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덕사에서 생전 처음 경험한 발우공양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발우공양이란 게 원래 이런 거였나? 나는 그냥 절밥 한 끼 먹는 거라고 쉽게 생각했었는데 그런 게 아니었다. 음식을 만드는 공양실로 줄지어 가 음식을 타오는 것부터 먹고 다시 갖다 놓는 것, 씻는 것까지 모두 우리 손으로 해야 했다.

커다란 방에 ‘ㄷ’ 자로 빙 둘러앉으니 비구니께서 뭔가 빼곡히 적혀 있는 종이를 한 장씩 나눠주셨다. 그 종이에는 공양을 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밥을 먹기 위해서 행해야 하는 첫 번째 예부터 열 다섯 번째 예까지 부담스럽게 쭉 나열돼 있었다. 죽비를 한 번 내리치면 합장하고 어떤 불경 구절을 외우고, 다시 한 번 죽비를 내려치면 합장하고 다른 불경 구절을 외우고, 다시 죽비를 내리치면 전발을 하는 등 단계별로 일일이 적혀 있었는데 이 종이에 따르면 총 13 번의 죽비 소리를 듣고, 총 6 번의 불경 구절을 읊어야만 그나마 밥 한 술을 입에 떠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여기까지가 1~15 번 중 9 번이다. 종이에 각 불경 구절에 대한 뜻까지 친절하게 설명돼 있었는데 여기다 옮기지는 못하겠다.
밥을 입에 떠 넣기까지, 그러니까 9 번에 도달할 때까지 단순히 합장하고 불경 구절만 외면 되는 것도 아니었다. 각 단계별로 어떤 그릇을 어떤 순서로 어디다 놓는지, 수저는 어떻게 해서 어디다 두는지, 그릇들을 어떻게 헹구는지, 어느 그릇에 어떤 걸 어떻게 담는지, 수저를 어떤 식으로 사용해야 하는지, 국이나 밥을 풀 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등 어느 것 하나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군대 생각이 절로 났다. 이런 거 하나 잘못했다가 집합 당한 게 부지기수였다. 그릇은 밥그릇, 국그릇, 물그릇(먹는 물이 아니다. 마지막에 설거지 하는 물이다. 이 물을 청수라 한다), 찬그릇, 이렇게 4 개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가장 큰 그릇인 밥그릇을 특히 어시발우라 한다고 몇 번을 강조하셨다. 왜 강조하셨을까? 나중에 어떤 설명을 해주실 줄 알았는데 안 해주셨다.









밥도, 국도, 찬도 모두 자기 먹을 만큼만 덜어서 먹게 되어 있었다. 먹는 속도가 많이 늦기에 나는 밥을 일부러 적게 덜었다. 덕분에 남들과 똑같이 공양을 끝낼 수 있었지만 오후 3 시가 되니 바로 배가 고팠다. 그런데 원래 절밥에는 고춧가루가 안 들어가지 않나? 많이 들어가 있어 좀 의아했다. 밥을 다 먹고 나서도,
“잘 먹었습니다.”
하고 주섬주섬 치우면 되는 게 아니라 총 9 번의 죽비 소리를 듣고, 총 2 번의 불경 구절을 외우면서 뭔가 법도대로 한 후에야 끝이 났다. 하긴 먹기 위해 펴는 것보다 먹은 후 정리하는 게 더 큰일인데 법도가 없으면 안 되지……. 치우는 단계 중에 내가 남긴 음식찌꺼기를 숭늉에다 깨끗이 말아서 마시는 단계가 있었는데 거기서 우욱~ 우욱~ 반찬으로 먹을 때는 몰랐지만 그걸 숭늉에다 풀어서 마시자니 기분도 맛도 영 찜찜했다. 다 마시긴 마셨다. 그 맛이 아무리 내 것이지만 시금털털누리끼리찜찜했다. 만약 사랑하는 은영이 것이었더라도 난 안 먹으려고 발버둥쳤을 것 같다.





처음 한 것이라 영 손에 안 익어 혼났다. 군대 나와서 처음으로 먹어보는 법도 있는 식사에 절도 있는 밥이라 다 먹고 나서도 틀림없이 내가 밥을 다 먹기는 먹은 것 같은데 진짜 다 먹은 게 맞나 싶도록 스스로 의심했다. 아마 밥 먹는 데보다 법도를 따르고 의식을 치르는 데 더욱 신경을 쓰다 보니 그런 것 같다. 하긴 우리 인간이 요즘 들어 유독 맛집, 몸에 좋은 집, 특이한 집을 찾아 다니며 식탐을 마구 발산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건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 같다. 살기 위해서 먹는 게 아니라 먹기 위해서 사는 것 같잖아? 이 발우공양은 먹는 게 삶의 목적이 아니라 먹는 것 또한 불자에게 있어 수행의 일부분이라는 걸 깨우쳐 주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우리 속인으로 치자면 바로 이런 것 말이다. 출근하자마자,
“오늘 점심으로 뭘 먹을까?”
와 같은 빤한 반인륜적 고민을 하지 말고,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점심을 먹으면서 오늘 오전의 삶이 어땠는지 반추하고 남은 오후의 삶을 그려 보란 뜻이다. 다시 삶으로 돌아가 오후에 열심히 일하고 저녁을 먹으면서는 오늘 하루의 삶이 어땠는지 반추하고 내일을 그리며 하루를 마무리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냥 오전을, 하루를 반추하라면 말만 하면 심심하고 따분하잖아? 그리고 매 끼니마다 반추하라고 소리치는 것도 짜증나고……. 그래서 죽비로써 박자를 맞추고, 불경으로써 화음을 넣는 거지.
“그대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아무렇지도 않았나요~ 혹시 후회하고 있진 않나요~ 다른 만남을 준비하나요~”
발우공양 한 번으로 이 정도 깨우쳤으면 정말 일주일 코스(Course) 한 번이면 바로 머리를 깎을 것 같다. 인생 뭐 있어? 내 안에 잠재돼 있는 뭔가가 깎으라면 깎는 거지. 발우공양을 끝내고 나니 물질적으로는 밥을 먹었다는 흔적 하나 없이 모든 세상이 발우공양을 하기 전과 똑같았고, 심리적으로는 내가 한 단계 성숙해져 있었다.




첫댓글 부지런한 역마살님의 걸음이 여기에서도 보이네요..언제 공양실까지... 절집에서 공양을 할때는 고춧가루든 반찬은 덜어놓지 말아야지가...제 생각이였습니다...ㅎㅎ 아주 새로운 경험이였어요...
한번은 먹어 봐야할 절집 밥을 , 발우공양으로 맛보게 된일이 새로운 경험이었지요
공양실로 걸어가는 걸음, 너무 시원한 바람도 한 몫했지만, 눈칫밥을 먹고 나와서 그런가 더 시원..
공양실로 갔다왔다 그리고 발우공양때 쫄아가지고 다들 밥을 먹은둥 만둥 했을거에요~ 무시라~ ㅎㅎ
역시..역마살님은 학창시절 공부잘한거 맞는것 같군요..그냥 지나친것도 눈여겨 볼줄알고 요점정리도 이렇게 확실히 하고...웃음소리만 이쁘면 금상첨환데..히히히
진짜로... 하하하... 음하하하...
아..이제 정말 멋진 사나이가 된..웃음소리~바로 이거얌! 근데 덜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