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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볼로의 사역(1936.2018.11.4)
행18:24-28
할렐루야
여러분이 기도 해 주신 덕분으로 필리핀 사역을 은혜중에 잘 마치고 건강한 몸으로 돌와 왔습니다. 미라클신학교 교회에서 설교를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히 임했습니다. 한국어로 영어로 따갈로어로 설교 하기로 했는데 작년에 통역해준 학생을 페이스북에서 만나서 설교문을 보내어 따갈로어로 번역을 해달라고 하여 따갈로어 번역문을 필리핀 현지청년에게 주어서 바로 따갈로어로 동시통역을 하게 했습니다. 준비한대로 은혜가 임했습니다.
작년에 갔던 피스교회에서는 다른 분이 영어로 직접 설교했는데 30분만 해서, 또 다른 분이 40분을 설교를 해서 시간이 많이 남았습니다. 작년에 제가 한편의 설교할 때에 두시간씩 했는데 시간이 남아서 제가 작년에 부흥회 했던 동영상 24분 짜리를 만들어 갔는데 그들이 했던 찬양, 율동, 밥먹는 것 등등을 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현수막으로 사진을 넣어서 가져갔는데 끝나고는 자기들 얼굴 찾아보면서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년에 또 오라고 하는데 제가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교회 건축중인 낙사바란 교회 가려고 화요일 준비를 했는데 태풍이 와서 바람불고 비가 많이 오고 엄청났습니다. 그래서 못가고 목요일 아침 7시에 출발하여 교회봉고차 타고가다가 다시 지프니 차로 갈아타고 산속에 들어가서 다시 내려서 걸어서 20분을 갔습니다.우리가 기도하던 현수막을 거기 걸어주고 찬양하고 예배드리고 아수기도 해 달라고 하여 아수기도 해주고 함께 점심을 그 교회에서 고구마 삶은 것과 바나나 잎에 구운 찰쌉밥을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는 3시간 걸려서 바기오에 갔습니다. 바기오는 도시전체가 산곡대기에 있습니다. 1600미터 고지에 있는 도시입니다. 지난 태풍으로 인하여 산사태가 나서 100여명이 죽고 마을 하나가 완전이 매몰되어서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곳곳이 산사태로 많은 피해를 입은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선교사 두 사람을 만났는데 이정현 선교사는 현지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목회하면서 교회를 건축하고 있어서 여러분이 주신 용돈 일부분을 드렸습니다. 그 교회 사모님은 제가 북성교회에서 교육전도사할 때 교회 사무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사모님도 알고, 지원이도 안다고 하니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세상은 좁다고 합니다. 그 교회에 건축 현장에 가서 통성기도 하고 기도해주고 대화하고 그날밤 걱서 잠을 잤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박종수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이분은 한국에 있을 때 부자 목사이기도 하고 필리핀 선교를 위하여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다가 선교햔장을 자주 가서 둘러보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직접가서 하라고 하여 10년전에 한국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필리핀 현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쓰레기 주워서 먹고 사는 쓰레기 마을에서 선교를 했는데 그들을 돌보고 교육하고 훈련 시켜서 그 아이들 중에 의사도 있고 학교선생도 있고 유치원 교사도 있고 많은 인물을 만들어서 교회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들이 다 직장생활과 교회에서는 찬양사역자들로 헌신하고 있습니다. 선교사의 사역지가 10군데가 넘는 큰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것도 보았습니다. 박종수 선교사 사모님이 새벽기도 마치고 시장을 봐와서 점심을 준비해 주셔서 점심도 맛있게 먹었고 열대과일도 두개 먹었습니다. 당뇨 때문에 먹을 수가 없어서 두개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는 공항으로 오는 길에 3시간 걸려서 작년에 수상마을에 배타고 들어가서 교회가 생기도록 기도해주다는 말을 들으셧지요 바로 정말 간나한 그 동네에 교회가 세워져서 그 현장을 배타도 들어가서 둘러보고 기도해주고 왔습니다. 작년에 매주일 오면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는데 금년초에 마을 이장이 초등학교에서 예배를 드리라고 해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신학생 하나를 보내서 매주일 예배를 드리게 되어서 그 현장을 둘러보고 왔습니다. 솜사탕 기계를 가지고 그 수상마을 학교 운동장에서 그걸 해주느냐고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한달에 한번 솜사탕을 해주려고 계획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거기서 두시간 걸려서 클락 공항으로 이동하여 저녁을 먹고는 공항에 밤 10시에 도착하여 수속을 하고는 새벽 2시 35분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왔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해주셔서 이렇게 선교지역을 돌아보고 은혜끼치고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우리는 신앙에 있어 또 하나의 독특한 형태를 엿볼 수가 있습니다. 본문으로부터 시작해서 다음에 공부하게 될 19장 7절까지 자세히 읽어보면 세 가지 모델의 그리스도인, 혹은 세 가지 단계의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똑같이 예수를 믿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 수준과 단계가 셋으로 구분됩니다.
