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숙제를 하면 되나요?
어떤 세상에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과제로 받았다고 여겼는데 맞나요?
어린 시절부터 내가 살고있는 대로
불만 없이, 어쩌면 만족스럽게 살았었나?
그래서 나는 별다른 곳을 꿈 삼은 적이 없었다.
나이 차이 많은 언니, 오빠들의 귀여움받고,
두살위 오빠와도 별 긴장 없이 자랐다.
할머니 곁을 오빠와 겨루긴 했어도
할머니는 어린 나를 먼저 봐주셨고,
오빠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뭘 특별히 "잘 해야한다"는 요구를 하지 않으셨다.
내가 하는 속도가 느려도 그대로 받아주셨다.
빨리하라고 재촉하신 적도 없다.
오히려 침착하다고 여기셨을까 기다려주셨다.
그러기에 학교에 가고,
바깥 세상에서도 나는 긴장하지 않고 지냈다.
따라서 친구들이 경쟁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길 필요도 없고,
앞에 나서는 사람이 될 필요도 없었다.
동네 친구들과 골목에서 열심히 놀았다.
고무줄, 공기, 오랫말, 줄넘기 등등
자동차가 없었던 시절 돈암동 골목길은
아주 안전한 놀이터였다.
대문만 열고 나서면 바로 골목길이였으니...
그리고 나에게는 기독교가 삶의 원칙을 만들어 주었다.
이웃과 평화롭게 사는 것,
그래서 싸운 기억이 없다.
남들이 머리 싸매고 하는 공부도
저절로 어느정도 할 수 있어서
힘들이지 않고 했고,
뜻이 같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아들 둘을 연년생으로 낳아,
도움 하나 없이 아이들 기르면서
유학생 아내로 일하며 사는 것이 힘들지도 않았다.
큰 오빠가 언젠가 잡지에 수필을 쓰면서
내 동생은 남들이 팔자 사납다는 유학생 부인으로 일하면서도
고국에서 부황뜬 아이들을 가슴 아파한다고 쓴 걸 읽으며
민밍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 부모님이 어떤 상황에서도,
일제시대, 소련 점령 때, 공산권 아래에서
고생하시면서도
우리에세 어려움을 내색하지 않으셨던 것이
나에게도 영향을 미쳤을까?
옳은 삶을 사는 한 어려움이 아니라는 것을,
당연한 수고라는 것을,
그래서 불평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을,
호사스런 삶을 바라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본받은 것일까?
그러기에 사회의 문제도,
우리가 옳은 길을 벗어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정신건강 문제,
환경문제도,
옳지 않아 문제이다.
이웃과 사랑하며 살지 않고,
환경을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파괴하는 것이
나에게 문제가 된다.
해결의 방향은 옳은길로 돌아서야 하는 것이다.
창조의 원칙을 벗어난 우리가 되돌아 서야 한다.
ㅁㅇㅎ
첫댓글 옳은 삶을 사는 한 어려움이 아니라는 것.
당연한 수고니까 불평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마음에 꼭꼭 새겨요.
요즘은 떼우듯 하는 학교수업이 너무 버거워, 오늘도 '할수만 있다면 학교를 정말 관두고 싶다' 는 맘이 여러번 들었어요.
당연한 수고라는 생각을 하고 머리를 흔들면서도요. 내생각만 하고싶은 맘이 굴뚝같았죠.
두눈 가리고 환경에 무관심할수 있는것은
조금더 편하고자 하는 이기적인 마음때문이란걸 요즘 많이 느끼며 반성하고 있습니다. 눈에 밟히는게 많아졌어요.
옳은길로 돌아가는 길 잃지 않고 저도 함께 가고 싶습니다.
옳은 삶을 살아가는 것은 당연히 수고로운 것이며, 불평하지 않는다는 것 저도 마음이 와 닿네요.
선생님 말씀대로 지금 우리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려면 옳은 길로 돌아서야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집 앞 골목길이 안전하다는 것, 저도 아이에게 주고 싶은 환경이예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러할 것 같은데, 그건 같은 골목 사는 사람들과의 좋은 이웃관계를 통해 만들어 낼 수 있겠구나! 싶기도 해요. 물론 아파트에 살게 되면 또 다른 이야기겠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