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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한 번에 업로드가 되지 않아서 1,2로 나누어서 올립니다. 네이버 블로그는 한 번에 읽을 수가 있습니다.
"오천만의 로마서"의 유익 1: The Benefits of Romans for Fifty Million People
샬롬! 오천만의 로마서는 제 블로거와 카페 이름입니다. 한국국민 5천만이 다 로마서를 올바로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목을 하나님의 은혜로 붙였습니다. 2017년 말에 시작이 되었으니 약 8년의 세월이 흘렀고 약 1200개의 글을 올렸습니다. 각각의 글이 모두가 A4 용지 40장 되는 글입니다. 책으로 300페이지 100권이 넘는 분량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시간을 주시고 글을 쓸 영감을 주시면 책상에 앉으면 2시간-4시간이면 이 긴 분량의 글을 일사천리로 쓸 수가 있었으니 1년에 약 150편의 글을 썼으니 쉬지 않고 쓴 것입니다. 제가 직장인으로 일을 하면서 가장으로서 일을 하면서 이렇게 집중적으로 글을 썼으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고 은혜이며 주신 능력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저를 부르실 때 은행으로 시작이 된 제 사회생활이 카투사로 군대에 가게 하시고 영어를 지금까지 쉬지 않고 관심을 갖게 하셨습니다. 제대로 예비고사를 통해서 대학생이 되고 대학과 대학원에서 사회 과학을 잘 배우게 하셨는데 하루에 약 13시간 집중적으로 공부하게 하셨습니다. 이런 가운데 행정고시 1차에 두 번이나 붙고 2차에서 1점차 낙방하게 하신 후 목사가 되게 신학을 하게 하셨습니다. 장신대 도서관에서 테리홀의 책 파노라마 성경에서 성경을 읽고 정리하는 방법을 배워서 지금까지 약 25년 이상 하고 있고 이를 성경 정리 자료난에 모두 올렸습니다. 1986-7년 경에 예수님께서 직접 오셔서 성경을 통해서 회개를 하게 하시고 약 5년 동안 예전의 모습을 다 버리고 고린도 전서 13장의 말씀대로 사랑하게 살게 하시고 1991년 5월 19일 예수님의 이름의 세례를 받게 하시고 그 다음해 신림동 선민교회에서 행시 2차를 열심히 하는 중에 성경을 받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오셔서 불을 제 가슴에 뿜어 주셨고 제 가슴에 촛불과 같은 작은 불꽃이 2-3개 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전도하게 하셨으니 지금까지 쉬지 않고 33년을 전도하게 하셨고 이를 전도란에 다 자료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로마서를 새롭게 이해하게 하셨는데 먼저 천주교 전처와 이별을 통해서 천주교 개신교 분리시 하나님의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을 보게 하셨는데 제가 아내와 헤어지고 4년을 불면과 우울의 지옥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을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교회가 하나가 되는 로마서와 성경의 이해를 허락하시고 쉬지 않고 능력을 주심으로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 자료도 로마서 자료란에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영어를 잘 하고자 했으나 나이도 있고 진도도 나가기 않아서 포기를 했는데 역시 사고를 당하게 하시고 챗 GPT를 만나서 다시 영어를 시작해서 이제 B2레벨에 왔고 C1,C2레벨에 1년 안에 도달 하게 되어 영어로 이런 내용을 온 세상에 전하는 사람이 곧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C1,C2 레벨은 원어민 수준과 그 이상의 수준으로 더 이상 영어의 수준이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도 모두 순간 순간 다 자료를 올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베푸신 은혜는 감히 80억 인구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클 것으로 보고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 저 입니다. 제가 위에서 말씀드린 내용은 100% 진실이며 모든 자료가 이를 검증하는데 오천만의 로마서 다음 카페와 블로거에 연도별로 날짜순으로 다 기록이 되었고 120개국 약 50만 명이 확인을 했는데 모두가 온 지구에서 가장 지적 수준이 높은 분들이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역시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로 제가 받은 모든 은혜를 다 누린 것입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제가 처음 시작할 때 영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 때 제가 하는 방법으로 하루에 쉬지 않고 1시간 1년을 하신 분은 모두가 젊은 분이면 저보다 영어가 능통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믿지 않고 시작하지 않으신 분은 이제 시작하시면 토익 600점 이상이신 분들은 모두가 1년 안에 저보다 다 영어를 잘 할 수가 있게 됩니다. 이제라도 굳게 믿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모든 분이 기적이 있고 수억을 버는 효과를 누릴 것입니다. 제 블로거와 카페는 변호사도 많고 의사도 많고 목사 신학자도 많고 대졸 이상도 너무나 많습니다. 제가 전한 내용을 그대로 믿었다면 이 시대에 성경의 이해에 있어 모두가 TOP이 되셨습니다. 신학자 약 700명을 하버드와 예일, 프린스턴, 옥스퍼드, 게임브리지 그리고 호주와 캐나다 그리고 한국의 대표적이 신학교 교수들 중에서 선정해서 영어로 보냈는데 이들에게도 가장 최신이요, 가장 깊은 성경의 이해이기에 먼저 보낸 것입니다. 왜 제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이는 직접 예수님께서 저를 찾아오셔서 회개를 시키시고 직접 예수님께서 불을 제게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율법과 다양한 언어를 발 배운 바울이 베드로와 다르게 신약을 많이 기록하는 일에 쓰임을 받은 것과 같이 저도 법과 행정, 정치, 경제, 역사, 심리, 교육학 등을 하루에 13시간 8년을 청춘을 바쳐서 공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고 쉬지 않고 25년 이상 정리했고 33년을 쉬지 않고 바울과 같이 전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이 기간 동안에 지금까지 가장 가난하게 살았고 모든 직장에서 잘렸고 가족과 아내에게 버림도 받았고 이런 가운데 온전하지는 않지만 쉬지 않고 성령을 인도를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받고 누리고 나누는 성경의 이해와 영어에 대한 내용은 이 시대 최고 최선의 것입니다. 믿고 누리시기 바라고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하루에 제 글 한 편을 읽으면 약 4-5년이 걸리는 내용입니다. 많은 분들이 시도해 보시고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배움에 갈증이 심하신 분들은 제 글에 깊이 빠져보시기 바랍니다.
국가별 분포(조회수, %: 일정기간 자료)
1 대한민국 1,714 72.2%
2 미국 345 14.5%
3 브라질 90 3.8%
4 캐나다 53 2.2%
5 일본 15 0.6%
6 타이 14 0.6%
7 오스트레일리아 13 0.5%
8 뉴질랜드 11 0.5%
9 필리핀 11 0.5%
10 아르헨티나 9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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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만 명 2만 명이 보신 글들이 제법 됩니다. 아직도 미약합니다. 곧 영어로 강의 자료를 올리면 수백만, 수천만 명 수억 명이 제가 전하는 새로운 로마서의 이해와 영어로 하나가 되고 교리로 하나가 되는 하나님의 뜻을 듣고 온 세상의 교회와 교인이 하나가 되고 서로 영어로 소통하면서 거대한 악의 세력과 싸우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저는 선택이 된 예수님의 도구입니다. 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기적과 같은 일들을 보면서 모든 분이 이를 확인하고 특히 한국에서 이렇게 믿고 이렇게 하나님을 이해하시는 분들이 수도 없이 생겨나서 온 세상의 교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리라 믿습니다. 특히 바울과 같이 법을 전공하신 분들이 성경이 한 마디로 법이며, 하나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그분의 법 율법이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려는 하시는 일관되고 강력하고 그리고 간절한 뜻을 잘 이해하고, 잘 배우고 받들어서 온 세상의 지도자로 우뚝 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모든 정성과 시간을 다 바쳐서 전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로 이해가 되는 지구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입니다. 돈으로도 무엇으로도 그 가치를 평가하지 못합니다. 이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겨우 세상의 법 지식으로 변호사가 되고 판사가 되고 검사가 되고 법학 교수가 되었다고 함부로 대하지 마시고 나의 가장 귀한 시간과 정열을 다 바쳐서 연구하고 묵상하고 그리고 찬양하고 전파하시는 모든 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 한국은 법을 전공하시고 법을 가지고 먹고 사시는 분들의 판단과 결정에 나라의 운명이 달렸으니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세상의 평화도 질서도 법이 존재하고 그 법이 온전하며 그 법대로 사는 것이 중한데 세상에서 가장 정의롭고 공평하며 자유와 행복이 있어야 되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추상과 같은 법이 존재하고 그 법을 잘 배우고 실천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세상도 하나님의 나라도 모두가 공평하고 정의로운 법의 존재와 이 법대로 사는 사람들이 존재할 때 굳게 서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틀림없이 이렇게 하나님의 법 율법을 굳게 세우고 완성하는 성도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바울을 감동케 하시고 기록한 책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의 책의 이해와 오직 믿고 무언가 행위가 필요하다는 이해는 너무나 좁고 얕고 너무나 부족한 로마서의 이해이기에 깊고 온전한 이해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아래와 같이 로마서를 이해하고 행하는 개인과 교회 국가가 앞으로 하나님의 주목을 받고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아래의 글은 700명 신학자에게 보낸 내용을 다시 설명한 것입니다.
샬롬! 긴 추석의 연휴가 끝이 나고 거룩한 성일입니다. 가을비가 주룩 주룩 내리는데 겨울을 재촉합니다.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성령의 단비로 늘 심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모든 예수를 믿는 사람의 가장 큰 특권이 성령의 선물과 충만입니다. 영이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 심령에 오셔서 내주하시고 나를 감화 감동하니 AI가 온 지구상에서 다 덤벼도 절대로 성령을 받은 사람을 이길 수가 없는 것은 성령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내가 죽고 예수님께서 사시며 이는 내 마음에 성령께서 오셔서 내주하시고 감동하시고 인도하신다는 말과 같습니다. A4 용지 약 160매의 긴 글이니 시간을 가지시고 천천히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놀라운 기적을 베푸실 것입니다. 기도하시고 천천히 보시기 바랍니다.
