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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28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말씀 강설 스크립트
거짓 증언이라고 하면 보통 우리는 법정에서 증언을 할 때 거짓을 말하는 것을 생각하곤 했습니다. 물론 제9계명은 법정에서의 상황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어떤 말을 하느냐 하는 것은 여러 계명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 사용하는 말에 대해서 제3계명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녀들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말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제5계명에서 다루었습니다. 분노하는 말을 하는 것은 제6계명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음란한 말은 제7계명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을 사용해서 무언가를 훔치기도 합니다. 제9계명도 말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특히 거짓말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지난 6월 셋째 주에는 거짓말의 가족들이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소위 말하는 하얀 거짓말과 왜곡된 말이나 과장된 말은 거짓말의 친척이라고 했습니다. 험담이나 중상도 거짓말의 식구들입니다. 섣부른 판단이나 정죄도 거짓말의 가족들 중 일원입니다.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12문에서 “제9계명에서 하나님꼐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 답으로 가장 먼저 “내가 어느 누구에게도 거짓 증언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왜곡하지 않고, 뒤에서 헐뜯거나 중상하지 않으며, 어떤 사람의 말을 들어보지 않고 성급히 정죄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성급히 정죄하는 데에도 참여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오늘은 그 다음 문장들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유인물을 보시고 “오히려”부터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당하지 않기 위해 본질적으로 마귀의 일인 모든 거짓과 속이는 일을 피해야 합니다. 법정에서나 기타 다른 경우에도 나는 진리를 사랑하고 정직하게 진실을 말하고 고백해야 하며, 할 수 있는 대로 이웃의 명예와 평판을 보호하고 높여야 합니다.”
우리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인기가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세상의 문화는 편의주의와 자기 홍보의 시대로 점점 더 변화하면서 약간의 거짓말을 눈감아 주기도 하고 때때로 거짓말을 권장하기도 합니다.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 보이는 것처럼 진짜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을까요? SNS를 보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건강하고 부유하고 현명하게 보입니다. 보통 가장 자랑스러운 사진들이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담은 영상들을 올려 놓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은 현실을 드러내기를 거부하고 진실을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세상의 풍조의 영향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크 트웨인은 “미심쩍을 때는 진실을 말하라. 그러면 적을 당황하게 하고 친구를 놀라게 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진실을 말하면 놀랄 정도로 세상은 진실을 드러내기를 꺼려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님의 백성이 진실하기를 원하십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뿐만 아니라 우리의 성품이 진실하기를 원하십니다.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실에 대한 정확한 기술 이상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늘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법정에 가서 진실을 말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한번 진실을 말한다고 그 사람이 진실한 사람이 되지는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말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각까지 우리의 성품이 진실하기를 갈망하십니다. 거짓 증언에 대한 몇 가지 질문들과 그 답들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번째로, 거짓 증언이라는 것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성경에서 가장 거짓 증언을 했던 첫번째 피조물은 누구일까요?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이 금지하신 열매를 먹으라고 제안했던 에덴 동산의 사탄입니다. 누가 거짓 증언을 했던 두 번째 피조물일까요? 하와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신 것에 덧붙여서 말하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거짓 증언을 했던 세 번째 피조물은 누구였을까요? 아담입니다. 아담은 그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의 탓을 했고, 아내의 탓을 했습니다. 세상의 시작부터 진실하게 말하기를 실패한 결과 인류는 죄의 상태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있어서 사탄을 거짓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가장 먼저 진실하지 않은 거짓을 말했습니다.
성경은 사탄을 거짓의 아비라고 부릅니다 (요 8:44). 오늘 교리문답에서도 “본질적으로 마귀의 일인 모든 거짓과 속이는 일을 피해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진실은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표적입니다. 거짓말은 사탄의 모국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함과 진리가 보이는 곳이면 어디든 사탄이 표적으로 삼는 것은 당연합니다.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은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때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냉소적으로 묻는 모습에서 우리는 사탄의 정서를 엿볼 수 있습니다.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고 여기는 회의론자에게는 진리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리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진실함을 미덕으로 보지 않는 것이 당연한 시대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환경입니다.
