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4개국여행기-19
파리시내 에펠탑, 콩코드, 샹제리제, 세느강 유람 등
우리 일행은 베르샤이유 궁전 관광을 마치고 파리시내로 돌아와 쁘렝땅 백화점
등 파리시내 일부 관광한후 한식으로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파리는 세느강 가운데 있는 시테섬의 촌락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고 파리라는 이름은
파리 지역에 살고있는 겔트족중의 하나인 파리씨족에서 유래 되었다고한다.
파리는 천년이 넘게 프랑스의 수도이며 스콜라 학파의 중심지로서 11세기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파리대학이 설립되고 프랑스 혁명도 파리에서 시작되었으며, 따라서
파리는 프랑스 정치, 경제, 문화 교육의 중심지이다. 별칭은 빛의 도시 (Ville Lumiere)
인구는 약 230만, 면적은 105평방키로미터로 달팽이 모양으로 생겼다.
일행은 시내관광 후 콩코드 광장으로 이동 후 가이드로 부터 설명을 듣고 휴식을 취했다.
콩코드 광장은 파리에서 제일 큰 광장으로 동서 360m, 남북으로 210m로 건축가
가브리엘이 20년 걸쳐 만들었으며 루이 15세에게 바치기 위한 것이었다.
광장에있는 오벨리스크는 23m로 1833년 이집트 왕이 샤를 5세에게 헌납하기 위해서
이집트 룩소르에 있는것을 가져온 것이다. 또한 광장에는 루이 16세의 기마 동상이
있었는데프랑스 혁명떄 파괴되었다. 콩코드는 프랑스 혁명때 루이16세와 그의 부인
마리 앙트와네트와 왕족, 귀족들 모두 1,343명이 단두대로 처형 된 곳이기도하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곳에서 루이 16세와 마리 앙뜨와 네트가 결혼식을 올린
장소이기도하다. 또한 콩코드 광장을 중심을해서 교통이 사방으로 뚫려있었다.
넓은 광장과 많은 숲은 파리 시민의 휴식처 뿐 아니라 파리를 찾는 세계 관광객이
모여 드는 곳이기도하다.
우린 바로 개선문을 향하여 출발! 개선문에 도착하니 그 규모가 웅장하다.
개선문은 높이 50m, 폭 45m로 콩코드 광장에서 약 2km떨어진 상제리제 거리의
끝 부분에 위치해 있으며
1806년 오스텔리스 전투에서 승리한 나폴레옹 1세의 명령으로 건축가 살그랑이
설계하여 지어가다가 1812년 러시아 전쟁 때 나폴레옹이 패배하므로서 공사 중단
되었고 공사는 나폴레옹 사후인 1836년에야 완성하였다. 나폴레옹은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이 문으로 개선 하려고 하였으나 전쟁에 패배하여 유형의 땅
세인트 헬레나섬에서 사망하였고 훗날 그의 유해가 이 개선문을 통과하여
앵발리트 돔 교회에 안장되었다고한다. 2차 대전 때 독일 전쟁에서 파리를
해방시킨 드골장군이 이 개선문을 통해 당당하게 개선하였다고한다.
지금 개선문을 둘러싼 주위의 광장을 샤를르 드골 광장이라고한다.
문 안 쪽 벽에는 전쟁에 참전했던 600여명의 장군 이름이 기록 되어있으며
1920년 후 1차 대전에 참가하여 전사한 무명용사의 시신이 중앙 아치아래
묻혀있다고한다. 또한 문에는 나폴레옹 군대가 개선하는 모습이 묘사되어있는
부조가 조각 되어있다. 매일 저역 6시 30분 전사한 장군들과 무명용사의 이름을
기리기위해 불 꽃이 타오른다. 우리나라 독립문도 파리 개선문을 모방하였다고한다.
개선문에는 2층까지 엘리베이터가 운행되며 거기에는 개선문에 관한 역사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개선문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샹제리제, 콩코드광장, 세느강과
루부르박물관 등 파리 시내가 너무 아름답다고한다.
우리는 전망대는 오르지 않고 주위의 샤를를 드골 광장, 상제리제 거리에서 몇장의
증명 사진만 찍었다. 상젤리제는 개선문에서 콩코트 광장까지 이어지는 거리를
말하는데 낮보다 밤이 아름답다. 양쪽의 가로등에 불이 켜지고 개선문에 불이
켜질 때 더욱 아름답다. 특히 크리스마스때의 야경은 너무 황홀하다.
우리 일행은 다음 관광지인 에펠탑으로 향했다.
에펠탑에 도착하니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엄청크다. 내 입에서 휴지!(huge!)라는
단어가 튀어나온다. 우린 표를 사서 에펠탑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엘리베이터는 교대로 2대가 작동하는데 한번에 100명을 태운다. 우리는 120m의
2층 전망대에 내려 파리 풍경을 조망한다. 그러나 옷이 젖을 만큼 비가 내려
전 파리를 조망하기는 어려웠다. 사진을 찍어도 그림이 안나온다.