신학은 무엇이며 성령 받은 전도자는 누구입니까? 우선 신학자는 현재에 신학 대학에서 교수로 목사가 될 혹은 신학자가 될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신학은 일반 학문이 인문현상이나 자연현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과 달리 신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입니다. 과학적이란 말은 학문 연구의 방법으로 어떤 신학적인 현상에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해서 이론화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신학은 학문의 한 영역으로 연구 대상이 신이지 연구하는 방법은 다른 학문과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신학 이론에다가 연구를 해서 더 첨부를 하거나 혹은 새로운 학설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상이 일반적으로 성경을 중심으로 학문을 하는 것입니다. 그 신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학문적인 성과에 따라서 교리나 교파가 형성이 되는데 대표적인 교파가 우리가 아는 천주교와 개신교와 정교회입니다. 이들은 다 성경을 기본으로 연구를 해서 학설 혹은 교리를 세우고 이에 따라서 교파로 존재하는데 처음에는 천주교 하나만 있다가 성령론과 성상 문제로 약 1000년 경에 정교회가 분리가 되고 이는 그리스 정교회와 러시아 정교회로 크게 나누어지고 다시 1500년 경에 루터의 이신칭의로 개신교가 분리가 되어서 각 교파 별로 신학교도 다르고, 신학자도 먼저 천주교는 천주교의 교리대로 개신교는 개신교의 교리대로 큰 틀에서 신학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나 신부를 하고 싶은 이들이 자유롭게 이 신학교에 가서 이들 교수에게 신학을 배우고 일정한 절차를 밝고 신부나 목사로 임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 신학의 가장 중요한 성경을 무엇인가 잘 연구하고 살펴 보는 것이 아니라 먼저 천주교로 간 사람은 천주교 신학교에 가고 그 신학교 교수에서 교리를 배우고 신학을 하니 그대로 따라서 가고, 개신교로 간 신학생은 또 개신교 신학교의 신학 교수의 가르침 대로 교리를 따라서 가니 성경이 무엇을 어떻게 말하는지에 관심은 별로 없고 큰 두 교파의 교리의 틀 안에서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연구하고 가르치고 이를 신학생이 배워서 또 성도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신교에 있으면서 천주교 교리를 더 옳다고 믿는 신학자나 목사는 더 이상 그 직분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은 이렇게 되면 개신교 교리를 어긋나게 되기에 이런 사람을 개신교 내에서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천주교로 가야 하는데 천주교에서 이런 사람을 교수로 받아들이지도 않고 성도로 신앙생활을 하자면 평신도로 시작을 해야 하니 설혹 천주교가 어떤 부분에 있어서 더 옳다고 해도 감히 대놓고 절대로 이야기도 못하니 그래서 개신교의 틀 안에서 갇혀서 자신이 진리로 믿지 않는 내용도 침묵하면서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교리와 교파의 덤불의 악한 위력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서로 자신이 진리를 성경에서 발견하고 전한다고 자부하나 모든 사람이 순시간에 알 수가 있는데 로마서 1장 17절을 놓고 서로 옳다고 500년을 굽히지 않고 주장하나 진실로 둘 다 옳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한 쪽은 심각하게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으니 죽어도 한 쪽이 양보가 없습니다. 그런데 둘 다 옳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진실로 뭐라 말을 하는 지는 관심이 둘 다 없고 교리에 목을 메니 한쪽은 혹은 둘 다 심각하게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모두가 인정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더욱 더 놀랍게도 이들은 학문과 지식에 더 관심이 있기에 가장 기본이 되는 하나님의 존재와 이에 대한 믿음이 일반 성도보다 못한 사람도 많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실재로 존재한다고 믿지도 않으면서 과연 신이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과연 신빙성이 있는가를 일생을 통해서 따지고 이를 연구 결과로 발표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목사가 신앙도 없이 신학교에 가서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신학도 어떤 조류를 반영하고 지지자가 많고 어떤 분야에 연구가 뛰어나면 그 사람의 주장이 다수설로 되어서 득세하고 이를 또 많은 신학자가 추종하고 이를 목사에게 가르쳐서 목사는 그냥 맹목적으로 이를 성도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역사 비평적인 성경 연구 방법입니다. 이 성경 방법은 독일 등 유럽에서 최근 약 100년 동안 주류 신학적 연구 방법이었는데 천주교 개신교가 공히 같은 방법으로 연구하고 이 부분에 있어서 천주교와 개신교는 일치가 되어서 서로의 서적을 나누어서 보았습니다. 이 방법은 성경이 과연 어떻게 기록이 되고 편집이 되었는지를 연구하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의 경우는 언제 누가 이 마태복음을 기록을 했고를 연구하고 28장 전체를 다 갈기갈기 나누어서 과연 어떤 장이 마태의 저술이며 어떤 장은 아닌지, 어떤 장의 내용이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같은 다른 사복음서를 보면서 비교 연구합니다. 즉 성경을 하나님의 성령에 의한 저자의 저술로 인정하지 않고 오직 어떤 사람이 어떻게 성경을 기록했는지에 더 관심이 있고 어떻게 편집이 되고 완성이 되었는지에 온 관심을 다 둡니다. 당연히 성경 내용의 진리 됨을 믿고 행동하는 일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고 남이 모르는 성경의 기록과 편집의 발굴에 열을 올리게 되고 어떤 사람이 어떤 주장을 하면 그 내용이 그럴듯하면 지지자들이 모이고 이렇게 학설이 되고 이를 그냥 목사 후보생이 배워서 또 성도에게 아는 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100년을 천주교는 보내면서 모든 면에서 별로 유용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이 연구방법을 포기했고 개신교도 역시 시들하게 되었는데 유명신학교는 이런 학자들이 아는 채 하니 이를 유명 신학교에 간 학생들이 배웠던 것입니다. 100년의 연구와 공부가 별로 성경 연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이 났고 천주교는 이 방법을 버렸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을 그냥 일반 학문의 연구와 같이 연구의 대상으로 보고 경외와 공경과 찬양도 없이 막 대하고 막 분석하고 막 분리하고 막 설명하는데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불경의 극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유명한 조상의 한문으로 된 비문을 그 후손이 하듯이 존경하고 믿고 자랑스럽게 사랑을 가지고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비문이 무슨 내용이며 누가 썼고 과연 그 내용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한문을 하는 학자들이 벌떼 같이 붙어서 서로 내가 더 정확하다 다투고 서로 그 내용을 놓고 서로 비판을 하면서 온 세상이 조상의 인품이 어떻고 주장이 어떻고 하면 진실로 그 조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들이 정말로 인간 말종이고 사랑도 신의도 없는 오직 까발리고 분석하고 비판하는 나쁜 사람들로 여기고 싫어할 것입니다. 이들이 조상에 만행을 행하는 자로 즉 조상의 업적을 왜곡하고 폄하하고 욕보이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배척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천주교는 100년을 이 방법으로 성경이 과연 믿을 만 한 지를 살피다 포기를 한 것이고 개신교는 아직도 이들 연구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고 이를 업적으로 먹고 사는 학자도 있는 것입니다. 진실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의 입장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자들이 100년 동안 신학자로 군림하고 이들에게 배운 목사가 개신교 전체에서 목회를 하고 당연히 천주교에서도 신부로 있으니 여전히 서로 싸움만 있지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신학이 모두가 문제가 있고 나쁘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고 이렇게 크게 교리도 혹은 학설로 성경에 대해서 정리를 해 주니 성도는 이를 믿고 서로 또 한 교회 교파로 단결하고 협동해서 나가니 신학이 좋은 기능이 더 많을 것입니다. 이는 저도 인정하고 저도 개신교 신학을 하고 많이 배웠고 천주교 평신도 신학도 공부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역사 비평적 연구의 단적인 비유는 고가의 롤스로이스를 두 사람이 선물로 받았는데 한 사람은 즉시 망설임이 없이 차의 기능과 안전성을 믿고 차를 타고 여행도 가고 직장에도 가고 자녀들과 쇼핑과 외식도 하면서 즐겁게 삽니다. 이와 달리 다른 사람은 차를 타고 운전해서 본래의 용도로 쓰는데 아무 관심이 없고 오직 롤스로이스가 어떻게 제작이 되고 과연 타는데 문제는 없는지 우선 차를 완전히 분해해서 차체, 엔진, 바디, 힐 등으로 분리를 하고 차근차근 그 안전성과 만듦에 대해서 분석하고 비판하다가 일생을 보냅니다. 차를 믿고 타기엔 이제 너무나 분해를 해서 조립도 불가합니다. 비싼 롤스로이스가 주는 너무나 많은 유익과 혜택을 하나도 누리지 못하고 쓸데 없는 일에 일생을 보냅니다. 이것이 역사 비평적 성경 연구의 단적인 예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경을 진리로 믿는 사람들 입장에서 이 연구 방법은 불경과 교만과 하나님에 대한 도전으로 보이므로 이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인간이 해서는 아니 되는 일로 하는 사람들로 보이는 것입니다. 이에 목사도 신부도 수녀도 다 따라서 갔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분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찢는 슬프고 나쁜 일임을 우리는 믿고 성도는 온 세상의 교회가 하나가 되는 일에 전념해야지 올바르지도 않는 신학과 교리의 장난에 속아서 교파가 다른 교인을 전도의 대상으로 삼는다든지 미워한다든지 비판하는 일을 삼가야 합니다. 이는 교리가 다르고 학설이 다른 것이지 성경과 하나님께서 다른 분이 아니십니다. 이렇게 교파간에 거리를 두고 서로 다투는 것은 하나님의 정확한 뜻은 아닌 것을 믿으시고 올바로 가시기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와 지구와 전체를 사랑하시고 온 지구의 성도가 교파를 초월해서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서로 달라도 서로를 인정하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습도 그렇습니다.
요한 복음 17장 21절
요 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1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들 안에 있게 하여주십시오. 그러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될 것입니다.
21 that all of them may be one, Father, just as you are in me and I am in you. May they also be in us so that the world may believe that you have sent me.