두번째로, 우리가 거짓 증언을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피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로부터 고립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거짓 증언을 하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이기적인 야망입니다. 예를 들면, 직장을 얻기 위해 인터뷰를 할 때 자신의 능력을 과장해서 말하는 것은 거짓 증언을 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어떤 자리를 얻기 위해 라이벌인 다른 사람의 능력을 깎아 내리는 식으로 거짓 증언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험담하기 위해 거짓을 말하기도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정보가 정확한지 아니면 잘못되어 있는지 심도 있게 체크하기 전에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는지 모릅니다. 일단 누군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를 전파하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통 험담은 당사자의 뒤에서 이루어 집니다. 그래서 거짓된 것입니다. 그러면 왜 남을 험담하고 비난할까요? 미국 켄터키에 있는 크라이스트 펠로우쉽 교회의 담임 목사인 제프 로빈슨은 그의 책 <험담, 그 일상의 언어>에서 이렇게 답합니다.
“왜 남을 비난할까요?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과대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음 속으로 자신이 더 매력적이고, 더 간명하고, 더 유려한 말을 쓰고, 성경을 더 잘 해석할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설교자를 비난합니다. 우리는 배우자나 자녀가 우리의 불합리한 기대에 비치지 못하기에 비난합니다. 우리는 직장 상사가 감히 내가 수행해야 할 업무에 대해 책임을 묻기 때문에 상사를 비난합니다. 우리는 교회가 음악이나 교육, 리더쉽, 비전에 대한 우리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기에 비난합니다. 우리는 타자 중심도 아니고 하나님 중심도 아닌 지극히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비난합니다. 우리가 비난하는 것들 중 거의 대부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나옵니다. (막 12:30-31)”
험담은 보통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이루어지지만, 험담과 쌍둥이라고 할 수 있는 아첨은 보통 당사자의 앞에서 이루어 집니다. 아첨도 험담과 동일하게 거짓 증언에 속합니다. 상대방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기 위한 목적으로 좋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시편 12편에서 다윗은 타락한 세상의 불경건하며 거짓된 모습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시 12:2-4)” 다윗은 아첨하는 입술을 가진 사람을 자신의 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부하는 것은 상대방의 발 아래 덫을 놓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잠언 29장 5절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 (잠 29:5)” 험담과 아부하는 것의 공통점은 이웃을 사랑하지 않은 결과라는 것입니다. 아부하는 대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식으로 상대방을 격려하고 칭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당신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가족을 주셨군요.” 혹은 “당신처럼 정직하고 배려 많은 친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혹은 “주님꼐서 당신에게 건강과 총명으로 복을 주셨군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부와 다르게 격려와 칭찬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중심적인 격려와 칭찬의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처럼 “경우에 합당한 말”이 될 것입니다 (잠 25:11).
세번째로, 우리는 보통 어떤 방식으로 제9계명을 깨뜨릴까요?
18세기에 스코틀랜드에서 살았던 믿음의 사람, 토마스 보스톤은 그의 설교에서 제9계명이 어떻게 깨뜨려지는지 열 세 가지를 언급합니다. (1)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단점을 불필요하게 발견함으로 제9계명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2) 다른 사람의 잘못을 과장함으로 제9계명을 깨뜨립니다. (3) 어떤 사람이 과거에 회개한 죄에 대한 기억을 다시 되살려 말함으로 제9계명을 깨뜨립니다. (4) 비밀로 하기로 했던 정보를 함부로 퍼뜨림으로 제9계명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5) 어떤 사람의 명예를 떨어뜨리려고 노력함으로 제9계명을 깨뜨립니다. (6) 이웃에 대한 공정하지 않은 편견을 가지고 그에 대해 나쁜 말을 함으로 제9계명을 깨뜨립니다. (7) 있지도 않은 일을 꾸며서 모함하면서 제9계명을 깨뜨립니다. (8) 뒤에서 험담함으로 제9계명을 깨뜨립니다. (9) 누군가에 대한 이런 저런 소문을 퍼뜨림으로 제9계명을 깨뜨립니다. (10) 자신의 입장을 공정하게 대변하는 사람의 말을 듣기를 거절함으로 제9계명을 깨뜨립니다. (11) 다른 사람을 놀리고 조롱함으로 제9계명을 깨뜨립니다. (12) 다른 사람의 이름을 상스럽게 말하거나 맹비난을 함으로 제9계명을 깨뜨립니다. (13) 공정하지 않게 혹은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꾸짖음으로 제9계명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네번째로, 거짓 증언을 해서 생기는 결과는 무엇이 있을까요?
