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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우리들의 관심에서 좀 멀어졌습니다만 4~5년 전에 금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모았습니다. 금값이 무서운 기세로 올라 금1돈 값이 24~25만원 하였으니까요. 이 바람에 우리의 미풍양속(?)이었던 돌반지 선물이 사라졌습니다. 한때 1 트로이온스(이하 ‘온스’라고 함)* 당 1900달러에 육박하던 금값이 최근엔 1100달러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렇더라도 금1돈에 16~17만원하니 웬만큼 친하지 않고는 돌반지를 선물하기 어렵습니다. 돌반지가 IMF외환위기 극복에 일조하였는데 좀 아쉽게 되었습니다. 한편, 한국은행이 외환보유용 금을 대량 매입해서 화제가 되었고, 그 뒤 상투에서 금을 매입하여 1조3천억 원이 넘는 손실을 봤다고 해서 한국은행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 일도 있었습니다.
은행에서 금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한 적이 있습니다. 조사부에서 국제금시장(Gold Bullion Market)의 동향을 점검하고 관련 보고서를 작성했던 일과 88올림픽을 앞두고 기념 금화(Gold Coins)가 국내에서 소위 ‘완판’된 이후 그 열기를 등에 업고 은행에서 본격적으로 금화 장사를 해보고자 했던 일입니다. 1980년에 누구도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국제금시장에 대해 조사하고 동향을 추적하여 은행에서 발간하는 월보에 보고서를 실은 것은 지금 생각해도 그 의미를 찾기 힘듭니다. 아마 한국은행에서 분리된 은행의 위상에서 봤을 때, 금이 외환보유고에 포함되어 있었고, 금과 달러의 태환이 가능하였던 브레트우즈 체제가 붕괴된 1971년에서 채 10년이 지나지 않았으며, 제2차 오일 쇼크로 인하여 1979년에 온스당 200달러 내외이던 금값이 1980년초에 일시적으로 800달러를 넘어서기도 했기 때문에 그런 보고서가 필요했다고 짐작해봅니다.
1987년에 추진한 금화 장사는 은행에서 정말 해볼만한 장사로 판단하였습니다. 1온스 등 몇 가지 종류의 금화에 대해서는 은행 창구에서 간단한 도구를 이용하여 순도와 무게를 쉽게 판정할 수 있었고, 88올림픽 기념금화 발매를 계기로 금화에 대한 열기도 크게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 세계의 금화시장에 대해 조사하였고, 외국 금화 수입, 국내에서의 판매와 재매입, 금가격의 변동에 따른 리스크 관리, 고객과의 금 관련 파생상품(금 선도, 스왑 등) 거래 등을 실시하는 안을 만들어 은행 이사회를 통과시켰습니다. 은행장님 이하 임원분과 부장님의 지대한 관심 하에 금화 장사를 위해 발을 내디뎠습니다. 담당 차장님과 제 밑의 행원이 주요 금화를 만드는 국가의 Mint(조폐공사)로 출장을 가서 금화 수입을 위한 세부적인 사항들을 파악해 오기도 하였습니다. 출장 국가는 호주, 영국, 캐나다와 미국의 4개국이었습니다.
은행에서 팔고자 한 금화는 골동품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고금화가 아니라 시중의 금값에 비해 5~10% 정도 비싼 금화로 세계 각국의 Mint에서 만든 것입니다. 이들 금화의 액면은 포함된 금값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수준에서 책정되어 있고, 기념주화의 성격도 크지 않습니다. 사실상 금지금(Gold Bullion 또는 Gold Bar)의 판매와 동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금화를 영어로 표현할 때는 ‘Gold Bullion Coin’이라고 합니다. 금의 판매를 주목적으로 한 이런 금화가 최초로 발행된 것은 남아공화국의 크루거랜드(Krugerrand) 1온스 금화**입니다. 세계 최대의 금 생산국가인 남아공화국으로서는 자국산 금의 판로를 확보하는 것이 주요한 국가적 과제의 하나였습니다. 1967년 금의 판로를 확보하고 부가가치를 좀 더 높일 수 있는 방안으로 만들어진 것이 크루거랜드 금화였습니다. 이 금화가 세상에 나오자 인기가 폭발하였습니다. 이에 자극 받아 금을 많이 생산하는 호주, 미국, 캐나다, 중국 등이 뒤따라서 금화를 제조하여 판매하였습니다. 호주는 Australian Nugget***, 미국은 American Eagles, 캐나다는 Canadian Maple Leaf 이라는 국가별 특성에 맞는 이름을 붙여 전 세계를 상대로 판매 경쟁하였습니다. 특히 호주는 금화 판매를 위한 마켓팅에 가장 적극적이었습니다. 담당 직원이 서울을 자주 방문하였고. 호주의 퍼스(Perth)까지 출장 간 우리 직원들을 가장 환대하기도 하였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은행의 금화 장사는 성사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도 은행이 어떤 신규 업무를 하려면 금융위원회, 금감원 등 정부의 인허가나 사전 검토 등 승인이 필요하듯이 본격적인 금화 장사를 위해서는 당시 재무부의 승인이 필요했습니다. 여기에서 브레이크가 걸려버렸습니다. 일반은행은 은행법 상 금화 장사할 근거가 없어서 아예 대상이 되지 않았으나 제가 다닌 은행은 설립법 상 재무부장관이 승인하는 업무는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금화 거래는 은행의 성격에 맞는 것이어서 승인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은행에서 금화 장사를 추진하고자 했던 배경은 크게 3가지입니다. 