이제 성령을 받은 전도자는 바울과 같고 베드로와 같고 요한과 같고 이들 이후에 다음과 같이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로 전도를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들이 초대교회에는 기둥들이었습니다. 신학자는 없었고 오직 이들이 성도들을 잘 인도하고 또 나가서 전도도 하고 선교도 했습니다. 지금도 성령을 받고 교인으로 성도로 전도에 전념하는 사람들이 있고 선교사로 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교황보다는 어쩌면 이들이 진정한 베드로의 후예입니다. 바울의 후예입니다. 이들은 교회에서 신학자에게 배운 목사의 가르침을 받고 교회에서 조용히 전도합니다. 성도로 집사로 권사로 장로로 혹은 저와 같이 목사도 있습니다. 물론 신학자 중에서 예수님을 잘 믿고 성령을 받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공경하시는 분도 많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는 성도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혹은 예수님 제자들의 전도에 따라서 예수님께 직접 나와와서 예수님을 뵈옵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천국 복음을 들었고 또 병자를 고치고 성전에서 다투시고 율법학자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잡으려 하고 공격하는 것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았고 함께 고난도 겪었습니다. 그렇게 약 3년을 배웁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못이 박혀서 돌아가시는 것을 다 봅니다. 그리고 장사한 지 3일 만에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모습을 보이시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넘치는 확신이 있지만 더 기다리라고 하시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명령을 하십니다. 이는 이들에게만 하는 명령이 아니고 모든 이후의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하시는 명령으로 신학자 목사 장로 권사 신부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는 명령입니다. 이 명령을 어기는 사람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 명령을 어기는 것입니다. 혹자(신학자, 목사)는 성령을 받는 일이 초대교회의 일회성이고 이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기만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령께서 여전히 2000년 동안에 절대로 쉬지 않고 나라와 민족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초대 교회의 성령의 임함 같이 조금도 변함없이 성도들에게 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이 임해야 권능을 받고 예수님의 증인의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인구가 당시에 비해서 40배나 많은 지금 그리고 요엘서의 예언대로 성령을 받은 사람이 초대교회보다 훨씬 수도 없이 많은 줄로 믿습니다. 누가 80억이나 되는 영혼을 구원합니까? 신학자 목사는 전도의 현장에 있지 않습니다. 성령을 받은 전도자가 이들을 구원합니다. 이 필요를 인간이 구원을 받기를 너무나 간절히 바라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심으로 채웁니다. 저도 당당하게 그렇게 성령을 받고 전도하는 사람입니다. 헛소리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하나님의 성령의 부으심과 채우심을 부인하는 자는 성령이 초대교회와 조금도 다름없이 임하고 성령을 받은 전도자가 전도하는 사실을 다 부인하는 거짓된 사람입니다. 자신만 받지 않으면 되지 받을 사람의 기회는 왜 박탈을 하고자 안달을 합니까? 실로 하나님의 나라에 방해가 되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문제는 절대로 신학자나 목사나 신부가 함부로 이야기할 내용이 아닙니다. 저도 성령을 받고 17년 이상을 지나서 이해가 되었습니다. 누가 설명을 해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래 말씀대로 정확하게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이름의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고 예수님께 불로 성령을 받았으리 제가 체험을 아래 말씀대로 너무나 정확하게 했고 성령을 받고 30년 이상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를 했기에 이를 부인할 사람은 지구상에 한 명도 없으리라 굳게 믿습니다. 혹 이상하시면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2장 37-39
행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이를 혹자는 또 어떻게 개인적인 경험을 믿을 수가 있냐 하고 인정을 하지 않는 경우도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인정하고 아니 하고를 막론하고 분명하게 성령께서 오시고 이들을 통해서 또 초대교회와 같이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전해서 전도 받은 성도가 교회로 오면 목사가 목회를 하고 이런 목사를 신학교에서 교수가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받은 전도가 없이는 교인도 없고 목사도 없고 신학교도 없고 교수도 필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가 없고 신학교가 없고 교수가 없어도 성령 받은 전도자만 있으면 초대 교회 시 바울이 로마에 아직 가지 않았음에도 로마에 교회가 세워졌듯이 교회가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가장 중요한 존재가 성령을 받은 전도자인 것입니다. 전도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일인데 이는 모인 사람을 놓고 설교를 하는 목사의 설교와 다르고 모인 학생을 두고 강의를 하는 신학교 교수와 다릅니다. 이들은 전혀 예측을 할 수가 없는 불특정 다수인 혹은 소수 혹은 개인 그리고 어떤 공인된 장소가 아닌 확 트인 곳에서 때론 방해도 때론 폭력도 때론 무시도 당하고 때론 순교도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진실로 교회에서 가장 기초가 되고 가장 중요한 사람인 것입니다. 목사 신학 교수에 비해서 절대로 덜 중요한 사람이 아닙니다. 바울이나 베드로나 혹은 요한은 예수님을 직접 뵈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시간과 공간과 장소를 초월하시는 분이십니다. 여전히 그분은 지금도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 안에 성령으로 계시고 우리와 깊은 교제를 하십니다. 여전히 살아 계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으로 2000년 전에 육신으로 오셔서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은 다르지만 영적인 교제의 측면에서 초대교회와 0.000%도 차이가 없이 완벽하게 동일하게 우리는 예수님과 수시로 만나고 교육도 받고 인도도 받고 사랑도 받고 위로도 받고 기도도 드리고 찬양도 드리고 경배도 드리는 것입니다. 이 전능하신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오늘도 여러분과 저를 도구로 삼고 온 지구상에 있는 베드로나 바울이 있던 겨우 2억 명의 지구 전체의 인구에 불과했던 시대와 달리 약 80억에 달하는 인구를 구원할 그분의 도구를 조금도 변함이 없는 방법으로 선택하시고 교육을 시키시며 온 세상에 위대한 일을 하게 하시니 성령을 받은 전도자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지구상에 제가 알기로 약 수백,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 명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단지 목사나 신부의 지도를 받고 잠잠히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왜 제목을 700 VS 1, 700명의 신학자 VS 성령 받은 전도자 1명으로 제목을 정했는가 하면 제가 성령을 받은 전도자로 700명의 온 세상의 신학자에게 로마서의 새로운 이해를 증거했기 때문입니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옥스퍼드, 게임브리지, 호주와 캐나다의 신학교 그리고 한국의 신학 대학 11개 대학 총 합쳐서 약 700명의 신학 교수분께 로마서의 새로운 이해를 전했기 때문에 제목을 위와 같이 뽑은 것입니다.
성령이 없이 인간적인 머리와 연구로 죽도록 성경을 연구한 신학자들 그리고 이들은 약 2000년의 연구 결과가 또 있으니 이 연구 결과와 전세계 유명한 신학교와 저명한 학자로 구성에 된 700 명의 신학자는 개신교의 가장 유명하고 가장 휼륭한 신학자들일 것입니다. 이들에게 무명의 성령 받은 전도자 목사가 로마서의 새로운 이해를 영어로 번역을 해서 4회 정도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들이 다수가 답장을 하고 의견은 개진했으나 저에게 공감을 표하는 분도 반대를 표하는 분도 없었고 오직 한 분께서 하나님께서 제게 복을 주실 것이라는 축복을 했습니다. 그리고 예일대 스타 클레어 교수는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자신의 논문을 읽어보라고 권해서 제가 읽어 보았습니다. 한국의 수백 명의 교수는 가타부타 아무런 의견도 표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런 내용을 다 온 세상에 알렸습니다. 온 세상에 다 교수들에게 보낸 편지를 한글로 영어로 번역을 해서 읽게 했는데 제가 알기로 120개국 넘는 나라에서 적어도 50만 명은 보았으니 온 세상에 제가 전하는 로마서의 새로운 이해를 아시는 분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영어로 온 세상에 이 내용을 전할 것입니다. 유튜브로 전할 것이기에 영어를 하는 수천만 수억의 사람들이 듣고 진위를 분별해서 온 세상의 교회를 하나가 되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성경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지 않습니다. 오직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가운에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는 데로 받아 적고 전하는 것입니다. 제가 A4 용지 약 30-50페이지 분량의 긴 글을 약 7년에 걸쳐서 1.100편을 쓴 것은 이런 과정에서 비롯이 된 것입니다. 결코 어려운 일도 고민되는 일도 아니고 그냥 컴퓨터를 켜고 타자를 치기 시작하면 짧게는 2-3시간 길게는 하루나 이들이면 대부분의 글이 완성이 됩니다. 그냥 줄줄이 나오는 것을 타자로 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 모든 경험도 다 사용하시지만 저는 대부분이 성령의 능력으로 믿습니다. 당연히 100명이든 1000명이든 아무리 머리가 좋고 연구가 많은 순수한 인간적인 성경 연구와 성령의 도움을 받은 글 즉 제가 전하는 로마서의 새로운 이해가 서로 비교가 불가합니다. 이는 제가 이들보다 더 뛰어나다는 말이 절대로 아니고 성령의 능력이 인간의 모든 수고와 능력을 능가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2000년의 놀라운 노력의 성경의 교리나 학설의 수고와 가치를 인정하고 저도 때로는 따라가지만 저의 로마서의 이해는 이들이 보지 못한 부분을 훨씬 깊이 정확하게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제가 틀림없이 정확하게 사도행전 2장 37-39절의 베로로의 경험에서 나오는 성령을 받는 일을 그대로 조금도 다름없이 체험을 했고 성령께서 저를 약 30년 인도하시는 가운데 다양한 기적을 행하시고 성경 정리와 전도를 인도하셨고 이런 가운데서 성령께서 성경을 조금씩 조금씩 가르쳐 주신 것이고 이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성경을 더 깊이 알기 위해서 가끔은 묵상을 하지만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전도하는 일이 이 일보다 수천 배, 수백 배가 많기에 이에 큰 비중을 두지 않습니다. 지각이 있는 모든 성도는 성령의 도움을 받은 저의 이해가 훨씬 모든 신학자 목사 신부보다 더 정확한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물론 제가 언급하는 것은 모든 성경 분야가 아닙니다. 특히 로마서의 이해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저보다 훨씬 더 깊이 정확하게 로마서를 이해하시는 분들이 또 나올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시대에 저의 로마서의 새로운 이해는 온 세상에서 가장 앞선 이해라 저는 믿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들 천주교 개신교 신학자들은 로마서의 빙산의 일각을 보고서 서로 누가 옳다고 다투고 있으나 저는 감히 이들이 보는 일각을 이미 보고서 더 깊은 물속에 더 많은 부분으로 숨어있는 빙산의 진짜 모습을 보았다고 믿는 것입니다. 로마서의 이해를 빙산의 일각을 보면서 비유로 설명하니 진실로 진리에 목이 마른 모든 신학자, 목사, 신부, 신학생, 성도는 제가 전하는 로마서의 새로운 이해로 속히 넘어 올 것이고 온 세상이 제가 전하는 로마서의 새로운 이해를 속히 믿고 천주교 개신교 정교회가 반드시 하나가 되리라 믿습니다. 이 모든 약 30년이 넘는 결과물이 오천만의 로마서에 전도란에 로마서란에 성경 정리란에 다 있으니 검증하시고 검토하시고 확인해 보기기 바랍니다. 저는 행정고시 준비생이었고 낙방생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오시지 않았고 회개도 성령의 선물도 없었다면 저는 틀림없이 조금 배운 세상의 지식으로 인생을 비관하며 죽었을 사람입니다. 아무 소망도 없이 늘어가는 백발을 보면서 인생을 허망하게 생각하고 홀로 죽음을 고통스럽게 맞이하고 있을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뒤에서 읽을 제 모든 글에 이런 기조는 1%도 없고 오직 이 세상을 복음화해서 천국이 되게 해서 모두가 신뢰하며 다정하고 행복하게 살게 만들 소망으로 충만하니 어떻게 인간이 인간을 이렇게 만들 수가 이겠습니까? 절대로 없고 오직 성령의 능력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래 글은 700명의 신학자에 도전하는 성령 받은 전도자 저의 글입니다.