제9계명을 깨뜨림으로 생기는 다양한 결과들이 있습니다. 먼저 거짓말을 한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게 됩니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 어떤 것을 속이거나 거짓을 말하면 그 사람과 더 이상 거래하지 않거나 그 사라의 말을 더 이상 믿지 못하게 됩니다. 또한 거짓을 말한 사람이 뭐라고 하든지 더 이상 듣지 않게 되는 냉소적인 태도를 갖게 될 수 있습니다. 이솝 우화에서 양치기 소년이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몇 번 하자 정말 늑대가 나타났을 때 그 소년이 말하는 것을 아무도 듣지 않고 냉소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거짓 증언을 함으로 다른 사람의 명예를 파괴하게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약 우리의 친구들이 우리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하는지를 다 알았다면, 아마도 친구가 거의 없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친구에 대한 험담을 들으면 그 말은 마음에 의심을 심고 불신의 장벽을 세웁니다. 여러분의 친구나 친지가 누군가에 대한 험담을 할 때 여러분은 그 사람이 다른 사람 앞에서도 자기 험담을 늘어놓지는 않을지 의심하게 될 것입니다. 이로 인해 서로 간에 신뢰는 깨지고 냉랭한 관계로 남게 될 것입니다. 험담은 사람을 죽이는 일입니다. 그래서 조셉 스토웰은 험담과 모함을 “비극을 가져오는 사촌”이라고 하며 “험담과 모함이 다른 어떤 질병보다 더 많이 관계를 파괴하고 교회의 분열을 일으킨다”고 말했습니다.
거짓 증언을 하는 것은 개인의 인생뿐만 아니라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 전체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미국의 조지아 테크(Georgia Tech)라는 팀을 맡은 유명한 미식축구 감독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가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대학 미식 축구 팀인 노틀담 미식 축구팀의 선임 감독으로 선발되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 만에 그는 그 자리에서 사임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약 25년 전에 그가 이력서에 썼던 거짓말이 발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감독은 국가적인 창피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진실하지 못함으로 인해 그의 경력에 큰 차질이 생겼고 많은 사람들 앞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도 거짓 증언이 공동체 전체에 나쁜 영향을 미친 사례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여호수아 7장에 등장하는 아간입니다.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 하나님께 바칠 물건들에 손을 대지 말라는 여호수아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귀한 물건들을 몰래 숨겼던 아간의 죄는 단순히 아간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아간의 잘못으로 인해서 여호수아의 군대는 쉽게 정복하리라고 예상했던 아이 성 전투에서 처참한 패배를 맛보았습니다. 아간의 죄가 전체 공동체에 커다란 재난을 불러 일으켰던 것입니다. 아간의 거짓말로 인해 그가 속한 공동체를 향해 하나님의 진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교리문답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당하지 않기 위해 본질적으로 마귀의 일인 모든 거짓과 속이는 일을 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 사람의 거짓된 말과 행동이 공동체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거짓말의 유혹이 다가올 때 더욱 진중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마태복음 12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마 12:35-37)” 주님의 경고는 우리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주의 깊게 생각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심판의 날에 우리가 했던 말들이 우리 귀에 다시 들려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은 우리의 성품이 어떠한지를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야고보서 3장에서 야고보는 우리가 한 말이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고 말했습니다 (약 3:2).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하는 말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 말을 왜 했는지, 언제 했는지, 어떻게 했는지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줍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이렇게 말해야 마땅합니다. “만약 내가 진짜 누구인지를 알고 싶다면,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 보십시오. 왜냐하면 내 말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언젠가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9계명을 깨뜨린 결과가 어떤 것인지 살펴보았습니다.
