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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정관해로 다음해부턴 지지 재성이 강해진다. 납음은 옥상토(屋上土)이다.
어두운 세상에 광명이지 물위의 달은 아니다.
지지 천을귀인으로 호숫에 비친 달이며 그만큼 은은하고 차분하다.
남성은 신묘.갑오.을미생여자 길하고
여성은 을유.계미. 임오생남자가 길하다
정직하며 용모가 좋다.직업은 세무, 회계, 공무원, 등이 좋으며 문학, 예술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냅니다.
국회의원 박진, 모델 변정수.한명숙의원.현정은현대그룹주.이소은탈렌트가 정해일주이다
하원갑자 2007년
평양에서 남북 정상 회담이 개최되다.2007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이 정동영을 누르고 당선되었다.
리먼사태로 금융사태 벌어진다
60년전 미국과 소련의 충돌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온 세계에 냉전의 그림자가 짙게 깔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와중에 힘을 잃은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에서는 그토록 열망하던 독립과 건국을 향해 나아가면서 크고 작은 충돌이 연이어 벌어졌다.
서울이 경기도에서 분리독립하고 명칭도 경성부(京城府)에서 서울시로 바꿨으며 최초로 특별자치시로 승격되었다. 1년 후인 1948년에는 정부수립과 함께 대한민국의 수도로 승격되었다.
몽양 여운형, 설산 장덕수 등 정치사회 인사가 저격을 당했던 격랑의 해이기도 했으며 한국에 UN 한국위원단이 방한하여 한반도 정부수립에 관한 논의를 하기도 했다.
30년전
1977년은 미국이 우주를 향한 보이저1·2호를 출발시키며 새로운 우주시대를 연다.
여름수해로 3만이상의 수재민발생.
강원도 춘천의 호수도 얼어붙은 추위
한국은 박정희지시로 여러공장이 건립되어 향후 산업의 기반이 조성된다.
3월 27일 - 테네리페 참사 두 대의 보잉 747 항공기가 충돌, 543명이 사망하는 사상 최악의 항공 사고가 일어나다.
대한민국,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 고리 1호기 송전시작.
인조1647년 4월부터 1649년 5월 승하할 때까지 차남 봉림대군 이호(훗날 효종)가 왕세자 신분으로 대리청정하였다
60년전 : 정해왜변 - 왜구들이 전라도 남해안을 약탈하다. 왜구를 몰아낸 뒤 전라좌수사 심암과 전라우수사 원호에게 책임을 물어 두 사람을 국문하였다. 이 때 왜구 두목들과 조선인 앞잡이 등은 3년 후인 1590년 조선 통신사를 파견하는 조건으로 조선에 송환되어 전부 처형되었다
윤선도, 이괄 탄생
50년전 정유재란
40년전영국이 버지니아 주 식민지를 개척하였다
30년전 - 윤휴 : 조선 중기의 문신탄생
20년전 정묘호란이 발발하였다.
20년후
30년후 영국의 천문학자인 에드먼드 핼리가 센타우루스자리 오메가 관측
40년후- 아이작 뉴턴이 저서 프린키피아를 출간했다
60년후 통합법에 의해 동군연합이었던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이 합쳐져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성립하였다.
7월 29일 ~ 8월 21일 : 나폴레옹이 지휘한 프랑스 군이 툴롱전투에서 영국군을 격파하였다.
호에이 대지진.
61년후 조선 홍역,여역으로 수만이 죽음.
1287년 이승휴의 《제왕운기》가 완성되다.
1287년에 쿠빌라이 베트남 3차 원정에서 원정군은 또 수도를 점령하고 남하를 하려고 했지만 해군이 바익다 강에서 쩐흥다오에 전멸당하는 바람에, 또 후퇴를 하였다.
쿠빌라이는 3번째 일본원정을 계획하는 등 적극적인 대외원정을 추진하였으나, 1287년 즉위 때 지지모체였던 동쪽 3왕가가 반기를 들었으며, 중국 내에서도 반란이 빈발했기 때문에 만년의 쿠빌라이는 일본 원정을 포기했다
1287년 이스트리아에서 다시 발생한 폭동이 프리울리로 퍼졌다. 아퀼레이아 총대주교국과 동맹을 맺은 독일 황제 루돌프 1세가 개입하면서 전쟁은 커졌고, 베네치아는 강화를 요청할 수 밖에 없었다
75년전 1212년의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에서 무와히드 조가 크리스트교 연합군에게 대패하면서 급속도로 쇠퇴.
