비탈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엄청나게 큰 아름드리나무들이 우리를 응원해 준다. 산티아고 111.571km. 초원 너머로 마을이 보인다. 가슴이 뻥 뚫리는 풍경이 이어진다. 바르바델로 마을이다.
중세 시대에 수도원을 중심으로 번성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산티아고 성당은 현관 위 팀파눔이 신기하다. 이 근방에 9세기경에 지어진 수도원이 있어 현지인들은 이곳을 수도원 즉 모스테이로 라고 부른다.
17세기 농가를 재현한 알베르게도 있다. 고대의 오크나무와 밤나무 숲 사이로 난 아름다운 길을 따라간다. 새로 지은 공립 알베르게 건물이 멋지다.
사람들이 보인다. 젊은이들 3명이다. 처음 프랑스를 출발할 때 많이 보이던 젊은이다. 반가웠다. 걷기를 반복하면서 걷는 사람도 줄고 특히 젊은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나이든 사람들만 걷고 있었다.
커다란 밤나무가 멋지다. 늙을수록 아름다워지는 것은 나무뿐인 것 같다. 멋지게 늙어가고 싶은데, 멀리 있는 소망인 것 같다. 걷는 길이 예쁘다. 이끼가 잔뜩 낀 돌담이 이어지고 고목들이 줄을 선다.
아마도 밤나무 숲인 것 같다. 하얀 꽃나무가 눈이 부시다. 아마도 아몬드 나무 같다. 빈센트 반 고흐가 조카를 위해 그렸다는 꽃 피는 아몬드 나무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렌테(Rente) 마을이다.
조금 더 걸어가니 이내 아 세라(A Serra) 마을이다. 마을 초입에 있는 목장을 지난다. 검 은 말 한 마리가 철 망 앞에서 묵묵히 우리를 구경하고 있다. 돌과 나무들이 경계를 이룬 오솔길을 편안하게 걷는다.
초록색을 보면서 걸으니 눈의 피로가 풀리는 것 같다. 산티아고 106.858km. 급수대가 보이는데 먹을 수 없도록 철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다. 조가비 문양도 보인다. 다리 같지 않은 돌다리를 건너간다.
십자가가 마을 입구에 있다. 레이만/페나 (Leimán/Pena)마을이다. 산티아고 106.296km. 바로 페루스카요(Peruscallo) 마을이다. 현대화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몇 안 되는 마을 중 하나다.
여기서부터 줄지어 있는 여러 개의 작은 촌락을 통과한다. 정면에 오레오(Horreo, 둥글거나 사각형의 나무나 돌로 만들어진 곡물 창고)가 보인다. 참 신기해 보인다.
여기 지역에서만 보이는 건축물이다. 집 대문이 등나무와 울타리 나무로 가꾸어진 것이 특이하다. 밭에는 동그랗게 초지를 모아놓았다. 흙길 돌담길, 숲길, 초원풍경이 정말 환상적이다.
제주 풍경이 연상되는 돌 담 길이다. 걷기에 참 좋은 길이다. 코르티냐스 마을로 이어진다. 오레오가 자주 눈에 들어온다. 산티아고 103.699km. 돌을 깔아놓은 길이 나온다.
아 브레아(A Brea) 마을이다. 언덕 자갈길이다. 중년 여성이 혼자 자전거를 밀고 올라간다. 힘들어 보인다. 채소밭이 잎은 별로 없고 줄기만 길다. 모르가데(Morgade) 마을이다.
카사 모르가데 카페(Casa Morgade)를 지난다. 산티아고 101.996km. 작은 석조 예배당(산타 마리냐 소성당Capela de Santa Mariña)이 있다. 두꺼운 돌덩어리 교회다.
안에 들어가 보니 오래된 세례반이 하나 있고 제단에는 수녀 사진과 돌, 십자가, 사진 등이 올려져 잇다. 산티아고 101.765km. 비포장 길을 따라 내려가 페레이로스 시냇물을 건넌다.
여기는 갈리시아의 시골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젖은 풀밭에는 달콤한 향이 나고 여기저기 질퍽한 소똥이 널려있다. 날씨가 더워진다.
반바지 차림의 순례자가 보인다. 죽은 뱀이 길에 보인다. 처음 보는 뱀이다. 일찍도 나왔구나. 동백나무 잎이 반들거리고 붉은 꽃이 반갑다.
일반 수위보다 높게 놓인 화강암 징검다리를 하나씩 밟고 시내를 건너면 완만한 오르막 위로 페레이로스(Ferreiros) 마을이 나온다. 숲속 빈터의 옛 학교 건물을 개조한 알베르게를 만난다.
