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은정 시인의 사모곡 (특집)
통권 6호를 통하여 혜성 같이 등장한 예손 / 진은정 시인의 특집 코너다. 누군들 어머니의 사랑에 목말라하지 않는 사람 있으랴 만은 15주년의 기일을 맞아 기억의 노매드가 되어 꿈속에서 나 현실에서 나 드리워진 살아 있는 영상 세계 속의 실루엣이 되어 있는 어머니다.
유년에서 성년에 이르기까지 삶의 지표 가 되었던 것들. 사모곡 은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는 어머니 사랑의 촛불을 점화해준다. 시인의 감성에 살아있는 시심의 활화산이 되어 지길 기원한다.
종합 문예지 덕향 문학의 편집 원칙은 인성의 함양과 효행의 장려다. 패륜과 패역이 세상을 어지럽게 한다. 원고를 주신 진은정 시인에게 감사를 드린다. (편집자. 주)
思母曲
예손/진은정
금년 2월 13일은 (고 최은순) 친정어머니의 15주기 기일이다.
기일이라고 해도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바로 떠오르지도 않는다.
그래도 실루엣이 되어 떠오르는 어머니의 모습에 아득하게 먼 지난 일을 생각해 본다.
오빠는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그런데 88년도에 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우리 6남매는 어머니가 먼길을 출입하다 행여나 병이 날까 봐 직접 찾아뵙기로 약속을 했다..
두 딸이 2004~5년도에 연이어 결혼하고 아들까지 유학을 간 상황이라 조금은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아이들 셋을 키우며 친정 부모님께 너무 무심하게 살아 온 것이 후회가 되어 잠깐이라도 어머니를 모시고 싶어서 집으로 모셔왔다.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도 듣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동안은 모든 순간들이 감동이었다. 모녀간의 사랑을 확인해 보기도 했지만 내 유년과 소녀시절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니 세월이 남기고 간 주름이 깊이 패여 마음은 아팠지만 그래도 마주 보며 지난 얘기를 하는 두 모녀의 얼굴에는 웃음 꽃이 활짝 피었고 두 눈은 아침 햇살 처럼 빛이 났다.
3남매가 모두 집을 떠난 후 텅비어 있던 마음과 집안에는 두 모녀의 웃음 소리와 행복감으로 가득 찼다.
어머니의 삶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격랑의 역사가 소용돌이 칠 때 겪어야 했던 아픈 기억과 그 중심에서 일생일대의 중요한 결단이 필요했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36년 동안 백성들을 억압하고 당원들이 마을에 들어와 사람을 잡아다 죽이고 농부들이 일궈 놓은 작물과 볏알까지 세어 가며 착취해 가고 그것도 부족해서 마을의 유지들과 부유한 사람들은 모두 죽이려고 해서 숨어 살기도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가족들의 생명을 지키려고 일꾼(머슴)으로 하여금 장작 불을 피우게 하여 집안에 모아 놓았던 많은 문서들과 돈 괘 짝을 모두 태우고 지폐로 벽지를 대신해서 도배를 하고 베게잇 속에 넣어 두었던 돈도 사용하지 못하고 휴지로 버리면서 오직 가족들의 평안을 위해 마음 고생을 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광복이 되어 겨우 안정을 찾고 살아가는데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침을 해 큰아버지 2명이 행방불명이 되어 돌아오지 않자 가슴앓이를 하며 몸져 누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할머니는 두 아들이 집에 돌아오지 않고 소식이 없자 행여나 문전걸식을 하고 다닐까 봐 길 가는 나그네 와 문앞 손님 들을 집으로 데려 와 반듯한 밥상을 차려 먹이고 옷을 입히고 쌀을 주어 보냈다고 했다.
어머니는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 올랐는지 역사 책 을 읽어 주는 것 처럼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나도 어렸을 때 동생들하고 연초록 종이와 약간 붉은 종이에 예쁜 문양이 그려진 종이가 집에 돌아 다녀 딱지를 접어 두 동생하고 재미있게 놀던 기억이 났다.
아마 집에서 버려진 지폐가 아니었을까 하는 기억이 가물거린다.