60년전몽골 제국이 서하를 완전히 멸망시켰다. 탕구트 인들은 멸족되었다.
노르웨이와의 전쟁의 일환으로 야로슬라브 2세가 이끄는 노브고로드 공국 군대가 스칸디나비아 반도 북부로 진군하여 그곳의 핀족을 궤멸시켰다
헨리 3세의 친정이 시작되었다.
3월 - 잉글랜드가 프랑스와 휴전하였다.
40년전 구유크 칸이 서방 원정을 준비하였다.
아폰수 3세가 포르투갈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30년전 1257년에 7차칩입을 하였는바 해마다 몽고에 보내는 공물마저 중단하자, 이에 자극 받은 몽고는 차릴타이로 하여금 고려를 침공 황해 경기 충청도 등을 유린 하였다.
최항1257년, 최의가 1258년 죽음으로써 고려 최씨 무인집권 60년이 끝이 났다.
몽골 제국군이 대월 쩐왕조의 수도인 탕롱을 함락하였으나 곧 후퇴하였다.
제노바 공화국과 베네치아 공화국 간의 2차 제노아 전쟁이 발발하였다
20년전 포르투갈 국왕 아폰수 3세와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10세가 바다호스 회의에서 양국 간의 국경 문제를 협의하였다.
- 비테르보 조약에서 전 라틴 제국의 황제 보두앵 2세가 앙주 공 샤를에게 아카이아 공국을 양도할 테니 비잔틴 제국을 공격하여 라틴 제국을 재건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원나라의 수도인 대도 건설이 완료되었다
15년전 루돌프 1세는 합스부르크최초 신성황제에 오름.
20년후 1307년 독일의 왕 알브레히트 1세가 자신의 아들 루돌프를 보헤미아 왕국의 군주로 즉위시켰다.이듬해 독일의 왕 하인리히 7세가 신성로마제국황제로 선출되었다.
- 원무종이 3대 황제로 즉위하였다.
- 에드워드 2세가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다
30년후 유럽에 불어닥친 대기근이 끝났다.
호조씨의 가마쿠라 막부가 덴노가 교대로 취임할 것을 제안하였다. (남조와 북조 분열의 시초)
40년후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2세가 폐위되었다.
- 에드워드 3세가 잉글랜드의 왕으로 즉위하였고 모후 이사벨라와 모티머가 섭정이 되었다
알폰소 4세가 아라곤 왕국의 왕이 되었다.
마린 왕조가 그라나다 나스르 왕조로부터 세우타를 점령하였다.
60년후- 로도스 기사단의 함대가 임브로스 해전에서 아이딘의 튀르크 함대 백척을 침몰시키며 승리하였다.
5월 - 카파에서 돌아온 제노바 함대가 콘스탄티노플에 정박하며 흑사병을 비잔틴 제국에 퍼뜨렸다
카잔 칸이 사망하며 차가타이 칸국이 동서로 분열되었다
927년 8월 15일 - 사라센이 타란토를 정복하여 파괴하다.
공산전투 후백제와 전투 신숭겸, 김락 등의 뛰어난 장수들도 잃었다. 왕건은 이 싸움에서 겨우 목숨만을 건진 채 개경으로 후퇴하였다
후백제가 신라를 침입해 경애왕을 죽이고, 경순왕을 왕으로 내세운다.
요나라 2대 태종 즉위장차 나라에 화근이 될 만한 사람들을 제거할 생각으로 내심 껄끄럽게 여기는 장수들과 그 부인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으고는 그들을 모두 죽였다. 또 권력을 바탕으로 횡포를 부리는 자들도 선황제께 내 안부를 전하라면서 백여 명을 계속 죽였다.
