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顯考學生府君神位’에 관한 斷想

‘현고학생부군신위’는 자식이 돌아가신 아버지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지방(紙榜, 종이로 만든 神主)의 한 양식이다.
고(考)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일컫는 말이며<돌아가신 어머니를 일컫는 말은 비(妣)>, 학생(學生)은 고인에게 관직이 없을 때 쓰는 말이다. 조선시대에는 학문하는 일을 숭고하게 여겼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은 사람을 통칭 학생이라고 하였다. 또 부군(府君)은 돌아가신 아버지나 남자 조상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지방은 고인과 제주와의 관계, 그리고 고인의 생전 직함에 따라 달리 써야 하지만 통상적으로 제사는 자식이 지내기 때문에 ‘현고학생부군신위’라 쓰고 있다.
최근에는 한글식으로 쓰기도 하고 사진(영정)을 쓰기도 하며 또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고인과의 관계에 따라 지방 쓰는 양식이 있어서 그 용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른다 하여 크게 불편을 겪지는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용어가 누구를 의미하는 지, 높이는 것인지 낮추는 것인지, 그리고 언제 쓰는 것인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방은 앞에서 말했듯이 제사를 지낼 때 종이에 써서 틀에 넣거나 병풍에 붙이는 것으로 우리는 누가 누구의 제사를 지내는지 이 지방을 보고 알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장례식장의 빈소에 세워진 위패에 이 양식을 쓴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장례식장은 고인을 목욕시키고 수의(壽衣)를 입혀 이불로 싸서 입관(入棺)을 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고 가족을 위로하는 등 장례를 치르기 전까지의 절차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요즘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3일장을 치르는데, 이 기간은 고인과 이 세상에서 공유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으로서 조금이라도 늦출 수만 있다면 더 늦추고 싶을 만큼 고인의 가족친지, 지인들에게는 안타깝고 아쉬운 시간이라 할 수 있다.
빈소는 그런 마음을 나누는 곳이다. 빈소와 안치실(영안실)이 구분되어 있어 시신은 안치실에 있지만 모든 의식은 이 빈소에서 행해진다.
정해진 시간, 즉 3일이 지나면 그 아쉬운 마음도 어쩔 수 없이 장례를 치르게 된다. 장례를 치렀다하여 고인과의 정(情)이 쉽게 끊어지겠는가. 그래서 매년 돌아가신 날이 되면 그 분을 추모하는 의식을 하는데 이 의식이 바로 제사이다. 이 의식은 형식상 종교의식과 혼동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자식으로서 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효심의 표현으로 지금도 중요시하는 전통생활문화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현고학생부군신위’는 이 추모의 의식에서 자식이 아버지를 모시는 자리를 표시하는 글이다. 그런데 아직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고학생부군신위’라고 하는 것은 인정에도 맞지 않고 예에도 맞지 않는다.
따라서 장례식장의 빈소 위패는 ‘故 홍길동’, 혹은 ‘故 남양 홍公(여자의 경우 氏) 길동’, ‘故 국회의원(직위) 홍길동’ 이와 같이 쓰는 것이 적당할 듯 싶다. 여기서 아직 장례를 치르지 않았는데 故자를 이름 앞에 붙이는 것이 너무 이르지 않느냐고 하는 이들도 있으나 그리 예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순남숙 (사)예지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