첫째가 오늘의 본문에 나타난 아볼로 같은 교인입니다. 아볼로는 성경에 능한 자요, 주의 도를 배워서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주의 도를 배워서 아는, 학습된 교인입니다. 그런가 하면 성령의 체험이 없이, 배운 사람에게서 또 배우는, 어쨌든 배우기만 하는 유의 제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에 대해서 흥미를 느끼고 있고, 기회가 닿는대로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좋아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 마음에 확실한 영적 체험은 없습니다. 우리말로 한다면 상식적 교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성령을 받은 교인입니다. 성경이 말씀한대로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적 맥락에서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중심으로 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증거를 받고, 역사적 사실을 말씀 증거로 받고, 그리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신앙을 고백한 제자,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행1:8절‘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받고, 권능을 받으면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심입니다.
1.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는 그리스도인이어야 합니다.
성령 받은 사람의 증거를 들은 사람이 그 증거를 받아들이면서 그 귀한그리스도의 구속사적인 사건, 구원의 사건 앞에서 그리스도와 내가 만나면서, 그 증거를 받아들임으로써 그 사건이 내 안에서 사건화하고 실재화하고 생명화할 때에야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 사실을 계속 설명하는 것이 사도행전입니다. 우리가 두고두고 여러 말로, 여러 방법으로 깨닫고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누구냐? 오늘날에도 그것을 분명히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적 증거를 내가 받아들여서 성경에 나타난 구원의 사건에 내 안에서 사건화할 때, 생명적 사건으로 바꾸어질 때, 다시 말하면 내가 예수님을 직접 만나는 그런 체험을 접하게 될 때에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을 많이 외우고 많이 알았다고 해서, 많은 지식이 있다고 해서 또 모든 종교 예식에 빠짐없이 참석했다고 해서 교인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봉사 생활을 많이 한다고 해서 교인이 아닙니다. 엄격히 따져 말하면 사도행전적 맥락에서의 그리스도인이란, 말씀의 증거를 받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는 그 사람이 교인입니다.
나에게, 나의 삶을 통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이 증명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나의 모든 것이 된다’라고 보여줄 수 있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나의 삶과 죽음 즉 인생의 모든 문제,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영원의 문제까지 해결될 수 있다는 확신과 증거를 보여주어야 예수님이 나에게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예수님 안에서 소중히 여기게 됩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그리스도가 되시면 보잘 것 없는 자신이 소중히 여겨집니다. 즉 자신과 화해하게 됩니다. 허물과 죄 가운데서 인생에 실패하고 영영 죽어야 마땅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에게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자신을 일으켜 세우면서 삶의 고난으로 인해 쓰러져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자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증명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할 수 있으면서 똑같은 삶의 처지에 놓여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 믿는 감동과 소망을 전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어떤 사람과도 하나됨의 감격을 누립니다. 하나됨의 감동, 감격을 경험하는 곳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임이 증거 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되면 예수님 안에서 한 가족에 속하게 됩니다. 그 가족 안에 계속 거하고 서로 교제하는 중에 지역과 인종, 신분과 계층, 지위와 외모, 남녀 성차별 상관없이 그 안에서 하나됨의 감격과 감동을 누리게 됩니다. 전에는 세상적으로는 나와 전혀 상관없고 나와 다르기까지 한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로 만나면서 서로 돕고 섬기는 중에 감동과 감격을 주고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감동과 감격을 주고 받는 영적 가족에 내가 속하여 있다면 내게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는 증거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하나됨의 기쁨이 믿는 자들의 영혼의 양식이 되고 힘이 됩니다.