60년전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미하일 3세가 공동황제였던 바실리우스 1세의 사주에 의해서 암살당하였다. 이후 단독 황제가 된 바실리우스 1세는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어 1056년까지 지속되었던 마케도니아 왕조를 개창하였다
바이킹군이 영국 북부의 데이라를 점령하였다.노섬브리아왕 앨라사망.
견휜탄생.
40년전 887년베렌가리오 1세가 이탈리아의 왕이 되었다.
아르눌프 폰 케른텐이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선거에서 동 프랑크 왕국의 왕으로 선출되었다.
진성여왕등극.
30년전 바르셀로나 백작령, 서프랑크 왕국으로부터 자치 획득.효공왕 등극
20년전 - 당나라의 절도사 이무정이 기나라를 건국하였다.
당나라의 절도사 왕건이 전촉을 건국하였다.
당나라의 절도사 주전충이 당애종으로부터 양위를 받아 후량을 건국하면서 당나라가 멸망하고 오대십국시대가 시작되었다.
당나라의 절도사 전류가 오월을 건국하였다.
프레스부르크에서 마자르족이 동 프랑크 왕국군을 섬멸하였다.
20년후 요나라군의 공격으로 오대십국시대의 후진이 10년만에 멸망했다.
카이펑에서 유지원이 오대십국시대 후한을 건국한 뒤 후한의 초대 황제가 되었다
30년후 - 키예프 대공국의 통치자인 성녀 올가가 러시아에 처음으로 기독교를 도입하였다
40년후 밴티 스라이는 앙코르 와트보다 이른 967년 완공됐다. ‘야나바라하’라는 귀족이 힌두 시바 신에게 바친 사원이다.
60년후 위그 카페가 프랑스의 왕이 되었다.
알 만수르가 지휘하는 후우마이야 왕조 군대가 코임브라를 점령, 파괴하여 코암브라 백작령을 멸망시켰다. (한 세기 만에 무슬림이 코임브라 회복)
567년 남북조 진 3대 백종 즉위
567년, 북제의 권신 조정은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싶어했고 그는 조언심(趙彥深), 고문호, 화사개를 부패와 붕당 혐의로 고발했다. 하지만 이 세 사람은 이전에 이런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그들 스스로 방어할 수 있었고 조정은 역관광당했다. 고담은 조정을 체포하고 심문하며 그에게 태형 200대를 선고하고 옥에 가두었다. 옥에서 피운 향으로 인해 조정은 결국 눈이 멀었다.
베네치아의 역사는, 567년 이민족에 쫓긴 롬바르디아의 피난민이 만(灣) 기슭에 마을을 만든 데서 시작된다. 6세기 말에는 12개의 섬에 취락이 형성되어 리알토섬이 그 중심이 되고, 이후 리알토가 베네치아 번영의 심장부 구실을 하였다
투르 공의회에서 성직자들이 수녀의 결혼금지법, 처제와의 결혼을 근친상간으로 규정하는 교회법을 결의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프랑크 왕국의 분국인 파리 분국을 다스리고 있던 카리베르트 1세가 근친상간죄로 파문을 당하게 되었다.
카리베르트 1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그가 다스리던 파리 분국은 그의 형제인 군트람, 지게베르트 1세와 힐페리히 1세에 의해 분할되었다.
60년전 부이에 전투에서 클로비스 1세가 이끄는 프랑크 왕국군이 서고트 왕국의 왕 알라리크 2세를 전사시키며 승리하였다. 이 승리로 프랑크 왕국은 아키텐 지방을 손에 넣는다.
알라리크 2세 사후 게사레크가 그의 뒤를 이어 서고트 왕국의 왕이 되었다.
프랑크 부족의 법전인 살리카 법전이 편찬되었다.
아나스타시우스1세는 507-508년에 사산 왕조 측 니시비스에 견줄 만한 다라 요새의 완공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507년부터 512년까지 트라키아 반도에 56km에 달하는 장벽을 쌓고, 성벽(Anastasian Wall)이라고 명명하였다
40년전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삼촌(숙부) 유스티누스 1세의 뒤를 이어 (동)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 이차돈의 순교로 신라의 왕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하였다.