하나님 나라 건설과 바울 서신 특히 로마서 (하나님 나라 건설에 뼈대가 되는 율법과 기초가 되는 칭의 되는 믿음)
할렐루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놀랍고 놀라운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게 하심을 감사 찬양 드립니다. 속히 바울 서신의 올바른 뜻이 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약 37년 전에 하나님께서 제게 오셨을 때 도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실상 도구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는데 하나님께서 크신 은총과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이 놀라운 소식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오직 주님의 뜻이 저를 통해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망극하신 사랑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십자가 대속의 사랑으로 흉악한 죄인이 이 일을 감당하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성령님의 감동과 감화로 무지한 인생이 온 세상에 오랫동안 논쟁의 핵심에 있던 로마서의 이해의 부분 즉 이신칭의에 대해서 그리고 이를 통한 율법의 의미에 대해서 새롭게 전하게 되었으니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를 통해서 온 교회가 하나가 되고 성도들이 모든 미몽에게 깨어나 진리의 세계로 함께 나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온 세상이 3000년 평화를 추구한 이 민족을 통해서 전쟁도 다툼도 없이 평화의 복음으로 주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샬롬! 오천만의 로마서 애독자 여러분! 모든 분께 하나님께서 드리시는 은총이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정말로 놀랍고 놀라운 일이 오늘 일어납니다. 제가 이미 전했지만 조금 더 정리를 해서 영문으로도 전하는 데 제 글을 보시는 모든 분이 신학적으로 논쟁이 된 이신칭의에 대해서 진실로 새롭게 접근하고 큰 문제가 해결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는 500 년의 천주교 개신교의 논쟁입니다. 모든 이 세상의 예수를 믿는 성도와 그리고 목자는 신학에 의존하는 바가 큽니다. 이와는 달리 성경을 전문으로 연구하시는 분들도 또 있습니다. 그러나 신학교에서 학생으로 배워서 목자도 되고 성경 연구가도 되니 신학교의 가르침을 결코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비록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었지만 모든 면에서 미숙한 제가 전문적인 신학 연구의 과정이 없이 이 오랫동안 논쟁을 해 온 부분에 대해서 감히 큰 해결이 될 것이라고 주장을 하면서 이 글을 올립니다. 이 글을 읽으시고 모든 분이 올바른 이신칭의에 대한 이해와 그리고 율법에 대한 이해를 하셔서 부디 이 땅에 하나님께서 세우고자 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데 우리 함께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영문 번역도 아직은 온전치 않지만 그대로 올립니다. 아직은 책으로 내기에 많이 다듬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참고하시고 그 큰 의미에 대해서 이해를 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께 미천한 인생에게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함께 나누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미 올렸던 글이고 조금 긴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 보시고 그리고 영문으로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의혹이 일시에 풀어지는 복되고 기쁜 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제가 이런 일에 사용이 되는 도구가 되었음이 놀랍기도 하고 영광스럽고 그리고 잘 믿기지가 않습니다. 글이 길어서 셋으로 나누어서 올립니다. (도표는 크게 키울 수가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이 성령의 인도에 따라서 그대로 시행이 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잘 이해하면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온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조직을 다 온전하게 만들 수가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실로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이해는 하나님의 나라를 올바로 세우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만 이 나라를 이해하고 응용해서 국가나 사회나 가정이나 모든 조직을 가장 이상적인 조직으로 세울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이 땅의 천국인 교회도 가장 이상적으로 세울 수가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께서 그분의 법 율법으로 통치하시고 그 율법은 모든 이에게 공평하고 정의로운 법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율법이 행해지는 모든 곳이 사랑이 넘치고 정의가 넘치고 서로 신뢰할 수가 있는 이 땅의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는 깊은 관심을 갖지 못했고 그래서 그 나라를 설명하는 것도 보기 힘들었습니다. 오늘 제가 소개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관심을 가지고 찬찬히 살펴서 그 나라가 눈에 보이듯이 선명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가정에 교회에 사회에 그리고 국가에 세운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속히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창조하시고 약 600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르면서 가장 강력하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간절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을 받드는 개인과 단체 국가를 하나님께서 향후 가장 크게 축복하실 것입니다. 내 자신과 내 교회의 성장과 발전 형통이 그리고 내 사업과 내 사회의 가족의 형통이 하나님의 나라의 이해와 실천에 달렸음을 굳게 믿고 제가 전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반드시 기도하시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속속히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일생에 가장 귀한 기회로 삼으시고 놀라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축복 속으로 온 세상의 모든 사람을 다 초청합니다. 반드시 성령께서도 함께 하시면서 모든 분을 주님의 영으로 충만케 하시고 깨닫는 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꼭 끝까지 정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바울의 서신서 <하나님 나라의 기초가 되는 칭의 되는 믿음과 뼈대가 되는 율법>
목차≫≫
제 Ⅰ 편 비밀이 밝혀지는 데 2000년이 걸린 이유
1. 복음이 속히 전해져야 하는 하나님의 뜻
2. 바울과 초대 교인의 모습
3. 설명이 가능한 현대 기기의 등장(압축 파일, 빙산)
4. 율법학자 바울의 법적 성격이 아주 강한 로마서
제 Ⅱ 편 바울의 심정에 대한 이해
1. 당시의 이스라엘과 로마의 상황
2. 바울의 외침
3. 온 세상을 품은 로마서와 바울
제 Ⅲ 편 하나님 나라의 기초가 되는 믿음과 뼈대가 되는 율법에 대한 이해
1. 서론: 이신 칭의의 경험적 이해를 설명한 간증문과 간략한 이해
2. 하나님 나라의 기초가 되는 믿음
3. 하나님 나라 뼈대가 되는 율법
4. 논의의 요약
5. 하나님 나라의 건설
제 Ⅰ 편
비밀이 밝혀지는 데 2000년이 걸린 이유
1. 속히 복음 전파의 하나님의 뜻
2. 바울과 초대교회의 모습
3. 압축 파일, 빙산의 일각
4. 율법학자 바울의 법적 성격이 강한 로마서
제 Ⅰ 편 비밀이 밝혀지는 데 2000년이 걸린 이유
1. 속히 복음 전파의 하나님의 뜻
하나님께서 하늘과 지구를 창조하신 후 지구에 사람을 비롯해서 만물을 만드시고 사람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을 정복하라......” 사람들이 지구상에 퍼져 나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약 1700년이 지났을 때 사람들이 지구상에 나누어져서 살고 있는데, 모두가 죄를 짓고 오직 노아와 가족만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인정 받았습니다.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물로 온 죄악으로 물든 온 세상을 심판하시었습니다.
그 후에 노아의 후손이 유럽과 아프리카와 아시아로 퍼져서 살고 있었는데 온 인류 중에서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선택을 받아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 후손이 민족이 되고 나라가 되어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모세를 통해서 애굽에서 나온 후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계약을 맺으셨으니 구약입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율법이 잘 지켜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윗 왕 때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왕들과 귀족과 백성이 율법을 배우지도 지키지도 않았기에, 약 1000년의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의 시간이 끝이 나고 택한 민족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남 유다는 기원전 586년, 북 이스라엘은 기원전 약 722년 멸망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그런 와중에도 구약의 모세 오경 즉 율법을 잘 보존하고 그들의 역사를 역사서로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노래와 찬양과 시를 모아서 시편으로 정리했고, 그리고 언제나 변함없이 올바른 길로 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하나님의 뜻을 전한 예언자들의 기록을 모아서 예언서를 완성했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구약 39권을 완성했고 이를 헬라 시대에 70인 역으로 온 세상에 전했습니다.
이렇게 모세로부터 예수님께서 오시는 약 140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기록된 구약 성경은 글자 한 자 바뀜 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민족에 의해서 잘 보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기록한 이스라엘 민족도 구약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때가 차매 구약의 약속대로 예언자들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스라엘 땅 베들레헴에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오시었습니다. 오직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 그리고 성전에서 살던 여인과 지극히 일부의 사람만 메시아를 알아 보았지만 그의 부모도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당할지, 혹은 하실지를 잘 몰랐습니다.
이 예수님은 천지의 창조주요, 그리스도시요, 그리고 인류를 죄에서 건질 구세주가 되시는데 30세쯤 되셔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어부 등을 제자로 부르시고 모든 이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셨습니다. 이제 이 땅에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 땅에 건설하시고자 하는 나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선 예수님께서 오셔서 2000년이 지났지만 그 논의도 드물고 그 나라에 대해서 설명하는 사람도 역시 드뭅니다. 이는 죄악에 물이 든 아담의 후손인 인간이 이미 예수님 오시기 전 약2500년 정도를 하나님을 잊고 자신의 나라를 세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선택이 되어서 이를 바로 잡아야 했지만 이스라엘도 실패했고, 마침내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게 이 땅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구원의 복음이 지구상으로 퍼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후 약 2000년이 지났는데 이제 온 세상에 복음이 대부분 전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한국에까지 복음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오는데 약 1800년이 걸렸습니다. 이와 함께 아직도 예수에 대해서 듣지 못하는 종족이 있고 이슬람 제국과 북한과 같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강제로 막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때문에 예수를 믿고 온 인류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지키며 국가와 인종을 초월해서 하나가 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지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와 민족이 먼저 예수님을 믿는 것을 가장 바라셨고 이는 복음 전파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이어서 믿는 이들이 하나가 되고 그 나라의 법인 율법을 잘 지키며 사는 나라 즉 이 땅에 성령 안의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가 서는 것은 그 다음으로 생각하신 듯 합니다. 아니면 간절하신 하나님의 자신의 나라의 이 땅에 설립에 대해서 이 땅에서 믿는 성도들이 덜 관심을 갖고 살았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제 예수님 오신 후 2000년이 지났습니다. 복음이 이제 지구의 대부분의 나라와 민족에게 전파가 되었고 온 지구의 믿는 이들이 하나가 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때가 되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도구로 선택이 되어서 훈련과 교육을 받고 이를 전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올바른 믿음의 기초 위에 하나님의 나라의 법, 즉 가장 세상에서 정의롭고 공평한 법이 믿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에게 시행이 됨에 있습니다. 법이 없는 나라는 설 수가 없고, 법이 온전치 못한 나라는 절대로 정의로울 수가 없습니다. 인류가 이 땅에 살기 시작하면서 모든 민족과 집단과 나라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법은 시대에 따라 국가의 이익에 따라 집단의 이익에 따라서 변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법학자가 똑똑해도 인간이기에 모든 세상의 사람이 다 행복하게 살 수가 있는 법을 아무도 지금까지 만들지 못했습니다.
오직 사랑과 정의와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만 온 인류가 행복하게 살 수가 있는 법을 만드실 수가 있으니 그 법이 모세 오경의 율법입니다. 이 법을 이스라엘 민족이 다양한 고난 중에도 잘 보존했고 지금도 잘 지키려고 하고 오직 이 법을 통해서 온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의 기초가 되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이해에 있어서도 천주교와 개신교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법인 율법에 대해서도 천주교 개신교 모두가 다 그들의 성도가 그 법을 지킴에 있어 소극적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율법이 왜 지금까지 이런 대접을 받고 있고 그렇게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왜 이렇게 모두에게 멀리 있게 느끼어지는 것입니까?
비록 성경의 이해에 있어 지금과 같이 온 세상의 교회가 통일이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일을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중요한 일로 여기셨기에, 교회들이 성경을 서로 조금 다르게 이해하고 있더라도 우선 복음이 온 세상에 퍼지도록 하나님께서는 적극적으로 역사하셨음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지금 세상의 교회들과 교인들의 모습을 온 지구상에서 우리는 보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예수를 믿지만 성경의 이해와 교리가 조금씩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과 복음이 내포하는 내용의 전적인 완전한 이해에 교회들이 다다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예수님을 통해서 세상의 구원이 일어나면 이를 용납하셨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주교에서 개신교가 태통하고 500년이 흘렀지만 서로 교리에 있어 다르고 하나가 되지 못했지만 개신교를 통해서 온 세상에 복음이 전해진 것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국의 400년의 영화와 미국이 누리는 수백 년의 영광과 스페인과 유럽의 열강의 번영과 쇠퇴에도 복음이 전해진 것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와 인내가 있으셨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지난 날의 신학적인 주장에 대해서, 유럽 제국의 1.2차 대전과 번영과 쇠퇴에 대해서 함부로 비판, 비난, 정죄해서는 절대로 아니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통해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인간이 함부로 해석하고 판단해서도 아니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제가 전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 나라들이 수백 년 동안 온 지구에서 행한 일과 너무나 다른 부분이 있음도 밝힙니다. 우리는 이를 분명히 밝히고 새로운 2000년대를 맞아서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모두가 하나가 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는 한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세기를 향한 뜻으로 믿는 것입니다. 모든 천주교, 개신교 성도가 그리고 정교회 성도가 이런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진리가 밝혀지기 전에 우리가 알고 믿던 모든 일은 지나간 일입니다. 누가 누구를 비난하고 심판하고 할 권리가 없고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몫입니다. 다만 진리를 접하고도 순종치 않을 때는 이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자신이 져야 할 것입니다. 새롭게 밝혀지는 서신서에 대한 비밀은 천주교 개신교가 500 년 동안 서로 쉬지 않고 논쟁을 벌이면서도 해결을 보지 못한 “칭의 되는 믿음”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 새롭고 올바른 “칭의 되는 믿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반드시 모든 성도가 지켜야 하는 율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설명할 것입니다. (이신칭의에 대한 논쟁이 칭의 되는 믿음에 대한 이해로 풀리기 됩니다.)
