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어린이 용비어천가(52)
이 상 기
『천하에 공이 크시되 태자위 다르시거늘 샛별이 낮에 돋으니
종사에 공이 크시되 세자위 비었거늘 적침(붉은 해무리)이 밤에 비취니』
이방원(태종)이가 세자가 되지 못한 것은 정몽주를 척살(쇠뭉치로 때려 죽인 것)한 것과 관련이 깊어요. 즉 칼로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세자가 될 수 없다는 원론에서 어긋나기 때문이어요. 특히 정도전은 정안군(이방원)이 세자가 되는 것을 적극 막았으니 그건 정도전과 이방원이가 서로 이념(생각)이 다르기 때문이어요.
정도전의 이론은 요즘 말로는 사회주의 이론이어요. 모두 똑같이 나누어 먹고 살자는 이론이어요. 북한의 공산주의와 닮았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이방원이는 지혜있는 사람이 더 갖는 것은 당연하다는, 요즘 말로는 자본주의 이론이어요. 즉 재벌을 인정하고 농사로 부국을 만들자는 대한민국 방침과 같아요.
그런데 정안군이 명나라 사신으로 갔을 때 주원장(명나라를 세운 태조)이 직접 정도전 살해를 이방원에게 비밀리에 명 했다 하네요. 그건 정도전이 툭 하면 요동 땅을 팔아 먹는다는 여진족 추장에게 엉뚱한 말을 하기 때문이어요. 실제로 여진족 추장에게 요동을 팔겠다는 서약서를 받기도 했어요. 이에 명나라 황제는 정도전을 살해 해 줄 것을 요구 한 것 같아요.
정도전이 조선 초기에 정륜암(큰 절벽 바위) 위에 올라 밀본(비밀로 뭉친 무리들)의 사상을 말하네요 조선이란 나무의 감춰진 뿌리! 뿌리 중에 뿌리, 밀본이 있다, 밀본이 존재한다. 밀본이 가장 낮은 곳에 위민(백성 곁에 있다는 뜻)한다. 밀본이 애민(백성을 위한다는 뜻)한다. 밀본이 중민(백성을 귀하게 여긴다는 뜻)한다. 밀본이 안민(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뜻)한다. 밀본이 목민(백성을 다스린다는 뜻)한다.
조선 초기에는 정도전은 요즘 말로는 여당이고 이방원은 야당이어요. 그래서 둘이서는 기름과 물과 같이 어울릴 수 없는 사이지요. 이방원이는 한 번 왕이 되겠다는 마음을 가진 것은 고려말 어렸을 때부터 꾸어온 꿈이었어요.
그래서 제1차 왕자의 난은 피할 수 없는 둘 만의 숙명이었어요. 봉화백 (봉화백은 명예의 관직-명나라에서 정도전을 압송하라 하여서 정도전은 모든 관직을 내려 놓으니, 부를 호칭이 없어서 그냥 부친 것 같음. 굳이 해석을 한다면 봉화 정씨에서는 출세한 분이라는 정도의 의미가 있음.)정도전· 남은과 심효생 등이 여러 왕자들을 해치려 꾀하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형벌에 복종하여 참형을 당하였어요. 이것을 1차 왕자의 난이라고 하는데 태조 7년 8월 26일 밤에 일어난 일이어요. 그리고 이튿날 요동 정벌에 출전하기로 되어 있었어요.이 때 밤 12시가 넘은 시각에 불 화살을 처음 당긴 사람은 이숙번이어요.
그런데 이방원이는 1차 왕자의 난을 끝낸 후, 자기가 직접 왕이 되지 않고 둘째형 방과에게 왕위를 주고 나중에 자기는 세자가 되네요. 방과는 아들이 없어 당연히 세자는 이방원으로 했어요. 그런데 2년 후 방과는 동생에게 살해 될 가봐 왕위를 동생에게 물려 주네요.
제3대 태종이 임금이 되고 부터는 이방원이도 백성을 위하여 헌신하려고 노력 했어요. ‘태종비’라는 것이 있는데. 태종이 가물면 농민들의 애간장이 타 들어갈 때, 기우제도 안 지내고 들에 나가 음식을 전페하고 하늘에 빌었는데, 신기하게도 비가 내려 음력 5월 10일 경에 오는 비를 태종비라고 한다네요.
그보다 세자를 충령(후에 세종대왕)으로 삼으니 충령도 역시 백성을 위하여 글자를 만들어 내니 이게 바로 한글이어요. 정도전의 민본 사상, 이방원의 태종비, 그리고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이 모두가 지금부터 약 750년 전에 싹텄던 민주 혁명의 결실이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