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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권
시편의 네 번째 책은 세 번째 책과 마찬가지로 열일곱 편의 시를 담고 있다. 이들 중 오직 네 편만 저자가 밝혀져 있다. 시편 90편과 91편은 모세의 시이고, 101편과 103편은 다윗의 시이다. 거의 모든 학자들은 시편 90편이 가장 오래되고 가장 먼저 기록된 시라고 추측한다. 나는 이 주장에 의심이 가며,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 시들은 누군가에 의해 수집된 기도와 찬송 모음집이며, 틀림없이 수집자는 둘 이상이다. 수집자로 보기에 적절한 후보로는 다윗, 아삽, 코라, 히스키야가 있으며 모세도 거기 해당한다. 에녹은 모세가 태어난 때보다 천 년도 더 이전에 예언을 했지만, 우리는 모세가 죽은 후 1500년도 더 지나서 기록된 유다서 14-15절에 그의 메시지가 적힌 기록을 갖고 있다. 다윗 이전에 "글 쓰는 자의 펜"(판 5:14)을 다룬 누군가가 있었는데도 창세기의 성도들은 아무도 기도나 찬양의 노래를 기록하지 않았다고 추정해야 하는가? 나는 의심이 간다. 음악학자들이 "전통적인 선율"이라고 부르는 것들("바바라 알렌", "푸른 옷소매", "국왕 폐하 만세" 등)은 악보가 인쇄되기 훨씬 이전까지 이르는 깊은 뿌리가 있다. 라멕의 "말"은 모세가 기록한 창세기 4:23에 나와 있으며, 모세는 "광야의 방랑생활" 이전에 기록된 한 "책"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출 32:32).
우리가 이것을 언급하는 이유는 벌링거가 시편의 이 네 번째 책이 민수기와, 즉 민수기에 기록된 광야의 방랑생활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교묘한 이야기를 고안해 냈는데, 바로 모세가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시 90:10)라고 말한 것이 실제로 오직 카데스바네아에서 돌아서버린 전사들의 연수만을 언급한 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수"는 실제로 전혀 "우리의" 연수가 아니며, 그 말은 오직 징병되는 연령을 넘은(스무 살 이상의) 불순종한 이스라엘인들에 대한 언급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경우라면 그 시편은 "그들의 연수가..."라고 기록되었어야 하지만, 물론 그 시편은 그렇게 되어있지 않다. 그 시편에서 그런 주장을 끄집어내기는 아주 어렵다.
게다가 그 시편에는 역사적으로 모세나 이스라엘 자손이 했던 일과 "아무 상관없는" 열 가지 이상의 내용이 들어 있다. 우리는 그런 내용을 다루게 될 때 그 구절들을 눈여겨 볼 것이다. 그 시편은 "모세의 기도"이며, 그 기도는 분명히 민수기에 나오는 모세나 그의 양떼에게 응답되는 것이 아니고, 여호수아나 재판관기에서도 응답되지 않는다. 이는 민수기에 나오는 모든 기간 중에는 주님이 돌아오시지도 않고(시 90:13)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도 않고(시 90:15,1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손의 행사를 그들 위에 견고히 세우시지도 않기 때문이다(시 90:17). 물론 문제는, 모세 자신이 일백이십세까지 살았으면서 어떻게 그가 "우리의 연수"가 칠십 년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 문제는 우리가 그 본문에 이를 때 다룰 것이다.
<시편 90장>
1 주여, 주께서는 모든 세대에서 우리에게 거처가 되셨나이다.
2 산들이 생기기 전, 주께서 땅과 세상을 조성하시기도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3 주께서 사람을 멸망으로 돌려놓으시며 말씀하시기를 “너희 사람의 자손들아, 돌이키라.” 하시니
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단지 지나간 어제 같고 밤의 한 경점 같나이다.
5 주께서 그들을 홍수로 쓸어 가시나니, 그들은 잠자는 것 같고, 아침에 그들은 자라나는 풀처럼 되나이다.
