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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깊이 읽기: 엘 샤다이와 영적 입양]
전능하신 하나님 (El Shaddai, אֵל שַׁדַּי): 야곱은 형을 피해 도망치던 가장 비참한 밤(창 28장)에 찾아오셨던 그 '언약의 하나님'을 잊지 않았습니다. 험악한 세월을 버티게 한 것은 내 능력이 아니라 오직 '엘 샤다이'의 전능하심이었습니다.
내 것이라 (Li-hem, לִי־הֵם): 야곱은 손자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아들의 반열(장자와 차자였던 르우벤, 시므온과 동급)로 격상시킵니다.
[구속사적 의미 - 요셉의 두 몫] 신명기 21:17에 의하면 장자는 유산을 '두 몫(Double portion)' 받게 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각각 12지파의 족장으로 세움으로써, 르우벤이 상실했던 '영적 장자권'의 실질적인 축복(두 몫)이 요셉에게로 완벽하게 이전되는 엄청난 구속사적 사건입니다.
II. 어긋맞긴 두 손: 인간의 공로를 뒤집는 십자가의 은혜 (48:8-14)
육신의 눈이 어두워진 야곱 앞으로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고 나아옵니다. 요셉은 인간의 상식과 율법의 순서대로, 장자 므낫세를 야곱의 오른손에, 차자 에브라임을 왼손에 맞추어 세웁니다.
(창 48:14, 개역개정)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원어 깊이 읽기: 시켈 에트 야다우(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팔을 엇바꾸어 (Sikel et yadaw, שִׂכֵּל אֶת־יָדָיו): 이 단어는 단순히 실수로 손이 교차된 것이 아닙니다. 이 동사의 어근 '사칼(שָׂכַל)'은 **'지혜롭게 행하다, 의도적으로 깊이 생각하여 행동하다'**라는 뜻입니다.
늙은 야곱은 눈이 멀어 실수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성령의 강권적인 감동 속에서, 인간의 생물학적 서열(장자 우선주의)을 완전히 파괴하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을 '의도적으로' 집행한 것입니다!
[신학적 절정 - 엇갈린 두 손의 십자가 복음]
세상은 조건이 좋고 태생이 훌륭한 자(오른쪽)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사는 가인 대신 아벨을, 이스마엘 대신 이삭을, 에서 대신 야곱을, 르우벤 대신 유다와 요셉을, 그리고 므낫세 대신 에브라임을 선택하셨습니다!
이 엇갈린 두 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마땅히 저주받아 멸망해야 할 우리(차자)의 머리 위에 예수님의 의로운 오른손(축복)이 얹어지고, 영광을 받으셔야 할 예수님의 머리 위에 우리의 수치와 저주(왼손)가 얹어지는 이 위대한 **'은혜의 교차(Divine Exchange)'**가 성경 한복판에 벼락처럼 선포된 것입니다!
III. 야곱 생애 최고의 신앙고백: 나의 목자, 나의 구속자 (48:15-16)
두 손을 엇갈려 얹은 채, 야곱은 자신의 147년 인생을 결산하는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찬양(축복 기도)을 올려드립니다.
(창 48:15-16, 개역개정)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원어 깊이 읽기: 하-로에 오티(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기르신 (Ha-ro'eh oti, הָרֹעֶה אֹתִי): 직역하면 **"나의 목자(Shepherd)가 되시는 하나님"**입니다.
놀랍게도 성경 전체를 통틀어 하나님을 향해 '목자(Pastor/Shepherd)'라는 호칭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이 바로 야곱입니다! 다윗의 시편 23편("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보다 수백 년 앞선 위대한 고백입니다.
야곱은 평생 양을 치며 목자로 살았습니다(라반의 집에서 얼어 죽고 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양을 쳤습니다). 자신의 그 험악한 세월을 돌아보니, **"아! 내가 양을 친 줄 알았는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속이고 도망치던 나라는 불량한 양 한 마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이끌어(목양해) 주셨구나!"**라는 처절한 깨달음의 찬양입니다.