. 어머니의 기도
밤. 낮으로 이어지는 어머니의 기도 제목은 나라에 충성. 부모에게 효도. 형제간에 우애. 그리고 이웃 사랑이었다.
아들이 외할머니의 기도는 녹음기를 틀어 놓은 것 같다고 했다.
어릴 때 부터 듣던 기도가 청년이 될 때 까지 변함없이 이어져 귀에 익숙해서 그랬던 것 같다
일제의 압박과 6.25 동란을 겪어 오면서 풍전등화 같은 나라에서 자식들 6남매를 키우며 살아온 어머니는 당연히 나라를 위한 기도가 첫 번째 순서였다.
당신이 떠난 지금도 우리 가족 모두의 가슴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어머니의 기도 소리는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귓전을 울린다.
나를 가슴 아프게 한 편지 한 장
둘째 딸이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일이다. 어버이날 아침에 책 가방에서 학교에서 써 가지고 온 편지 한 장을 나의 손에 쥐어 줘서 읽다가 대성통곡을 했다. 왜 외할머니는 우리 집에 자주 오는데 외할아버지는 한번도 집에 안 오시느냐고 씌어 있었다. 할머니는 손자. 손녀를 돌 봐 주려고 자주 왔고 외할아버지는 한 번도 오지 않아서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나도 그만 그만한 아이들 셋을 키우고 17년 동안 신부전증으로 고생하는 시어머니를 섬겨 드려야 하는 상황에서 아버지를 잠깐 동안이라도 집에 모셔 오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어린 딸이 그 이유를 몰라서 자기 생각과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한 편지였다.
아버지도 작은 딸이 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어도 3명의 아이들을 키우느라 분주한 딸을 보고 싶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속으로 생각만 하시며 사신것 같다. 나도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고 가끔 안부 전화하는 것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고 살았는데 아버지는 1988년 8월 28일 76세에 딸의 효도를 기다려 주지도 않고 그만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밥 한 그릇 따뜻하게 지어서 대접해 드리지 못한 딸은 작은 딸의 그 편지가 생각이 나서 두고 두고 가슴이 아프다.
우리의 시야에는 아직도 어머니가 실루엣이 되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자식들이 명절이나 집안 일로 어머니를 찾아 뵙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언제나 마당 끝에 두 손을 모으고 서서 자동차 그림자가 사라질 때 까지 기도 드리던 어머니!
자식들이 뒤를 돌아보면 여전히 서서 어서 가라고 손사래를 흔들던 어머니 마음과 마음이 나누어 지고 삶이 나뉘어 그냥 남겨 두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던 나는 지금도 어머니가 계시던 오빠네 집에 가면 어머니가 손을 흔들어 주던 그 자리에 내가 서서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성년이 되어 결혼하고 8남매의 맏며느리가 되어 집안 일로 힘겨워 할 때 우리 집에 오면 노심초사 딸의 일거리를 찾아 밤 잠을 설치던 어머니. 때로 촌철살인 하는 재담과 방담으로 자식들을 웃게 하던 어머니. 가난한 이웃들에게 마음 상하지 않도록 표정을 살피고 옷과 쌀을 나누어 주던 이야기. 젊었을 때 화장품을 샀는데 큰언니가 친할머니 방에 갖다 줘서 당황했던 얘기, 등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밤을 새워 가며 나누던 그 얘기들이 이제는 전설이 되고 말았다.
젊은 날의 어머니는 훤칠한 키에 타고난 미모가 대단했다. 대가 집 막내 딸로 태어났고 세련미와 여자로서 겸양도 모두 갖춘 재원이었다. 83세가 되도록 화장기 없이 살아도 아주 우아하고 예쁜 어머니였으며 다재 다능해서 무엇이든지 우리들이 원하는 것은 음식도 옷도 손수 만들어 주었다.
어머니의 입원
그런데 기쁨도 잠깐 11월 중순경에 우리 집에 와서 2 개월 동안 어머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지난 일을 되돌아 보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83세의 어머니는 1월의 쌀쌀한 날씨를 견디지 못하고 감기로 몸져 눕고 말았다.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하고 몸이 회복되어 금요일 날 회진하는 주치의로 부터 다음 주 월요일에는 퇴원을 해도 좋다는 말을 듣고 우리 가족은 매우 좋아 했었다.