6 풀은 아침에 피어나 자라다가 저녁에는 꺾이고 마르나니
7 우리가 주의 성내심으로 인하여 소멸되며, 우리가 주의 진노로 인하여 고난받나이다.
8 주께서 우리의 죄악들을 주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빛 가운데 두셨으니
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진노 가운데 지나가며, 우리의 연수가 한갓 이야기처럼 지나가나이다.
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어도 그 연수의 힘은 수고와 슬픔이니, 그것이 곧 끊어지면 우리가 멀리 날아가나이다.
11 누가 주의 성내심의 능력을 아나이까? 주의 두려움에 따라 주의 진노가 있나이다.
12 그러므로 우리에게 우리의 날들을 세도록 가르치시어 우리의 마음이 지혜에 이르게 하소서.
13 오 주여, 돌이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께서는 주의 종들에 관하여 돌이키소서.
14 오, 아침에 주의 자비로 우리를 만족케 하시며 평생 동안 우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소서.
15 주께서 우리를 곤고하게 하신 날수대로 또 우리가 악을 보았던 연수대로 우리로 기뻐하게 하소서.
16 주의 일을 주의 종들에게,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들에게 나타내시며
17 주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있게 하소서. 주께서는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히 세우소서. 정녕, 주께서는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히 세우소서.
<시편 91장>
2 내가 주에 관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시며 나의 요새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신뢰하리라.” 하리로다.
3 참으로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덫과 지독한 전염병에서 건져내시리라.
4 그가 너를 자기 깃털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서 신뢰하리로다. 그의 진리가 너의 작은 방패와 큰 방패가 되리니
5 네가 밤에 공포나 낮에 날아가는 화살이나
6 어둠 속에서 만연하는 전염병이나 백주에 황폐케 하는 멸망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7 천 명이 네 옆에서, 만 명이 네 오른편에서 쓰러질 것이나 그것이 네게는 가까이 오지 못하리라.
8 오직 네가 네 눈으로 보게 되리니 악인의 보응을 보리로다.
9 네가 나의 피난처이신 주, 곧 지극히 높으신 분을 네 처소로 삼았으므로
10 어떠한 재앙도 네게 닥치지 못하며 어떠한 전염병도 네 장막에 가까이 가지 못하리라.
11 이는 그가 너에 대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하시어 너의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실 것임이라.
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이요
13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용도 발로 짓밟으리로다.
14 그가 나를 사랑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구해 낼 것이며 그가 나의 이름을 알았으므로 내가 그를 높이리라.
15 그가 나를 부르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고난 중에 내가 그와 함께할 것이며 내가 그를 구해 내고 그를 영화롭게 하리라.
16 내가 장수로 그를 만족케 하여 내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2 산들이 생기기 전, 주께서 땅과 세상을 조성하시기도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3 주께서 사람을 멸망으로 돌려놓으시며 말씀하시기를 “너희 사람의 자손들아, 돌이키라.” 하시니
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단지 지나간 어제 같고 밤의 한 경점 같나이다.
5 주께서 그들을 홍수로 쓸어 가시나니, 그들은 잠자는 것 같고, 아침에 그들은 자라나는 풀처럼 되나이다.
6 풀은 아침에 피어나 자라다가 저녁에는 꺾이고 마르나니
7 우리가 주의 성내심으로 인하여 소멸되며, 우리가 주의 진노로 인하여 고난받나이다.
8 주께서 우리의 죄악들을 주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빛 가운데 두셨으니
1절, 모세는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여 영원한 거처가 없었던 '족장들'을(히 11:10,14) 지칭하고 있습니다. 이집트를 떠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그 세대(신 6:22)를 제외하고 '모든 세대에서'가 설명됩니다.