[나를 환난에서 건지신 (Ha-go'el oti, הַגֹּאֵל אֹתִי):] 여기서 '건지신 자'는 고엘(Goel), 즉 **'구속자(Redeemer, 핏값을 지불하고 노예를 사서 자유방면하는 자)'**를 뜻합니다. 라반의 착취, 에서의 칼날, 세겜의 살육전 등 죽을 수밖에 없던 인생의 모든 구덩이에서 기어이 나를 끄집어내어 살려내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여호와의 사자, 구속자) 한 분뿐이심을 선포합니다!
IV. "나도 안다 내 아들아!": 은혜의 주권과 마지막 유산 (48:17-22)
요셉은 아버지가 눈이 어두워 실수한 줄 알고 급히 아버지의 손을 옮기려 하며 기뻐하지 않습니다.
(창 48:18-19, 개역개정)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아버니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였으나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원어 깊이 읽기: 야다티 베니 야다티(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나도 안다 (Yada'ti, יָדַעְתִּי): 야곱은 단호하게 요셉의 교정을 거부합니다.
17세 때 채색옷을 입고 장자 행세를 하던 요셉은 지금 인간의 율법적 서열(장자 므낫세)을 지키려 합니다. 그러나 험악한 세월을 통해 산전수전을 다 겪고 자아가 완전히 부서진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인간의 조건과 자격(서열, 스펙, 장자권)을 따라 흐르지 않음을 정확히 통찰하고 있었습니다. "나도 안다. 그러나 은혜는 인간의 권리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이다!"
[세겜을 더 주었나니 (22절):] 야곱은 마지막으로 요셉에게 형제들보다 가나안의 '일 부분(원어: Shechem, 세겜)'을 더 줍니다. 비록 몸은 애굽에 누워 죽어가지만, 그는 이미 믿음으로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자식들에게 상속하고 있는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설교 구성을 위한 제언: "나의 목자 되신 분의 엇갈린 두 손"]
목사님, 오직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의 권위로 이 눈부신 신앙 고백의 본문을 강해하실 때 **<십자가의 교차 축복과 목자 되신 하나님>**이라는 주제로 다음과 같은 흐름을 제안합니다.
서론: 육신의 눈은 어두워도 영의 눈이 열린 노년 (1-7절)
나이가 들어 몸은 병들고 침상에 누웠지만, 야곱의 영혼은 과거 엘 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생히 기억하며 자녀들의 미래를 축복하는 영적 제사장으로 빛났습니다. 우리의 노년, 우리의 마지막 호흡은 원망이 아니라 언약의 회상이 되어야 합니다.
본론 1: 인간의 상식을 뒤집는 '어긋맞긴 두 손' (8-14, 17-19절)
요셉은 반듯하게(인간의 조건대로) 복을 받으려 했지만, 야곱은 손을 엇갈려 차자에게 장자의 복을 부었습니다. 마땅히 저주받아야 할 내 머리 위에 오른손의 축복을 부어주신 십자가의 역설! 인간의 공로를 산산조각 내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뜨겁게 선포하십시오.
본론 2: 성경 최초의 고백, "나의 목자, 나의 구속자" (15-16절)
평생 내 맘대로 산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그 모든 험악한 세월 동안 나를 치시고, 달래시고, 멱살을 잡아서라도 여기까지 끌고 오신 분은 나의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오늘 나의 절망과 환난을 구속의 은혜로 돌파하게 하시는 목자의 음성을 들읍시다.
결론: 세상을 떠날 때 무엇을 남길 것인가? (20-22절)
야곱은 애굽 제국의 금은보화가 아니라, 약속의 땅(세겜)과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만을 자손들에게 상속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자녀들에게 통장의 잔고가 아니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리라"는 언약의 말씀만을 영원한 유산으로 남기는 성도가 되기를 불을 토하듯 선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