다섯 번째로, 신자들이 제9계명을 어떻게 깨뜨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믿는 신자라고 해도 잘못된 평가로 인해 제9계명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욥이 여러 가지 사고와 재난으로 모든 소유와 자녀들을 잃고 병에 걸렸을 때, 욥의 친구들이 욥을 병문안 왔습니다. 그들은 일주일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함께 있기만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악인을 심판하신다는 올바른 원리를 가지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원리를 잘못된 대상에게 적용시켰습니다. 그들은 욥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잘못된 편견으로 인해 욥은 그들로부터 온갖 잘못된 말들을 들어야 했습니다. 만약 욥의 친구들이 신학교에서 시험을 봤다면 그들의 말은 모두 좋은 점수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욥에게 적용했기 때문에 채점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영점을 받았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판단하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가 성막에 가서 입술만 움직이고 소리 없이 기도하고 있을 때 그 여인이 술에 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기도할 때 소리를 내서 기도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엘리 제사장은 한나가 소리 없이 기도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엘리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한나에 대해서 잘못된 평가를 내렸습니다. 그것은 제9계명을 깨뜨리는 행동이었습니다.
구약 성경 뿐만 아니라 신약 성경에서도 신자가 제9계명을 깨뜨리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체포되시던 날 저녁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베드로는 단순히 예수님을 부인한 것이 아니라 맹세를 하고 저주를 하며 예수님을 부인하는 말에 힘을 실었습니다. 베드로는 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을까요? 겁이 나서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있기 바로 전에 겟세마네 언덕에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체포하려던 군인들을 향해 칼을 휘둘 만큼 용감하게 행동했습니다. 깊이 생각해 보면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집 마당에서 예수님을 부인한 이유는 어떠한 용기와 힘이 필요할 때 예수님보다 자기 자신을 믿고 의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미 말씀하신대로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신약 성경의 초대 교회들 안에서 잘못된 교리를 퍼뜨려서 제9계명이 깨뜨려 지는 경우들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하나님의 명령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말하는 율법주의가 성행했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금지하신 행동들을 높이 평가하는 오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말과 관련된 거짓 증언 이었습니다.
그러면 제9계명을 깨뜨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거짓말의 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고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주 예수님은 신실하신 증인이십니다. 주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선지자로서 하나님에 관해,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 참된 말만을 하셨습니다. 또한 제사장으로서 우리에 대해서 하나님께 참된 말만을 하십니다. 주님은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경고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과 계획에 대해서 신실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들에 대해서 주님은 불완전하지만 용서받은 죄인이라고 증거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분의 가족에 속해 있으면 그분의 피로 값주고 산 바 되었다고 증거 하십니다.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 대해 항상 진실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예수님처럼 진실하게 말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 당사자의 함께 있을 때에는 칭찬의 말을 하다가, 그 사람을 험담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함께 험담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누군가를 칭찬하는 말을 조금 하다가 그 사람의 험담으로 말을 마치지는 않은가?”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우리 주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진리를 사랑하고 정직하게 진실을 말하고 고백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을 닮아가려면 오늘 교리문답의 마지막 문장에서 말하듯이, “할 수 있는 대로 이웃의 명예와 평판(評判)을 보호하고 높여야 합니다.”
