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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집 원고/ 이령
[목차]
밤의 아리아 창과 날개와 구름과 자판에 관한 기록 털 없는 원숭이* 는개 아침 도킹 물봉선화-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독백 지금 바로지금이라는 신- 인간은 자신의 형상으로 신을 만들었다
이상 7편
이령 동리목월기념사업회이사, 웹진시인광장편집장, 문학동인Volume 010-5602-0425 hewon12515@hanmail.net
밤의 아리아
빈 방에 누워 입각점을 찾는 난 망원경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밤이네 창 너머 미립자 별들도 혼자서는 길을 잃고 별무리 지는 밤이네 밤은 너무나 가혹한 미래여서 낮의 표정을 싹 갈아 치우네 소유거리에 들고 싶던 마당귀 소사나무조차 이참에 그림자를 접고 잠든 밤이네 밤은 세상의 모든 배반을 노래하는 디스토피아, 난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어둠을 사랑 했네 성운으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그림을 벗어나기 위해 힘차게 어머니의 배를 두드리며 시간의 테이프를 감아 또각또각 그림자를 그리며 놀았네 어머니는 씩씩한 아들일거라 꿈꿨겠지만 망원경은 이미 수 만년동안 인간의 것은 될 수 없었네 이제 난 밤과 새벽의 경계에 서서 그림과 그림자가 어우러지는 꿈을 애달피 구상 하네 고서의 귀퉁이처럼 닳고 닳아 빈 방에 널브러진 난 그림 너머 그림자마저 사랑하기로 하네 세상에서 내가 설 곳을 찾기엔 어둠은 너무 빨리 죽는다고 느끼는 밤이네 어둠의 장막을 걷고 고상한 야만인처럼 새벽이 또 밝아오네
창과 날개와 구름과 자판에 관한 기록
창틀에 햇살이 앉았다 비층구름에 울음 성단을 그리던 후조 개개비들이 상한 날개 죽지를 살피고 있었다 모항성을 비껴선 새떼가 흩어졌다 층층이 창공 테두리만 골라 다시 날아올랐다 전봇대의 애자(碍子)가 구름을 타고 울었다 때마다 난 애면글면 눈부신 햇살을 자판에 받아쓰곤 했다 손잡이를 돌리면 철커덩 쇳소리 창을 열어 젖은 날개를 고민했다 불온한 시간들이 죽지의 흔적마저 거두어 창은 찍소리 한 채 녹 설어갔다 구름은 울음 웃는 자세로 앓기 시작했다 관리비 독촉장처럼 집요하게 무거운 것들이 쌓이면 물걸레로 곰팡이를 덧칠하듯 훌 훌 새를 부르며 난 자꾸만 안으로 창을 닫아걸었다 날개가 돋으리라 기도하는 사이 자판을 두어 번 갈아치웠다 골방 알전구는 매지구름처럼 낮고 어두워서 창틀에 앉아 간절한 눈으로 남은 햇살을 가닥가닥 말아 올려도 자판에선 후드득 후드득 슬픔 돋는 소리만 들렸다 눈물은 숨은 날개를 달고 말라가는 것인가 비 그친 하늘 쪽으로 폭죽 같은 새떼는 피어오르는데 욱신거리는 통증을 견디느라 옴팡지던 내 자판엔 나도 모르는 주문들만 쌓여갔다 창과 날개와 구름과 자판은 흔적조차 없는 봄을 견디는 중이다
털 없는 원숭이*
나는 원숭이 민둥산 원숭이 롤러코스트 꼭대기 앉은 몸 따로 맘 따로 딴따라 원숭이 초 광속 눈빛 추락한 지 오래 분칠한 당신은 파로스 활배근 뒤에 내가 있지요 솜 털 구멍까지 세우던 그때 당신 손 끝 만으로 엉덩짝 붉히던 바나바나 발라드 기억 하나요
기억에 남기려 느리게 다가갔죠 당신은 기억의 저편에서 속도에 빠졌군요 해마가 배를 불리면 머리가 빠져요 어찔아찔 도파민 눈을 뚫고 나오네요 당신 눈을 길게 두고 보아요 나의 영원한 짝 보험 여분의 냄비 불 위에 둘래요 계약은 자유지만 해지는 어림없죠 ‘조강지처 클럽’에 너무 오래 둔걸까요 이글이글 불똥이 떨어져요 우린 아닐거라 고속으로 내려갈까요 3도 화상은 기본인 걸 기억해요 추락은 나락의 이웃이지만 바닥에 닿고 나면 뾰족한 내 모습 보일거구요 당신 무성한 숲 마주하게 될거에요 아참!
