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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누리길 27. (고성 토성면 청간정-신평2리-도원저수지) 完.
◈ 일시 : 2023. 10.05(목). 8차 5박 6일 중 넷째 날.
고성 토성면 청간정 날씨.
◈ 구간 거리 및 소요시간 : 16.7 km. 6시간 50분.
◈ 동행 : 아내.
◈ 지도.
27-1 지도.
27-2 지도.
◈ 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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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정 정리.
07 ; 03. 고성군 토성면 아야진리 호텔 파티오에서 제공하는 토스트와 우유와 시리얼로 아침을 먹고 7번 국도 따라간다.
07 ; 10. 아야진항입구 사거리. 청간리 정류소와 CU. GS편의점. 좌측 아야진 해변으로
07 ; 13. 아야진해변. 좌측 끝에 아야진항과 등대. 우측으로 간다.-쉘부르 펜션과 카페.
07 ; 16. 청간리 어촌계. 어민회관.
07 ; 26. 청간정 입구. 데크계단을 올라가 청간정을 우측에 보며 돌아 올라간다.
07 : 32/46. 청간정. 고성팔경의 한 곳으로 청간정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 친필. 아야진. 천진. 봉포항과 설악산을 둘러본다.
07 ; 50. 관리사무소와 청간정 자료전시관. 자료전시관을 대충 둘러본다.
07 : 56. 데크 다리로 천진천을 건너 설악산을 한눈에 보며 우측 7번 국도로.
08 : 00. 포장 보수 공사 중인 7번 국동에 올라 좌측으로 가서
08 ; 08. 천진 교차로. 우측으로 간다. 좌측은 천진 해수욕장.
08 ; 12. 조각마당. 돌조각품들을 보고. 왕복 4차로옆 자전거길을 따라간다. 설악산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08 : 16. 용암 사거리. 우측은 용암리 , 좌측은 천진리. -길 건너편에 동해 최북단고성 계란유통센터 설악농장.
08 : 31. 주성리조트 입구. 이어 지하통로 앞(미시령 옛길 정상 15km. 천진 2km).
08 ; 42. 신평 1 교차로옆. 계속 4차로옆 2차로를 따라 직진.
08 ; 52. 2차로가 끝나고 1차로 되며 4차로와 멀어진다.
09 ; 08. 좌측에 토성 공설운동장 입구.
09 ; 13. 언덕을 올라가며 드넓은 들깨밭 너머로 울산바위와 신선봉을 바라보고 화암사 앞 수암을 당겨본다.
09 : 25. 좌측에 시矢牛표지석과 산마음 표지석.
09 : 28. 공설운동장 입구 삼거리. 공설운동장입구 버스 정류소.(61번). 우측으로 꺾어 도로 따라간다.
09 ; 33/47. 대순 진리회 토성수련원 정문. 구경 좀 하고 갈려고 들어갔다가 겉만 보고 되돌아 나온다.
10 ; 13. 좌측으로 고성 꾸지뽕 재배단지 1km. 표지판.
10 : 15. 설악 포유 리조트 정문.
10 ; 20. 신평2리 정류소.
10 ; 28. 신평2리 정류소. 어제 차 얻어 탔던 곳이다. 우측은 허브농장.
10 ; 30. 신평 삼거리. 화암사 4.5km. 평화누리길을 전부 마치고 우측으로 금강산 가는 길을 이어간다.
여기서부터는 금강산 가는길.
10 ; 32. 신평교로 천진천을 건너간다. 천진천 표지판. 고성 가는 4차선 도로 우측의 2차선 도로를 따라간다.
10 ; 42. 좌측 4차선 도로의 설악대 교차로. 교차로를 건너 우측 국회고성연수원. 성대리 쪽으로 간다. 앞쪽 설악대는 군부대다.
10 ; 50. 신평리(회차지점) 정류소. 뒤는 군부대 아파트와 주택들.
10 ; 54/11 : 25 농가주택 들어가는 길가 솔밭 축대에서 빵과 미숫가루로 점심. 개가 짖어대니 주인이 나와 담소하고
11 : 26. 퀀텀네이처 연구소. 계속 2차로를 따라간다.
