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벙 선생과 도깨비 반송
박경선
어리벙벙한 어벙 선생이 퇴임을 앞두고 시골집을 하나 얻었다. 집은 오래된 흙집으로 볼품이 없지만 정원은 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옛날 나무꾼들은 산에 나무를 하러 갔지만 어벙 선생은 정원에서 나무들을 전지하면서 나온 가지들을 황토방 땔감으로 썼다. 그리고 이 집을 ‘꿈터정원’이라 부르며 사람들을 초대하였다. 어른 손님도 초대했지만 어린이 손님들을 더 많이 초대하였다.
나무사랑회 아이들이 놀러와 나무를 둘러보던 날, 아이들은 3동산의 나무가 누워서 지낸다고 신기해하며 이름들을 물었다.
“이건 누운까치밥나무, 이건 누운향나무, 이건 누운측백나무!”
아이들이 가고 나자 선생은 아예 3동산의 나무에 조개껍데기에 쓴 이름표를 달아주었다. 내친 김에 1,2 동산의 나무에도 조개껍데기에 이름을 써서 달아주었다.
※ ※
어느 날, 새 나무 한 그루가 꿈터 정원에 들어왔다. 키 작고 빵빵해서 우산을 펼쳐 든 듯한 체형의 반송(소나무)이었다.
“뭐야, 영양분을 옆으로만 드셨나? 저렇게 빵빵한 나무는 처음 보네.”
나무들이 킥킥 거렸다. 그때 어벙 선생이 나서서 맞으며 반겼다.
“아이구, 귀한 반송이 왔구나.”
선생은 몸통이 빵빵하다고 빵빵이라고도 하지 않고 키가 작다고 난쟁이라고도 하지 않고 그저 반송이라고 불렀다.
‘쌩뚱 맞긴!’
나무들은 이파리를 흔들며 ‘쉬쉬’거렸다. 반송은 반송대로 꿈을 품고 왔기에 기죽지 않았다. 전에 있던 동산에서 쭉쭉 뻗은 소나무 형들이 여기 저기 모델로 뽑혀가는 것을 보며 늘 풀죽어 지내다가 정원사의 털털거리는 트럭에 누워 올 때 소나무형이 선물로 건네준 도깨비 공을 발가락 사이에 끼우고 오면서 소풍 가는 기분이었다. 어벙 선생은 반송의 발에 동여 묶인 고무끈을 보며 걱정을 했다.
“하이구, 먼 길 오느라 나무나 사람이나 고생하셨네요. 그런데 뿌리와 밑동에 칭칭 동여맨 고무끈을 끊어야겠는데요?”
그 말에 반송은 발가락 사이에 끼워온 도깨비 공이 빠져 나가 버릴까봐 진땀이 났다. 그때, 반송을 싣고 온 정원사가 말렸다.
“지금 고무끈을 자르면 뿌리에서 흙이 떨어져 나무가 낮선 토양에서 살아남기가…….”
“아이구, 죽는다고요? 그러면 안 되지. 마흔 살 넘은 제자들이 보내준 고마운 나문데…….”
어벙 선생은 집안 들머리에 반송을 가장 눈에 잘 띄도록 심어 주었다. 반송은 저절로 어깨가 으쓱해졌다. 단 하나, 고무끈에 발이 묶인 채로 서 있어야 하다니. 하지만 반송은 형들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꿈부터 밝게 품고 힘들어도 참아 내어야지.’
반송은 그 말을 생각하며 발가락 사이에 끼워 넣어온 도깨비 공을 굴리고 놀며 참고 견디기로 했다.
※ ※
며칠 뒤, 정원에서 어벙 선생의 퇴임식을 하는 날. 반송을 미리 보낸 제자들이 기념표석을 들고 와서 반송 앞에 가지런히 놓았다.
<어벙벙 선생님 정년퇴임 기념. 땡땡이 초등학교 공공회 졸업생 일동>
반송은 그제야 자기가 기념식수의 사명을 띤 나무란 걸 알았다. 방문한 사람들이 기념표석 앞에 놓인 반송을 모델로 사진을 찍을 때마다 갑갑한 발목을 곧추 세우며 ‘내가 주인공 모델이 되는구나.’ 싶어 머리카락을 파릇파릇 날리며 한껏 웃었다. 반송으로 태어나서 난생 처음 느껴보는 행복감이었다. 축하 손님들이 떠나자 참새 한 마리가 날아와 반송의 팔에 앉더니 종알거렸다.
