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사가 죽은 이유 (사무엘하 6장 1~7절)
웃사가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다윗성으로 옮기다가 죽게 되는데
웃사가 죽임을 당한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역대상 15장 13절을 보면
웃사가 죽임을 당한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상15:13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니
여호와의 궤를 메지 않고 수레에 싣고 옮기려 했기 때문에
우리를 찢으셨다는 것으로 웃사가 죽임을 당했다는 뜻입니다.
그럼 정말 수레에 싣고 옮기려 했는지
본문 3절과 6~7절을 봅니다.
삼하6:3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삼하6:6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삼하6: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역대상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궤를 수레에 싣고
옮기려 하다가 웃사가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궤를 옮길 때에는 수레에 싣는 것이 아니라
어깨에 메고 옮기라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25:14 그 채를 궤 양쪽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하나님의 궤인 법궤를 만드는데
채를 궤 양쪽 고리에 궤어서 궤를 메게 하라 말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성막을 옮길 때에는
고핫 자손이 법궤를 메고 옮기는 일을 하므로
고핫 자손에게는 수레와 소를 주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민7:6 모세가 수레와 소를 받아 레위인에게 주었으니
민7:9 고핫 자손에게는 주지 아니하였으니 그들의
성소의 직임은 그 어깨로 메는 일을 하는 까닭이었더라
이렇게 법궤인 하나님의 궤는
어깨에 메고 옮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궤를 수레에 싣고 옮기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방인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우상을
수레에 싣고 다녔습니다.
수레에 싣는다는 의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궤를 수레에 싣는다는 것은
이방인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자신이 섬기는 우상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섬기듯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고 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는 웃사는
죽임을 당한 것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자는
하나님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자이므로
심판을 받는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어깨에 멘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어깨에 메는 의미는 사극에 나오는 대감마님이
행차하는 모습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종들은 대감마님이 탄 가마를 어깨에 메고
대감마님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게 됩니다.
이것이 종의 모습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교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교회를
십자가로 인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로 인도함을 받은 교회가(죄인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아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궤를 어깨에 메야 한다는 의미를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하여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모습을 통하여
쉽게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마21: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마21: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하여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는 장면입니다.
나귀는 부정한 짐승으로 어린양으로 대속하지 않으면
목을 꺽으라고 출애굽기 13장 13절은 말합니다.
출13:13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처음 난 모든 자는 대속할지니라
여기서 나귀는 교회인 저와 여러분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종인 저와 여러분을 상징하는 것으로
주인이신 예수님이 종인 저와 여러분이 메고 있는
하나님의 궤에 좌정하신 모습이
나귀 새끼를 탄 예수님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인 저와 여러분을 주인이신 예수님이
포도나무인 십자가에 매기 위하여 나귀를 타시고
십자가로 향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인 포도나무로 나귀를 끌고(타고) 가셔서
어떻게 하신다는 것인지
창세기 49장 11~12절을 봅니다.
창49:11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이유는
그 나귀 새끼를 포도나무에 매기 위한 것이며
예수님은 진노의 심판을 받으시는 포도나무인
십자가 위에서 많은 피를 흘리시며 죽으시게 되는데
그 밑에 매여있는 나귀에게 흘리신 피를 뿌려 주셔서
정결하게 해주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구원해 주시려고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 위에서 대속제물로 죽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이어지는 12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49:12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 죽으시지만
눈이 붉다는 것으로
차마 눈을 감지 못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아이를 낳고 산고의 고통으로 죽어가는 산모가
자신이 낳은 어린 아기에게 젖을 먹여 살리려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어린아이가 교회인 저와 여러분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면서까지 복음의 말씀을 먹여
살리시려는 간절한 예수님의 마음을 표현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의 궤를 어깨에 메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궤를 어깨에 메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이며
십자가인 포도나무에 매 놓고 예수님이 흘리신 피를 뿌려
정결하게 해주어 구원해 주신다는 복음의 말씀을
배척한 것으로 당연히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옮기려 한 웃사는
복음을 배척한 것으로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정결함을 받아 구원받은 것이지
나의 의로운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며
또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오신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오직 더러운 죄를 예수님의 피로(복음으로)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시고
예수님이 인도 하시고 계신 십자가로 가셔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뿌림받아
구원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