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에게 돌아갈 연금은 없다
- 학살 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 하면 이렇게 된다
1980년 5·18 당시 광주에서 벌어진 군부의 행동은 이전 부마항쟁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부마항쟁은 박정희라는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시위대 진압에 목적을 둔 방어적인 것이었으나, 광주항쟁은 위기에 처한 반란 신군부가 명분을 만들기 위해 공수부대를 동원해 시위대의 폭력을 유발한 기만적인 공격 행동이었다.
소요가 일자 반란군의 수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광주 시가지 한복판에 공수부대를 투입했고, 학교에 들어가려는 전남대생들에게 난데없이 무자비한 구타를 가했으며, 이를 만류하던 시민들에게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폭행을 행사했다.
이렇게 볼 때 당시 여성들에게 가해진 성추행과 성폭행은 광주 시민들의 분노를 최악으로… 촉발시키려는 고의적 범죄였음이 분명하다. 마지막 도청 진압 때에 공수부대를 재투입한 것도 명백한 고의적 범죄였다.
반란군 수괴들은 주저 없이 폭력을 행사하라고 명령 내렸다. 결과 광기의 폭력이 자국민을 대상으로 행사된 광주 현장에는 전쟁 때 적군에 의해 행사된 것보다도 더욱 처참한 상처가 남게 되었다.
벙어리 청년이 자기는 시위대가 아니라고 해명하다 보니 신체 동작이 정상일 리가 없었다. 광기의 군인들은 그 자리에서 벙어리 청년을 때려 죽였다. 이후 장애인 아내는 젖내도 가시지 않은 아기를 놓고 집을 나간다. 아들의 죽음과 며느리의 배신을 목격한 어머니는 통한과 인고 속에서 손녀를 맡아 키우게 된다. 그 손녀는 할머니를 엄마인 줄 알고 자랐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한 청년은 금세공 기술을 배워 금은방을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는 동생 친구의 결혼 예물을 갖다 주고 오는 길이었다. 공수부대원들이 곤봉으로 대학생들의 머리를 마구 때리는 것을 본 그는 공분을 느껴 항의하다가 되레 얻어맞고 쫓기게 된다.
청년은 시민군에 가담한다. 하지만 그는 사태가 진정되는 날 붙잡혀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처참하게 구타당하고 공수부대원에게 끌려간다. 그가 군사재판을 받고 복역하다가 1년여 만에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집에 와 보니 아내는 금은방을 팔아치운 후 아이들을 고모 집에 방기한 채 어디론지 가고 없었다.
자녀를 여섯이나 둔 중년 여인은 버스를 타고 가다가 날아온 총탄에 두 눈을 잃었다. 선량한 남편은 아내를 정성껏 간호했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자기가 살아 보아야 가족에게 짐만 될 뿐이라고 여긴 그네는 식사를 거부한다. 남편은 당신이 밥을 먹지 않으면 나도 아이들과 함께 약을 먹고 죽겠다고 말한다. 그네는 할 수 없이 밥을 먹고 병석에서 일어났지만 이제는 과로에 지친 남편이 중풍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고 만다.
대한민국 정부는 5·18을 뒤늦게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고 피해자 보상을 했다지만, - 사실 보상이라는 말에도 왜곡이 있다. ‘보상’이란 적법한 공권력 행사에 따른 피해를 책임지는 것, 불법적인 행위에 대한 책임은 ‘배상’이다. - 그것이 제대로 되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우리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보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살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었다. 특히 공수부대원의 만행에 대한 책임 소재는 응당 가려졌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학살의 주범 전두환과 노태우가 대통령을 해 먹고 특전사령관이었던 정호용이 국회의원을 하며 거들먹거리는 모습을 보아야 했던 피해자들과 광주 시민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여태껏 가해자들은 호의호식하며 살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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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뉴스 캡처 |
이런 자들이 이제는 국방부를 상대로 군인연금을 지급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고 한다. 그들은 지난 1월 서울행정법원에 ‘군인연금을 못 받는 것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었다. 또한 내란반란죄로 금고 이상 판결을 받은 경우, 연금 지금을 금지한 군인연금법이 위헌이라며 위헌법률심판제청까지 신청했다.
소송에 참여한 이들은 정호용·최세창 전 국방장관, 황영시·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 장기오 전 육군교육사령관, 장세동 전 3공수특전여단장, 허화평 전 보안사 비서실장, 허삼수 전 보안사 인사처장, 이학봉 전 보안사 처장. 신윤희 전 육군 헌병감 등 10명이다.
그들은 밀린 연금까지 한꺼번에 달라고 한다. 악마란 가해와 피해 그리고 선과 악을 반대로 인식하는 동물이다. 이 모두가 학살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 아닌가? 아무리 대한민국이 개판이라고 한들 악마에게 돌아갈 연금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