30년전 동고트 왕국 군이 로마를 포위하였고 벨리사리우스의 방어군과 공방전을 벌였다. (~538년 3월)
비잔틴 제국의 장군 요한네스가 안코나로 진격했다.
- 하기아 소피아가 완공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캄란 전투에서 아서 왕의 군대가 모드레드 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20년전 고환(남북조시대) : 북제의 고조사망.사다함 탄생
10년후 북제멸망.577년 여름, 우문옹은 고위와 북제의 관료들 및 제왕들을 데리고 수도 장안으로 돌아갔는데 일부러 고위를 승리 행진에 앞세웠다. 그 후 고위는 온공(温公)에 봉해졌으나, 겨울에 우문옹은 목제파가 반란을 꾀했다는 일로 처형되자 이 일에 연좌하여 고위를 포함한 고씨 일족을 멸문시켰다. 이 때 고씨 중 살아남은 것은 장애인들로 그들은 촉 땅으로 보내져 천수를 누렸다.
20년후 앙델로 조약에 따라 힐데베르트 2세가 숙부 군트람의 양자가 되었다.
막하가한이 동돌궐 6대 가한이 되었다
30년후 - 삼랑사가 창건되었다
40년후 고경 : 수나라의 인물사망
60년후 선지자 무함마드의 이슬람군이 참호를 이용하여 메디나에서 메카군의 포위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내었다. 이 공성전에서 이슬람군의 승리는 종래의 메카 세력을 몰락하게 했으며 이슬람을 추종하는 아랍 신흥 종교인들에게 알라의 은총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한다크 전투)
니네베에서 비잔티움 제국군이 사산조 페르시아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몽골 초원에서 조드 (대한파)가 닥쳐 많은 가축과 사람이 동사했다. 돌궐 제국 붕괴의 시작.
207년 적벽 대전
백랑산 전투 : 조조가 요동으로 도망친 원상, 원희와 오환족을 토벌하고 북방 전체를 평정하였다
60년전 볼로가세스 4세가 파르티아의 왕이 되었다.
고구려 차대왕이 우보(右輔) 고복장을 살해하였다
40년전 신라의 지도자 아달라 이사금의 명을 받은 일길찬 흥선은 2만명의 보병을 이끌고 한수를 넘었고, 이에 백제가 두려워하여 화친을 청하고 사로잡았던 주민 1천명을 모두 돌려주었다.
30년전
20년전
10년전로마 제국군이 크테시폰을 약탈하고 거주민들을 노예로 만들었다.
산상왕이 고구려 제10대 왕이 되자, 그의 형 고발기는 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위를 차지하지 못한 데 따른 불만으로 인하여 왕궁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그는 요동으로 달아나서 후한의 태수 공손도에게 자신의 몸을 의탁하였다. 그 후 발기는 공손도가 빌려준 군사 3만명을 이끌고 고구려를 대대적으로 공격했으나 실패하고 결국은 자살하고 말았다.
후한의 무장 원술이 황제를 자칭하고 국호를 중(仲)이라 하였다. 같은 해 9월, 원술은 교유 등과 함께 진을 토벌하고 진왕 유총을 죽인 뒤 세력을 넓혔다. 그러나 이후 조조의 침공으로 원술 자신은 도주하고 교유, 이풍, 양강, 악취에게 수춘을 맡기고 조조의 공격을 막도록 하였으나 패하였고, 교유, 이풍, 양강, 악취 등은 조조군에게 붙잡혀 처형되었다
10년후 건안 22년 후한에 역병이 돌아 건안칠자의 남은 다섯 명과 사마랑 등이 죽는다.
니시비스에서 로마 황제 마크리누스가 이끄는 군대가 파르티아군에게 패하였다. 로마는 파르티아에게 많은 돈을 바치고 평화 조약을 맺었다.
손권과 조조가 강화를 맺었다.
20년후동천왕이 고구려 11대 왕이 되었다.
위나라 상용에서 맹달이 반란을 일으켰다.
사산 왕조의 아르다시르 1세가 동방 원정을 떠나 호라즘, 시스탄을 정복하고 쿠샨 제국의 복속을 받아내었다
30년후 중국이 한사군에 미치는 통제력이 약해지자 237~239년 위나라 명제는 태수들을 파견해서 낙랑군과 대방군을 평정하고 주변 한(韓) 세력에 회유책을 펼쳤다.