그때 당신 그 숲 모로선 털 복숭이 나인걸 아셔요
*데이먼 모리스의 저서명
는개
시간을 말아 쥔 나무의 손금으로 비가 내린다 시인의 창을 타고 목마른 대지 위로 비가 내린다 초록빛 입술이 떨려 마음의 빗장을 걷어내듯 적막의 어둠에 파리한 등불이 길을 내듯 하늘은 묻었던 가슴 풀어 놓는다 말없는 정표를 던지는 그것은 수직의 위로慰勞 긴 시간 멍하나 잠긴 가슴이 풀어 놓는 그것, 슬픔의 향연 직금에서야 속삭이며 부른다 대지의 족속들, 말하지 못하는 것들 죄다 소리 낼 때까지 그것, 조용히 위로 하는 것이다
아침도킹
관상 따라 정찰 바꿔 옷 파는 100번 정류장 공씨 할배 보따리 밀어 올려준다 바가지 쓴 줄 모르고 고맙다 연발하는 어물쩍 슈퍼 집 정씨 할매 빨리 타소 카운트다운 안전 밸트 착용하소 선글라스 깜장 모자 함장 아저씨 보이지도 않은 눈알 부라리면 보문단지 감포행 우주선 뜬다 젓갈 냄새 위성꼬리로 흔들릴 때 저 별에 닿기 위해선 옷깃 방독면도 써야한다 20년 다방 접고 국수집 내더니 면발같이 정숙해진 준원이 고모 구석자리 부비부비 솜사탕 연인을 눈 아래 깔고 앉았다 앉을 자리가 저리도 없을까마는 맘먹고 도덕적인 그녀 아닌가 엄마가 집나가고 부턴 같은 노선에 몸 싣고 궤도 수정중이라는 준이 창 밖 이탈하는 은행나무 우듬지에 엄마 얼굴 매단다 사람 사는 게 참 우주라는 말 실감나는 출근길 이사람 저사람 도킹중인 나를 오늘도 내 별에 내려놓고 버스는 잘 다려진 궤도를 공전중이다
물봉선화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독백
나를 잊지 말아주세요 붉디붉게 피어나던 내 모습을 기억해주세요 목단강 (牧丹江 )에서 다케코가 되어 밤마다 오카모토 003 으로 무장하고 변기처럼 이놈 저놈 걸터앉던 내 모습을 또렷이 기억해주세요 마에다가 태아 째 자궁을 들어내던 밤에도 내 씨방은 아물 틈이 없었답니다 우리 어매 어째볼꼬 하던 내 친구 미쓰코는 바지내린 긴 줄이 끝난 후 끝내 야마모토의 혁대로 목을 맸지요 교성과 함께 천황만세를 외치던 소리에 소스라쳐 놀라며 지금도 난 현재형으로 앓고 있어요 그래도 슬픔에 세상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슬픔이 세상을 다시 세우는 주춧돌임을 믿으며 아직도 살고 있어요 제발 나처럼 떨어지는 꽃을 잊지 말아주세요
지금 바로지금이라는 신 -인간은 자신의 형상으로 신을 만들었다
문명의 기원을 보여주는 TV 에서 문득 일어나는 시간의 물결무늬 , 타임머신 출렁이고 홈시어티 스피커에선 뉴에이지류의 몽롱한 음악이 흐른다 . 우주엔 태양계 크기의 은하가 백만 개나 있다는데 그 미지의 어느 별에선 수억년 전 내가 부지런히 후생의 망을 짜고 있을 것이다 . 흑단의 머릴 푼 마야의 여자가 동검으로 배를 갈라 아이를 낳는다 . 세노테 건너 태양 동굴에선 머리 둘 , 팔이 셋 달린 당대 최고로 예쁜 쌍둥이가 태어나고 , 얼굴이 세모지고 눈과 귀가 가슴에 달린 산파는 방금 떠온 유황물에 푸른 입김을 불어 넣으며 아이의 행복한 일생을 축원하고 있다 . 태양계를 둘러싼 우주의 바다에선 번쩍 폭죽 오로라가 일고 동굴 밖에선 몇 분 뒤 조물주가 내왕하실 것을 알리느라 날아다니는 양탄자들이 소란하다
현생은 후생의 전생 , 이 유익한 두려움 으로 또 하루가 시작되는 걸까 , 난 “엄마 , 밥 줘 ” 하는 소리에 사정없이 정 위치로 환생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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