이 “모세 오경의 율법”과 “칭의 되는 믿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하나님의 나라의 뼈대와 기초로서 이에 대한 이해가 없이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설 수가 없습니다. 2000년을 셀 수 없는 신학자, 성경학자, 그리고 신실한 성도가 성경을 읽었지만 잘 이해가 되지 못했던 부분이 한국에 사는 무명의 목사에 의해서 밝혀집니다. 이는 때가 되어서 하나님이 그분의 나라를 온 세상에 있는 성도들에게 세우기 위해서 미천한 인생에게 깨닫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저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른 부분이 있어서나 우월함이 있어서가 절대로 아닙니다. 목사로서 목회도 못하고 아들로서 효도도 없었고 남편으로 부실했고 아버지로 아들을 잘 보살피지 못했습니다 성도들이 온 정성을 다해서 저를 도왔지만 보답하지 못했으니 모든 면에서 보통 이하의 사람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보통 사람보다 부족한 사람을 들어서 쓰시는 것은 아무도 이를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귀한 일에 쓰임을 받는 것에 대해서 영광스러울 뿐입니다. 모든 면에서 보통 이하이고 흉악한 죄인에 불과한 사람으로 이 위대한 일의 예수님의 도구로 사용되니 모든 영광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보혈과 십자가 대속의 사랑과 하나님 아버지의 망극하신 사랑과 그리고 성령님의 함께 하심과 감동하심에 돌립니다.
주의 이름이 세세토록 찬양을 받으시며 그분의 나라가 이 땅에 속히 임하길 바랄 뿐이다.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에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저를 도운 모든 분께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형통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2. 바울과 당시의 상황
지금으로부터2000년전의 초기 기독교의 사정은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 그리고 사복음서를 통해서 너무나 자세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농경과 목축, 그리고 어업이 주가 되던 시대, 로마가 영토를 넓히며 지중해 주변을 통치하던 시대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농부와 어부 그리고 목자들과 같이 지내시면서 들판에서 이들에게 천국을 전하시고 진리를 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인류 구원의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가 성령을 기다려서 선물로 받으라고 명령하시면서 승천하셨습니다.
이제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모든 무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성령 받은 사도들의 전도로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들 모두는 내 것, 네 것이 없이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아래에 두고서 서로 모두가 형제로 함께 나누고 모이기를 힘쓰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전도했습니다. .
나중에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믿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이 유대인 성도였습니다. 이들에 의해서 안디옥 교회가 설립되고 바울과 바나바가 사역하며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그리스와 아시아와 유럽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들은 모두가 예수님을 친히 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100%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바울 사도는 처음에는 이들을 이상하게 생각했고 유대교에 적이 되는 무리라고 믿어 잡아서 가두고 이들을 심히 박해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눈이 멀게 되고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되고 아나니아를 만나서 예수님의 이름의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아 이제는 예수님의 증인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사복음서와 바울 서신, 신약의 서신서를 쓴 것입니다.
이들의 모습과 같이 되어야 즉 이들과 같이 성령을 받고 전도를 해 보아야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에서 생활을 해 보아야 당연히 바울 서신이나 복음서를 잘 이해할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이 성도들 이후의 성도는 예수님을 직접 육신으로 만날 기회가 없고 성령을 받음에 있어서도 다양한 견해에 흔들립니다. 이들 초대 교인 모두는 성령을 받고 복음의 증인, 예수님의 증인이었는데 후대의 우리는 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배움으로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를 하니 그 이해에 있어 한계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물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우리는 성경을 깊이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당연히 전능하신 예수님께서는 영으로서 우리와 늘 함께 계시며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고 책망하시면서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초대 교회 교인은 육신이 되신 예수님을 뵈옵는 영광을 누렸지만 우리도 역시 영으로 된 예수님을 언제나 뵈옵고 또 예수님께서는 필요한 사람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바울에게와 같이 현재에도 직접 말씀하십니다. 사랑이시고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예수님의 사역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하고 바울 서신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초대 교회 교인과 같이 반드시 성령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에 나가서 성령의 인도로 복음을 전해야 하며 모두가 예수님을 비록 육신으로 뵙지 못하더라도 반드시 성경을 통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만나야 합니다.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실재로 예수님께서 지금도 때때로 성도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도 하시고 인도도 하십니다. 이런 가운데 성경을 날마다 읽고 정리함을 통해서 그 깊은 진리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중에 하나라도 빠지게 되면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라가야 하고 신학을 할 때 자신이 배우는 신학에 그냥 맹목적으로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성경에 대한 이해가 어디에서 비롯이 되고 우리가 믿는 성경의 믿음이 어떤지 스스로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천주교인은 천주교의 망토(덤불) 속에 있고 개신교인은 개신교인의 망토(덤불)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의롭게 됨에 있어서 개신교인은 오직 믿음이라 하고 천주교인은 그렇지 않다 믿음 + 무언가 행위 하는 것입니다. 이를 500년 동안 서로 양보 없이 신학으로 전투를 해오고 있습니다. 한 권 같은 성경을 두고 이렇게 서로 큰 교파에 따라서 모든 사람이 그냥 그 교파의 주장을 그대로 믿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서로의 주장하는 교리가 즉 성경 해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를 교리로 혹은 망토로 혹은 덤불로 표시를 함은 무언가 성도를 올바르게 자라게 하고 숨쉬게 하는 것을 막는 마치 나무의 정상적이 성장을 막는 덤불과 같은 작용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루터, 캘빈 시대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 가운데 성경을 가진 이는 오직 루터나 신부 같은 분이셨고 라틴어 성경이 조금 있었고 각국어로 된 성경은 없었습니다. 루터가 독일어 성경을 번역해서 활자로 책을 찍어서 읽던 시절과 지금의 성경 공부 방법을 비교해 봅시다. 지금은 모두가 컴퓨터, 핸드폰을 가지고 있고 각국은 자국어로 된 여러 가지 버전의 성경책이 있습니다. 루터가 성령이라는 단어를 성경 전체에서 찾고, 그 단어가 들어가는 구절을 독일어로 쓰려고 했다면 이 작업 하나만 해도 수 년이 걸릴 수도 있고 평생이 걸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온 지구상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제는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성경앱을 열고 검색 창에 성령이라는 단어를 적고 검색하면, 수초 안에 성령이 들어간 성경에 있는 모든 구절을 컴퓨터가 성경의 책 별로 찾아서 다 보여줍니다. 이를 복사해서 동시에 수십 수백 명이 공부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모든 지구상에 사는 성도는 다 캘빈과 루터만큼 혹은 그보다 훨씬 더 성경의 이해에 있어 깊이 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단지 망토(덤불) 속에 갇힌 성도가 수백 년, 천 년 전의 가르침을 성경을 통해서 검토 없이 맹목적으로 그냥 따라가는 것뿐입니다. 모두에게 묻습니다. 루터가 이신칭의를 논할 때 과연 로마서 1장 17절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한 구절이 구약의 하박국서 2장 4절에서 인용이 되었음을 확인했을까? 그리고 그가 이를 확인했다면 그가 하박국서로 가서 그 올바른 의미를 이해했는가? 하고 묻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칭의 되는 믿음에 대해서 그 믿음이 어떤 믿음이라야 되는지 친절하게 설명한 로마서 4장 1-16절이나 4장 17-22절이나 야고보서 2장을 루터나 캘빈이 이해를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루터가 이를 확인하지 않고 오직 로마서 1장 17절과 3장 21-26절에만 필이 꼽혀 이신칭의를 주장했다면 우리는 속히 이를 이제라도 이런 부분을 확인을 해 보아야 합니다. 제 글은 이 부분에 대한 확인입니다. 속히 천주교 개신교 신학자 모두가 이를 확인하고 하나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하나가 되어야 할 때가 돠었습니다.
루터와 캘빈이 신학자로서 성령도 없고, 전도 경험도 없이 로마서를 읽고 설명했다면 이는 온전한 이해가 절대로 될 수가 없습니다. 이 불완전한 상태에서의 이해를 500년 동안 이와 같은 신학자, 목사들이 답습하고 있지는 않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천주교는 왜 율법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율법을 온 나라의 성도가 배우고 지켰더라면 인류의 역사는 너무나 달라졌을 것입니다.
이제라도 천주교 개신교 정교회는 이 부분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주님의 나라를 진실로 이 땅에 세우고 싶다면 이신칭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칭의 되는 믿음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올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이해를 바탕으로 율법에 대해서 온 세상의 성도가 다 올바로 이해해야 하는데 지구상의 모든 성도입니다. 이제 때는 율법을 성령으로 세워서 온 세상이 투명하고 정의롭고 공평한 하나님의 나라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아래 그림은 로마서의 구성 모습입니다 로마서는 홀로 존재하는 성경이 아니라 모든 성경과 관계가 밀접합니다. 전체16장의 로마서에 1189(로마서를 빼면 1173장)장의 신.구약 성경이 압축이 되어 있다고 믿기를 바랍니다. 그냥 로마서를 읽으며 이 압축의 의미를 모르면 절대로 깊은 로마서의 이해로 갈 수가 없음을 밝힌다. 제가 이를 이해하는 데로 아래와 같이 표를 만들었습니다. 로마서는 믿음 부분은 창세기와 하박국서를 반드시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예수님의 말씀을 반드시 지키면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를 벗어나면 완전히 엉망인 로마서의 이해로 갑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를 먼저 잘 이해를 하고 로마서를 보아야 합니다. 사도행전의 성령에 대한 부분의 이해가 없다면 로마서는 반쪽도 이해가 불가합니다. 그리고 바울과 같이 성령을 받고 전도를 해 보아야 전도자 바울이 쓴 로마서를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바울이 율법학자로 부르심을 받아서 성령을 받고 전도를 하고 신 구약을 아우르는 로마서를 성령의 인도로 썼기에 우리는 모세 오경의 율법에 대해서도 반드시 잘 이해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 글을 이런 부분을 조금씩 이후에서 설명을 할 것입니다. 모든 분께 로마서를 새롭게 보고 깊이 이해하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현대 기기와 압축 파일을 통한 설명, 그리고 빙산의 일각
로마서는 바울이 기원후 약 57년경에 고린도에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런데 이때 바울의 나이는 복음을 전한 지 적어도 20년이 지났을 때로 60이 가까웠을 것입니다(넘었을 수도 있다) 바울이 신앙적으로 전도 경험으로 혹은 교회를 세우고 치리 하던 측면에도 성숙한 때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로마서만 하더라도 그 작은 글 속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를 저는 현대적으로 볼 때 압축 파일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요즘은 긴 파일은 압축해서 보관하고 이를 보낼 수가 있는데 그 내용을 보고자 할 때는 이를 풀어서 즉 압축을 풀어서 보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로마서도 먼저 사복음서의 내용을 잘 이해를 해야 되고, 또 사도행전도 잘 이해를 해야 하고 또 모세 오경으로부터 예언서까지 어느 정도의 이해가 있은 후에 로마서의 이해로 가야 합니다. 구원이라는 단어도 올바른 이해를 하고자 하면 먼저 창세기의 죄로 인한 인류의 타락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서도 바울이 이전에 자신이 알던 사람이신 예수님의 이해에서 구약을 통한 예언의 성취를 통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이해로 왔듯이 우리도 반드시 예언서의 예수님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합니다.
믿음에 대한 부분도 창세기(창 15장 아브라함의 믿음)를 이해해야 하고, 율법에 대한 부분도 예언서와 율법서를 올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들이 다 압축이 되어 있으니 성경 각 권으로 가서 이를 풀어야 보아야 비로소 로마서의 구절들이 정확하게 보입니다.
로마서는 16장으로 1173장의 신 구약의 내용을 짧게 압축을 해놓았다고 보면 되니 신약 244장 구약 929장을 반드시 잘 읽고 로마서의 이해로 가야 합니다. 이를 생략하고 압축된 내용을 풀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로마서를 읽기에 우리는 로마서의 이해가 부실하고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빙산은 보이는 부분은 적지만 그 물속에 잠긴 부분은 거대합니다.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한 타이타닉이 침몰한 것입니다. 로마서도 이와 같은 부분이 있으니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타이타닉과 같이 로마서의 이해에 있어 침몰할 수가 있습니다.