40년후고트족이 현재의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지방을 공격하였다.
첨해 이사금이 신라 제12대 국왕이 되었다
60년후 고트족이 발칸 반도, 소아시아 지방을 공격하여 아테네, 코린토스, 아르고스, 스파르타와 같은 도시들을 약탈하였다.
헤룰리 세력이 흑해 연안을 공격하였으나 로마 제국의 대함대에 격파당하였다
bc154년 적벽대전과 너무나 유사한 전한, 오초칠국의 난 발발.
60년전 진시황이 사령관 임효와 조타에게 20만 명의 군대를 주어 남월을 정복한 뒤 이 지역에 3군을 설치하였다.
진의 군대가 약 30만 명의 흉노군을 토벌하고 그들의 영토를 황하 이북 지역으로 확장하였다
로마 장군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가 시라쿠사를 공격하였다
60년후니코메데스 4세가 비티니아의 왕이 되었다
bc 514년 합려 즉위,오나라의 제24대 임금이며, 제6대 왕으로, 휘는 광(光)이다. 춘추 5패의 한 사람으로 꼽기도 한다
60년후 페리클레스가 델로스 동맹의 금고가 페르시아 제국을 상대로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이유로, 델로스에 있는 금고를 아테네로 옮겼다.
bc874년 이스라엘의 가장악한 왕 아합 즉위
하원갑자
1827년 스코틀랜드의 식물학자 브라운(Brown, R.; 1773-1858)이 물에 떠있는 꽃가루 입자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던 중 처음 발견하였다
- 러시아 제국이 페르시아를 침공.
- 그리스 독립 전쟁: 영국, 프랑스 왕국, 러시아 제국의 연합함대가 나바리노 해전에서 오스만 제국의 함대를 격파
60년전빈에 천연두가 창궐했으며 마리아 테레지아도 감염됐지만 생존했다.
40년전- 미합중국의 헌법이 탄생하다.
- 델라웨어가 13개 식민지 중 최초로 미합중국의 헌법을 승인할 것을 결의하고, 연방에 가입하다.
모차르트 돈조반니 공연
30년전 프랑스 혁명전쟁: 프랑스 제1공화국이 영국 상륙 작전을 실시하나, 실패하였다.
오륜행실도완성
- 존 애덤스가 미합중국의 2대 대통령으로 취임.
-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 프로이센 왕국의 새로운 국왕으로 즉위.
20년전 틸지트에서 프랑스 제1제국과 프로이센 왕국 그리고 러시아 제국간에 틸지트 조약이 체결되었다.
- 프로이센 왕국에서 농노제도가 폐지
리오가 브라질 수도됨
20년후 - 미국-멕시코 전쟁: 재커리 테일러가 이끄는 미군이 부에나 비스타 전투에서 멕시코 군을 대파
30년후 영국이 청나라에게 선전포고하다. 2차 아편전쟁이 발발하다.
- 제임스 뷰캐넌이 미합중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하다.
최초의 엘리베이터가 미국에서 발명.
- 동인도회사의 처우에 반발해 세포이 항쟁이 일어나다.
- 영국군이 델리를 정복하면서, 무굴 제국이 멸망하였다.(1526~1857).
40년후 오스트리아 제국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라는 이중제국으로 전환하였다.
- 미국이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알래스카(당시 러시아령 아메리카)를 매입하였다.
- 대정봉환으로 인해 에도 막부가 멸망하였다. 그리고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었다.
60년후러시아 제국이 청나라에게 조선 영토를 침범하지 않음을 약속함에 따라, 영국은 거문도에서 철수하고, 거문도사건도 종료되었다. 조선 최초로 경복궁 내에 전등이 설치되었다.
8월 31일 - 미국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이 영사기 특허를 획득했다
1467년에는 조선과 일본이 모두 다 변란으로 소란스러웠다.
오닌의 난 (일본, 1477년까지)이후
400년간 유력가문 집권화.
이시애의 난이 발생하여 진압군으로 공을 세운 구성군.남이.유자광.강순이 신공신세력을 이루었다.