그리고 토요일은 기대감을 가지고 하루를 보냈다.
퇴원을 하루 앞에 두고 주일날 오후에 작은 오빠 부부하고 큰딸 수정이가 예배를 마치고 병원에 와서 함께 찬양도 부르고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갑자기 나를 부르더니 손을 좀 씻고 싶다고 했다.
아무 영문을 모르던 우리는 병원 발코니로 함께 나가 의자에 앉게 한 후 대야에 물을 떠 드렸다. 그런데 아파서 힘이 없던 어머니는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손을 씻었다.
나는 어머니의 발도 닦아 드렸다
우리는 병실로 들어와 병상에 앉아 정담도 나누고 어머니가 좋아하던 찬송가도 부르며 침상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나는 황급하게 침대 위로 올라가 어머니의 허리를 지탱해 주었고 오빠는 간호사에게 연락을 하여 담당 주치의가 왔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
어머니는 숨이 멎어 들어가는 그 순간에도 오빠에게 그동안 해 왔던 유언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진료하던 담당 주치의 가 갑자기 임종 선언을 했다. 우리 모두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조금 전까지 내 품에 안겨 있던 어머니가 한 순간에 우리 곁을 떠나가셨다.
2005.2.13. 일 일요일 오후 20시 30분
당신이 가고 싶다고 하신 아버지가 기다리는 곳
어머니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평생동안 찬송가를 부르시며 사모하던 본향 천국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망연자실 할 수 밖에 없었다.
월요일 날 퇴원해도 좋다는 기대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고 짧은 순간에 우리는 아무 준비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손 쓸 틈 조차 없이 그렇게 어머니를 보내 드려야 했다.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오빠는 여러번 집으로 모시고 가겠다고 했지만 나는 몸이 아픈 어머니를 보내 드릴 수 없어서 모시고 있었는데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닌가?
슬픔 외에 아무 준비도 없이 우리는 어머니와 헤어져야 했고 모두를 기억의 회로 속에 칭칭 감아 놓은 채 편안한 표정으로 아버지 곁으로 떠났다.
.
조용히 생을 마무리 한 어머니 나는 삶도 죽음도 어머니답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다. 삶은 현실이다. 어머니의 삶을 조망하면서 나는 어머니처럼 살아낼 자신이 없다. 나의 남은 삶이 점점 두려워진다.
부부란 무엇인가?
어머니의 일생을 조용히 생각해봤다. 부모 곁을 떠나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기르고 온갖 고생 하다가 사별이라는 아픔을 겪고 아버지의 빈자리를 외롭게 지키다가 다시 당신의 죽음을 눈 앞에 두고 돌아가신 아버지 곁으로 가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하며 기다리는 연약한 여자의 그 의연함은 어디에서 온다는 말인가?
당신이 섬기던 창조주에 대한 확실한 믿음과 가족에 대한 배려. 신앙의 힘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어머니만의 용기라고 나는 생각 해봤다. 평소에도 자식들 앞에서 자세 한번 흐트러지지 않고 책임을 다한 성실하고 담대하며 옳은 일은 반드시 해내는 때로는 고집스러운 어머니였다.
6. 아버지와 어머니의 추억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어머니에 대한 효도였다. 봉건사회에서 부부간에 칭찬하는 것이 일반화 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부모님을 모시고 자식들을 키우는 어머니가 마음에 가엽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아버지가 떠난 후 아버지의 빈 자리를 메워 주고 홀로 6 남매의 상담자와. 보금자리가 되어 주고 하늘 같이 넓은 마음으로 우리를 품어 주었으며 집안의 등불이 되어 우리들의 길을 밝혀 주신 어머니......
신앙생활에 대한 예의와 기본교육. 신앙관도 분명했으며 일요일 예배드릴 때 입고 가야할 옷을 구별해 주었고 예배시간에 드릴 헌금도 토요일 오후가 되면 정성스럽게 다려서 준비해 주던 어머니였다.
십일조를 생활화 해라. 성미(聖米)는 꼭 챙겨야 한다.
