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1980년양력10월21일생 2024년현재 세는나이 45살(연나이 44세,10월21일이후 만43세) 박세원입니다. 학생때에는 또래나 형이나 누나가 있어서 든든했지만 전문대 졸업하고 2001년3월이후에 1981년생 이후의 동생들하고 거의 계속 만나면서 일상생활이 전쟁터였답니다. 순리대로라면 제가 보통 또래의 남자들보다 군대를 안가니까 또래 남자들이 군대에서 2~3년 있는동안에 사회생활에서는 또래 남자들보다 선배이고 주로 형,누나들과 어울리면서 배우고 정신적으로 성장해야 하는데 길을 잘못가서 여태까지 일이 잘 안풀리고 꼬이고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어요. 어렸을때 형하고 누나한테 배우면서 올바르게 행동했다면 장가도 빨리가고 자리도 잡았을 것입니다. 직장생활도 독립적으로 제대로 하지 못했고 아버지 세무사사무실에 겨우 있으면서 간단한 일만 했고 솔직히 직원 누나들과도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고 제 행동이 바보스러워서 무시를 당하기 일쑤였답니다.(아이러니 하게도 직원 누나들도 1978년양력3월9일생 심재영(가명) 누나와 1979년양력2월8일생의 임민숙(가명) 누나 등의 저와 1~2살밖에 많지 않아서 철이 없었고 저의 약점을 이용하고 놀렸어요.) 취미생활 동호회인 버스매니아 모임에서도 제 또래 밑의 동생들 위주로 관계하다 보니 소견도 좁았고 서로를 너그럽게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하고 앙심품고 서로 잘났다고 싸웠답니다.(버스매니아 동호회 회원들도 주로 1982년생부터 1990년생까지 어린 동생들 위주로 이루어져서 제가 스트레스를 받고 상처를 받았어요.) 그렇게 제가 스트레스를 받고 3년동안 겨우 간당간당 있던 중에 중간에 제가 마음의 상처를 받아서 우울증에 걸렸고 남을 의심하고 원망하는 습관만 가졌고 그렇게 부모님이 걱정하셔서 지금까지 마음이 불안하고 잠을 못자서 정신과 상담을 1달에 한번 받으면서 약물 치료를 하고 있어요. 그 일 때문에 사회생활의 사람들과 제대로 관계가 어렵고 불안해서 2004년부터 2007년까지 4년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고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들을 위주로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이용자가 1대1로 치료하는 시설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하루하루가 불안했었고 부모님은 어쨌든 저를 치료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결국에는 어려워서 그만두었고 2007년7월부터 천주교 성경공부하는 곳에서 저를 신앙공부를 시켰어요. 그렇게 1년정도 다녔지만 저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둥마는둥 시간만 때우고 부모님의 속을 썩혔고 결국엔 2008년8월5일 화요일에 장애인으로 등록했어요. 제가 직업을 가지고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려면 장애인 등록을 하는 방법밖에 없어서 부모님과 제가 결단을 내리고 독한 마음을 먹었어요. 그렇게 새로운 삶으로 2008년10월부터 지하철 택배에 취직을 하기 시작했어요. 지하철 택배를 했는데 제가 지하철 노선 지리는 잘 알지만 말썽도 많이 피웠고 형,누나들 말씀도 듣지 않고 제 멋대로 한게 후회가 되었어요. 그렇게 2013년2월까지 지하철택배 일용직을 마치고 자폐인사랑협회 상담을 했어요. 2013년부터 저처럼 자폐 장애를 가진 분들의 눈높이를 알고 인성교육을 실시하는 것을 알고 부모님과 제가 진로를 추진했어요. 제가 다른 또래들이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자리를 잡았을 때 게으르게 허송세월을 보내서 그때부터 어린 동생들과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불행의 세월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어요. 