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첫 번째 실업급여를 신청했을 때는 우리나라에 IMF가 터진 이듬해인 1998 년 초였었다. 당시에는 모든 기업들이 어려워 11 년치 인센티브를 준다기에 자진 희망퇴직을 신청한 후에 노동부로 부터 1 차로 실업급여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나는 대기업(현대)에서 근무를 한지라 여러 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었지만 많은 중소기업에서는 퇴직금도 못주면서 직원들을 생으로 쫓아낸 분들도 당시에는 아주 많았었다.
대우 및 현대에서 약 25 년간의 직장생활을 접고 그 후 약 1 년간 쉬면서 내 나이 52 세 되던 1999 년 초에 호주 시드니로 영어 어학 연수를 갔었다. 어학 연수 후 귀국을 한 후에는 바로 인천 남동공단에 취직을 하여 4 년 6개월을 해외영업을 맡아 일을 하였다. IMF 자발 퇴직 후에 약 1 년 6 개월 후에 재취업을 한 셈이었다.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옮긴 후 약 4 년 6개월 근무 하면서 해외 출장을 18 차례나 다녀 왔으니 이 중소기업에서는 1 년에 무려 평균 4 차례나 해외를 다닌 셈이었다.
내가 다니던 중소기업회사에 해외에서 수주가 끊기면서 2003 년 말 부로 권고 사직을 한 후에 2 차로 실업 급여를 받게 되었다. 사실 좋은 말로 권고 사직을 당한 것이지만 중역으로 기실은 일반 사원의 경우라면 당시 내 나이가 기업에서의 정년 퇴직에 해당하는 셈이었다.
그 후 약 1 년 6개월 가량이 지나서 2005 년 7월에 또다른 중소기업에 적을 약 1 년간 둘 수가 있었다. 고령자를 채용해 줄 경우 노동부에서 그 회사에 첫 6 개월간은 매월 60만 원씩 지원을 해주고 다음 6 개월은 월 30만 원씩을 지원해 주었기 때문에 일시 재취업이 가능했었다.
주로 회사 매뉴얼에 대한 일어 한역 및 영어로의 번역 일을 담당했었다. 사실 그 때 퇴직을 할 때에도 회사의 배려가 주어졌었다면 실업급여에 해당되었으나 회사에서 나에게 양해를 구해오는 바람에 실업급여 수혜의 내 생각을 접었다.
그 후 약 2 년간 직업 없이 백수 생활을 영위했었다. 아니, 기실은 그 사이에 중국에 가서 약 3 개월간 미국계 회사에 근무를 했었다. 월급은 미국 달러와 중국 돈으로 받았으니 일종의 외화벌이를 한 셈이었다.
내가 한 약 30여 년의 직장생활 가운데 상당 기간을 수출에 종사를 했었으므로 우리나라 국가 발전에 약간 기여를 했었다고 자부를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리라.
우연한 기회에, 2008 년 7 월부터 작년(2009년) 12 월 까지 부천의 아동복지센타에서 근무를 할 수 있게 되어 이번 퇴직으로 또다시 3 차 실업급여를 받게 되었다.
내 나이 회갑, 진갑 넘어 실업급여를 신청하면서 약간의 자부심도 생긴다. 부천의 고용지원센타에 들러 실업급여를 신청하여 보니 아동복지 일을 하며 그간 받던 월급의 50%를 받게 되는데 내 나이 만 50 세가 넘었으니 무려 5 개월씩이나 실업급여를 준다고 한다.
초등생 아이들과 1 년 6 개월간 지지고 볶고 하느라고 그간 해외여행도 하지를 못했다. 그래서 날이 따뜻해지자 2010년 금년 5월 쯤에 동유럽 8 개 국가를 돌ㅇ 보앗다. 그리고 재충전을 위한 여행을 다녀 온 후에는 다시금 일할 자리가 있나 틈새시장을 노려 보았으나 60대로서 경쟁력이 없어져 긴 백수 기간을 누려야 했다. 나이 먹어서 우리나라에서는 그 쓰임새가 흔치 않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