첫째는 부가세가 면세되기 때문에 시중에서 거래되는 것에 비해서 가격경쟁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은행이 판매하는 금화의 순도나 무게 등을 확실하게 보증하며, 셋째로 금화 장사에서 나아가 Gold Bullion으로 업무가 확대되면 시중에 유통되는 금의 60~70% 정도를 차지하는 밀수금이 사라질 것이라는 겁니다. 국가 경제적으로 크게 도움이 된다는 그런 논리를 갖고 재무부 관련 부서를 설득해 보았습니다만 전혀 먹혀 들지 않았습니다. 담당 사무관이 제게 한 말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것 허용했다가는 전국의 금은방들이 들고 일어나 과천 정부청사 앞 광장을 꽉 메울꺼야!” 1987년 6.29선언 이후 자유화의 바람을 타고 과천 정부청사 앞 광장에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각종 데모가 일어났고, 관료들도 이런 시위에 상당히 민감하였습니다.
이런 와중에 화동양행 등이 신한은행과 손을 잡고 우리가 팔고자 했던 외국 금화를 들여와 판매하였습니다. 외국환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화폐가 아니라 일종의 기념주화나 골동품으로 간주하여 도입하였습니다. 은행은 귀중품의 ‘보호예수’라는 형식으로 통장을 발행하였습니다. 물론 이런 금화를 도입할 때 관세와 부가세를 납부하였기 때문에 시중의 금값에 비해서는 상당히 높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금화에 대한 수요가 많아 수입사와 은행은 이들 영업에서 상당한 재미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신한은행은 그때부터 시작한 금거래 업무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도 국내에서는 이 분야의 강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중반에 들어 금거래에 대한 정부의 생각이 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2003년에는 ‘보호예수’라는 편법에서 벗어나 은행의 부대업무로 금 실물의 매매, 대여, 적립계좌 개설 등의 골드뱅킹을 허용하였습니다. 2007년에는 정부부처 합동으로 ‘귀금속·보석 산업 발전 방안’을 내놓으면서 금의 유통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기구 설립을 추진하였습니다. 고용과 부가가치가 높은 귀금속, 쥬얼리 기업들은 가공기술이나 디자인 개발에 전념하게하자는 계획이었습니다. 그 결과 작년 3월에는 한국거래소(KRX)내 금시장을 개설하고 증권회사를 통해서도 거래구좌를 개설하여 자유롭게 금을 매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에 비교해보면 정말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과거 골드뱅킹을 검토할 당시 법률 자문을 받아보니 금의 매매는 고물상법에 속하는 것으로 은행이나 증권사가 금을 거래할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외국환관리법(현재의 외국환거래법)에서 금과 백금을 귀금속****으로 분류해놓고, 비상시에는 외환당국이 외환과 더불어 금을 정부에 집중시킬 수 있는 근거를 두고 있었고 현재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한국은행 만이 귀금속을 매매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금거래가 자유로워 졌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부가세 문제입니다. 은행이나 증권회사의 계좌상 거래에는 부가세가 붙지 않으나 금실물을 인출할 경우에는 부가세를 납부해야 합니다. 금거래에 있어서 부가세는 만병의 근원입니다. 부가세를 빼먹기 위해 온갖 편법과 불법이 난무하였고, 금괴 밀수도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부가세 납부 방식의 개선과 유통방식의 개선으로 많이 좋아졌습니다만, 지금도 금괴 밀수에 관한 뉴스를 종종 접하고 있고, 밀수금이나 고금(일반인 소장 금이 매각되어 원료로 재사용하는 금) 등과 관련한 부가세 탈루는 여전합니다.
세계 상당수 국가들은 투자상품으로 거래되는 금(금지금이나 금화 등)에 대해서는 부가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습니다.***** 부가세를 부과하는 것은 금이 반지, 목걸이, 장식용 제품 등으로 만들어지는 단계부터입니다. 아마 금본위제를 겪은 영향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금본위제는 없어졌지만 금은 현재도 화폐의 대용 수단으로 간주되고 있으니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세수 감소, 재산은닉 방조, 다이아몬드 등 다른 보석류와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쉽게 면제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제가 이 분야에 해박하질 않아 자신있게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부가세 부과를 없애자고 주장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부가세를 없애지 않는 한 밀수나 탈세 문제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귀금속업자들도 독특한 디자인 개발 등을 통한 금제품의 차별화보다는 음성적인 유통에 더 신경 쓸 겁니다.