아쉬움은 많지만 에펠탑에 올랐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밖에 없다.
오늘저녁 세느강 유람할 만이라도 제발 비 좀 그쳐다오
그나마 겨우 찍은 사진들이 카메라 칩의 일부 손상으로 망가져 버린것이
더욱더 가슴아프다.
에펠탑(Eiffel Tower)은 1884년에 1889년 세계만국 박람회를 개최하기 위한
19세기의 기술적 진보와 산업 발전을 인상적으로 상징 할 만한 기념물을
공모하였고 건축가 에펠은 케글랭과 누기에와 같이 작품을 만들어 공동으로
특허 등록을 하였다. 이 후 에펠은 공동 특허 제출자인 케클랭과 누기에게
소정의 금액을 지불하고 권리를 사들여 공모에 응하게된다.
총 700개의 출품작 중 에펠의 출품작이 압도적으로 당선되어 에펠이 건축하게된다.
에펠탑은 총길이 300m에 안테나25m로 총 325m의 높이로 되어있으며
철근이 7,000톤 부속품이 12,000개가 소요되었다고한다.
일행은 에펠탑을 떠나 저녁 식사를 하고 파리의 마지막 투어인 세느강
야간 유람을 하게 되어있다. 한식당으로가서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이태리에서 피자등 현지식을 많이 먹었는데 파리 오니까 끼니마다 한식이다.
역시 우리 나이는 국물있는 한식이 피로도 풀리고 배도 불러 좋다.
일행은 차를 타고 세느강 선창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관광버스
정차하는 곳에 물이 좀 차 버렸다. 할 수 없이 멀리서 내려 물 안찬곳으로
살살 피해 유람선 입구에 대기하다가 겨우 유람선에 탑승했다.
완전히 한국사람과 중국 사람 뿐이다. 사람이 너무 많아 구경 할 수가 없다.
게다가 비도 간간히 뿌리다 보니까 유람선 2층은 출입금지 시켜버리니
실내에 그 많은 사람들이 득시걸거리고 겨우 난간에 구경하는 사람이 많이
몰리다보니까 사진 한장 찍 을 수없을 정도다.
마이크에서는 한국말로 어디다 어디다 설명하는데 뭣이 보여야지.....
겨우 정신을 차려 저 멀리 불 켜진 에펠탑은 볼 수있었다.
그 많은 유명한 다리들을 통과하면서 사진 한짱 못 찍을 정도로 수난이었다.
세느강 야경을 유람 한것도 아니고 안한것도 아닌 찝찝한 기분으로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에 도착, 가이드는 내일 아침03:30까지 기상하라고한다. 영국 가는 유로스타가
07시에 출발하므로 시간을 맞추어야 한다고 하는데 별 수 있나!
시키는 대로 해야지 샤워하고 가방챙기고 조금 눈을 부친다
우리가 파리여행을 끝마치고 영국으로 갔다가 한국에 오니 뉴스에 파리에 비가 많이 와
세느강이 범람하고 루부르 박물관도 물이 들어 보물들을 옮기고 관광객도 출입차단 되었다는
뉴스를 듣고 이틀 뒤에 파리를 갔다면 세느강 유람이나 루브루 박물관을 못 들어 가게 되었을 텐데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 앞으로 여행 할 때는 불평을 하지 말아야 되겠다고 다짐 해 본다.
아래 일부 이미지는 카메라 칩의 일부 훼손으로 빌려왔음을 양해바랍니다
달팽이 요리
쁘렝땅 백화점 1865년에 개장
화장품과 향수 여성브랜드가 유명
개선문에서 내려다 본 샹제리제와 주위 경관
파리 시내
파리시내
미들랜 사원
콩코드 광장의 맞은편 나폴레옹은 1806년 파르테논 신전 풍의
사원을 착공하였으나 완공치 못하고 1842년 루이 필립 때 완공
길이 180m, 높이 19.5m 52개의 코린트시 원기둥이 지붕을 떠 받치고있다
정면에는 르메르의 최후의 심판이 조각되어있다.
오벨리스크
이집트 룩소에 있는 것을 1833년 옮겨왔다
콩코드 광장에있다
오벨리스크
콩코드 광장에있는 가로등
콩코드와 샹제리제 거리 중간에 있는 기마상
개선문
개선문 안 벽에 새겨져있는 전사한 장군의 이름들
개선문 안 벽에 새겨져있는 전사한 장군의 이름들
개선문 정면에 조각된 조각품
개선문 앞에 있는 불꽃
전사한 분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하여 매일 6시30분에 점화
샹젤리제
샹젤리제 거리 야간경관
샹제리제 거리와 개선문의 야경
에펠탑의 야경1
에펠탑의 야경2
에펠탑 야경3
유람선을 타고
유람선에 에펠을 배경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