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보충교육은 편했다.
헌병들을 교육시키니 교관들이나 조교들도 그리 힘든 교육은 시키지 안았다.
저녁 점호에도 헌병들의 교육지침을 물으니 내게는 필요도 없고, 그들도 내게는 묻지도 않았다.
그러니 나는 맨 가에 부동자세로 서 있기만 하면 되었다.
그때 당시에는 헌병들은 식사당번이 없었는지 우리들은 먹기만 하고 청소는 다른 사병들이 해 주었다.
아마도 사단 영창에 있던 수감자들이 식사당번을 하는듯 했다.
내 눈에 번쩍 뜨이는 것은 다음 날 아침 총검술 교육시간이였다.
총검술 담당 교관인 중사계급장을 단 사람의 총검술 동작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였다.
한마디로 예술이였다.
그날 저녁.
여기 저기 그 중사를 찾아다니다 PX에서 그를 만났다.
같은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내가 그 앞에 서서 경례를 하고 인사를 했다.
"총검술을 배우고 싶습니다."
"???"
그는 '뭐 이런 놈이 있나?'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교관님의 총검술을 제대로 배우고 싶습니다."
제대로 알려주시면 막걸리 대접을 톡톡히 하겠습니다."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 너 90연대에서 온 놈이구나. 응?" 한다.
하지만 나의 진심을 알고는 "너 내일부터 죽었다고 복창해야 한다. 알았어?" 한다.
그래서 그의 총검술을 습득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미친짓이지,,, 군대에서 총검술을 가르쳐 달라고 사정을 하다니,,,,,
덕분에 교육 온 헌병들이 고생을 했지만 내 총검술의 자세는 확실하게 고쳐지기 시작했다.
헌병들은 교육때에도 복장에 신경을 썼지만 나는 복장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7월의 땡볓아래서 땀을 뻘벌 흘리며 총검술을 배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처음에는 그러다 말려니 했는지 교육만 시키던 그 중사가 한 동작 한 동작에 문제점을 제시해 주었다.
보충 교육을 다 마칠 때 쯤에는 내가 생각해도 내 총검술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었다.
교관마져 대단하다고 칭찬을 할 정도였다.
보충교육이 거의 끝날 무렵 내무반에서 장기자랑이 있었다.
사실 헌병들만의 장기자랑이였지만,,,,
그런데 부산에서 자랐다는 친구 하나가 생전 처음 듣는 노래를 부른다.
"떠나야 할 사람인데 잡는다고 안갈소냐.
하룻밤 정이라도 만리성을 싼다는데
옥편지 사연적어 보내여 주마
충무항의 옥아 옥이야 부디 부디 잘있거라.
믿지못할 사람인데 어이잡고 슬피 우나
마음이 지척이면 천리라도 지척인데
춘삼월 통영배를 기다려다오
충무항의 옥아 옥이야 부디 부디 잘있거라.
나중에 제대하고 찾아보니 "고봉산"씨가 부른 "충무항의 옥이"라는 노래였다.
그런데 고봉산씨가 부른 원음악보다 그 헌병친구가 부른 노래소리가 더욱 구성지고 멋있었다.
다만 그친구는 "춘삼월 통영배를 기다려다오." 라고 했는데,
원곡 가사에는 "춘삼월 포영제를 기다려다오."라고 부르는 것이였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충무시를 갈 기회가 있어 뱃사람과 충무시 직원, 관광센타에 물어도
"포영제"가 무엇인지 알기는 커녕 처음 들어본다는 것이다.
6주 보충교육을 마치고 먼저 헌병들이 버스를 타고 갔다.
손을 흔들어 배웅을 하고 따블빽을 메고 돌아 가려는데 총검술 교관 중사가 나를 부른다.
내무반으로 들어가 내 총을 들어 흔들어 보더니 총을 분해한다.
"복좌용수철"(復座龍鬚鐵)이 길어서 놀이쇠가 전혀 덜컥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는 미리 가져온 특수 니퍼를 가지고 용수철을 적당하게 잘라주었다.
내가 놀란 건 그 용수철을 자르는 도구는 일반 공구로서는 찾을 수가 없는 물건이였다.
다시 조립을 한 내 총은 앞뒤로 흔들면 약간의 반동으로도 찰칵 찰칵 소리를 내며 놀이쇠가 움직여 주었다.
"이거 아무나 해 주는거 아냐. 너는 좀 특별한 고문관이라 해주는 거야. 알았어?"
그래서 고문관 소리를 또 한번 듣게 되었다.
하지만 "찔러!" 할 때도, 뒤로 뺄때도 총에서 찰칵! 하는 소리가 울려 동작이 더 절도있는듯 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 때 배운 총검술의 실력은 내 진급과 군대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다.
당시는 시험을 봐서 진급을 하는데 총검술과 태권도가 큰 점수를 차지했었다.
원대복귀하자마자 내 총검술은 내무반에서 최고 인기를 차지했다.
69년 늦가을. 상병 진급시험이 있었다.
내가 보충교육을 간 사이에 자동으로 일병이 되고, 마침 진급자 특명이 떨어져 연대에서 두 명이 진급을 하게 된 것이다.
인사과 담당 상사가 직접 시험을 담당했는데 우리 연대에서 꽤 여러명이 시험을 보러 모였다.
둘러보니 내가 군대밥을 제일 적게 먹었다.
거의가 나보다 두달이상 먼저 군대에 들어온 고참들이였다.
하지만 첫번 시험인 총검술에서 결정이 되었다.
일제히 구령에 맞춰 총검술을 행하는데 조금 지나자 "동작그만!" 하며 시험관이 소리쳤다.
그리고는 "너 앞으로 나와 봐!" 하며 나를 부른다.
"너 총검술 어디서 배웠어?"
"넷, 92연대 아무개 중사님께 배웠습니닷."
그러자 그는 놀라며 어떻게 그에게 배우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이야기를 듣고 난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그렇치. 그놈처럼 총검술을 해서 놀랬네."
그와는 전방에서 같이 전출온 동기란다.
곧이어 나는 시험자들 앞에서 시범으로 총검술을 하게 됐다.
움직일 때 마다 "찰칵!" '찰칵!" 하는 놀이쇠의 움직임은 나마저도 기분좋게 했다.
결국 본부중대의 "정도만"일병과 내가 진급을 하게 됐다.
"정도만" 일병은 나보다 2달 먼저 입대를 한 친구인데 키는 작아도 합기도가 4단인 날렵한 몸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