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아” - 롱펠로우 (Henry Wadsworth Longfellow, 1807-1882) 사랑하는 사람아, 편히 쉬거라 내 너를 지키려 여기에 왔다. 네 곁이라면 네 곁이라면 혼자 있어도 나는 기쁘다
네 눈동자는 아침의 샛별. 네 입술은 한 송이 빨간 꽃. 사랑하는 사람아, 편히 쉬거라. 내가 싫어하는 시계가 시간을 헤아리고 있는 동안에.
19세기 미국의 최고의 시인(American poet)으로 불리는 롱펠로우(Henry Wadsworth Longfellow, 1807-1882)는 미국의 건강한 미래와 건전한 정신을 구김살없이 서정적인 문체로 노래했다. 그는 1807년 2월 27일 Portland에서 유망한 변호사의 8명 자녀 중 둘째 아들로 출생했다.
양부모 모두 명문가 출생이었으며 New England 지방의 초기 정착가들의 후손이었다. 그는 학문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6세에 라틴어에 아주 능했다고 한다. 14세에 대학 Bowdoin 대학에 들어갔고,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에서 3년간 유학한 후인 1829년 22세 때 모교에서 교수로 위촉되었다.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 여행을 하던 중 첫 부인이 병사했다. 이듬해 귀국하여 하버드 대학 현대어 교수로 임명되어 20여년간 교수를 하였다.
당대 롱펠로는 미국의 어느 시인도 누려보지 못한 대단한 명성을 누렸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은 그를 “불멸의 왕관을 쓴 시인”으로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그의 시는 단순한 리듬과 강한 교훈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미국 시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런던의 Westminster Abbey 에 그의 흉상이 비치되고 있다. 그는 당대에 “에반젤린” “인생찬가” 등과 같은 명시로 국제적인 명성을 떨쳤고 또한 유럽을 두루 여행하면서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신곡을 포함한 단테의 문학작품을 완벽하게 번역한 충실한 학자로서도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헨리 워즈워드 롱펠로우는 매우 불행한 인생을 살았다. 첫 아내는 젊어서 오랫동안 앓다가 죽었고, 8년 만인 1843년에 재혼한 아내 프란시스 엘리자베스 애플턴에게서 슬하 6명 남매를 낳았지만 한 명은 유아 때 사망했다. 하버드 대학 앞에 있는 캠브리지 야드를 지나면 Brattle Street이 나오는데 105번지에 롱펠로우 생가가 있다.
이 짐은 독립전쟁 당시 George Washington 장군이 자신의 숙소 겸 독립군 사령부로 사용하기도 했다. 롱펠로우는 하버드대학 교수시절에 이 집에 세를 얻어 살다가 재산가인 장인의 도움으로 이 집을 구입하여 45년간 살았으며 그가 별세 후 장녀 엘리스가 살았다.
독신으로 살았던 엘리스 여사와 그녀의 뜻을 따르는 롱펠로우의 후손들은 그가 생존시 즐겨했던 대로 모든 방들을 보전해왔고 그가 사용했던 가구와 소장품 대부분을 원 모습대로 비치해 두어 오늘날에도 박물관으로 남아 있다. 이 저택에 있는 예술품들도 롱펠로우 생존시 자신과 친근한 사람들의 초상화와 조각 작품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기를 즐겨한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여기서 두 번째 부인인 엘리자베스가 두 딸 아이의 머리를 잘라 준 후 그것을 양초에 봉인하려다가 실수로 양초를 떨어뜨려 촛불이 그녀의 얇은 드레스로 옮겨 붙으면서 불길이 이 방 전체로 번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그의 아내는 화상으로 인해 다음날 세상을 떠났다. 롱펠로도 크게 화상을 입어 그의 얼굴 전체를 뒤덮고 있는 수염은 바로 이때 생긴 흉터를 가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괴로움을 이기고 강해지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인가”를 부르짖던 그의 시도 이 때를 회상할 때면 언제나 애수적인 그림자를 띠기 시작한다. 유고작으로 발표된 “백설의 십자가”라는 비극적인 시는 바로 이를 소재로 쓰여진 것이다.