60년전 베트남에 파견한 명나라 사절단이 살해당하자 영락제는 사절단 살해를 응징하기 위해서 대군을 보냈고, 그 결과 명나라에 정복당한 베트남은 중국의 성으로 편입되었다
- 정통성 강화를 위해 영락제가 초청한 까규파 티베트 불교의 5대 까르마빠 데쉰 셱파가 난징에 도착, 여러 기적을 행하고 황실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이에 영락제는 그에게 대보법왕 칭호를 하사하였다
태종7년차 민무구 형제의 옥은 이보다 앞서 일어난 세자의 정혼 문제와도 깊은 관계가 있었다. 세자의 정혼 문제를 계기로 1407년 7월 정부·대간이 개편되고, 개편 6일 뒤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이화(李和) 등이 선위 파동 때에 있었던 민무구 형제의 불충스러운 행동을 정식으로 탄핵하여 옥이 벌어지게 되었다.
옥이 발발한 지 2일 후 민무구를 연안(延安)에 방치하고, 19일 후 공신 녹권(功臣錄券)을 빼앗았다
40년전 1427년: 포르투갈, 대서양으로 나아가다 아소르스 제도 발견
불교 경전인 현수제승법수가 쓰여졌다.
30년전 조선의 과학자 장영실 등에 의하여 해시계 현주일구가 만들어졌다.
포르투갈이 모로코의 탕헤르를 포위 공격하였으나 격퇴당하였다.
29년전 합스부르크 독일왕에 재등극
20년전 석보상절과 이를 바탕으로 악장화한 월인천강지곡이 완성되었다.
조선의 화가 안견이 몽유도원도를 완성하였다
20년후 1487년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인도를 향해 출항하였다
30년후 1497년 레 성종: 베트남 후 레 왕조의 5대 황제 사망하고 헌종즉위
40년후 1507년 포르투갈이 모잠비크 해안을 점령하여 인도에 대한 전진기지로 삼았다.
스페인출신 체자레 보르지아 : 이탈리아의 정치가, 성직자, 군인로 사망.
59년후 무굴제국성립.390년간 유지
60년후 신성 로마 제국군이 교황령의 수도 로마를 무차별적으로 약탈한 로마 약탈 사건이 발생하였다.
- 마르부르크 대학교가 설립되었다.
70년후 중종말기 1537년에는 심정 일파를 모함한 김안로(金安老)·허항(許沆)·채무택(蔡無擇) 등이 주찬되는 등 재위 동안에 화옥(禍獄)이 그치지 않았다.
1107년 고려의 윤관 장군이 17만 대군을 이끌고 여진을 정벌하였다.
60년전 - 노르망디 공 기욤 (윌리엄 1세)이 발레스 두녜스 전투에서 프랑스 국왕 앙리 1세의 도움으로 반란을 일으킨 칸의 노르만 남작들을 패배시켰다
카라한 왕조는 지방정권이 독립하여 서로 항쟁하며, 1047년에는 동서로 분열되어버렸다고
40년전 송신종이 북송 제 6대 황제에 즉위하였다.
잉글랜드의 햄프셔에 윈체스터 성이 세워졌다.
런던탑 건설이 시작되었다.
북송의 왕안석이 부패 청산 운동을 시작하였다.
30년전 카노사의 굴욕 :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가 자신을 파문시킨 교황 그레고리오 7세굴욕시킴
셀주크 제국이 니케아를 점령하였다.
무라비트 왕조가 가나 제국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이베리아로의 진출을 시작하였다.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6세가 바다호스 토후국을 격파하고 코리아를 점령하였다.
20년전 피사와 제노바 연합 해군이 지리 왕조의 수도 마흐디야를 기습 점령하였다.
- 윌리엄 2세가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다
20년후 정강의 변 : 금나라군이 송나라의 수도 카이펑을 함락시켜 북송을 멸망시키고 송휘종과 송흠종을 포로로 잡았다.
흠종의 동생 강왕 조구는 남쪽으로 도망친 뒤, 응천부에서 송고종으로 즉위하며 연호를 건염(建炎)으로 고치고 남송을 건국하였다.