과거에 대장장이 마을로 유명했다. 마을 이름도 갈리시아어로 대장장이를 뜻한다. 로이오 강의 계곡을 따라 조성된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전형적인 갈리시아 마을이다.
중세부터 순레자들에게 포르토마린에 도착하기 전 편안한 잠자리와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는 마지막 마을이었던 이유로 이 마을에는 아직도 순례자들을 친절하게 대접하는 뿌리 깊은 전통이 있단다.
이 마을에 머물면서 신발을 수선하고 징을 박고, 말의 편자를 갈고 갑옷을 수선했다고 전해진다. 산티아고 100.757km. 미라요스(Mirallos) 마을이다.
로마네스크 성당인 산타마리아 데 페레이로스(Iglesia de Santa María de Ferreiros)에 카페 겸 식당이 붙어있다. 무덤과 함게 있는 성당이다.
이 성당은 원래 미라요스라는 마을에 있었는데 18세기 말에 성당의 돌을 하나씩 하나씩 옮겨서 페레이로스로 이전했다고 한다. 현재까지도 사자 머리와 농부의 도끼 모양 장식이 있는 아름다운 로마네스크 양식의 문을 보존하고 있다.
그 바로 뒤에 오래된 길 표지가 있다. 식수대와 페나, 코우토, 로사스 등 촌락을 지나 오늘의 최고봉인 세르보 바위에 오른다. 그 다음 미뇨 강과 저수지로 이어지는 내리막으로 모이멘토스를 통과하면 메르카도이로에 닿는다.
돌담의 십자가를 지나간다. 텃밭에 물을 주는 주민이 보인다. 오랜만에 보는 주민이다. 조금 더 걸어가니 아 페나(A Pena) 마을이다. 큰 밤나무 앞에 산티아고 100.000km 순례길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은 새로 만들어진 것 같다.
이제 100km 남은 것이다. 정말 감회가 새롭다. 고생하며 700km를 걸어왔고 이제 두자리수 km 가 남았다. 대단하다 나를 칭찬해 주고 싶다. 큰 밤나무에는 낡은 신발 한 켤레가 걸려있다. 기념사진을 찍었다. 또 걸어간다.
산티아고 99.930km, 드디어 여섯 자리 숫자에서 다섯 자리 숫자로 바뀌었다. 길을 돌아간다. 아스 로사스(As Rozas) 마을이다. 아주 작은 마을이다. 오레오가 많이 보인다. 마을을 뒤로하고 또 오솔길을 걷는다.
보라색 꽃이 들판에 가득 피어있다. 자세히 살피니 간간히 노란색 꽃도 보인다. 오래된 돌집 옆에 신형 승용차 두 대가 보여 묘한 조합를 보여준다. 산티아고 99.592km, 낡은 Francos 마을 표시 방향이 있다.
들꽃들이 보석처럼 피어있다. 아름다운 길이다. 십자가가 세워져 있고 표지석도 자주 보인다. 양들이 풀을 뜯고 있는 푸른 언덕에 작은 교회당과 농가가 보인다. 또 마을에 들어선다. 모이멘토스(Moimentos) 마을이다.
길가에 세워진 십자가에는 주렁주렁 사연들이 매달려있다. 솔방울에 사진, 돌, 리본, 가시나무, 새 깃털, 조개 등 다양하다. 통나무로만 만들어진 오레오도 보인다. 아 라세(A Laxe) 마을도 지나간다.
메르카도이로 마을이 나온다. 알베르게(Albergue De Mercadoiro) 한 채가 전부인 것 같다. 이 아담한 마을의 공식 인구수는 단 1명이란다. 좀 더 걸어가니 모우트라스(Moutras) 마을이다.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매장이 나타난다. ‘한국 컵라면 있습니다. 진 컵라면’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매장 안으로 들어가보니 한국 식품이 제법 많이 다양하게 보인다.
라면 종류가 제일 많다. 카레와 김치그리고 햇반에 쌈장까지 팔고 있다. 천원짜리 지폐까지 붙어있다. 매장이 크다. 매장 밖 입구 바닥에는 Find your way라는 글과 함께 발모양이 붙어있다.
햇볕이 뜨거워 얼굴을 가린다. 파로차(A Parrocha) 마을에는 쉼터(오 데스칸소)가 있다. 평화로운 농촌 마을이다. 연이어 빌라차(Vilachá)마을이다.
카사 반데라스(Casa Banderas) 식당 겸 바(Bar)가 정면에 보인다. 흰색 건물에 흰색 비치솔이 정원에 몇 개 있다. 예쁘다. 국기가 걸린 알베르게 겸 식당도 나온다.