두 번째로 제9계명을 깨뜨리지 않으려면 우리는 건강한 마음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거짓이 섞여 있는 마음은 병들어 있는 마음입니다. 병든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나라들은 각 나라마다 국민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좋은 의사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등 여러가지 복지를 제공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최고의 의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의사는 우리 영혼의 영적인 문제를 치료하시는 전문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께 우리의 생각과 태도를 바꾸어 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를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거짓된 말과 태도에 대해 가차 없는 조치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가차 없는 조치”라는 것은 그저 우리 자신에게 “조금 달라져야 할텐데”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회심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무리 달라져야 겠다고, 이제는 거짓을 말하지 말아야 겠다고 결심해도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이 영혼의 질병을 고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아들의 아버지, 2만번 기도 응답을 받은 사람으로 잘 알려진 죠지 뮬러의 일기를 보시면, 그가 회심하기 전에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했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릴 때 유아 세례를 받은 죠지 뮬러는 입교식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입교를 받기 3-4일 전에 나는 나의 부도덕함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입교를 받는 그 날에도 목사님 방에 가서 거짓으로 죄를 고백하였고 아버지가 내라고 주신 헌상의 12분의 일만 냈다. 기도 없이, 참된 회개 없이, 믿음 없이, 구원의 계획에 대한 지식도 없이 1820년 부활절에 나는 입교를 받고 성찬에 참여했다…입교식이 있고 나서 6주 후에 나는 2주간 (독일 북부에 있는) 브런즈윅으로 여행을 갔다. 거기서 천주교인이었던 젊은 여인과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피아노와 기타를 치고, 소설을 읽고, 술집에 자주 가며, 이제는 달라져야 겠다는 결심도 했지만 결심을 하자마자 그 결심들을 깨뜨리곤 했다. 나는 나의 죄악된 즐거움을 위해 돈을 썼고 종종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한번은 배가 고파서 내가 머물던 숙소에 살던 군인이 봉급 대신 받는 빵을 훔쳐 먹기도 했다. 이 세상에서조차 사탄을 섬기는 인생은 얼마나 쓰디 쓴 고통을 겪는지 모른다.” 정말로 회심하기 전에 죠지 뮬러는 아버지를 속이고 주위 사람들을 속이며 호텔 주인들을 속이다가 감옥에 가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겠다고 결심해도 스스로의 힘으로 결심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이러한 영혼의 질병을 고치실 수 있습니다. 제9계명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앞에서 저와 여러분을 대신해서 거짓 증언을 당하셨던 진실만을 말하신 그 분께로 달려가야 고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거듭난 신자들도 거짓 증언의 죄에 빠질 수 있습니다. 참된 신자라면 그러한 죄에 빠질 때마다 그것으로 인해 마음 아파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 것입니다. 십자가로 돌아갈 것입니다. 영혼의 의사이신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따를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 4장 29절에서 주님께서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말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 4:29)” 같은 장에서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들에게 서로 진실만을 말하라고 말합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엡 4:25)” 성령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우리의 말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조언이든지, 위로의 말이든지, 용서의 말이든지, 충고의 말이든지 우리의 말을 통해 은혜를 주시기도 합니다. 반면에 우리의 말이 거짓되고 진실하지 않으면 성령님을 근심하게 만드는 것이 됩니다.
우리 모두는 제9계명을 지키기 위해 우리 자신에게 중요한 질문들을 물어 보며 꾸준히 자기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말하려고 하는 것은 진실인가? 그것이 진실이라는 확신이 나에게 있는가? 내가 지금 말하려고 하는 것은 영적으로 유익한 말인가? 내가 지금 말하려고 하는 것은 정말 필요한 말인가? 예수님이라면 내가 지금 말하려고 하는 것은 말씀하셨을까? 만약 주 예수님이 내 어깨 옆에 서 계시다면 지금 말하려고 하는 말을 할 것인가? 심판의 날에 내가 지금 말하려는 것을 반복해서 말할 수 있는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우리는 항상 진실해야 합니다. 그 누구에게도 거짓을 말하도록 요구나 압력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모든 것에 있어서 진실해야 합니다. 법정이나 청문회 같은 장소만 아니라, 우리 일상 생활의 모든 상황 속에서 그 누구에게도 의심을 사지 않도록 투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를 실패할 때 그리스도께로 달려가셔야 합니다. 그저 잠시 후회하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저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 밖에 없습니다. 거짓된 나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주님을 위한 진실한 말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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