신앙생활은 관계입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개인적인 경건생활에 열심을 내야합니다. 동시에 말씀대로 삶을 실천할 수 있는 현장 즉 영적 가족에 속하면서 서로 섬기고 사랑하는 교제를 통해 하나됨의 감동과 감격을 누려야 예수가 그리스도임이 증명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 누구와도 서로 하나되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증명하면서 걸어간 그 믿음의 걸어가야 합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이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영혼구원하고 제자 삼는 현장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임이 증명됩니다. 영혼구원하고 제자 삼는 현장을 벗어나면 어떻게 되는가? 아버지 마음, 어머니 마음이 사라지면서, 자신이 기준이고 중심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됨이 아닌 서로의 차이만이 부각되면서 목장 생활, 교회 생활에서 곤란을 겪습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영혼을 불쌍히 여기면서 그를 마음에 품고 기도하고 섬기면서 목장에서 영적 한가족으로 만나게 되었을 때의 기쁜 감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계속 예수님 안에서 자라가는 것을 옆에서 바라보는 보람의 감동을 누립니다. 예수님이 그 제자들을 끝까지 섬기고 사랑하면서 대하신 것처럼, 그리고 성령 안에서 우리를 그와같이 대하신 것처럼, 우리도 누군가를 향해 그처럼 살아간다면 예수가 그리스도임이 증명되는 삶을 끝까지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2.아볼로는 어떤 사람인가?
2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사도 바울은 52년 여름부터 53년 봄까지 안디옥에 머뭅니다. 그리고 다시 전도여행을 떠납니다. 이 때는 바나바나 실라나 디모데나 주목할 만한 그 누구도 함께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아마도 바울이 이번 여행에서는 선교팀이 아닌 혼자서 전도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번 전도여행의 목적은 먼저는 2차 전도여행 때 복음을 전한 지역에 가서 이미 그리스도의 ‘제자’된 성도들을 이단의 거짓 교훈에 흔들리지 않고 더욱 믿음을 굳게 서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4절‘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 거룩한 역사서인 사도행전은 선교 여행 중에 있는 바울의 문제를 감간 떠나 본문에서는 에베소에 있는 ‘아볼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유명한 아볼로 목사가 나옵니다. 그는 알렉산드라아의 태생으로 유대인입니다. 이곳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더 대왕이 세운 도시로서 상업도시, 지식과 학문의 중심지, 또한 웅변술이 다양한 도시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유대인들을 이곳에 이주 시켰는데 유대인들이 크게 번성하여 당시 인구의 ⅓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곳에서 태어난 아볼로의 신분은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이곳에 복음을 처음 전한 사람은 마가 요한이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아볼로는 일찍이 학문을 익혔고 또한 구약성경에 정통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복음의 핵심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아볼로는 세례 요한을 통한 그리스도만을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는 못했습니다. 그가 이곳에 온 것은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떠난 직후부터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가 에베소에 와서 사실 상 바울의 선교 활동에 예비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볼로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대인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유명한 기독교의 5개 도성을 소개하면,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수리아의 안디옥, 이달리야의 로마, 소아시아의 현재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 그리고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입니다. 알렉산드리아란 알렉산더 대왕이 애굽을 정복한 후에 애굽 북쪽 지중해 연안에 건설한 도시로서 유대인이 많이 모여 살았습니다.
