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은 흔한 해외여행이다. 옛날같이 선물을 사오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제품이 뒤처지지 않으니 외제가 매력적일 리 없다. 하지만 모처럼 나가는 해외여행에 부담을 갖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부담이 굳이 나쁘다거나 잘못되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선물이란 친근함이나 애정, 존경의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선사하는 작은 물건임에 성심껏 가상한 뜻이 담겨지면 그만이다.
해외 출장을 가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하였다. 엄마는 선물은 생각도 하지 말고 그저 몸조심하고 편안히 잘 다녀오라는 말만 하였다. 그러하지만 난 그 말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는다. 그리 하였다간 엄마가 서운해 할지 모른다. 경로당에 아들의 선물과 해외 업무를 보러간다는 자랑을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떠나기 바로 전전 날 쯤 아내 역시 비슷한 말을 하였다. 혹여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을까봐 걱정이 되었는지 아내가 의중을 떠본다. “내 것은 그만두더라도 어머니 것은 꼭 사가지고 와야 해요.” 아내가 점 찍어 둔 물건이 있다. 이는 전적으로 아내의 노련함이다.“ 글루코사민이라고 그랬지. 만약 그것 구입을 못하면 어떡하지.”
벌써 시장조사를 다 하였는지 아내가 소상히 설명한다. “ 그것 홈쇼핑에도 판매를 하니 정 못 구하면 거기서 구입을 해도 돼요.” 엄마의 선물 선정이 끝났다고 말을 닫으면 아니 된다는 것을 보다 더 명확히 나는 잘 알고 있다. 아내가 그리 말을 꺼낸 것은 비단 엄마 때문 꺼낸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내의 말, 그만두더라도 라고 하는 말의 뉘앙스가 꿀물에 빠진 개미 마냥 헤어나기가 어렵다. 또 내가 묻는 말이다. “ 시간이 남아 쇼핑을 한다면 무엇을 사는 것이 좋을까.“ 아낸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말을 하였다. ”랑콤 화장품 썬 크림이 시중보다 훨씬 싸니까. 사오면 손해는 안날거야.“
아낸 벌써부터 정하여 놓고 때를 기다린 것이다. 거기에 삼겹살 일 인 분 추가 하듯 하나 덧붙인다. ”하나 사봐야 두 달도 못쓰니까 이왕 살 거면 하나 더 사는 게 훨씬 이득이야.“ 어차피 지닐 부담이니 오히려 살 선물을 슬며시 가르쳐 주는 게 한결 편하다. 출장을 떠나기 전날 직원 동료들이 잘 다녀오라는 말끝에 선물 많이 사오라는 너스레 말을 첨가하였다.
출장을 마치고 막상 돌아오는 때 농담이었지만 동료들 말 또한 적이 부담이 된다. 선물은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라고 하였건만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동료들을 대표해 출장을 간 것이다 싶으니 더욱 더한 마음이다. 그래서 무엇을 살까 생각도 해보게 되는 것인데 무엇을 살 것인지는 그다지 고민 할 필요는 없다.
몇 번의 해외여행에서 자연적으로 알게 된 사실이다. 우리가 선호하는 물건은 우리나라에 모두 있다. 비행기 선물 가이드 책자는 우리가 늘 흥미롭게 생각하는 위주로 짜여 있다. 우리가 아끼는 고급 양주의 경우 다른 나라 비행기에서는 소개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비싼 양주가 선호대상이 아니다. 화장품도 마찬가지다. 기내에서 예약을 하면 돌아올 때 들고 올 수가 있어 편하기도 하다.
탑승 수속을 마치고 들르는 면세점에서 나는 우왕좌왕 하지 않는다. 자연스런 안내자가 있다. 이번에도 구매는 순조로웠다. 아줌마들이 우르르 몰린 곳에 가면 다 해결이 된다. 아니나 다를까 글루코사민이 코앞에 바로 보였다. 그러고 보면 선물을 해외 나가기 전에 다 사버린 격이다.
공항에서 잘 돌아왔다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몸 건강히 잘 돌아와서 됐다 하는 말만 연거푸 한다. 아마 지금 쯤 엄마는 글루코사민을 온 동네에 자랑하고 다닐 게다. 작은 선물이지만 엄마에게는 단순한 선물의 의미를 넘어선다. 아들의 번듯함으로 평소 갖고 싶었던 것을 갖는 뿌듯함이 있고 자랑도 하고 싶을 것이다.
글루코사민 선물은 나의 얼굴도 엄마의 얼굴도 된다. 누구는 이를 진면목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이는 분명 뽐을 내는 한 형태이고 그러기에 그러한 작태가 아니꼽고 느끼하다고 느껴지는 때가 참 많다. 엄마도 경로당에서 그 대접을 면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다들 기회가 오면 자랑을 늘어놓는 것은 그 평판보다는 자식에 대한 신의가 우선하기 때문이다.
변변치 못한 자식들로서는 어쩌다 자랑꺼리가 생긴 것이 그나마 고마울 뿐이다. 한 달도 채 안 지나서 “잘 들으면 또 사 드릴게요.” 라고 한 엄마에게 건넨 말을 까먹고 말 위인들이 그 누구던가. 형편없는 신의를 엄마는 평소 잘 안다. 그러기에 모처럼 얻은 호기를 엄마는 마땅히 누려야한다 싶다. 모처럼 건넨 선물로 온 가족이 기쁘다. 역시 선물은 따스한 마음으로 주고받는 정성이다.
첫댓글 그란트의 노랫말이 가슴을 애잔하게 울립니다. 어머니의 눈빛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어머니의 가슴에 다시 안길 수 있다면, 콧등이 시근거립니다.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병치레를 하시다가 이 맘때에 떠난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글에서 따스한 기운이 전해집니다.
'80년대 초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외국지사를 돌아댕겼습니다. 본국 휴가나 출장 시 선물은 필수적이었습니다. 일본에 있을 땐 코끼리 밥통을 주문했고, 독일에서는 쌍둥이 칼을, 영국에서는 본차이나 그릇, 이런저런 선물을 사가지고 갑니다. 특히 어머니께는 영양제를 아내에게는 람콘 콤택트와 영양크림이었지요. 동생들이거나 직장 상사, 후배, 친구, 친지, 은근히 기다리는 그들을 외면할 수 없었답니다. 선물은 받는 사람보다 주는 쪽에서 더욱 겸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먼저 가신 어머니의 모습이 어른거립니다. 더 좋은 선물을 못해드린 것에 대한 후회도...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