“흥, 너가 기념식수라고? 키다리 배롱나무 아저씨가 너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창고 뒤쪽으로 밀려갔지.”
하고는 휙 날아가 버렸다. 키 큰 소나무가지에 앉아 있던 비둘기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러니 잘 자라라. 퇴임을 축하하는 사명을 맡았으니 영광스럽지만 책임도 커.“
‘책임은 무슨 책임, 함께 신나게 놀고 함께 사진 찍어주면 다 되는 거지.’
반송은 늘 스타가 된 듯이 신이 나 당당했다. 단체로 어린이날 초대를 받아 온 굿네이버스 아이들, 심리치료센터 아이들, 초원봉사회 아이들, 그림 공부, 시 공부 하러 오는 아이들, 웨딩 촬영하러 오는 선생의 제자 신부들, 리마인드 웨딩촬영 놀이를 하러 오는 선생의 친구들. 심지어 혼자 사는 동네 할머니들까지 초대되어와 신부놀이를 하며 사진을 찰칵찰칵 찍었다. 다른 나무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사람들은 가기 전에 꼭 반송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갔다. 어벙벙 선생이 가장 뜻 깊게 여기는 나무라서 특별히 반송을 이렇게 소개해주었기 때문이다.
“이 반송 별명이 행복 전염 도깨비예요. 사진 찍을 때 도깨비를 줄여서 ‘도’하며 찍으면 나중에 사진 볼 때도 행복 도깨비를 만난 듯 행복해지지요.”
※ ※
놀기 좋아하는 들꽃마을 아이들이 왔을 때 반송은 이때다 싶어 바람친구를 불러 한편이 되어 자기 발밑에 숨겨둔 도깨비 공을 꺼내어 신나게 놀았다. 아이들은 숨이 차도 따라가고 땀이 나도 따라가서 도깨비 공을 서로 잡으려고 했다. 그때 바람이 빼앗아 반송에게 ‘휙’ 던져주면 반송은 발밑에 밟고 서서 숨겼다. 약이 오른 녀석들은 우산 같은 반송의 몸채 밑에 머리를 처박고 찾다가 ‘이쪽이 아닌가봐.’하며 옆 나무를 뒤적거렸다. 그때 바람이 반송의 발밑 도깨비 공을 빼내어 ‘휙’ 던지는 바람에 맞은편에서 앞서 달려오는 녀석의 이마에 ‘딱’맞았다. ‘어쿠’하며 엉덩방아를 찧는 녀석을 보자 모두 한바탕 웃었다. 어쨌든 반송이 꿈터정원에 사는 동안 하루하루가 재미있게 ‘휙휙’ 지나가고 손님들은 꿈터 방명록에 이런 말을 남기고 갔다.
“꿈터정원에 소풍 오면 행복이 전염되는 도깨비가 사는 것 같아 또 오고 싶어요.”
※ ※
그런데 이 집에 온 지 6년이 되는 어느 날, 코로나라는 괴물이 나타나 사람들이 모이면 해코지를 한다는 소문에 어벙 선생이 손님을 초대할 수 없게 되었다. 심심한 것은 반송에게 스트레스가 되었다. 가만히 있으니 발목이 조여 드는 통증이 더 크게 느껴져 머리털이 부스스 빠져나갔다. 그러자 어벙 선생이 친한 나무 박사님께 전화를 했다.
“박사님, 제자들이 보내준 퇴임기념식수 반송이 시원찮습니다.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요?”
나무에 대해 시리즈로 책을 쓴 박사님이 차를 운전해 먼 길을 달려와 반송을 보았다.
“나무 가져 왔을 때 뿌리를 감은 고무줄을 제거 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파내어 끈을 제거해줍시다.”
그 말에 어벙 선생의 눈이 커졌다.
“맞아요. 실은 그때 나무뿌리 동여맨 고무줄 끈을 아직도 잘라주지 않았네요.”
하며 삽을 가져와 반송의 뿌리 쪽 흙을 파내었다. 선생이 전지가위를 가져오자 반송은 의사선생님에게 몸을 맡기듯 숨을 죽이고 다소곳이 지켜보고 있었다. 선생은 뿌리를 칭칭 동여맨 끈을 전지가위로 자르더니 구불구불한 뱀을 잡아 당기듯 시커멓고 길다란 고무끈을 힘주어 잡아 당겨내었다.
‘으악!, 저 뱀 같은 끈이 이때껏 내 발등을 동여매고 있었다니…… .’