과거에 우리가 겪었듯이 민간이 보유한 금은 위기 시에 국가의 외환보유고로 전환이 가능합니다. 부가세를 면제하면 또 다른 부작용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 각국이 부가세를 면제하고 있는 걸 보면 부작용보다는 좋은 면이 훨씬 많기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외국에 가보면 Gold Banking은 은행이나 증권회사의 주요 업무영역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 금융의 낙후성과 예대마진 의존 등을 비판만 할게 아니라 이런 부문도 과감한 제도 개혁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민간이 자유롭게, 세금 신경쓰지 않고, 제대로 된 금을 투자수단의 하나로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민간의 금보유량도 크게 늘겠지요.
때마침 금값이 폭락하여 온스당 1100달러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금값은 1980년 온스당 800달러를 넘어선 이후 급락하여 20년 이상 250~500달러에서 움직였습니다. 금값이 현재보다 더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만 한국은행은 지금부터 서서히 금매입을 재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원화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데는 중앙은행의 금보유고도 한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참고로 한국은행의 금보유고 104톤은 전세계에서 30등 밖입니다. 15등 이내에 들려면 한 300톤 정도 더 매입해야 합니다. 상투에서 매입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고 금매입을 아예 중단해버렸는데 이제 물타기(?)를 서서히 고려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에 필요한 돈은 요즘 시세로 봤을 때 100억 달러 정도면 충분합니다. 외환보유고 3800억 달러에 육박하는 현재 상태에서 이 정도 금의 보유는 과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얘기하고 싶은 것은 한국조폐공사에서 금화를 제조, 발매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금광은 없으나, LS니꼬동제련, 고려아연 등이 광석 제련 과정에 년간 50톤 정도의 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회사는 이를 대부분 다시 수출하고 있습니다. 이를 활용하여 ‘아리랑금화(가칭)’를 제조하여 국내 및 해외에 판매한다면, 조폐공사로서는 새로운 업무가 생기고 이를 판매하는 은행은 골드뱅킹 업무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또한 남북간 교류가 활성화될 경우 중국 등으로 헐값에 넘기는 북한의 금광석을 활용한 사업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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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에서는 금 1온스라고 할 때는 꼭 트로이온스라고 합니다. 일반적인 무게 단위 1온스는 28.3495그램이지만, 금의 경우 1트로이온스는 31.1035그램이고 우리나라 돈으로 하면 7.56돈입니다. 그리고, 1돈은 3.75그램입니다.
**1온스 크루거랜드는 액면 10랜드(약0.8달러), 무게 33.9305그램, 순도 91.67%입니다. 순수 금의 무게는 1 트로이온스와 같습니다.
***호주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금괴(gold nugget)가 자주 발견되었습니다. 역대 최대 금괴는 1869년 호주 빅토리아주에서 발견된 2316온스(72Kg) 금괴입니다. 이런 것들을 자랑하여 금화 이름을 Nugget이라 붙였습니다. 그 뒤 호주의 특색에 맞는 Kangaroo, Lunar Rabbit 등의 이름을 붙인 금화가 나왔습니다. 중국도 1982년에 판다(Panda) 금화를 제조하여 팔기 시작하였습니다.
****외국환거래법 상 귀금속은 “금, 금합금의 지금(地金), 유통되지 아니하는 금화, 그 밖에 금을 주재료로 하는 제품 및 가공품”을 말합니다. 과거에는 백금도 포함되었지만 지금은 제외되어 있습니다.
*****금화의 경우, 영국이나 유럽은 제조국에서 화폐의 형태로 발행되고 금화에 포함된 금의 공정한 금시장가격의 1.8배를 넘지 않는 가격으로 거래되는 것에 대해 부가세를 면제합니다. 골동품으로서의 가치가 크지 않은 금화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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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금화와 금에 대해 제대로 배웠습ㄴ다. 계속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 최근에 선생님 글 읽고, 주변에... 여유자금 투자처를 고민하시는 분 꼬드겨서 달러 현물, 금, 미국 주식 투자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었습니다. : ) ㅎㅎㅎ. 그런데 달러 현물이랑 미국 주식에서는 수익 좀 날 듯 해서 유혹하기 쉬웠는데, 금은 손해만 안봐도 될 것 같다는 논리로 설득했습니다. 미 달러화 인플레를 고려하더라도 아직은 약간 비싸지 않나싶어서요.
어이쿠! 앞으로 글 쓸 때는 좀 더 명확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앙은행의 금 매입과 개인의 금 투자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개인의 금투자는 부가세 등 투자관련 비용이 매우 커서 별로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과거 800달러/온스를 넘었던 금값이 200달러대로 내려간 경험이 있으니 향후 금값이 500달러/온스가 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유 자금이 아주 많아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짜겠다는 차원이라면 할 말 없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