학문이 많은 사람입니다. 많이 배운 사람입니다. 여기 ‘학문이 많고’라 함은 ‘능변의 사람, 사상의 사람, 교훈의 사람’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지식도 풍부했지만 말에 능한 사람입니다. 지적으로 능변가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 그 도시에는 라틴, 헬라, 인도, 애굽의 서적 70만 권을 소장한 대 도서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교육 도시입니다. 이곳에 구약 성경 70인 역이 보관되어 있으며 현대판 히브리어 성경이 번역된 곳이고 세계 최초의 신학교가 생긴 곳이며 그 유명한 오리겐 교부가 활동했던 곳입니다.
성경에 능한 사람입니다. ‘성경에 능한 사람’이란 말은 성경에 능력 있는 사람이란 뜻으로 성경 해석에 전문적인 힘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알렉산드리아에는 클레멘트와 오리겐 등 신학자들이 성경을 가르치는 신학교가 있었습니다. 아볼로는 학문뿐만 아니라 성경에도 능했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무시하고 신앙을 무시하는 학자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 지식이 무지하면 신앙적, 신학적 혼돈이 옵니다. 아볼로는 신앙도 좋고 성경에도 능한 목사였습니다. 후에 고린도 교회에서는 아볼로 파가 생겨날 만큼 아볼로가 유명한 사람입니다.
25절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아볼로는 종교적인 열심도 대단했습니다. 지식이 많은 사람은 열정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열정이 불타오르기는 하는데 지식적으로 약한 사람도 있습니다. 아볼로는 성경과 학문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기도 하고 아주 열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결함이 있다면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세례와 불세레를 몰랐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는 있지만 구원에 이르는 온전한 자식을 갖지 못했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열심히 좌우합니다. 모이는데 열심히 있어야 하고, 기도하는 일에, 봉사하는 일에, 전도하는 일에 열심히 있어야 합니다. 여기 ‘주의 도를 배웠다’고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반복적인 학습을 의미합니다. 모든 교육은 반복입니다. 이것을 복습교육이라고 합니다. 운동선수에 비교하면 반복, 또 반복 훈련과 같습니다. 성경 공부도 반복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읽고 또 읽고, 듣고 또 듣고’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 목사님 설교는 한 소리를 또 하고 또 해서 그 소리가 그 소리’라고 합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목사 설교가 성경 66권의 말씀을 하다보면 그 소리가 그 소리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매우 정상적인 설교입니다. 특별한 설교를 한다고 하는 목사가 더 위험합니다. 이단들의 설교가 대부분 엉뚱한 이야기로 사람들의 영혼을 사로잡습니다. 정말 조심해야 됩니다.
여기 또 ‘열심으로’라 함은 ‘끓어오르는 열정을 가지고 가르쳤다’는 말입니다. 강의도 열정으로 하는 강의는 머릿속에 잘 들어옵니다. 그런데 열정도 없고 성의도 없고 준비도 없는 그런 강의는 사람들을 실망시킵니다. 마찬가지로 설교도 열심히 준비하고 기도해서 전하는 말씀은 큰 은혜가 되고 역사 하는 힘이 나타나게 됩니다.
‘자세히 가르치다’라는 말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세밀히 가르침을 뜻합니다. 가르치는 것도 준비가 있어야 됩니다. 내 속에 뭐가 있어야 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도 내 속에 예수가 있어야 예수를 줄 수가 있고, 불이 있어야 불을 줄 수 있고, 사랑이 있어야 사랑을 줄 수가 있습니다. 세상 지식은 배워야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하나님께 받아야 됩니다. 은혜를 받아야 되고, 불을 받아야 되고 능력도 받아야 능력 있는 성도로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아볼로 목사님에게도 정말 복음의 핵심을 모르고 있다고 말합니다. 무슨 소리냐면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더라’는 말씀입니다.