목사님 섬기는 일을 게을리 하지마라. 목사님은 아무리 나이가 연소해도 부모님처럼 섬기고 말씀을 하면 지키고 순종하라고 가르쳐 주었다.
받기만 한 사랑이 되돌려 지지 못하고 무덤 만 높여 온 내가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가득하다.
어머니!
당신이 떠난 후 시간은 화살 처럼 빠르고 그리움은 산처럼 커지고 외로움은 바다 처럼 넘실 거리네요.
그리움을 푸념하고 있는 나는 그녀에게 무엇인가?
어느덧 당신의 딸 은정이도 당신을 닮아서 하얀 머리가 되었어요.
계절이 바뀌고 명절이 돌아오면 정성 들여 맛있는 음식을 준비 해 한상 가득 차려 놓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먹으면 그 모습을 보고 행복해 하던 당신의 모습 웃으시던 그 얼굴이 몹시도 보고 싶어요.
설빔을 준비해 손수 입혀 주며 환하게 웃던 당신의 따스했던 미소와 손길이 못 견디게 그립습니다.
엊그제 설날에는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의 세배를 받으며 저는 세배 드릴 당신이 없다는 생각에 먼 산을 바라 보고 울컥하였습니다.
신록은 시간이 갈수록 연초록에서 진초록으로 옷을 갈아 입고 당신의 딸 은정이는 머리가 더 하얗게 되어갑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당신 생각에 몸살을 더 앓아야 되겠지요.
.
당신이 나를 대신해서 돌봐 주던 3남매가 결혼해서 또 자식을 낳아 저의 품에 안겨 주어 손자. 손녀 6명을 둔 할머니가 되어 그들이 자라서 제 손을 잡고 할머니! 할머니! 하면서 쫑알쫑알 대고 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당신의 새끼들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나에게 한 것처럼 저도 당신의 그 빈자리를 대신해서 채워 주고 있답니다.
어머니!
세상과의 인연이 두렵고 고단한 여정의 일상이 어렵고 사람 노릇하며 살기가 어렵고 힘이 들수록 또렷하게 보이는 당신의 모습 포근했던 하얀 젖무덤의 향수와 그리고 부드럽고 포근하게 감싸주며 등 두들겨 주던 부드러운 손길과 그 몸 냄새가 너무 그립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무엇이며 당신에게 나는 무엇인가요?
나이 70을 눈앞에 두고 당신의 그 깊고 넓은 사랑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요.
당신은 떠났어도 그 사랑과 가르침은 그리고 함께 살아왔던 기억은 새롭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잊혀지지 않네요.
지금도 어머니는 영원히 저와 함께 계시며 저의 삶을 인도하고 길을 비춰주고 있어요.
당신은 당신을 위해 그 무엇 하나 남기지 않고 온전히 나와 자식들을 위해 베풀어 주셨어요.
어머니의 큰 사랑 앞에 사랑한다는 말은 감히 드릴 수 없고 다만 엎드려 용서를 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2021.2.13
주님 부르시는날 천국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당신의 둘째 딸 은정이가 어머니 15주기를 맞아 추모의 글을 올립니다.
1. 그리운 어머니
예손 /진은정
초췌한 그림자 하나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하늘색 변하고
땅이 진동하는 기도소리
틀을 벗어날 수 없는 별 하나
칠흑의 어둠을 밝히고
생애의 길을 밝힌다.
당신의 길
걸어가야 할 내 길
그리움은 그리워 할 수 록
그리워지고
기쁨은 나누어 줄 수 록
더 커진다.
인연의 벽에
사라진 그림자
당신은 하늘에
나는 땅 위에
어눌한 손짓에
하얗게 웃는 모습
결코 나를 떠나지 못하는
여윈 세월의 천륜
아! 어머니
2. 빈 소라 껍데기
예손/진은정
어머니는 빈 소라 껍데기
나는 작은 새끼 게
속 살은 나에게
모두 내어 주고
속은 텅 비어 있다
밀물이 속을 채워 주면
나는 그 품에 들어가 산다.
소라 껍데기는
거센 바람 에는 풍 벽이 되고
달빛 밝은 날에는 유람선이 된다.
물색 모르는
새끼게
파도 가 밀려오면
춤을 추고
.