사도라는 의미도 지금 시대에 사도라는 자들이 있는데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사도는 분명히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도 12명만이 사도로 인정을 받게 되었는데 왜 예수님도 보지 못한 사람이 사도가 되는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나중에 이 사도들의 인정에 따라서 이방인의 사도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구원이라는 의미도 지금까지 그 정의가 참으로 명확하게 정리가 되지 않았는데, 단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다는 이해는 천주교 개신교에서 다르게 이해가 됩니다. 이를 성경앱을 통해서 찾아보면 한국어 개역 개정으로 약 500개 정도 구원이라는 말이 성경 전체에 들어가 있는데 이를 대별하면 죽음에서 살린다, 억압에서 해방한다, 자유 하게 한다, 어떤 상태를 회복한다, 질병에서 놓임을 받는다, 저주에서 벗어난다, 높인다, 곤경에서 건진다 등의 의미가 있으니 이런 의미가 내포된 예수님의 구원 행위를 잘 알아야만 비로소 구원에 대한 올바른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이라는 의미도 역시 그렇습니다. 믿음이라는 의미도 오늘 믿는 믿음인지 왔다 갔다 하는 믿음인지 쉬다가 믿는 믿음인지를 반드시 이해를 해야만 칭의 되는 믿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우리에게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근간이 되는 율법의 이해도 율법이라는 두 단어 속에 있는 모세 오경의 의미와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마태복음 5장 17-20, 마태복음 23:23절) 등을 정말로 올바로 이해를 해야만 비로소 율법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있습니다. 절대로 율법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로마서의 올바른 의미로 갈 수가 없습니다. 절대로 예수님의 종인 인간 바울이 성령으로 쓴 로마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말씀의 틀 안에서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예수님의 말씀의 틀을 너무나 벗어난 이해가 주류이니 속히 고쳐야 합니다. 종이란 자의 글이 주인의 뜻에 반하면 질서가 없어지는데 바울은 한 순간도 그렇게 한 적이 없는데 후대의 신학자가 바울의 로마서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학설로 교리로 어설프게 주장하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속이 이를 제거하고 바로 잡아야 합니다. 이는 주류 신학 자체를 다 고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쩌면 천주교 개식교가 다 고쳐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정의로우신 분이라는데 대한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복음은 사랑이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은 정의가 있습니다. 이 정의로부터 이신칭의가 나오는데 이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서 목이 마르지 않으면 절대로 로마서의 이해가 어렵습니다. 세상에서 불의로 온갖 역경을 겪으면서도 정의롭게 살려고 몸부림 쳐본 경험이 있는가? 그렇게 살려고 애를 쓰다 세상의 불의에 절망한 경험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별로 목이 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율법이 사라진 남 유다 말기의 하박국과 같은 삶과 심정)
자본주의의 혜택 하에서 수십 년, 수백 년 먹을 것을 쌓아두고 대대로 자녀가 돈의 고통에서 해방이 되었다고 믿고 그렇게 살고자 한 자는 모두가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침묵하게 되고 목이 마르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단언코 로마서의 절반도 이해가 되기 어렵습니다. 하버드든 옥스퍼드든 예일이든 이렇게 된 신학자는 절대로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샌달이나 혹은 롤스의 정의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한국에서 샌달에 넋이 나간 사람이 수백만 명이나 됩니다. 진실로 한 때의 정의이며 자본주의의 정의이며 복잡한 정의입니다. 학자가 아니면 알 수도 없는 정의를 어찌 정의라 부를 수가 있겠습니까? 학자의 좁고 복잡한 견해일 뿐이며 진리가 아닙니다.
현시대는 정의에 목이 마르다 하면서 샌달을 찾고 롤스를 찾지만 가장 정의의 선봉이며 으뜸이며 완성자인 예수님과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가장 정의로운 법 율법에 대해선 많은 성도가 그냥 침묵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잘 사는 것이 삶의 최우선이기 때문입니다. 미국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진실로 자본주의 자유주의와 다른 하나님의 나라가 존재하고 우리는 이 나라를 성경적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성도 모두가 알고 세워야 하는 나라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나라의 백성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국적을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하고 고향과 본토를 초월하고 모든 세상의 것을 초월해서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한 예수님의 피로 하나가 된 사람들입니다.
로마서에는 하나님의 가을의 서리(추상)와 같은 냉철한 의가 표현이 되어 있고 이 의로부터 믿는 인간에 대한 의가 나옵니다. 이 칭의 속의 숨겨진 의미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자는 모험을 감행해야 합니다. 깊은 바다! 차가운 빙산을 보기 위해서 용기를 내어 물 속으로 내려간 자가 로마서의 깊은 차가운 물에 잠긴 부분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전도를 통해서 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바울이 그렇게 했듯이 세상에 사는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며 고난과 어둠의 세력과 싸운 경험이 있어야 비로소 로마서의 추상과 같은 정의를 체험하고 그 깊은 의미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하박국과 같이 살면서 불의에 대해서 치를 떨고 불의로 모든 소망이 다 없어졌을 바로 그때 모세 오경을 보면서 비로소 안도와 희망을 가져 본 자라야 성경 율법을 보면서 그 정의로움에 안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로마서의 표현 율법이 아니고 믿음이다란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서와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말씀이 절대로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을 완전케 하려고 바울이 로마서를 쓴 것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여기까지 와야 로마서를 조금 이해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로마서는 이런 의미입니다. 로마서 3장 21-26절로 하나님의 의가 잘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은 로마서를 잘 이해하는 중심이 되는 구절이니 특별히 풀어서 설명을 드립니다. 이 구절을 올바로 알고 로마서로 가시기 바랍니다. 제가 한글 번역과 영문 번역을 보면서 성경을 이해하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영어를 알면서도 이렇게 공부하지 않으면 가장 큰 축복을 버리는 것입니다. 영어를 배움은 온 세상의 믿는 사람과 하나 됨을 위함이요, 말씀을 잘 이해함이요,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세우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영어는 성도에게 특권 중의 특권이니 이를 잘 활용하시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롬 3장 21-26
롬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서 믿음으로
21. 그러나 이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율법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율법서와 예언서가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22. 하느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도 없이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십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느님이 주셨던 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24.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풀어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은총을 거저 베풀어주셨습니다.
25.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주셔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과거에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죄를 참고 눈감아주심으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고
26. 오늘날에 와서는 죄를 물으심으로써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올바르시다는 것과 예수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신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개역개정, 공동번역, NIV)
21. But now a righteousness from God, /apart from law, /has been made known, /to which the Law and the Prophets testify.
22. This righteousness from God comes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to all/ who believe. There is no difference,
23. for all have sinned /and fall short of the glory of God,
24. and are justified freely /by his grace through the redemption /that came by Christ Jesus.
25. God presented him/ as a sacrifice of atonement, /through faith in his blood. He did this to demonstrate his justice,/ because in his forbearance he had left the sins committed beforehand unpunished --
26. he did it to demonstrate his justice /at the present time, /so as to be just/ and the one /who justifies those /who have faith in Jesus.
But now a righteousness from God, /apart from law, /has been made known, /to which the Law and the Prophets testify.
This righteousness from God comes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to all/ who believe.
There is no difference, for all have sinned /and fall short of the glory of God,
and are justified freely /by his grace through the redemption /that came by Christ Jesus.
God presented him/ as a sacrifice of atonement, /through faith in his blood.
He did this /to demonstrate his justice,/ because in his forbearance/ he had left the sins /committed beforehand unpunished -- /he did it to demonstrate his justice /at the present time, /so as to be just/ and the one /who justifies those /who have faith in Jesus.
제가 영어를 주어와 동사를 색을 다르게 했고 끊어놓았습니다. 개역개정만 보신 분은 율법 외에 한 의라는 표현도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율법과 선지자의 증거도 이해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의미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셨다는 부분도 어렵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부분이 많으니 모든 분께 이 구절이 어렵게 느껴지고 로마서도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천주교와 개신교가 로마서로 서로 나누어졌고 그 주장을 서로 옳다고 굽히지 않고 500년 동안 다툰다는 내용을 알면 내가 아는 것이 맞는가 하고 또 걱정이 되니 이리저리 로마서는 어렵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천주교는 어떻게 해석을 했나 보면서 더 쉽게 풀어놓았으면 그 이해를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두려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오직 개신교만 옳다고 믿고 개신교 성경 이외에는 이상하다 하면 개역 개정만 죽도록 보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헬라어 본문에서 해석 혹은 번역으로 나온 성경은 크게 천주교, 정교회, 그리고 개신교 번역이 있고 이도 각 나라말로 다양하게 번역이 되어 있어서 개역개정은 수백 수천 개의 번역 중에서 한 번역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역사가 150년이고 이제는 한글로도 5개의 번역이 있으니 용기를 내어서 본문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국의 성경의 이해도 세계적으로 올라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면 여기저기 흔들리지 않고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진리에 대한 열정을 막을 이는 없고 개신교에서 잘 가르치지 않으면 이단에 가는 사람도 있고 천주교로 가는 사람도 있는데 절대로 이단에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대한 갈증과 타는 갈급함이 있는 사람이 선생을 찾아서 헤매다가 이단에 가는데 이는 정통 교회의 문제입니다. 이들의 갈증을 저는 모두 해결하리라 굳게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글을 읽는 모든 영적인 갈급함과 정의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분께 성령을 충만케 하셔서 시원하게 혹은 따뜻하게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반드시 그런 일이 있을 줄로 굳게 믿습니다.
성경의 이해는 단 시일에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온전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목사님의 가르침을 먼저 잘 받고 내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그리고 삶에서 전도와 선행을 성령의 인도로 하면서 성령의 조망에 따라서 한 가지 한 가지 새롭게 이해를 하면서 그 이해가 느는 것이지 한 번에 어디서 진짜다 하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은 누가 검증합니까? 저도 역시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아서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이렇게 온 세상에 누구나 보고 검증하게 글을 올리니 차근차근 여러 글을 읽어 보시고 잘 판단하시고 믿으시면 되는 것입니다. 120개국 이상에서 적어도 50만 명이 보았지만 제 글에 대해서 이의를 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대부분 감사였습니다.
천주교 번역은 예언서와 율법서가 증명한다고 더 쉽게 풀었습니다. 그리고 죄를 범하여서 영광스러운 모습을 읽어버렸다고 설명합니다. 더 쉽습니다. 25절도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더 쉽게 이해가 되게 합니다. 그런데 의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설명을 했습니다. 이제 조금 더 나아간 이해로 영어를 봅니다. 제가 마지막 영어는 절을 없애고 그냥 문장으로 새롭게 배치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하나의 의가/ 율법과는 별도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의는 율법(모세 오경)과 예언자들이 증거한 것입니다.
이 의는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누구냐 하면 믿는 사람입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에 미치지 못합니다. / 그리고 모두가 값없이 의롭게 됩니다. / 그분의 대속의 은총에 의해서 /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하나님께서는 그를 내어 주셨습니다. / 속죄의 제물로서 / 그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그분은 이를 하셨습니다./ 그의 정의를 나타내기 위해서 / 왜냐하면 그의 길이 참으시는 중에/ 그분은 미리 우리의 죄를 간과하셨습니다./ 전에 지은 죄를 벌하지 않고/ -- 그분은 그분의 정의를 나타내기 위해서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 현재 시점에서 / 정의롭고 / 정의롭게 하시는 분이심/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을
위의 내용을 구글 번역에 넣고 아래와 같이 해석을 받았습니다.
21 22 그러나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이 증거한 것이라. 이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임하는 것이라.