돌이 박힌 바(Bar)도 있다. 마을을 지나니 넓은 들판이 펼쳐지고 길에는 돌담이 함께 간다. 나무가 없어 태양을 그대로 등에지고 간다. 낡은 지도판이 보인다.
연이어 나타나는 촌락들을 지나면 루트 바깥 왼쪽에 아름답고 외딴 계곡인 로이오를 볼 수 있다. 로이오 계곡은 12세기 산티아고 기사단이 탄생했던 산타 마리아 데 로이오 수도원 유적이 있다.
산티아고 93.7km, 산티아고 93.6km. 이정표가 두 개붙어 방향을 달리하여 표시되어있다. 100m 가 짧은 대체코스를 선택하여 걸어간다. 산 페드라(PEDRA) 마을이다.
다리 모양이 보인다. 강 건너 우리의 목적지인 포르토마린 마을도 보인다. 평화로은 들판길을 벗어나니 강이 나온다. 큰 강이다. 다리(New Bridge and Bridge Vella)는 높고 길다.
이제 도로로 접어들어 현대식 다리를 건너면 포르토마린(Portomarín)이다. 1950년대 댐을 만들자 벨레사르 저수지가 생겨 마을을 언덕(그리스도의 산)으로 이주시킨 새로 만들어진 마을이다.
물이 빠지면 로마시대 흔적들이 보인다. 현재의 다리는 1966년 만들어 진 것이고 12세기에 만들어진 옛 다리의 흔적이 보인다. 산 니콜라스 성당도 다리 아래 있던 것이다.
로마시대에 지어진 원래 다리는 산티아고 기사단과 관련이 있는 산 페드로의 남쪽 구획과, 성 요한 기사단 본부가 있는 산 니콜라스 북쪽 구획으로 연결했다.
미뇨강이 전략적 주요 경계 역할을 했기에 이 지역은 폭풍같은 역사를 거쳐야 했다. 과거 포르토마린은 로마인들이 미뇨 강 위에 다리를 놓았을 때부터 강가에 위치한 마을이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마을의 다리는 남편 알폰소 1세와 맞섰던 도냐 우라까의 명령으로 파괴되었다. 앞에 있는 가파른 계단은 기존 다리의 일부이다.
계단 아래에는 아치와 ‘눈의 성모’ 예배당을 비롯하여 여러 역사적 기념물 들이 있었다. 계단 총 46개를 올라서서 왼쪽으로 꺾으면 새로운 알베르게 루아 찬타다로 들어선다.
후에 이 다리는 산티아고 대성당을 건축한 거장 마테오 데우스탐벤의 아버지이자 ‘순례자 페드로’로 불렸던 페드로 데우스탐벤에 의해 재건되었다. 1940년대에 스페인 역사예술단지로 지정된 포르토마린이었지만 근대화의 물결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름다운 다리는 수몰되었지만 산 니꼴라스 요새 성당, 산 페드로 성당의 파사드, 마사 백작의 집, 베르베토의 궁전 등은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다리를 건너가는데 엄청 뜨겁다. 29℃란다.
로터리가 나오고 경사가 급한 계단을 올라간다. 뒤 돌아 강을 보니 전망이 아주 좋다. 아치가 있는 눈의 성당을 통과한다. 성모 마리아가 쳐다보고 있는 그리스도 십자가 조형물이 있는 경사진 광장이 나온다.
우리 숙소(Albergue Pons Minea)를 찾았다. 언덕 위에 있어 찾기 쉬웠다. 현대식 건물이다. 엘리베이터도 있다. 식당도 겸하여 운영되고 있다. 도착하니 오후 1시도 안되었다.
짐을 내려놓고 점심도 먹을 겸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Portomarín이라는 글자 모형을 잘 만들어 놓았다. 숙소 옆에 있는 O Mirador 식당으로 들어갔다.
고급스럽다고 생각되는 식당이다. 실내 장식이 볼거리가 많다. 키타를 들고 있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목각 조형물이 눈에 띈다. 장어 튀김을 주문했다. 8조각 장어 튀김(Anguilas)과 소금, 감자 구이가 함께 나온다.
콜라와 함께 먹는데 양이 너무 작고 값만 비싸다. 건너편에 있는 공원으로 간다. 그늘이 아주 좋고 전망이 시원하다. 산티아고 91.5km 기념비가 있다. 자세히 보니 2018년 신코구 일본 순례자들이 세운 것이다.
공원 뒤편에는 쇠판으로 오려낸 순례자 가족 모형이 세워져 있다. 시가지 중심 거리인 콤포스텔라 거리를 올라간다. 사열을 하듯이 좌우 대칭인 건물이 회랑을 갖고 줄지어 세워져 있다.
