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핑크돌핀스의 해양동물 이야기 33] 세계 최초의 '벨루가 바다쉼터' 한국에 갇힌 벨루가들도 갈 수 있을까

아이슬란드 클렛츠빅만 벨루가 바다쉼터 전경. 사진 씨라이프신탁 제공
수족관에서 사육되는 고래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영국이 추진하고 있는 흰고래 벨루가들을 위한 바다쉼터가 세계 최초로 내년 3월 문을 열 계획이라는 소식이다. 영국의 고래류 보호단체 WDC와 세계적 수족관 기업 멀린엔터테인먼트사가 같이 만들고 있는 벨루가 전용 바다쉼터는 지난 4년간의 위치 선정 작업을 끝내고 아이슬란드 헤이마에이섬 클렛츠빅만(Klettsvik Bay)을 벨루가 바다쉼터로 최종 선정하고 현재 육상에 시설을 짓는 등 공사가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만을 둘러싼 바다 입구에 처음으로 부교를 놓는 작업을 시작했다. 육상 시설 공사와 함께 부교 설치 공사가 마무리되는 2019년 3월쯤 중국 상하이 수족관에 있는 벨루가 두 마리(리틀화이트, 리틀그레이)를 이곳으로 옮겨오게 되고 바다쉼터가 본격 가동되게 된다는 것이다. 멀린 사는 상하이 수족관을 매입할 때 이미 이 고래들을 바다로 돌려보낼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흰고래 바다쉼터가 만들어지는 곳은 아이슬란드 본섬에서 배로 40분이 걸리는 거리에 있는 섬의 천연 만 지형을 활용하여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곳은 관광시설이 아니라 수족관 고래들이 자연과 같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관람객 수는 극소수로 제한될 것이라고 담당자는 설명하고 있다. 또한 주기적으로 고래들의 건강을 확인할 관리 인력과 해양포유류 연구자들도 직접 고래들에게 다가가기 보다는 수중녹음기와 절벽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이들의 모습을 관찰하게 된다는 것이다. 돌고래 바다쉼터가 또 하나의 생태관광의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수족관이라는 고통스런 환경에서 살아온 고래들의 복지를 위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이용한 흰고래 바다쉼터 수심은 약 10미터로 그리 깊지 않지만 전체 면적은 33,000㎡여서 전 세계 어떤 고래류 수족관 시설보다 나은 환경을 자랑한다. 또한 이곳은 아이슬란드 바다의 험한 날씨로부터 고래들을 적당히 보호할 수 있도록 움푹 들어간 지형에 만들어지며, 벨루가들의 습성에 맞게 북극에 가까운 곳이어서 연중 최고 수온 역시 섭씨 14도를 넘지 않을 전망이다. 북극지역에 서식하는 흰고래들은 몸에 축적된 두꺼운 지방으로 인해 수온이 14~16도를 넘을 경우 심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서식에 적절하지 않다. 상하이 수족관에서 고래생태설명회를 하고 있는 두 흰고래들은 현재 약 13도의 수온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아이슬란드 바다쉼터로 옮겨지는 내년 3월의 수온은 약 섭씨 0도일 것으로 보여 남은 기간에 지방을 충분히 늘려야 할 것이다. 두 흰고래들은 현재 나이가 15살인데, 남은 생을 모두 이곳 바다쉼터에서 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야생의 흰고래 수명이 50살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수십 년 이상 자연과 비슷한 환경에서 지낼 것이기 때문에 수족관 해양포유류들의 동물복지에 있어서는 획기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과학자들은 흰고래의 평균 수명을 70~80년 정도로 본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아이슬란드에 만들어지는 바다쉼터에 다른 나라의 수족관 흰고래들도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곳에 모두 10마리 정도의 흰고래들이 살아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수족관 시설에서 사육되는 고래류는 모두 3천 마리 이상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흰고래 벨루가의 경우 약 300마리가 수조에 갇혀 있다. 한국에는 롯데월드 아쿠아리움과 한화아쿠아플라넷 여수 그리고 거제씨월드 등 세 군데 수족관 시설에서 모두 아홉 마리 벨루가들이 사육과 전시에 동원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세 군데 벨루가 사육시설이 모두 비좁고 수심이 얕아서 문제가 많다. 이중에는 좁은 곳에 갇혀 지낼 때 발생하는 정형행동을 보이는 개체들도 있다. 한 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가만히 있는 모습도 관찰된다. 