바람이 불면
노래를 부른다.
썰물이 오면
탈출도 시도 해 본다.
사랑은 희생이 아니란다.
함께 하며 지켜주는 것 이란다.
해풍에 실려오는
어머니의 노래
소라 껍데기가
활짝 웃고 있다.
1990. 년 8월 부안 변산반도에서
3. 동장군
예손/진은정
한파 가 계급장 을 단다
계급장에는 별이 달려있다
별이 나타나면 움추려 드는 마음
별이 달고 싶어
하늘 만 바라 보는 사람 도 있는데
봄 햇살이 창에 비취면
소리없이 사라질 줄 아는 장군
밤 하늘에 길을 밝혀주는 별도
나라잃은 설움에 눈물 닦아 주는 별도
손자녀석 크리스마스트리에 달려 있는
반짝이는 별도 별인데
계급장이 없이 불리우는
얼굴없는 장군
겨울이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조용히 오던 길로 다시 가소서
4. 아침 이슬
예손/진은정
꽃 잎 위에 앉은
작은 생명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
나를 보고 웃는
너의 눈빛이 영롱하다
동녘 하늘에
해가 뜨면 사라지고
해가 지면
꽃 잎 위에 앉아
새벽을
기다리는 너
돌아갈 고향도
집도 모르고
하늘에 구름 되어
떠 다니는 너
해가 뜨면 사라지고
해가 지면 나타나는
아침 이슬
너의 작은 생명 이
내일의 희망을
꿈꾸게 한다
5. 갈대의 사랑
에손 /진은정
하늘 거리는
바람의 노래에
나는 꺾이지 않는다.
일렁이는 바람에
상처 난 갈대
뿌리는 점점 깊어 지고
갈 잎은 하늘을 향해
춤을 춘다.
바람은 멈추지 않아도
내 사랑은 꺾이지 않는다.
사랑 한다는 이유 로 하여
바람의 유혹은 끝이 없어도
부러지지 않는 갈대
늪지의 숨결이
턱에 닿아도
하늘을 보고
그 자리에 서 있다
나의 사랑은
해가 질 때까지
바람이 멈출 때까지
사랑은 오래 참는 거란다.
6. 용광로
예손 /진은정
이별은 필연이고
사랑은 절연이다
타오르는 목 마름
불 꽃은 잦아들고
열기는 폭발한다.
불 꽃 속에 던져진
녹슨 쇠 막대기
너의 삶의 한계
무너 진 전설이다
만날 때 저린 가슴
이별의 아픈 가슴
용광로 불꽃 속에
타고 있는 거짓과 위선
재물도 명예도 타고
오직 사랑 만 남는다.
타고 남은 재
그 마저도 부질 없는
시간 속의 채무
삶의 여정 속에
언젠가는 찾아 오는 이별
이것이
너와 나의 인생이다
활활 타 오르다
저 하늘에서 불리는 날
조용히 눈을 감고
홀연히 떠나리라.
용광로 속의 타오르는
불빛이 처연하구나
7. 어머니의 배려
예손/진은정
사립문 꼭 닫지마라.
길 가는 나그네
목이라도 축여야지
샘물 없는 동네란다.
바람이 휘 젖는 동네 어귀에 서서
추위에 떨고 있는 문 앞 손님
바람 막아 주시던
어머니!
문전박대 받아
다시 갈 곳 없어지면
언제든지 다시 오라고
남은 밥 비닐 봉지에 담아 주던
님은 가고 없어도
사립문 문살 위에
햇살처럼
어른대는 어머니의 얼굴
8. 에필로그 (믿음의 발자취)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 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험악하여도
나 주님 만 따라 가리
나도 그길 따라 가리....
후렴
서울을 떠나온 나의 삶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나를 두고 하는 말 같다.
효는 자녀가 부모님께 드려서 기쁘고 부모는 받아서 행복한 일이다.
이렇게 행복한 효를 왜 모르고 부모님 돌아 가신 후에 이 토록 가슴이 저리도록 후회 하는지 살아 생전에 다 이루지 못하는 것이 바로 효도와 효행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이 떠나 가신 후에 효에 대한 절실한 마음과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던 나에게 효 교육이라는 플래카드를 보는 순간 나는 눈을 의심했다.