2절,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관련하여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진술 중 하나인데 창세기 1:1 이전부터 계셨고 계시록 22:21 이후까지 계속되는 하나님의 영원한 존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 '돌이키라'(return)는 말은 사람에게 '진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악한 길에서 돌이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주로 나타내는 표현입니다(렘 26:3, 겔 3:19; 33:9, 욥 22:23; 36:10, 사 44:22). 본문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일찍 흙으로 돌아가라고 명하시기 떄문에 인생이 덧없다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너무 짧으므로(4,5,6절) 가능한 한 올바르게 행하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4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는 예언인데(시 84:10, 벧후 3:8) 천 년은 하루(어제)와 비교되며 '밤의 한 경점'과도 비교됩니다. 신약에서는 밤을 네 경점으로 구분하고, 구약 유대인은 밤을 세 경점으로 구분했습니다(판 7:19, 막 6:48). 그리스도께서는 '밤 제 사경에' 오시며(마 14:25), 세 번째 천 년의 "날"(출 19:11)에 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를 천 년씩 네 경점으로, 신약 이후를 천 년씩 세 경점으로 구성해 놓으십니다.
5-6절, 인생이 짧다는 것을 보여주는 세 가지 비유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인생은 잠과 같은데(시 73:20) 잠을 자고 일어나면 몇 시간을 잤던지 방금 누웠던 것처럼 느낍니다. 인생은 홍수와 같은데 여기서 실제적 홍수를 가리켜 말하기보다 사람이 삶의 기반을 닦기도 전에 쓸려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풀과 같은데(벧전 1:24, 사 40:6)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이 아궁이에서 불에 탄다고 말씀하셨고(마 6:30, 이 "아궁이"를 불타는 큰 용광로라고 부르십니다(마 13:42).
7-8절, "주의 성내심으로 인하여...주의 진노로 인하여"는 모든 구원받지 못한 일반적 죄인들에게 적용되며 "은밀한 죄"(8절)는 백보좌 심판석(계 20:11-15)에서 심판받습니다(롬 2:16)
이는 하나님께서 선이든 악이든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실 것임이라(전 12:14).
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진노 가운데 지나가며, 우리의 연수가 한갓 이야기처럼 지나가나이다.
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어도 그 연수의 힘은 수고와 슬픔이니, 그것이 곧 끊어지면 우리가 멀리 날아가나이다.
11 누가 주의 성내심의 능력을 아나이까? 주의 두려움에 따라 주의 진노가 있나이다.
12 그러므로 우리에게 우리의 날들을 세도록 가르치시어 우리의 마음이 지혜에 이르게 하소서.
13 오 주여, 돌이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께서는 주의 종들에 관하여 돌이키소서.
14 오, 아침에 주의 자비로 우리를 만족케 하시며 평생 동안 우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소서.
15 주께서 우리를 곤고하게 하신 날수대로 또 우리가 악을 보았던 연수대로 우리로 기뻐하게 하소서.
16 주의 일을 주의 종들에게,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들에게 나타내시며
17 주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있게 하소서. 주께서는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히 세우소서. 정녕, 주께서는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히 세우소서.
9절, 각 사람의 "이야기"는 길거나 짧을 수 있고 지루하거나 흥미로울 수 있으며 좋은 이야기나 나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좋은 이야기"가 되려면 그 이야기에 올바른 저자와 주인공, 악역, 줄거리, 목적, 결말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의 "이야기들" 중에 도덕과 무관한 것은 전혀 없습니다.
10절, '연수'는 모세의 연수가 아니며 모세가 인도한 누구의 연수도 아닙니다. 여호수아나 칼렙의 경우는 팔십에서 그치지 않고 훨씬 오래 살았습니다. "우리의 연수"는 20세기에 예언적 적용해야 하며 20세기 유대인에게 할당된 시간은 칠십 년이며 때로는 팔십 년입니다. 물론 이 숫자는 모세 당시의 인류에게 일반적으로 해당하는 것일 수 있는데 여호수아가 일백십 세까지 산 것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고(수 24:29), 엘리는 구십팔 세까지 살았고 바실래는 팔십 세였습니다(삼상 4:!5, 삼하 19:34-35). 바실래는 팔십 세에 "매우 늙은 사람"이라고 이야기되는 것을 봅니다(삼하 19:32). 다윗은 칠십 세에 죽습니다(삼하 5:4). 재림 때까지는 칠십 세가 사람의 일반적 수명이라고 할수 있겠고 그 후에는(사 65:20) 상황이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천년왕국에서 사람의 수명은 나무와 같이 될 것입니다.
