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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배경의 차이: 존 메이너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가 활약하며 대공황을 진단했던 시기는 1930년대입니다. 반면 현대적인 의미의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라는 용어는 2001년 일본은행(BOJ)이 제로금리 충격을 타개하기 위해 처음 사용하면서 공식화되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본격적으로 대중화시킨 현대 통화정책 수단입니다.
케인즈의 핵심 처방: 케인즈는 대공황 당시 통화정책(금리 조절 등)만으로는 민간의 투자 심리를 살리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그가 강조한 핵심 정책은 중앙은행의 자산 매입(양적 완화)이 아니라,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서라도 직접 공공사업을 벌이고 일자리를 만들어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재정정책(Fiscal Policy)'이었습니다.
2. 미국 정부(또는 연준)가 1930년대 대공황 때 양적 완화 같은 정책을 동원한 적 있는가?
현대적인 의미의 '국채 대량 매입을 통한 본원통화 직접 공급(양적 완화)' 시스템이 완벽하게 가동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이지만, 1930년대 대공황 당시에도 이에 준하는 파격적인 유동성 공급 및 시장 개입 조치들이 동원된 역사가 있습니다.
금본위제 포기와 통화량 확대: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1933년 금본위제를 전격 포기하고 달러화를 평가절하했습니다. 이를 통해 통화 발행의 제약을 풀고, 시중에 돈이 돌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KIF - 한국금융연구원+ 1
부흥금융공사(RFC)를 통한 신용 지원: 대공황 당시 미 연준과 정부는 무너진 금융 시스템과 농민, 주정부를 구제하기 위해 부흥금융공사(Reconstruction Finance Corporation) 등을 활용해 부실 채권을 떠안거나 자금을 수혈했습니다. 이는 중앙은행이 발행한 자금이 정부 기구를 통해 실물 경제에 유동성을 공급했다는 점에서 현대의 양적완화와 유사한 맥락을 가집니다.
중앙일보
초과준비금 급증과 국채 매입: 1930년대 중후반 미 연준은 은행들의 대출 기피로 인해 시중에 돈이 돌지 않자 국채를 매입하는 등의 완화적 조치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정책 메커니즘이 미숙했고 중간에 긴축 발작(1937년 경기 재침체)을 겪는 등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케인즈는 현대적 개념의 양적 완화를 언급한 바 없으며 대공황 타개를 위해 '재정 정책'을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 미국 정부 역시 디플레이션을 탈피하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금본위제 폐지 및 대규모 유동성 공급 등 양적 완화의 모태가 되는 비상수단들을 동원한 경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