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그리고 20년
내가 미국에 이민 온 해는 1983년도 봄이었다. 미국의 당시 분위기는 역시 전세계인이 동경할 만한 그런 나라였다. 한마디로 아름답고 평화롭고 풍요로움 그 자체였다. 그래서 이 나라에 오기 위해 전 세계인의 이민 행렬은 끊이지 않아 왔다.
인구나 영토, 천연자원은 물론, 경제력이나, 군사력, 문화, 교육에까지 전세계 어느 나라가 대적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한 나라였다. 또 분야마다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포진돼 있어 누가 보더라도 미국의 미래는 거칠 것이 없는 세계 최강국임이 분명했다. 일찍이 로마제국 시대 이래 한 국가가 다른 국가들을 이처럼 압도하는 경우를 보인 적은 없었다.
이를 두고 한 유수 언론은 “미국은 지구 위에 걸터앉은 거대한 괴수와 같다. 미국은 비즈니스와 상거래, 통신을 지배하고 경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군사력은 그에 필적할 나라가 없다.”고 표현했다.
1990대 초 걸프전에서 미국은 손쉬운 승리를 거두었고 1880년대 말에는 단 한 명의 미국인도 잃지 않고 세르비아를 폭격하는데 성공했으며, 경제는 발전을 거듭했고 증권시장은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고 했던가! 걱정이라곤 없던 미국에 어느 날 갑자기 비상벨이 울린 것이다. 상상도 못할 사건, 꿈에도 생각지 못한 악몽의 9.11테러가 발생한 것이다.
이슬람 극단주의자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 카이다 집단이 비행기로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의 트윈 타워를 폭격, 미국의 지축을 뒤흔들고 전 미국인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이 사건으로 무고한 생명 3,000여명의 목숨까지 한순간에 재가 되었다.
그때 나는 막 직장에 출근해서 맨하탄 트윈 타워가 내다보이는 창문 너머 그 현장을 동료들과 눈물로 발을 동동 구르며 보고 있었다.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는 뉴욕의 상징물, 미국의 위상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직장 밖은 그야말로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장면. 맨하탄의 모든 출근자들이 다리를 건너 하루종일 퀸즈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피난민 대열이 따로 없었다. 그날의 아픔과 고통, 상처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이후 미국은 큰 충격과 악몽속에 시달렸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상처를 딛고 새로운 희망과 꿈을 향해 힘차게 나아간다는 의미로 '그라운드 제로'라는 이름의 새 건축물을 세웠다. 이를 계기로 미국은 인종간에 화합과 단결, 평화와 공존에 대한 필요성을 재확인하고 모든 국민이 더 밝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마음을 새롭게 다졌다. 그리고 20년. 과연 지금 그 다짐대로 나아가고 있을까.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미국은 점점 사회가 혼란스럽고 인종간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정치적으로나 이념적으로 극심한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오랫동안 침체 상태를 못 벗어나면서 빈부의 격차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예전의 평화롭고 잘 살던 모습은 온데 간 데 없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소리만 요란하다. 사람들의 인심만 흉흉해지고 범죄가 난무하며 인종간의 갈등과 마찰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마약, 총기사고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20년 전만 해도 미국은 길거리에서 누구를 만나도 친절했고, 어디를 가도 깨끗하고 질서 정연했으며, 공중도덕 정신도 모두 투철했다. 이런 곳에 범죄란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처음 내가 이민 와서 살던 롱아일랜드 집은 늘 대문이 열려 있었고, 밤 12시 기차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도 두렵지 않았으며 범죄 같은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만큼 살기 좋은 미국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럽고 지저분하고 두려운 나라로 변하지 않았는가. 게다가 먹고 살기도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누구든 열심히만 하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의 나라 미국이 아니라 점점 희망이 없는 미국으로 변모하고 있다.
60대 이상 일찍이 미국에 이민 온 한인 1세들은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해 자녀들을 잘 교육시키고 그런대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계속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후세들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미국은 아직도 세계 제1의 강대국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현 상황으로 보아 이런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지... 로마는 공화국과 제국으로 1,000년을 존속했다. 미국은 무엇 때문에 벌써 국가적 파워와 국제적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가.
그동안 베트남 전쟁과 경제 침체, 오만하고 과도한 대외 팽창 추구 등에 덜미가 잡힌 것이 주원인이 아닐까. 아프가니스탄 전쟁, 점점 불안으로 다가오는 중국의 급부상 등이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미국은 이 장벽을 어떻게 뛰어넘을까. 앞으로의 갈 길이 멀고도 험난해 보인다.
그러나 아직도 늦지는 않았다. 미국은 저력이 있는 나라다. 온 국민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합심만 한다면 얼마든지 다시 굳건한 반석 위에 설 수 있다. 그 것은 온 국민이 각자 자기 분야에서,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때 가능한 일일 것이다. 9.11테러 20주년을 맞아 다시 한 번 미국의 옛 영화와 번영을 되찾을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첫댓글 주필님 잘 읽었습니다.
늘 생각하고 글쓰시는 주필닝 이 글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정말 50년 전에 왔을 때 미국 상황를 그려봅니다.
누구나가 다 이웃이었던 때 말입니다.코비드로 더 이웃이 악화된 이 생활이 얼마나 지나면 제자리로 올까요?
선배님!
정말 옛날 미국을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지요?
미국은 정말 살기 좋은 나라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쉽게 아까워요. 온 국민이 하루 속히 심기일전해
나라가 안정을 되찾고 예전의 영화로운 나라로
다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언제나 격려해 주셔서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