30년후잉글랜드 국왕 스티븐 1세가 마틸다로부터 노르망디를 탈환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 아키텐의 상속녀 엘레오노르와 프랑스의 왕위 계승자 루이가 결혼하였다.
- 루이 7세가 프랑스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아라곤 왕국이 바르셀로나 백작령을 흡수하였다
40년후 - 모로코에서 무와히드 왕조의 칼리파 아브드 알 무민이 무라비트 왕조 군대를 대파하고 마라케시를 함락한 후 마지막 에미르 이삭 이븐 알리를 살해하였다. 그로써 무라비트 왕조가 멸망하였다
리스본이 십자군에게 함락되었다.
- 제2차 도릴라이움 전투에서 메수드 1세의 룸 셀주크 군대가 콘라트 3세 휘하의 신성 로마 제국군을 거의 전멸시키며 대승을 거두었다
60년후 십자군이 알렉산드리아를 포위하였고, 시르쿠가 후퇴한 후 도시를 점령, 5대 주교구 모두를 회복하였다. 물론 곧 동맹인 파티마 왕조에 반환되었다.
747년 현종에게 양귀비가 총애를 받는 때와 함께 절도사 안록산이 등장,.당은 747년과 750년 1, 2차 서역원정
747년부터 4년간 260만명이 동원대 만들어진 세계 최대의 목조 건물 다이부츠텐.동대사-불국사 비슷한 시기 완성
당(唐)나라 때인 747년 6월 17일에 황제의 명령으로 이 산 이름을 황산(黄山)이라고 불렀다
60년전아우스트라시아 왕국의 궁재 피핀 2세의 군대가 네우스트리아의 왕 테우데리히 3세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후 테우데리히는 파리에서 철수하였고 피핀 2세에게 평화 조약에 사인할 것을 강요받았다. 피핀 2세는 이 전쟁 이후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2세가 우마이야 왕조와 평화 조약을 맺었다.
신라의 행정구역이 9주 5소경으로 나뉘어졌다
40년전 707년 우마이야 왕조, 발레아레스 제도 점령, 티레니아 해(서 지중해) 제해권 확보.
30년전 717년 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개전 (~718.8.15) ((동)로마 제국 vs 우마이야 왕조)
코르도바가 알 안달루스의 수도로 결정되었다
20년전 727년: 니케아에서 비잔티움 제국군이 우마이야 왕조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우마이야 왕조 군대, 아키텐 점령
혜초가 인도에서 돌아와 왕오천축국전을 저술하였다
20년후 대공의 난이 발발하였다.
30년후이프리키야의 현재 알제리에 이란 출신의 이바디 세력이 루스탐 왕조를 세웠다. (~909년)
40년후
비잔티움 제국의 여제 이레네가 주도하여 이루어진 제 2차 니케아 공의회가 열렸는데, 이 공의회에서는 성상 박해를 끝내고 성상 공경의 전통이 다시 복원할 것을 결의하였다
60년후모토야마지가 창건되었다.
비잔티움 제국과 아바스 왕조 간에 평화 조약이 맺어졌다.
당헌종은 806년 검남 서천부 절도사 유벽, 하수 절도사 한전의, 진해 절도사 이기의 반란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번진개혁
386년에 후연 모용수가 중산(中山)에 수도를 정하고 황제에 즉위하였다. 서기 387년,탁발규는 마읍을 공격하여 유현을 쫓아내고마침내 [대]의 옛 땅인 [유원]을 확보하게 된다.북위의 기초
서기 387년 아르메니아는 로마에 의해 멸망을 당함
387년 마그누스 막시무스는 발렌티니아누스 2세의 영토인 이탈리아를 공격했고 발렌티니아누스는 수도 밀라노를 버리고 테오도시우스가 있던 테살로니카로 도망쳤습니다.
고구려 387년 말갈과 관미령에서 싸웠으나 패함.마그누스 막시무스가 이탈리아 지방을 공격하면서 로마 제국의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2세가 피난하였다.
60년전 백제의 내신좌평 우복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왕이 군사를 동원하여 이를 진압하였다
서진은 모용외에게 관직수여 시도.거절
50년전 전연건국
40년전 성한 제 5대 황제 이세가 동진의 환온에게 항복하면서 성한이 멸망하였다.