11 ; 33. 국회고성연수원 3.5km.
11 : 37. 전택 노련(KTU) 연수원.
11 : 50. 성대리. 식당들이 많다. 우측에 이성선 시비 이정표가 있어 들어가 봤다.
11 ; 54. 이성선(李聖善) 詩碑. 이성선(1941~2001) 시인은 이곳 출신인가 보다.
여기에 식당이 있는 줄 알았으면 여기 와서 점심을 먹었으면 좋을걸 그랬다.
12 ; 05. 고개. 사거리. 국회고성연수원 2.5km. 도원리 유원지 5.6km.
12 : 13. 성대교를 건너간다.
12 ; 22. 고개.
12 ; 28. 철망 울타리옆에 특수임무 추모공원 표지석.
12 : 39. 고개. 국회고연수원 1.2km. 양쪽은선은 철망 울타리.
12 : 42. 도원 교차로. 좌측 도원1리 방향으로. 우측은 국회 고성연수원. 항아리를 지게에 진 모형을 보며 내려간다.
12 : 55. 도자기 체험장 앞 도학교. 우측에 항아리를 지게엔 진 모형의 4층집. 운영을 안 한단다.
도학교로 문암천을 건너가서 좌측으로 도학초교 앞 도로를 따라간다. 도원리 휴양지 4km. 우측 송지호 8km.
13 ; 00. 도원 보건진료소와 도원 2리 버스정류소.
13 : 35. 도원저수지 건너로 신선봉을 올려다 보고
13 ; 36. 도원저수지 입구 정류소.
13 ; 39. 저수지에 떠있는 태양광 발전시설들을 바라보고 산 모이를 돌아간다.
13 : 48. 고사목 앞에서 도원 저수지뚝을 바라본다.
13 ; 50. 방금 지나온 도원저수지입구 정류소 쪽을 뒤돌아본다.
1km 정도만 더 가면 저수지가 끝나고 신선사가 나올 텐데 71번 버스가 온다.
이차가 가면 언제 또 버스가 있을지 몰라 손을 드니 세워준다. 승객은 신선사 주지스님 한분.
다음차는 2시간 후에나 있단다.
14 : 12. 천진 교차로 건너 토성 보건소 앞 하차. 아침에 지나간 청간정 근처다.
버스에서 내려 같이 타고 온 분께 신선사를 물어보니 내가 신선사 주지라며 주지 스님 신분증을 보여준다.
14 ; 23. 토성보건 지소 앞의 천진리 정류에서 1-1번 버스 타고 거진으로
15 : 06. 거진시장 입구 하차. 하나로 마트에서 두부. 당근. 우유등을 사고
15 : 38. 황금모텔(40000)에서 4박.
07 ; 03. 고성군 토성면 아야진리 호텔 파티오에서 제공하는 토스트와 우유와 시리얼로 아침을 먹고 7번 국도 따라간다.
토스트와 잼. 우유와 시리얼. 생수와 커피가 준비돼있다.
저아래가 아야진 해수욕장 입구. 청간리 정류소와 CU. GS 편의점과 식당등이 있다.
07 ; 10. 아야진항입구 사거리. 청간리 정류소와 CU. GS편의점. 좌측 아야진 해변으로
07 ; 13. 아야진해변. 좌측 끝에 아야진항과 등대. 우측으로 간다.-쉘부르 펜션과 카페.
아야진 해수욕장과 아야진항. 해파랑길할때 지나간 곳이다.
07 ; 16. 청간리 어촌계. 어민회관.
세꼬시 1팩 10000원이라 써있어 세꼬시를 찾아봤다.
회의 한 종류로, 뼈를 완전 발라내는 일반적인 조리법과는 달리 연한 뼈와 살을 통째로 썰어 만드는 방식. 회 끝에 생선뼈 조각이 약간 같이 씹힌다. 원래 부산이나 포항 등 경상도 쪽에서 주로 먹었지만 요즘에는 다른 지방으로도 많이 전파되었다. 일부 뼈가 연한 특정 시기의 전어 같은 생선은 등뼈까지 얇게 썰기도 한다.