내 뇌리에서 잊혀 지지 않는 부모에 대한 공경과 효 어릴때 부터 효 교육이 매우 중요 하다고 부모님께 들었지만 살아 오면서 실천 하기는 쉽지 않았다.
효는 하고 싶어도 부모님이 기다려 주지도 않고 돌아 가시고 난 후에는 대상이 없다 는 것을 생각하고 후회하며 목말라 하던 나는 2020년 5월 9일 집을 나서다 우연히 길에 걸려 있는 충청 효. 인성교육원 플래카드를 보고 가던 길을 뒤로 하고 교육원 문을 두드린 후 등록을 하고 효 교육을 받았다.
최기복 교수님의 명 강의와 해박한 지식. 그리고 교수님들의 강의를 통하여 옛 효와 현대의 효를 비교하여 배우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고 내 마음의 갈증도 조금은 해소되었다.
아이들의 직장 이동으로 서울을 떠나 타향 천안에 내려와 아이들과 살면서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새롭게 시작한 배움이 나에게 조금은 위안을 주었다.
교육원에 모인 효우들과 문우들은 모두 배움을 초월한 나이지만 배우려는 열정과 눈 빛은 어두운 밤 하늘을 밝게 비춰주는 샛별처럼 빛이 난다.
70~8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몇 시간을 차를 타고 달려와 강의를 듣는 것을 보면서 젊은이 들 못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젊은 날에 꿈이 있고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전. 후 세대를 살아온 저들은 배움의 기회가 주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삶의 현장에서 일을 해서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성장 시킨후에는 결혼시켜 살림을 내 보내고 가정의 생계를 이어 가느라고 본인들의 꿈은 뒤로 접은 동료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수업을 마친 후 친교를 하고 나라에 대한 염려와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문제 등을 생각하며 서로 격려하고 앞으로 살아갈 다음 세대들의 교육에 대한 얘기도 나눈다.
비록 나이가 들어서 노인이라는 말은 들어도 살아온 경험과 지혜. 배움에 대한 목표와 삶에 대한 의지는 대단하다.
이러한 노력이 삶을 풍요롭게 하고 건강을 유지 시켜주며 삶에 활력소가 되어주며 노년에도 행복 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어 하루하루를 즐겁고 행복 하게 살아 가고 있다.
코로나로 모두가 우울한 삶을 살고 있는 상황에서도 배움에 목 말라하며 보람 있는 삶을 영위하며 사는 모습을 요즘 젊은 청년들이 보고 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효우, 문우들과 스스로에게 격려와 박수를 쳐주고 싶다.
우리 처럼 꿈을 꾸는 자들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글로 마음과 생각을 연단하는 모두에게 결코 좌절은 없다고 생각한다
충청 효. 인성교육원이 발전하여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아 혼란에 빠진 가정과 사회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 귀하게 쓰임 받는
날이 속히 오기를 축복하며 기대해 본다.
부족한 나의 무딘 손으로 글을 쓰게 하고 효에 대한 갈망을 깨우쳐 주신 최기복 원장님과 강사님들, 그리고 효우들과 덕향 문학회 문우들과 더불어 우리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기쁨을 나누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길 소망하며 충청 효. 인성교육원과 덕향 문학회의 양 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하는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ㅡ노년을 아름답게 사는 스승님과 나의 효우 문우들과 함께
덕향 문학회 발행인 최기복 대표님과 덕향 문학회 문우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의 개인적인 일상을 마음속에 담아 놓았는데 덕향 문학 8호를 통하여 저의 못다 한 한을 너스레처럼 풀어 보았습니다.
생전의 불효가 사후에 까지 한으로 남는 일이 없도록 주변과 독자에게 울림이 되라는 취지로 저의 쓴 글입니다.
어머니의 짧은 생애 가운데 겪어야 했던 일들이 나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사후에도 생명윤리와 도덕적 승화를 통한 조명이 되어야 하겠지요. 그렇지 못한 저변의 이야기들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보람 된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많은 격려와 충언을 부탁드리며 두서 없는 긴 글을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