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9월 26일(월) 고린도전서 14:26~40 덕을 세우기 위하여 찬송가 327장 주님 주실 화평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4:26~40 말씀을 중심으로 ‘덕을 세우기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성령께서 교회에 주신 여러 은사를 ‘사랑’을 기준으로 분별하여 사모하기를 권면합니다. 1절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방언을 사모한 것처럼 우리 성도는 저마다 ‘더욱 더 큰 은사’를 사모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진짜 큰 은사가 무엇인지 분별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바로 사랑으로 은사를 이해하고 분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사랑을 추구하고 난 다음에 신령한 은사들을 사모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세우는 방언보다 교회를 세우는 ‘예언’을 사모하라고 말합니다. 예언은 사람 즉, 자기에게가 아니라 회중들에게 말하는 것으로서 그 예언으로 인하여 서로 권면하고 안위하게 되어 교회 전체의 덕이 세워진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여기서 예언은 우리가 알고 있는 미래 일을 미리 예측하는 것(foretelling)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밝혀서 말하는 것(forthtelling)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계시인 성경의 진리를 풀어서 전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성도간에 말씀 안에서 교제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방언을 통한 자기 사랑과 예언을 통한 교회공동체 사랑 중에서 후자를 택하는 것이 더 큰 은사를 사모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이 세운 교회가 잘 세워져야 그 안에서 나도 믿음으로 잘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은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이며, 우리가 자신의 유익보다 교회의 덕을 위해서 섬기는 것이 소중함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오늘 14절에서 다시 한번 모든 것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대로 사모하며 행하되, 특별히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반복해서 강조한다는 것은 그만큼 ‘덕을 세우기 위하여’라는 말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바울은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는 방언도 예언도 질서있게 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 질서의 목적은 모든 사람이 말씀을 잘 들어 배우고 권면을 받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 교회 안에 질서가 없이 무질서하면 화평이 깨집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에 속한 모든 지체가 주님의 말씀으로 서로 소통하며 교제하는 것이 화평의 하나님이 주시는 ‘샬롬’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고린도 교회처럼 분쟁하고 다투는 것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이 아닙니다. 질서를 지키며, 교회 내에 하나님의 화평이 흐르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의 덕을 세우는데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 안에서 하나되고 우리가 피차간에 서로 화평을 도모하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일입니다. 교회가 희락과 화평이 가득할 때 강퍅하고 메마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교회를 보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화평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다툼과 분열이 있는 곳에 찾아가 그것을 화해와 희락과 화평이 넘치는 곳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온전히 평화의 도구로서 책임을 다할 때 우리들의 교회는 세상에 덕을 선포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덕을 세우기 위해 질서를 깨뜨리는 문제들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34절에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교회는 주로 가정에서 모이던 가정교회 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공적 모임에 관습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사적인 일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복장 문제나 식사 문제 등이 그러한 예입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도 당시 특정상황과 맥락에서 나온 문제입니다. 당시 남성 예언자(=오늘날 설교자)들 중심으로 돌아가던 고린도 교회 안에 갑자기 성령 충만한 여성 예언자 집단이 등장했습니다. 이 혜성같이 등장한 능력 충만한 여성 그룹 때문에 그동안 교회 안에서 기득권을 갖고 있던 남성 설교자들은 적잖이 당황하게 되었고 일종의 남녀간의 대립 상황이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알게 된 바울은 일단 여성 예언자 그룹들에게 일종의 자제를 권했습니다. 이것은 여성들의 활동을 금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남성 지도자들이나 여성 지도자들 모두가 서로 대립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힘을 모으게 하기 위한 의도였습니다. 한마디로 바울은 나중에 등장한 여성 예언자들에게 남성들을 무시하면서까지 마구 설치지 말라고 권고하면서 교회 전체의 평화를 유도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가정에서 세우신 창조질서를 교회의 공적 모임에서도 잘 지켜야 부끄러운 것이 없으며, 그래야만 먼저 믿은 아내가 남편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게 됩니다. 오직 가족과 이웃의 구원을 위해서, 또한 교회의 덕을 위해서 내가 잠잠해야 할 이유입니다. 믿지 않는 남편이나 식구들이 '과연 예수를 믿으니 아내나 우리 엄마가 확실히 변했다'고 인정하고 감동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럴 때 불신가족들이 예수님의 능력을 깨닫고 교회에 나오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성도들이 가장 먼저 세워야 할 신앙인의 덕인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안에서 파당을 지어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고 영적으로 교만한 자들을 행해 이 편지가 주의 명령임을 선언합니다. 오늘 본문 37절 말씀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교만한 그들에게 자신이 스스로 영적이라고 확신하면서, 이 글에 기록된 진리의 말씀을 분별하지 못한다면, 그는 교회로부터, 더 나아가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우리는 은사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을 주님의 명령으로 받아 모든 은사를 ‘사랑 안에서’ 그리고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 행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품위있고, 질서 있게 행하라고 사도바울은 40절에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한 교회에 속하여 그 공동체를 세우고자 질서를 따르는 훈련을 받는 것이 주님을 제대로 믿는 길입니다. 우리말로 “덕을 세운다”고 하면 선과 의를 행하여 상호 화평을 이루는 일을 뜻합니다. 자상한 인격과 관용적인 태도로 사람들 사이에 분쟁과 불화를 없애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렇게 ‘덕을 세우기 위하여’ 모든 일에 질서를 따라, 화평을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나의 유익보다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교회의 덕을 위해 쓰임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화평을 누릴 수 있도록 교회 공동체의 질서를 잘 따르게 하옵소서. 가족과 이웃의 구원을 위해 오늘 내가 잠잠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도와주옵소서. 나의 유익과 만족이 아닌 하나님의 명령에서 비롯된 품위와 질서로 교회 공동체를 세울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https://youtube.com/channel/UCcQmkyvF_Y4tMr4uC5FHU5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