청간정과 토성면 소재지인 천진리.
청간정.
아야진항.
07 ; 26. 청간정 입구. 데크계단을 올라가 청간정을 우측에 보며 돌아 올라간다.
07 : 32/46. 청간정. 고성팔경의 한 곳으로 청간정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 친필. 아야진. 천진. 봉포항과 설악산을 둘러본다.
1971년 12월 16일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관동8경(關東八景)의 하나이다. 설악산에서 흘러내리는 청간천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의 작은 구릉 위에 있으며, 이 곳에서 바라보는 동해안의 풍경이 일품이다. 특히 아침의 해돋이광경과 낙조(落照)의 정취는 예로부터 많은 시인 ·묵객의 심금을 울렸다고 한다.
정자의 창건연대와 건립자는 미상(未詳)이나 1520년(중종 15)에 간성군수(杆城郡守) 최청(崔淸)이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갑신정변(甲申政變) 때 불타 없어진 것을 40여 년 후인 1930년경에 지방민들이 재건하였다. 그 후 1955년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의 명으로 보수하였고(지금의 현판은 그의 친필), 1981년 4월 대통령 최규하(崔圭夏)의 지시로 해체복원(解體復元)하였다.
최규하 대통령 친필.
이글은 택당 이식의 친필로 잠시후에 들린 청간정지료 전사관에서 다시 볼수있다.
미시령 정상에 있는 "미시파령"의 글을 남긴 분으로 조선중기인 1584(선조17)~1647(인조25)사람으로
1631~33에 간성에 재임하며 많은 업적을 남겼단다.
하늘의 지시로 바다엔 밀 물 썰 물 없고
방주 같은 정자 하나 물가에 서 있네.
붉은 해 솟으려고 광선 먼저 창문을 쏘고
푸른 물결 일렁이자 옷자락 벌써 나부끼네.
동남동녀 실은 배 순풍에 간다 해도
왕모의 북숭아는 여는 시기 까마득하여라.
신선 자취 접하지 못한 아쉬움 속에
난간에 기대서 나는 백구만 바라보노라.
이식은 1610년(광해군 2) 별시문과에 급제했다. 1613년 세자에게 경사(經史)와 도의(道義)를 가르친 정7품에 해당하는 설서(說書)를 거쳐 1616년 북평사(北評事)가 되었다. 이듬해에 선전관을 지냈다.
1618년 폐모론이 일어나자 정계에서 은퇴하여 경기도 지평(砥平)으로 낙향했다. 그 후에 남한강변에 택풍당(澤風堂)을 짓고 오직 학문에만 전념했다. 호를 택당이라 한 것은 여기에 연유한다. 1621년 관직에 나오라는 명을 계속 받았으나 이를 거부했다. 그래서 왕의 명령을 어겼다는 죄로 구속되기도 했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 교분이 있었던 친구들이 조정의 주요직에 진출하게 되자 발탁되어 이조좌랑에 등용됐다. 이듬해에 부수찬 · 응교 · 사간 · 집의 등을 역임했다.
1625년(인조 3) 예조참의 · 동부승지 · 우참찬 등을 역임했고 다음해에 대사간 · 대사성(大司成) · 좌부승지 등을 지냈고 1632년까지 대사간을 세 차례 역임했다. 임금의 종실을 사사로이 기리고 관직을 이유 없이 높이는 일이 법도에 어긋남을 논하다가 인조의 노여움을 사 간성현감으로 좌천되기도 했다. 1633년에 부제학을 거쳐 1636년에 대제학이 되었고, 1640년에 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이식은 1642년에 김상헌(金尙憲)과 함께 청나라를 배척할 것을 주장한다고 하여 중국의 심양(瀋陽)으로 잡혀갔다. 돌아올 때에 다시 의주(義州)에서 청나라 관리에게 붙잡혔으나 탈출하여 돌아왔다. 1643년 대사헌과 형조판서를, 1644년 예조 · 이조의 판서 등 조정의 주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1646년 별시관(別試官)으로 과거 시험의 문제를 출제하였는데 그가 출제한 문제에 역모의 뜻이 있다고 하여 관직이 삭탈되기도 했다.