두 아내를 잃고도 롱펠로우의 왕성한 창작욕은 식을 줄을 몰랐다. 그의 아름다운 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물했다. 1882년 75세의 임종을 앞둔 롱펠로우에게 한 기자가 물었다.
“선생님은 험한 인생 고개를 수없이 넘으면서도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시를 남길 수 있었습니까?”
롱펠로우는 정원의 사과나무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저 사과나무가 바로 내 인생의 스승이었습니다. 저 사과나무는 몹시 늙었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새로운 가지가 생겨납니다. 그곳에서 꽃이 피고 단맛이 나는 열매가 열리지요. 옛 가지에서 새 가지가 조금씩 나오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자신을 항상 새로운 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도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새 생명을 계속 공급받아 인생의 새로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살아왔습니다.”
그가 아내를 잃은 아픔을 딛고 쓴 “인생 찬가” (A psalm of life):
Tell me not, in mournful numbers, 내게 슬픈 이야기로 말하지 말라 Life is but an empty dream!-- 인생이 한갓 헛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For the soul is dead that slumbers, 잠자는 영혼은 죽은 것이고 and things are not what they seem. 만물의 모습은 외양대로만은 아니니.
Life is real! Life is earnest! 인생은 진실 되고 인생은 엄숙하며 And the grave is not its goal; 무덤이 인생의 목표는 아니다 Dust thou art, to dust returnest, 너는 흙이나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Was not spoken of the soul. 이 말은 영혼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다
Not enjoyment, and not sorrow, 우리가 가야할 곳 또는 가는 길이 Is our destined end or way; 향락도 아니요. 슬픔도 아닌 것을 But to act, that each to-morrow 내일이 오늘보다 낫도록 행동하는 것 Find us farther than to-day. 그것이 목적이요 길이니..
Art is long, and Time is fleeting,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지만 And our hearts, though stout and brave, 우리의 심장은 아직 강하고 용감하니 till, like muffled drums, 무덤으로 향하는 장례의 북소리처럼. sare beating Funeral marches to the grave. 벌판을 울리는 장례행렬의 북소리처럼 힘차게 고동치고 있지 않은가?
In the world's broad field of battle, 넓디 넓은 삶의 전쟁터에서 In the bivouac of Life, 인생의 그림자 드리우며 Be not like dumb, driven cattle! 끝없이 쫓기는 짐승처럼 살지 말고 Be a hero in the strife! 싸움에 이기는 승리자가 되자
Trust no future, howe'er pleasant! 아무리 즐거워도 미래는 믿지 말라 Let the dead Past bury its dead! 지나간 과거는 지나간 곳에 묻어두라. Act,--act in the living present! 움직여라. 살아있는 지금 움직여라.. Heart within, and God o'erhead! 안에는 자신을..머리위에는 하나님을 두라.
Lives of great men all remind us 위인들의 생은 우리를 이끈다. We can make our lives sublime, 우리도 장엄한 삶을 이루어 And departing, leave behind us 우리가 지나온 시간의 모래위에 Footprints on the sands of time; 우리의 발자취를 남기자.
Footprints, that perhaps another, 그 발자취를 따라, Sailing o'er life's solemn main, 훗날에 또 다른 장엄한 인생의 바다를 건너다 A forlorn and shipwrecked brother, 파선되어 실의에 빠진 형제가 보고 Seeing, shall take heart again. 용기를 얻어 일어서게 하자
Let us, then, be up and doing, 그러니 우리 일어나 움직이자 With a heart for any fate; 어떤 운명과도 맞설 용기를 가지고 Still achieving, still pursuing, 언제나 성취하고 언제나 추구하며 일하는 법을, Learn to labor and to wait. 기다리는 법을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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