아볼로는 아마도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주님의 십자가의 도는 배웠으나 믿지는 않았습니다. 예수에 관한 지식은 알았으나 구주로써의 예수를 몰랐습니다. 세상 지식은 ‘아는 것이 힘’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믿는 것이 힘이 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고 했지, 주 예수를 알아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아는 것 보다 믿는 것이 더 능력입니다.
세례요한의 물세례를 알았으나 예수님의 성령세례와 불 세례는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아볼로는 불행하게도 성령이전의 사람이었고 거듭나지 못한 학자였습니다. 지금도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아볼로와 같은 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믿음과 지식을 겸비한 자로써 성령의 권능이 충만한 자였습니다. 사도바울이 왜 그런 능력을 받았습니까? 부활의 주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만나면 사도바울처럼 능력자가 됩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 주님을 만나십시다.
2.아볼로의 사역입니다.
아볼로는 회당에서 아주 열심히 에수님에대해서 용기있게 가르쳤습니다. 거기다가 겸손하기 까지 했습니다. 사도 바울을 따라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서 회당에 나아간 것 같습니다. 거기서 담대하게 예수의 관한 것을 가르치는 아볼로의 가르침을 듣게 됩니다. 아볼로의 가르침을 들은 두 부부는 아볼로의 가르침은 복음의 핵심에 대하여서 무지한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아볼로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또한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들 등에 관하여 가르치게 됩니다. 이처럼 아볼로가 에베소의 회당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나 영적인 지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26절‘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아볼로가 회당에서 많은 학식과 웅변술로 담대히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회중은 반응이 없습니다. 사도바울이 설교했을 때에는 유대인들이 큰 감동을 받고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회당장도 돌아왔습니다. 빌립보 간수장도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아볼로는 말에는 능통한 것 같은데 성령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성령을 드러내야 회개가 터지고 하나님께 두 손을 번쩍 드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에서 아볼로가 성경을 가르쳤는데 그곳에 누가 있었습니까? 브리스길라 부부가 함께 그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여기서부터 브리스가의 이름이 먼저 나옵니다. 아마도 그의 부인의 믿음이 앞섰던 것 같습니다. 브리스가 부부가 아볼로의 설교를 듣고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그들은 누구의 설교를 들었습니까?
바울의 설교를 들었던 자들입니다. 그래서 아볼로를 자기 집에 모셔다가 잘 대접하고는 바울에게서 배운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의 도리와 부활의 진리를 더 자세하게 풀어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브리스길라 부부의 인격을 다시 봅니다. 그들은 아볼로를 비난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그를 헐뜯지 않았으며 그가 다만 ‘요한의 세례에 대한 지식만 지녔다’고 해서 무시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들은 바울 사도 밑에서 배운 영적인 복음의 진리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갖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을 아볼로에게 전하고 방법론적으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가르치는 자의 용기도 대단하지만 그 가르침에 따랐던 아볼로의 겸손도 용기가 있습니다.
사실 아볼로는 구약 성경의 대학자인데 장막 짓는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은 대단한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아무나 그렇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이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서 제대로 복음을 듣고 가르침을 받은 아굴라는 열정으로 그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가야의 고린도교회로 가게 됩니다. 그는 실라에 뒤를 이어 고린도 교회의 세 번째 담임자가 됩니다. 그는 사역자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 분명히 증거하는 복음의 증인으로 살게 됩니다.
3.아볼로는 배운대로 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27절‘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니 형제들이 저를 장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 하였더니 저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아볼로가 생각하기를 이곳 에베소에서는 더 이상 가르칠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브리스길라 부부에게 맡기고 아가야 지방으로 떠났습니다. 이 아가야 지방이 고린도를 싸고 있는 큰 도시였습니다. 아볼로가 아가야로 가겠다고 하니까 브리스길라 부부가 그곳 형제들에게 편지로 소개하여 그를 잘 영접하게 하였습니다.