23 24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으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루어진 구속을 통하여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25 하나님께서 그를 화목 제물로 세우사 그의 피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셨느니라.
26 이는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 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지금 이 시대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들을 의롭다 하시는 이시니라.
이제 제가 이를 풀어서 모두가 더 쉽게 이해가 되게 하겠습니다. 이 구절이 로마서의 가장 중요한 구절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는 구절보다 더 중요하고 로마서 1장 17절의 근거가 되는 구절입니다.
율법과 별도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율법은 모세 오경이며 성경의 가장 근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통치의 근본으로 각국에 가장 최상위에 헌법이 있듯이 이 율법은 온 인류의 공통적인 헌법이며 모든 성도의 헌법이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이 법대로 온 우주를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법을 알든 모르든 이 법의 통치를 그대로 온 인류는 받습니다. 사는 동안에도 그렇고 죽고 난 후 영생과 영벌의 기준이 바로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이 율법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와 그리고 신실함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율법의 정신이 바로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그리고 우주 만물 인간을 포함에서 가장 높은 곳에 가장 오랜 시간 존속하는 거룩한 법이 바로 율법입니다. 우주 만물이 사라져도 일점 일획 변치 않고 존재한다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셨습니다. 이를 이스라엘 역사 1000년을 통해서 정확하게 보여주셨고 우리 인간의 역사를 보아도 역시 모든 인간의 역사가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고 그 통치는 법치로 율법에 의한 통치입니다. 그런데 법은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래서 율법에는 하나님의 의가 그대로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 하면 의인데 이 율법과 별도의 의가 이번에 나타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의는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이미 예언서를 통해서 율법서(모세 오경)를 통해서 이미 증거가 되어 있다고 하십니다. 율법과 다른 의가 율법서와 예언서에 있다고 하시니 우리는 이를 찾아서 보아야 합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모세 오경 중에서 창세기에 15장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의롭다 하시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언서의 하박국서 2장 4절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한 구절이 있습니다. 이를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구약의 율법서와 예언서에 기록이 된 바와 같이 믿음으로 오는 의가 있는데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의가 있습니다. 즉 율법서에 기록이 된 조항을 잘 지킴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닌 이미 예언서와 율법서에 기록이 된 믿음을 통한 의와 같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이 오는데 모든 믿는 사람에게 온다고 하십니다. 21-22절이 설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의는 차별이 없습니다. 즉 믿는 모든 사람이 다 의롭다 인정을 받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와 너 모두가 하나님께 죄를 범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이는 인간이 죄를 짓기 이전의 상태를 잃어버린 것을 설명합니다. 우리는 죄가 없다면 에덴에서 늙지도 병들지도 그리고 수고도 하지 않고 영생을 누릴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이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화롭게 창조하셨는데 그분의 영광을 함께 누리도록 창조하셨는데 우리의 죄로 인해서 이를 잃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실낙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대속인 하나님의 은총으로 값없이 의롭게 됩니다. 누구나 이 하나님의 은총과 예수님의 대속을 믿기만 하면 아무 값도 없이 의롭게 되기에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복낙원이 되는 것입니다. 23-24절입니다.
25절을 봅니다. 이 구절의 복음이 핵심입니다. 로마서에 이 구절에 대한 이해가 다 있습니다. 먼저 로마서 5장 8절을 봅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화목 제물로 세우셨다고 하는 것은 레위기의 제사를 설명합니다. 구약의 율법에 따라서 죄를 지은 사람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는 흠이 없는 양이나 소를 잡아서 피를 흘리는 제사를 성막에 가서 혹은 성전에 가서 제사장과 함께 드려야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사람의 죄를 씻어야만 하나님 앞에 나가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께 죄를 범했고 이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예수님 즉 독생자를 희생의 제물로 내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내어 주는 사랑 그 사랑으로 우리 모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하게 증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는데 이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 모두의 죄를 씻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세우시고 믿는 우리를 의롭게 하신 일이 자신이 의로운 분이심을 나타내시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26절에 있는데 이 부분부터 잘 보아야 합니다. 누가 설명을 잘 하지 않는 부분입니다. He did this /to demonstrate his justice에서 밑줄 친 this는 앞의 문장 전체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그분의 피 흘리심을 통해서 이를 믿는 우리를 의롭게 하신 일이 그분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시려고 하신 일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를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런 희생이나 피 흘리심이 없이 누구를 용서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율법에 의하면 죄에는 대가가 반드시 따르고 죄는 대가가 죽음과 피 흘림이 반드시 있어야 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즉 죄에 대한 처벌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잃고 이 땅에서 살다가 죽는 신세가 되어서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은총이 값이 없이 우리의 희생이 없이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그런데 그 은총은 너무나 큰 하나님의 사랑으로 큰 희생으로 옵니다. 즉 하나님의 죄에 대한 처벌로서 오는데 그 처벌이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아들에게 대신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 흘리심과 예수님의 죽으심이 바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처벌로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정의가 이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법대로 우리를 죽게 그대로 두어야 하나 우리 대신 예수님을 피를 흘리시고 죽게 하신 것입니다.
이 대속을 믿는 이를 하나님께서 그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설명으로 이렇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가 그분의 정의로우심을 나타내시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죄에 대해선 절대로 피 흘림이나 죽음이 없이는 용서가 불가하다는 것으로 이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사는 사람에 대해서는 반드시 죄에 대한 심판이 있고 그 심판이 최후의 심판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절대로 절대로 죄는 그대로 넘어가는 경우가 없고 반드시 죗값을 치러야 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라는 것입니다. 이 죄에 대한 처벌을 우리 대신 예수님께서 받게 하심으로 죄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정의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독생자를 주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받는 길을 은총으로 주셨지만 이를 믿지 않는 자에겐 틀림없는 죄에 대한 심판을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절대로 죄는 두 가지 방법 외에 피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신 분이시기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를 용서를 받든지 아니면 그냥 그 사람이 피를 흘리고 죽는 것 외에는 달리 어떤 방법의 해결책도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로서 모든 세상에서 악하게 살고 마음대로 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는 사람에겐 틀림없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존재함을 온 세상에 하나님께서 전하시는 것입니다. 죄는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인생의 순간이고 하루살이나 불나방과 같이 순간의 권력욕이나 재물의 욕심에 죄를 범하는 인간의 말로는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결단코 피해 갈 길이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냥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죽음으로 내어 모는 사건을 통해서 온 인류에게 엄중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이렇게 죄에 대해서 무서운 분이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정의로우신 분이심을 절대로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는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같이 나타나 있음을 굳게 믿으시고 절대로 죄에서 멀어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셔서 그 아들의 피와 죽으심과 수치와 조롱을 통해서 구원하셔서 그 백성이 된 죄인이 이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정말로 예전과 달리 죄를 멀리하며 정의롭게 살기를 너무나 간절히 바라십니다. 로마서는 이렇게 정의에 대한 법적인 글인 것입니다. 율법학자 바울과 같이 성령을 받아서 그리고 그의 전도 경험과 교회를 세우고 치리한 경험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로마서를 쓸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검사, 판사, 법률 교수와 같은 분을 강제로 선택하시고 성령을 주셔서 전도하게 하시고 이렇게 로마서를 기술하게 하셨으니 로마서는 지금의 검사, 판사, 그리고 변호사와 법대 교수가 예수를 믿고 성령의 도움으로 설명하되 반드시 바울 사도와 같이 복음을 전하면서 이해하고 설명을 해야 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한국의 법학자들이 자격이 있으니 이 영광에 도전하시기 바라며 법을 전공하신 분이 아니시면 당연히 모세 오경을 잘 배우면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모세 오경의 공부에 머리에 지진이 나야 비로소 신약 시대 말씀의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지도자는 반쪽으로 설교도 공부도 가르치나 이렇게 성령을 받고 신 구약을 바울과 같이 배운 사람에게 그 사람의 일생의 공부는 진실로 부족하고 부족하게 보일 것이 분명합니다. 성령은 인간의 능력을 상상도 못하게 초월하는 것입니다. 성령 없는 아볼로는 유대인이며 지도자였으며 율법학자였고 예수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았습니다. 복음도 전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은 천막을 만드는 천한 일을 하는 필부 브리스길라 아글라 부부가 보기에 반쪽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아느냐 물으니 아는 바가 없다 하니 성경을 풀어서 설명했다고 하는데 성령을 소개하고 받게 했을 것입니다. 이제 온전한 아볼로가 잘 전합니다. 마치 옛 사람 바울이 예수님을 뵙고 회개하고 성령을 받아서 사도 바울이 된 것과 같습니다. 히브리서는 저자가 없는데 이 아볼로가 복음을 전해서 제사장을 이겼다고 하니 이 사람이 가장 가까운 저자가 될 것입니다. 성경은 배우는 즐거움이 지상 최고 최선입니다. 성령과 함께 성경을 읽고 정리하면서 전도하면서 선행을 베푸면서 일생을 배우는 즐거움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가운데 우리의 과거에 지은 죄를 미리 간과하셨다는 구절이 또 이해가 어렵습니다. 죄에 대한 즉각적인 처벌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우리가 원죄도 있고 자범죄도 있는데 이렇게 예수님을 믿기 전에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간과 즉 처벌을 즉각 하지 않고 이를 참으시는 것이 어려운데 참으신 것이 바로 예수님을 우리에게 내어주시고 또 희생하게 하신 이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간과와 용서와 처벌은 다릅니다. 간과는 죄를 보시고 그냥 처벌도 용서도 아니하시고 참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이 자신의 지갑에서 큰돈을 훔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즉시 불러서 야단을 치고 돈은 내놓아라 해야 하는데 우선 지켜보는 것을 말합니다. 참기에 절대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 돈이 액수가 크고 긴급한 자금이었다면 더욱 참기 어렵습니다. 돈에 대한 회수와 아들의 악행에 대한 처벌을 바로 하고자 하는 것이 보통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기회를 주시면서 참고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의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한 간과를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미리 하나님께서 하셨으니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예수님의 오심이 바로 이 간과에 대한 해결이라는 것입니다.
영어로 보면 대과거로 되어 있습니다. 과거 이전의 행위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간과가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길이 참지 않고 모든 우리의 과거에 죄에 대한 처벌이 있었다면 즉 우리의 죄로 인해서 우리가 재산이 다 날아가고 우리가 병이 들고 우리가 이미 죽어서 없어졌다면 예수님의 대속의 의미는 많이 작아질 것입니다. 이미 벌을 받고 낭패에 빠진 사람에게 너 죄를 용서할 길이 열렸다고 하면 누가 이를 믿겠습니까? 즉 여러분이나 저나 흉악하게 예수님을 믿기 전에 지은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간과하시고 계셨습니다. 즉각적인 처벌이 없이 산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게 되면 바로 용서를 하시는데 없는 것과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용서는 이와 같지만 세상의 처벌은 세상의 처벌대로 가는 것입니다. 금당살인 사건의 살인범 박 철웅은 사형을 언도 받고 감옥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회개하고 수백 명에게 복음을 전하며 편지도 자신의 동생 천웅에게 남겼습니다. 저는 그 편지를 읽고 바로 성령의 감동이며 모든 죄를 회개한 사람임이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살인의 죄를 용서하시고 처벌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세상의 법은 사형이니 그분의 사형이 집행이 되었으나 저는 그분이 천국에 있는 것을 확실히 믿고 저도 역시 그분 못지않은 흉악한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직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총과 우리 주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가 이 글을 이렇게 쓰게 합니다.
