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풍철이면 꼭 필례약수터와 한계령휴게소에 간다

필례약수터 진입로 단풍나무가 예년같지가 않다. 매년 이맘때마다 오기 때문에 쉽게 그 차이를 안다. 아래는 예년에 찍은 같은 곳 사진이다. 늦어서도 아니다. 단풍은 습도와 기온에 큰 영향을 받는다. 이상고온 현상이 심해질수록 녹색 잎 그대로 말라 떨어지는 현상이 심해질 것 같다. 단풍도 환경지표의 한 종류도 넣어도 좋지않을까?^^


필례약수터 주차장 가운데 한 그루의 수형 예쁜 나무가 있다. 단풍나무과에 속해있는 복자기나무다. 복자기나무는 단풍 조건만 좋으면 저 혼자서 녹색, 노랑, 주황, 빨강을 섞어 빛과 색의 향연을 펼칠 줄 안다. 올해는 저렇게 향연을 취소하고 마른 낙옆으로 떨구고 말 모양이다. 아래는 예년의 저 나무 사진이다.


한계령 휴게소에서 오색약수터 위쪽 주전골 상부 능선을 배경으로 찍었다. 이미 스산한 회색이다. 한계령은 필례약수터와 자동차로 10분 이내에 오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설악선 단풍 절정기에 필례약수터의 단풍도 절정이다. 이 때 한계령휴게소 주변은? 이미 90% 이상 낙옆을 떨구고 난 뒤다.

한계령휴게소. 고 김수근씨 작품이다. 어느 계절에 와도 인상적이다. 휴게소 건물이 주변 경관을 배경으로 잘 어울린다. 가파른 경사지에 지어졌음에도 잿간에 삼태기 눌러엎어놓은 듯 산의 품에 안겨 튀지않는다. 다소 바랜 듯한 짙은 청회색 톤의 지붕에서 강팍한 지형과 바람, 안개 속에서도 오랜 세월을 견뎌낸 듯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우리 부부는 매년 단풍철이면 필례약수터와 한계령휴게소를 찾는다. 필례에서는 단풍을, 한계령에서는 단풍 흔적을 본다. 필례의 단풍이 색의 세계라면 한계령의 단풍흔적은 공의 세계다. 필례에서 삶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한계령에서는 삶의 유한성을 느낄 수 있다. 실제 필례에서 한껏 감흥에 젖은 채 한계령에 왔다가 찬물 한 바가지 뒤집어쓴 기분이 되곤 한다.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캡처
외국 영화를 보면 귀족 서재 책상 위에 사람 해골이 거의 놓여있다. 메멘토 모리. 죽는다는 사실을 잊지마라는 뜻이라고 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불길하기에 떨쳐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의미있게 살 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삶의 유한성이 시간의 소중함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나는 굳이 해골의 충격까지는 아니어도 한계령의 단풍흔적에서 삶의 유한성을 확인해야 한다. 왜냐면 내가 수시로 무의미, 권태에 빠지려고 하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게 의미있는 삶은 뭐냐고. 알 것 같기도 한데 언어로 정리가 잘 안된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모르거나 없는 세계라 했다. 다만 아름다움, 미학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것 같다. 나도 나를 모르겠다. 아마 삶의 의미를 찾고 언어로 정리할 수 있게 되면 쉽게 무의미, 권태에 빠지지 않을 것 같다. 그 때까지는 한계령 단풍 흔적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