고린도에 도착한 아볼로는 이곳에서는 확실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곳 형제들이 아볼로의 설교에 큰 은혜를 받고 신앙생활에 유익을 주었습니다. 아볼로는 고린도 교회에 큰 기둥 같은 종이 되었습니다.
그때 바울이 고전3:4-8절‘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 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28절‘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아볼로 설교는 이젠 완전 복음의 핵심만 전하게 된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들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들이 꼼짝할 수가 없었습니다. 구약에 메시아가 온다고 했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아라고 증거 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꼼짝도 못했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방 이단들과의 싸움에서 사탄과의 영적인 싸움에서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제대로 알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 보면, 고린도교회는 4개의 파로 나눠져 있습니다. 그리스도파, 게바파, 바울파, 그리고 아볼로파입니다. 파를 정당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아볼로가 고린도교회에 영향을 크게 미쳤다는 뜻입니다. 아볼로는 자신의 재능을 주님께서 쓰실 때 아낌없이 드렸고, 베드로나 바울 같은 사도는 아니지만 복음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변증가로서 최선을 다 하였습니다. 아볼로는 자신이 사람들 사이에서 좀 인기가 있다하여 바울을 업신여기거나 불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을 비롯해서 여러 사역자들과 동역을 하는 귀한 일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서신에서 아볼로에 대한 평가를 할 때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하였고 또 아볼로를 형제라고 평가하였습니다. 아볼로는 충고를 그대로 받아들여 성경으로서 그리스도를 증거 한 사람입니다. 아볼로의 메시지의 핵심이 성경이 말씀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데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볼로의 메시지의 핵심은 예수는 그리스도라는데 두었습니다. 이것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통해서 발견한 진리였으며 복음의 핵심이었습니다. 어떤 전도자들은 복음을 전하지만 항상 빙빙 돌기만 하고 핵심인 그리스도를 제시하지 못합니다.
어떤 전도자들은 말은 많이 하는데 복음은 풀리지 않습니다. 말은 많아도 복음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은 경우, 복음의 핵심을 두고 말을 너무 많이 하므로 성경의 그리스도를 증거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아볼로는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으로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언변만 구사할 줄 아는 자가 아니라 성경을 깨닫고 복음을 유능하게 전파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말씀을 마무리 해 봅니다. 아볼로의 겸손과 듣는 마음을 우리들도 배워야 합니다. 당대의 뛰어난 학자요 구약에 정통한 아볼로가 천막 제조업자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 복음의 도를 배웠던 겸손함이 없었다면 그는 내내 복음의 진수를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볼로는 초대 교회에서 가장 뛰어난 설교가로 인정받을 만큼 달변가였으며, 고린도 교회에 그의 당파가 생겨날 정도로 많은 추앙을 받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는 자신의 재능과 능변으로 자신의 인기를 도모하지 않았고, 오직 그 은사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만을 원하였습니다. 우리들이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서로를 시기하거나 부러워하지 않고 주를 위한 동역자로서 훌륭한 일치와 협력을 보인 아볼로와 바울, 또한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였지만, 불완전한 복음 이해에 머물러 있던 아볼로를 깨우쳐 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등의 사역을 통해, 복음 증거에 있어 동역자의 도움이 얼마나 필요하며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밭으로 보았습니다. 처음에 자기가 와서 좋은 씨를 뿌렸습니다. 아볼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르셨습니다. 하나님은 두 사람의 사역을 다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심는 이도 중요하고 물 주는 이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기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심어도 아무리 물을 주어도 길러 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초대 교회사에 아볼로는 빼놓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아볼로는 큰 사람이었습니다. 용감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귀히 사용하였던 사람입니다. 마틴 루터는 히브리서 기록자를 아볼로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아볼로와 같은 인물을 만들어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어마어마한 비밀을 아이들 때 이야기해 놓으면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대강 이야기하면 안됩니다. 우리교회도 아볼로와 같은 일꾼들이 새워져서 아볼로와 같은 참으로 진지하고 성실하고 열정적이면서도 겸손한 하나님의 일꾼들이 많이 나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