회랑 길을 앞에 두고 여러 가지 상점, 약국, 식당, 은행, 호텔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광장(Praza conde Fenosa)이 나온다. 산 니콜라스 요새 성당(Iglesia Fortaleza de San Nicolas)이 멋지게 자리잡고 있다.
산 소안 성당(Igrexa de San Xoán)으로도 불린다. 예루살렘의 성 요한 기사단이 12세기 말에 설립한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으로 망루가 있는 벽과 건물의 높이가 요새로서 사용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장미창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대성당과 매우 비슷한 외양의 정문 장식이 아름답다. 이 정문을 장식하고 있는 24명 인물상은 산티아고 대성당을 건축한 거장 마테오 데우스탐벤(Mateo Deustamben)의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수태고지 장면을 조각한 부분을 보면 성모와 천사 사이에 다산과 불멸을 상징하고 가톨릭의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세 개의 솔방울이 있다.
주두 장식에는 왕관을 쓴 사람 머리에 새의 몸통을 한 동물의 부조를 볼 수 있다. 이것은 마테오 데우스탐벤의 아버지이자 카미노의 가장 훌륭한 건축가 페드로 데우스탐벤(Pedro Deustamben)의 작품이다.
원래 성당 건축의 규칙은 제단이 있는 곳이 동쪽이나 예루살렘을 향해 있고 파사드가 서쪽을 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돌을 하나씩 옮겨 성당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이 규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성당의 제단과 파사드의 방향이 잘못되었는데 이 때문에 다른 성당에서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빛의 향연을 만끽 할 수 있다. 그런데 왼관에 십자가가 없는 것이 좀 이상하다.
시청사(Concello de Portomarín)도 왼편에 있다. 깃발이 4개 있다. 아마도 스페인, 갈리시아 유로, 포르토마린 깃발인 것 같다. 옆에는 산티아고 석상이 오른손을 펴 시청사를 안내하는 모양의 조형물이 서 있다.
작은 정원에는 우산을 쓴 사제의 동상이 만들어져 있다. 성당 한 편에 로페즈 바스케스라는 인물의 흉상이 있다. 스페인 전력회사의 엔지니어로 성당을 계곡 아래에서 언덕 위까지 이전하는데 기여했던 인물이란다.
새로운 포르토마린 마을 생성에 핵심역할을 한 인물이다. 1963년 당시 댐 건설로 인한 마을 이주와 관련하여 전력회사와 마을 사람들간에 갈등이 있었단다.
당시 관리 감독이었던 로페즈 바스케스가 많은 집들의 문제점을 해결해 주었단다. 그러니 성당 한쪽에 정치인이나 성직자가 아닌 건설 실무자인 그의 흉상이 서 있게 된 것 이란다.
회랑 길은 그늘이 지어져 참 좋다. 건너편 길로 내려간다. 작은 공원(Antonio Sanz Park)을 품은 성당, 산 페드로 성당 (Iglesia de San Pedro)이 보인다.
12세기에 만들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 건축으로 현재에는 성당의 문을 포함한 정면 부분만 옮겨졌다. 강을 사이에 두고 니꼴라스와 베드로 성당이 양쪽에 있어 관할하였었는데 이전할 때 이곳 한 방향만 옯겼다고 한다.
옮길 때 돌 하나 하나에 번호를 매겨 똑같이 복원하였다 한다. 호텔 앞에는 식수대도 있다. 냄비를 이용한 조각상(Monumento al Alambique)이 있다.
박물관 같이 보이는 화려한 건물도 있다. 십자가 석상도 있다. 사각형 멋진 실외 수영장이 보이는 건물도 만난다. 숙소로 일단 들어왔다.
한 공간에 24명이 머물 수 있는 2층 침대가 가득하다. 12유로다. 화장실과 샤워실이 양쪽에 있다. 다리를 건너가 보기로 했다. 강이 멋진데 엄청 뜨겁다.
다리 건너편에 있는 하트모양 조형물 자유의 종(Campá da Liberdade) 찾았다. 여기서 바라보는 강과 다리 그리고 마을의 전망이 멋지다.
다시 다리를 건너와 층계를 이용하여 강으로 내려가 보았다. 잠수교 위에서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다시 올라와 계단 그늘에 앉아 쉰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 식사를 하기로 했다. 회랑길을 걸어가 식당(Restaurante Xoanes)에서 순례자 메뉴를 선택했다. 돼지고기를 먹었는데 13유로다.
슈퍼에 들어서 물을 하나 샀다. 해가 지도록 공원 벤치에 앉아서 쉰다. 낯 익은 사람들이 거리에 보인다. 공기는 선선해졌다. 이렇게 또 하루가 저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