반송은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삐죽 돋았다. 선생도 고무끈을 쳐들고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발목에 이렇게 고무끈을 칭칭 둘러 묶은 이유가 뭐람? 나무가 자라도 끈은 늘어나지도 않는데 강아지 목에 맨 목줄이 살을 파고 들어가듯 나무 발목이 잘록 들어가고 몸통은 불어났으니…….”
“그러게요. 동물들이야 입으로 먹고 크지만 나무는 발로 수분과 양분을 빨아먹는데……. 어쨌든 이 나무도 조금만 더 일찍 끈을 끊어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쯧쯧. 물을 그리 좋아하는 나무가 아니니 물을 적당히 주고 기다려 봐야지요.”
나무박사님이 가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어벙 선생은 반송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용서를 빌었다.
“도깨비 반송아, 미안하다. 어벙벙한 나를 용서해주겠니? 너가 내 반 학생이었다면 목 졸린 학생을 돌아보지 못한 선생의 죄로 감옥에 갔을 거야. 흑흑.”
반송은 어벙 선생이 스스로 어벙벙하다며 우는 바람에 불쌍하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막걸리 주면 살아난다고들 하던데, 너도 막걸리 좀 먹어볼래. 철철 부어줄까?”
“영양 주사를 좀 놓으면 기운 차리겠니? 영양주사를 좀 꽂아볼까?”
늦게야 관심을 보이는 선생은 배수가 잘되는 마사토 흙으로 반송을 덮어주고 정수리부터 뿌리까지 물을 골고루 주면서 나뭇가지들을 만져 보았다. 이미 말라서 톡톡 꺾이는 잔가지도 있지만 물을 뿜어주고 나서 희망을 걸어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반송은 차차 기력을 잃어 말라갔다.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그제서야 둘레의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뒤에 서있는 목련꽃과 벚꽃은 얼마나 눈부시게 피어나는지. 반송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옮겨 간 배롱나무도 부러웠다. 한쪽 구석에서도 해마다 붉은 꽃머리를 흔들며 활짝 웃으며 만족하고 살던 그 겸손도 배우고 싶었다. 특히, 한쪽 구석의 소나무는 새가 찾아 들게 구멍 뚫린 축구공을 매달고 있더니 어느새 그 새집에 예쁜 새를 품고 있었다.
‘소나무도 훌륭하지만 축구공은 저게 뭐람. 좋아하는 축구도 못하고 새를 품고 다칠세라 얼마나 조마조마하게 가슴을 조였을까?’
생각할수록 서로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꿈터 정원 나무들과 축구공까지 모두 반송 자신보다 훌륭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 ※
꿈터 집에 천 번째 손님이 왔다. 방명록에
<행복 전염 도깨비가 사는 집에서 힐링 잘하고 갑니다. 행복했어요.>
하며 적던 날, 반송은 ‘나도 행복했어요!’하며 감사기도를 드리는데 천사가 속삭였다.
“반송아, 발목 묶여서도 참으며 지내느라 수고했다. 이제, 다 내려놓고 아픔 없는 데로 가자.”
반송은 꿈속인양 들려오는 따스한 목소리를 따라 갔다. 반송이 도깨비 공을 품고 따라 간 곳은 어벙 선생의 황토방 부엌 아궁이 속이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속에 들어가니 형들이 반송을 간질이던 발가락 감촉이 살아나서 ‘내가 고향에 돌아온 건가?’ 하는 생각에 기쁘고 ‘역시 넌 재미나게 놀 줄 아는 놈이었어.’하는 형의 칭찬이 들려 기뻤다. 다만 아궁이 밖에 쪼그리고 앉아 훌쩍이는 구슬픈 목소리가 마음에 걸렸다.
“진작에 동여 맨 고무 끈을 끊어줘야 했는데. 그래도 참고 행복을 전해준 반송아, 무식한 날 용서해줄 수 있겠니?”
몇 번이나 용서를 비는 어벙 선생의 목소리를 들으니 무식해도 내게 사랑을 듬뿍 주었다는 사실에 내 몸을 불태워 선생이 잠들 방이라도 좀 따스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것은 서로를 위로하는 의식이기도 했다. 반송이 꿈터정원의 추억을 연기에 모두 담아 하늘 높이 날아오를 때 선생의 목소리가 따라왔다.
“잘 가시게. 반송! 자네는 또 다시 귀한 생명으로 태어나겠지만 내 가슴 속에는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을 걸세. 내가 죽는 날까지…….”
2020.2.17.~2021.5.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