이미 하나님의 간과가 있고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그런데 이는 정의로우신 하나님 편에서 길이 참으시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악인이 죄를 범하면서 하나님이 계시냐 하면서 아무런 두려움이 없이 사는데 이는 죄를 알고도 용서하기를 바라시며 그분의 아들을 피를 흘리고 죽게 내어주신 정의로우시며 사랑이신 하나님을 너무나 무시하는 행위로 절대로 최후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이 영벌에 처해질 것입니다. 만약에 이들이 죽기까지 회개를 하지 않았을 때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악인의 형통을 절대로 부러워 말고 절대로 따라갈 생각도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모든 하나님의 행위는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신 분이심을 나타내는 것은 물론, 이런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받아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을 의롭게 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시려고 예수님을 우리에게 내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정의로우신 분이심을 온 천하에 밝히려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역시 정의롭게 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려 하십니다.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서 이렇게 강조하십니다. 사람이 정의롭게 되고자 하면 이런 하나님의 은총을 배우고 기억해서 예수님을 믿고 정의롭게 되어라 하는 온 인류의 초대의 말씀입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사랑도 나타나 있지만 이렇게 추상과 같은 정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이를 반드시 사랑을 강조하는 만큼 강조를 해야 성도의 도리 교사의 도리 목사 신부의 도리를 다 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정의를 외칩니다. 정치학은 한 마디로 정의에 대한 한문입니다. 법학도 한 마디로 정의에 대한 학문입니다. 법으로 정의를 세우고 정치로 정의를 세우고자 인간은 애를 쓰나 진정한 정의롭게 되는 길은 겸손히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믿을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법이 무너지고 정치가 무너지면 불의한 세상이 되고 이는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를 증명합니다. 이 불의한 세상을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면서 정의롭게 해야 되는 사람이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 즉 예수님을 믿는 신자입니다.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의롭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두려워도 말고 기죽지도 말고 담대하게 정의롭게 오늘도 세상의 악과 싸워서 이겨야 비로소 정의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굳게 서는 것입니다. 부디 사랑만 아는 반쪽 신앙에서 신약만 아는 반쪽 성경의 이해에서 벗어나 사랑과 정의 신약과 구약을 다 같이 아는 성숙하고 어른 같은 성도가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어른은 누가 말을 하면 귀를 기울이나 어린애는 조금 안다고 귀도 마음도 닫고 막 가는 사람입니다. 부디 신앙의 어른이 되길 기도합니다.
<율법보다 더 크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우리는 율법보다 더 크신 성령님을 믿고 받아서 율법을 잘 지킨다.>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 오신 것은 율법보다 더 크신 분, 율법을 이스라엘에 주신 분이 직접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먼저 바라보고 그분의 명령에 귀를 기우려야 합니다. 바울도 12 제자도 개신교인도 천주교인도 그리고 이스라엘인도 모두가 예수님의 말씀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그분의 제자의 글 로마서 등을 읽어야 합니다. 이것이 로마서를 이해하는 질서입니다. 구원으로 가는 길에서 율법을 따라가다 이제는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믿는 쪽으로 방향을 틉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모세를 통한 율법을 통해서 온다고 믿었습니다. 이스라엘의 1000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결국은 율법에의 불순종으로 멸망했습니다. 400년의 침묵기 중간기에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방법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실 계획을 하십니다. 예수를 믿어라! 는 외침은 예수님 없는 오직 율법만 있던 이스라엘에 또 율법도 없는 이방인에 천둥과 같은 소리입니다. 긴 인간의 역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는 놀라운 외침으로 온 우주가 새롭게 반응하고 온 지구에 생기가 도는 놀라운 외침입니다. 예수는 세상을 사랑하시는 구세주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우주의 운행을 관장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작은 전도자의 입에서 울려 펴지는 “예수를 믿으세요” 이 전도의 메시지는 온 우주에 생기를 돌게 하고 온 지구에 활력을 불어넣는 기적과 같은 짧은 그렇지만 강력하고 위대한 외침입니다. 천국에서 예수님께서 화답하시며 천사가 기뻐하고 구원받아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우리의 사랑하는 믿음의 선진이 박수를 치게 만드는 외침입니다. 그리고 한 영혼이 구원을 받으면 천국의 의인 99명이 잔치를 하는데 옥중의 윤 대통령의 회개와 믿음은 그렇게 온 천국이 잔치를 베푼 위대한 사건입니다. 이 잔치에 지상에서 대형교회 목사로 예수님의 종이라 하는 자가 찬물을 끼얹었으니 이들이 진실로 예수의 종이 아니라 마귀의 종임을 만천하에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저는 압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구원을 얻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새로운 계획대로 방법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받고 이제 다시 성령의 능력으로 율법을 지켜 완성해야 합니다. 로마서나 서신서의 예수님을 믿어라 하는 의미는 이런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특히 율법에 빠진 이스라엘에겐 이젠 과거의 방법 율법을 따라서 살던 삶에서 예수를 믿는 삶으로 속히 이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절대로 율법을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자 하면 과거의 행실을 버려야 하는데 이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악한 자신의 행실을 버린다는 말씀이지 율법을 버린다는 말이 아닙니다. 정의로운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그대로 있고 오직 먼지와 같은 죄인인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행실을 새롭게 하는 회개를 한다는 것입니다. 버려야 할 악행과 나쁜 습관은 두고 율법을 버린다고 착각하지 말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회개하고 바뀐 바울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리고 이 구원은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마지막 방법입니다. 이를 에스겔서 28장 24-28절로 잘 나타내었습니다.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은 노아 홍수로 노아 가족 외에 지구상의 사람과 동물 모두를 쓸어버린 분이십니다. 소돔과 고모라도 불로 멸망케 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택한 민족 이스라엘과 주변의 나라를 멸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약속대로 최후 심판으로 모든 세상을 멸하시고 심판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그 기준은 성경의 율법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자신의 과거의 죄를 용서받고 그 이후에 짓는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께 용서받은 자는 천국에 갈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모든 인간은 최후에 율법으로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갈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율법이 없던 시대는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의 법으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사랑과 정의입니다. 이 형상을 닮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사랑하고 정의롭게 살게 창조하셨고 이 사랑과 정의를 지키도록 각 사람에게 양심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고 불의하게 살 때 양심이 자신을 찌르게 하셨습니다. 양심과 심장과 깊은 연결이 있습니다. 심장에 병이 생기는 것은 사랑하지 않고 불의하게 살아서 양심이 아프다 아프다 썩고 문드러져서 병들게 될 때입니다. 그렇게 사람이 살면 양심과 깊은 관련이 있는 심장에 병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죽은 우리가 예수님의 구원을 통해서 산다는 의미에는 이렇게 병들고 썩은 양심이 새롭게 회복되어 살아난다는 의미도 있을 것입니다. 양심의 회복이 구원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사랑하다 사랑하다 무정하고 못나고 못난 사람을 만나서 속이 문드러진 사람의 심장도 아프고 아파서 병이 들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잘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 것입니다. 모든 세상의 어머니는 하나님의 사랑을 잘 이해할 수가 있는 가장 가능성이 크신 분들이십니다. 아버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에는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동시에 나타나 있습니다(로마서 3장 21-26절> 이 부분은 앞에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제 오천만의 로마서의 로고입니다.
로마서의 성령 부분의 이해도 갈라디아서 이해와 똑같이, 성령을 받고 성령과 동행하며 전도를 해 본 전도자의 심정이 되어야만 비로소 이해가 됩니다. 성령에 대해서 온 생애를 통해서 교회와 성도를 통해서 가장 잘 나타내신 분이 한국에 계셨던 조용기 목사님이십니다. 기독교 2000년 동안 성령님을 가장 몸으로 삶으로 목회로 성도와 함께 잘 나타내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먼저 로마서를 읽기 전에 조용기 목사님의 사역을 통해서 성령을 이해하시고 그 다음에 로마서를 읽기 바랍니다. 로마서는 이와 같이 참으로 그 올바르고 깊은 이해에 접근하기 어려운 성경책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성령님의 감동으로 우리는 성경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식과 노력이 별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4. 법적 성격이 강한 로마서
로마서의 저자는 바울이며 바울의 삶과 지식과 이를 바탕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이 바울의 로마서입니다. 신약 성경에 있고 성경의 다이어먼드라고 불리우는 중요한 책입니다. 당연히 바울 사도의 지식 세계가 그대로 드러나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율법학자로 당대 최고였습니다. 바리새파 사람이며 율법으로 흠이 없고 당대 최고의 율법학자 가말리엘에게 수학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같이 구약의 말씀과 신약의 말씀을 같이 성도에게 나누고 먹일 율법학자가 너무나 필요로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런 원리를 알고 저는 고대 법대생을 약 10년째 쉬지 않고 격려하며 전도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모세 오경으로 성경의 기본입니다 혹자는 성경을 한 마디로 줄이면 법이라 했습니다. 고대 법대생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시려고 법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다 너무나 정확하고 통찰력이 있는 귀한 명언입니다. 모세 오경을 주시면서 이를 중심으로 지키면 복을, 어기면 저주를 한다고 선포하고 모든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와 함께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계약을 맺었으니 구약입니다. 이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벌도 주시고 축복을 주신 역사가 역사서입니다. 이 역사에서 노래하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고난과 지혜를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기록한 책이 시편이고 이 역사에서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을 올바른 길로 가게 하고자 쉬지 않고 선지자를 보내서 위로하고 책망한 책이 바로 예언서입니다. 그리고 율법과 예언대로 그대로 오시고 그대로 사역하시고 그대로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록한 책이 사복음서이며 이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받은 사도와 성도의 삶과 교회의 설립과 확장을 기록한 책이 사도행전이며 사도들이 교회를 견고하게 세우기 위해서 쓴 편지가 서신서이고 종말의 내용을 다루는 책이 계시록입니다. 이제 모세 오경 율법이 모든 성경의 기초이며 율법학자가 성경을 가장 깊이 넓게 이해할 자격을 갖춘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 율법학자를 예수님께서는 간절히 찾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율법의 정신을 어기고 형식적으로 조문만 지키면서 위선자로 사니 정의로우신 율법을 이스라엘에 주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격노하시고 이들을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책망을 이스라엘을 택하신 분의 책망을 인간의 소리로 착각한 목이 곧은 당시의 이스라엘의 지도자 특히 율법학자 제사장 등은 예수님을 심히 싫어하고 배척했습니다. 바울도 이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고 죽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귀한 일에 너무나 율법학자 지원자가 없자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한 사람을 구원해서 사용하시기 위해서 직접 강림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을 바울이 만나서 혼이 나가고 정신이 나가고 혼비백산해서 예수님 앞에서 부복하고 회개하고 예수님 이름의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아서 자신이 배운 율법을 통해서 예수님을 누구보다도 더 깊이 이해한 이가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리고 완전히 새롭게 된 새 피조물 바울은 성령의 인도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로마서는 이런 바울의 율법의 삶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그대로 녹아있는 완전히 법적인 서적입니다. 그래서 법적 마인드가 없는 사람에게 어렵고 어려운 것입니다. 크게 바울은 로마서에서 율법의 규정에 따라서 온 세상의 사람이 다 죄인임을 선포합니다. 죄의 조항이 율법이 있기에 죄형 법정주의가 3500년 전에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죄에서 용서를 받고 간과를 받는 방법과 길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류가 다 율법 앞에 심판을 받게 됨을 선포합니다. 그래서 로마서는 쉬지 않고 율법과 행위, 율법과 죄, 율법과 양심, 율법과 믿음, 율법과 자유, 율법과 심판에 대해서 논의를 합니다. 그렇기에 어찌 율법을 모르고 로마서를 보고 이해하고자 합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