자폐인 교육을 받고 2013년5월에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 일을 시작했어요. 패스트푸드점에서 일을 시작해보니 제가 싫어하는 여동생뻘되는 직원이 장악하고 있었어요. 구체적으로 1988년양력1월14일생의 김현정(가명) 여동생이 패스트푸드 점장 역할을 했었고 1985년양력1월14일생 양하영(가명) 여동생과 1986년양력6월29일생 이은규(가명) 여동생과 1993년양력8월10일생 김한나(가명) 여동생과 1994년양력9월24일생 김한슬(가명) 여동생과 고등학생 아르바이트생인 1996년양력6월17일생 김민주(가명) 여동생과 함께 일을 했어요. 처음에는 참고 하다가 8월말쯤 대인관계에 스트레스를 받고 견디기 힘들어서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어요. 그렇게 무직으로 지내다가 2013년11월에 제 여동생이 결혼을 하고 저희 서울 신당동 동네에 지적장애인협회 중구지부에 소속된 파란마음주간보호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만큼 제가 장애가 있고 동생들의 고충은 알지만 저의 불편한 것을 못참아도 센터장님은 이해를 해주시고 2014년7월부터 구청에 공공근로 신청해 주셔서 서울역 뒷편 서소문근린공원 청소하는 일을 시작했어요. 거기에 어르신들은 친절하게 도와주고 잘해주셨지만 같은 공공근로인 동료인 1986년양력10월23일생 박호연(가명) 남동생은 하루만에 사고쳤고 저를 무시하고 괴롭혔고 폭행하려고 했어요. 그렇게 어르신하고 2014년을 마무리 할때까지 일했다가 2015년부터 서울 충무로 옛날 스카라극장 근처 한국나눔복지협회 인쇄소에서 기초적인 일을 간단히 하면서 2016년9월 제주도로 이사가기 전까지 일했어요. 그렇게 제가 안정적인 직업이 없었고 서울에서의 불행한 생활이 싫어서 부모님과 제가 제주도로 이사가기고 결정했어요. 그리고 2016년11월에 제주도장애인복지관 춘강에 상담하고 직업적응 훈련을 시작했어요. 초반에는 직업훈련을 받는 동료들이 온순했고 배려를 해서 한동안 직업훈련을 하면서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는데 2017년8월말부터 직업훈련을 받는 동료들 중에서 불량한 성격을 가진 동생들이 생기면서 제가 매우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구체적으로 1983년양력5월8일생 장선아(가명) 여동생과 1990년양력4월17일생 정윤지(가명) 여동생과 1994년양력7월생으로 추정되는 임진수(가명) 남동생 때문에 제가 매우 힘이 들었어요. 그렇게 어려운 시간동안 있다가 2018년2월달에 제주 희망나래 일터로 취업이 알선 되었어요. 2018년2월12일 월요일부터 2018년2월말까지 견습 과정까지 긴장이 되고 이 일을 놓치면 아무것도 못된다는 좌우명으로 열심히 노력을 했어요. 결국에는 2018년3월2일부터 제주 희망나래 일터에 입사하기 시작했어요. 그만큼 희망나래 일터에는 1991년생 이후의 나이차이가 많이나는 어린 동생들 위주로 이루어져서 제가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어요. 부당한 말이나 행동이 있어도 저는 참고 들어주고 인정하고 져주고 일을 배워야 하겠다는 마음 속에서 5년을 있다가 2022년9월말에 희망나래 일터를 수료하고 2022년10월부터 제주 희망나래 꿈터에 편입되었어요. 2022년10월부터 제주 희망나래 꿈터에 편입하면서 주간보호센터의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저보다 형,누나인 분들을 조금씩 알고 만나면서 인연이 되면서 저한테도 자신감이 생겼어요. 하지만 제주 희망나래 일터에 근무하시는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 높은 자리에서 근무하시고 진급하신 분들이 1980년생(남자선생님이 원장님이심.)~1986년생까지 주름을 잡으시고 장악하셔서 저는 자주 스트레스를 받고 위축되고 나는 어쩌면 그분들보다 떨어질까 생각이 되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