야생의 흰고래들이 대규모 가족을 이루고 지내며 활기차게 소통하며 움직이는 것과는 너무나 대비되는 모습이다. 바다의 카나리아라고 불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 좋아하는 이들이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수조 구석에서 그저 조용히 전시되어 있는 장면은 아무리 봐도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수입한 세 마리 벨루가 중 한 마리가 2016년 4월 폐사한 일도 있었다. 이 사건 이후 롯데월드 측에서는 추가로 벨루가를 반입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한화아쿠아플라넷 여수 역시 암컷 한 마리와 수컷 두 마리로 구성된 세 마리 벨루가들이 서로 싸우는 바람에 암컷 벨루가는 보조수조에 격리하고 있는 형편이다. 암컷 벨루가 혼자 지내는 수조 역시 매우 좁아 보인다. 거제씨월드에서도 네 마리나 되는 벨루가들이 섭씨 18도 이상의 높은 수온에서 부대끼며 사육되고 있는데, 이것은 그 자체로 학대에 해당한다. 수조 역시 네 마리가 자유롭게 헤엄치기에는 너무 좁고 얕은데, 필리핀 출신의 수석사육사는 ‘수심이 얕은 대신 다른 수조로 헤엄칠 수 있게 해준다’며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다른 수조에는 일본 다이지에서 잡혀온 큰돌고래 아홉 마리가 이미 사육 중이어서, 그 자체로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추운 북극지방에 사는 국제적 멸종위기종 흰고래들은 러시아의 외화벌이 수단으로 세계 각지의 수족관으로 팔려간다. 러시아에서는 과학적 연구 목적과 교육 목적으로만 벨루가들의 포획이 허락되지만 이렇게 잡힌 벨루가들은 연구나 교육보다는 오락의 목적으로 전 세계 시설로 보내진다. 얼마 전에는 러시아 연해주 앞바다에 가두리처럼 생긴 ‘고래감옥’의 모습이 드론 촬영으로 공개되어 충격을 주었다. 그곳에는 흰고래 90마리와 범고래 11마리가 해외로 팔려가길 기다리며 좁은 시설에 감금되어 있다. 이 고래들은 대부분 중국의 각 도시들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돌고래 수족관으로 팔려 가는데, 가격이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의 경우 흰고래는 마리당 약 1억5천만 원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의 범고래들은 중국 수족관으로 팔려갈 경우 마리당 10억 원 이상의 가격으로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 당국으로는 고래를 팔아 엄청난 수입을 거둘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아이슬란드 흰고래 바다쉼터로 이송되는 개체들은 러시아 백해(White Sea)에서 잡혔는데, 이미 12년간 인간의 손을 타며 수족관 생활에 길들여져서 완전히 야생 바다로 방류하기는 힘들다는 것이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비영리단체 씨라이프신탁(Sea Life Trust) 측의 판단이다. 그런데 이 흰고래들이 바다와 비슷한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가게 된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완전히 야생성을 회복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완전 방류도 가능해질 수 있다. 이 고래들이 고향인 러시아 백해 인근 바다로 돌아가지는 못할 지라도 북극의 바다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 상하이 수족관에서 아이슬란드 바다쉼터까지 거리는 약 9,600km에 이르고, 운송 역시 비행기와 트럭과 선박이 모두 동원되는 약 35시간의 긴 여정이 될 것이다. 바다에서 태어나 포획 후 순치과정을 겪으며 수족관에 갇힌 흰고래들이 천신만고 끝에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이 스펙터클한 광경을 세계가 주목할 것이다. 두 마리 흰고래들에게는 이 기나긴 수송과정이 생고생이겠지만 다른 동료 흰고래들이 애초에 바다에서 잡혀오지 않게 될 수만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흰고래들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이들이 구성하는 사회관계망이 인간보다 훨씬 복잡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흰고래들은 분명 동료들의 안위에도 관심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수족관에 갇혀 있는 흰고래들에게도 이런 꿈같은 소식이 들려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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