30년전 내물 즉위2년(357년) 봄, 각 지방에 사자를 파견하여 과부나 홀아비 등에 곡식 3곡(1곡은 10두다)을 하사하고, 행실이 착한 관리에게 1급씩 관직을 올려주었다
20년전 독일 남서부에서 발렌티니아누스 1세가 이끄는 로마 제국군이 알레만니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20년후 서로마 제국의 장군 플라비우스 클라우디우스 콘스탄티누스가 브리타니아에서 자신이 서로마 제국의 황제임을 선언하였다.
혁련발발이 하나라를 세웠다
30년후 동진의 군대가 오호십육국시대 후진의 수도 장안을 공격하여 함락시킨 뒤, 황제 요홍을 처형하면서 후진이 멸망하였다.
눌지 마립간이 신라 19대 왕이 되었다
40년후 고구려가 도읍을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옮겼다
60년후 - 아틸라가 훈족 군대를 이끌고 발칸 반도를 공격하였고, 불가리아에서 이를 저지하려던 비잔티움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테오도시우스 성벽이 지진에 의해서 상당부분 파괴되었다.
자비마립간 467년에는 전함의 수리를 명령해, 전통적으로 신라의 약점이었던 수군을 보강했다
서기 27년부터는 예수가 선교활동을 시작함으로써 서양 사회의 큰 변화를 예고한다. 27년), 광무제가 파견한 대사조 등우 ·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 풍이가 적미군을 공격하였다. 처음에는 패배했던 풍이가 군사를 정비해 적미군을 격파하고, 서쪽으로의 퇴로를 끊고서 동쪽 의양(宜陽)에서 기다리고 있던 광무제의 군은 병량이 다한 적미군을 전투 없이 항복시켰다.
60년전 고구려 동명성왕이 고구려에 성곽, 궁실을 건립하였다
40년전 기원전14년로마 장군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가 아우구스타 방기오눔(현재의 보름스)에 요새를 구축하였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베이루트를 식민지로 삼았다
30년전 헤롯 대왕이 죽은 뒤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헤롯 아르켈라오스를 유대의 분봉왕으로 임명하였다
20년전 콩코르디아 신전이 착공되었다
20년후 고구려 잠지부락의 대가 대승이 1만여 가와 함께 낙랑으로 가서 한나라에 항복하였다
30년후탈해 이사금이 신라 제 4대 국왕이 되었다
40년후로마 장군 베스파시아누스와 그의 아들 티투스가 유대인 저항군의 요새인 요타파타 요새를 함락시키고 주민들을 살해하거나 사로잡아 노예로 만들었다
60년후 파사이사금 87년에 재차 성과 보루를 수비해 백제와 가야의 침공에 대비하고 가소성(加召城)과 마두성(馬頭城)을 새로 지었는데 이 기록은 경주 지역을 벗어난 첫 축성 기록이다
bc334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페르시아 원정
60년전 네메아 전투에서 스파르타군이 테베, 아르고스, 아테네, 코린토스의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코로네아에서 왕 아게실라오스 2세가 이끄는 스파르타와 오르코메노스군이 테베, 아르고스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아게실라오스 2세는 승전 후 스파르타로 돌아왔다.
크니도스 해전에서 아테네, 페르시아 제국의 연합군이 페이산드로스가 이끄는 스파르타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60년후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가 시칠리아에서 돌아와 마케도니아 왕국을 공격하여 안티고노스 2세 고나타스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여 마케도니아 왕국의 일부를 점령한 뒤 자신을 마케도니아의 왕으로 선포하였다
BC694년 제나라와 노나라가 영토분쟁으로 전쟁 후 낙수지원(濼水之源)을 국경으로 획정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지난 72명천의 으뜸(七十二名泉之冠)으로 불리는 포돌천이다.노나라 환공 18년 그러니까 B.C 694년 봄, 환공을 태운 수레가 제나라로 들어선다. 노 환공은 제 양공과 낙수(?水)에서 회합을 가진 다음, 부인 문강(文姜)과 함께 제나라를 방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