이식은 문장이 뛰어나 신흠(申欽) · 이정구(李廷龜) · 장유(張維)와 함께 한문사대가로 꼽혔으며 그의 문하에서 많은 문인과 학자가 배출됐다.
문집으로는 『택당집』이 전하는데 한시의 모든 갈래에 두루 능숙했고 많은 작품을 남겼다. 대체로 정경의 묘사가 뛰어나고 감상에 치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풍광을 읊은 시가 많다. 고체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고 오언율시에 특색을 발휘했다. 『초학자훈증집(初學字訓增輯)』 · 『두시비해(杜詩批解)』 등을 저술했으며 『수성지(水城志)』 · 『야사초본(野史初本)』 등을 편찬했다.
김택영(金澤榮)에 의하여 여한구대가(麗韓九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그의 문장은 우리나라의 정통적인 고문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여한십가문초(麗韓十家文鈔)』에는 「사간원차자(司諫院箚子)」 등의 6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울산바위(좌)-미시령-신선봉.
설악산 대청봉(좌)-달마봉-울산바위.
봉포항-천진항
청간정 아래해변.
아야진항.
청간정에서의 조망.
이승만 대통령 친필.
07 ; 50. 관리사무소와 청간정 자료전시관. 자료전시관을 대충 둘러본다.
07 : 56. 데크 다리로 천진천을 건너 설악산을 한눈에 보며 우측 7번 국도로.
08 : 00. 포장 보수 공사 중인 7번 국동에 올라 좌측으로 가서
08 ; 08. 천진 교차로. 우측으로 간다. 좌측은 천진 해수욕장.
08 ; 12. 조각마당. 돌조각품들을 보고. 왕복 4차로옆 자전거길을 따라간다. 설악산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08 : 16. 용암 사거리. 우측은 용암리 , 좌측은 천진리. -길 건너편에 동해 최북단고성 계란유통센터 설악농장.
08 : 31. 주성리조트 입구. 이어 지하통로 앞(미시령 옛길 정상 15km. 천진 2km).
08 ; 42. 신평 1 교차로옆. 계속 4차로옆 2차로를 따라 직진.
08 ; 52. 2차로가 끝나고 1차로 되며 4차로와 멀어진다.
09 ; 08. 좌측에 토성 공설운동장 입구.
09 ; 13. 언덕을 올라가며 드넓은 들깨밭 너머로 울산바위와 신선봉을 바라보고 화암사 앞 수암을 당겨본다.
당겨본 수암.
09 : 25. 좌측에 시矢牛표지석과 산마음 표지석.
09 : 28. 공설운동장 입구 삼거리. 공설운동장입구 버스 정류소.(61번). 우측으로 꺾어 도로 따라간다.
09 ; 33/47. 대순 진리회 토성수련원 정문. 구경 좀 하고 갈려고 들어갔다가 겉만 보고 되돌아 나온다.
대순 진리회 토성수련원 정문.
대순 진리회 토성수련원.
대순 진리회 토성수련원.
대순 진리회 토성수련원.
10 ; 13. 좌측으로 고성 꾸지뽕 재배단지 1km. 표지판.
10 : 15. 설악 포유 리조트 정문.
10 ; 20. 신평2리 정류소. 용촌리-신평2리-미시령.
울산바위.
신평2리 정류소 맞은편의 허브농장.
10 ; 28. 신평2리 정류소. 어제 차 얻어 탔던 곳이다. 우측은 허브농장.
10 ; 30. 신평 삼거리. 화암사 4.5km. 평화누리길을 전부 마치고 우측으로 금강산 가는 길을 이어간다.
여기서 부터는 금강산 가는길이다.
10 ; 32. 신평교로 천진천을 건너간다. 천진천 표지판. 고성 가는 4차선 도로 우측의 2차선 도로를 따라간다.
0 ; 42. 좌측 4차선 도로의 설악대 교차로. 교차로를 건너 우측 국회고성연수원. 성대리 쪽으로 간다. 앞쪽 설악대는 군부대다.
설악대 교차로.
여러 군부대가 있어 설악대인 모양이다.
10 ; 50. 신평리(회차지점) 정류소. 뒤는 군부대 아파트와 주택들.
0 ; 54/11 : 25 농가주택 들어가는 길가 솔밭 축대에서 빵과 미숫가루로 점심. 개가 짖어대니 주인이 나와 담소하고
11 : 26. 퀀텀네이처 연구소. 계속 2차로를 따라간다.
11 ; 33. 국회고성연수원 3.5km.
11 : 37. 전택 노련(KTU) 연수원.
11 : 50. 성대리. 식당들이 많다. 우측에 이성선 시비 이정표가 있어 들어가 봤다.
11 ; 54. 이성선(李聖善) 詩碑. 이성선(1941~2001) 시인은 이곳 출신인가 보다.
여기에 식당이 있는 줄 알았으면 여기 와서 점심을 먹었으면 좋을걸 그랬다.
12 ; 05. 고개. 사거리. 국회고성연수원 2.5km. 도원리 유원지 5.6km.
12 : 13. 성대교를 건너간다.
12 ; 22. 고개.
12 ; 28. 철망 울타리옆에 특수임무 추모공원 표지석.
12 : 39. 고개. 국회고연수원 1.2km. 양쪽은선은 철망 울타리.
12 : 42. 도원 교차로. 좌측 도원1리 방향으로. 우측은 국회 고성연수원. 항아리를 지게에 진 모형을 보며 내려간다.
4층집같다.
12 : 55. 도자기 체험장 앞 도학교. 우측에 항아리를 지게엔 진 모형의 4층집. 운영을 안 한단다.
도학교로 문암천을 건너가서 좌측으로 도학초교 앞 도로를 따라간다. 도원리 휴양지 4km. 우측 송지호 8km.
도학교.
도학교에서 본 문암천과 도자기 체험장 건물.
도학초교. 도원리 휴양지 4km. 우측 송지호 8km.
도학초교.
13 ; 00. 도원 보건진료소와 도원 2리 버스정류소.
13 : 35. 도원저수지 건너로 신선봉을 올려다 보고
도원저수지.
13 ; 36. 도원저수지 입구 정류소.
13 ; 39. 저수지에 떠있는 태양광 발전시설들을 바라보고 산 모이를 돌아간다.
13 : 48. 고사목 앞에서 도원 저수지뚝을 바라본다.
13 ; 50. 방금 지나온 도원저수지입구 정류소 쪽을 뒤돌아본다.
1km 정도만 더 가면 저수지가 끝나고 신선사가 나올 텐데 71번 버스가 온다.
이차가 가면 언제 또 버스가 있을지 몰라 손을 드니 세워준다. 승객은 신선사 주지스님 한분.
다음차는 2시간 후에나 있단다.
금강산 가는길은 도원저수지끝에서 백두대산 신선봉과 마산봉 사이의 새이령으로 올라 마산-흘리-진부령으로 이어가지만
아내와 새이령.마산을 넘기는 힘들어 남한의 최북단 마을인 명파리로 가서 금강산가는길따라 진부령으로 내려올려고
명파리가는 버스 회사인 동해상사 간성사무소와 속초의 남포 사무실에 전화를 해보니 거진에서 6.50분.8.25분에 있다고 해서
거진으로 갔다.
4 : 12. 천진 교차로 건너 토성 보건소 앞 하차. 아침에 지나간 청간정 근처다.
버스에서 내려 같이 타고 온 분께 신선사를 물어보니 내가 신선사 주지라며 주지 스님 신분증을 보여준다.
14 ; 23. 토성보건 지소 앞의 천진리 정류에서 1-1번 버스 타고 거진으로
15 : 06. 거진시장 입구 하차. 하나로 마트에서 두부. 당근. 우유등을 사고
내일 명파리행 버스를 탈 거진8리 정류소(거지시장정류소 맞은편 바다호텔 앞)
15 : 38. 황금모텔(40000)에서 4박. 저녁은 아내는 안먹어 혼자서 추어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