"그 연수의 힘은 수고와 슬픔이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70이나 80을 넘어서면 사람의 몸에는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데 예전처럼 활동할 수 없습니다.
11절, 하나님의 진노는 완벽하게 그 일을 감당할 역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그분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시는 이유(출 20:20, 마 10:28, 욥 28:28, 전 3:14; 12:13, 빌 2:12)는 그분이 자신의 본성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거룩하시고 어떤 종류의 죄도 용납하실 수 없으므로 죄에 대해서 죄인들에게 진노를 퍼부으실 것입니다(계 20:11-15). 그분을 두려워하는 것은 "경외함" 이상의 "두려움"(시 2:11, 19:9)입니다.
12절, 우리의 날들을 세라는 것은 짧거나 길 수 있지만 칠십이라는 날들 안에서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벗어나지 않은 날들을 헤아려 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규제에서 벗어난 날들은 제외되었으므로(왕상 6:1) 우리도 역시 잃어버린 날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날수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분과 교제하면서 보낸 날들을 세어야 합니다.
13-17절, 이제 재림 관주가 나오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스라엘이 "평생동안...기뻐하게" 하시고(14절), "주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있게" 하시고(17절),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히 세워주시기를(17절)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곤고하게 된 연수(15절)는 문자적으로 고려해 볼때 약 2천 년 정도 되는데 앞으로 그 정도 영광을 누리는 것이 합당합니다.
2 내가 주에 관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시며 나의 요새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신뢰하리라.” 하리로다.
3 참으로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덫과 지독한 전염병에서 건져내시리라.
4 그가 너를 자기 깃털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서 신뢰하리로다. 그의 진리가 너의 작은 방패와 큰 방패가 되리니
5 네가 밤에 공포나 낮에 날아가는 화살이나
6 어둠 속에서 만연하는 전염병이나 백주에 황폐케 하는 멸망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7 천 명이 네 옆에서, 만 명이 네 오른편에서 쓰러질 것이나 그것이 네게는 가까이 오지 못하리라.
1절, 이 문맥에서 "네가", "너를", "너의"(3-13절)는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되며 본문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호하시며 환란 성도들을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특히 3,5,6,10절).
'은밀한 곳'은 독수리 날개(출 19:4), 어미 닭의 날개 아래(마 23:37)의 피난처를 말합니다. "전능하신 분의 그늘"은 솔로몬의 노래 2:3과 이사야 4:6; 32:2에서 예수 그리스도이심이 밝혀집니다.
한 사람이 바람을 피하는 곳과 폭풍을 가리는 곳같이 될 것이요, 마른 땅에 흐르는 강 같고 피곤한 땅에 있는 큰 바위의 그림자 같을 것이니라(사 32:2).
2절, '피난처, '요새'는 자연스럽게 환란 때의 바위 성읍 셀라, 페트라로 돌아가게 합니다.
3절, '전염병'(3,6절)은 주석가들을 혼란에 빠뜨리는데 이 단어를 문자적인 게 아닌 것으로 만들던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은 전염병에 걸리지 않게 하신다는 말로 입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전염병은 실제 전염병이며 교회시대 성도와는 아무 상관없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거듭났다고 해서 전염병이 피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첫째가 가서 자기 호리병을 땅에 쏟으니 그 짐승의 표를 가진 자들과 그의 형상에 경배한 자들 위에 악취가 나는 심한 헌데가 생기더라(계 16:2).
이 구절에 사용된 "noisome"(지독한, 악취가 나는)이라는 단어는 계 16:2에 동일하게 사용되었는데 대환란 때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에게 닥치는 피부병을 말합니다.
전염병을 보내는 것은 주의 천사이거나(시 78:50), 죽음의 천사 아폴루온인데(시 78:49) 후자는 '새 사냥꾼'과 동일할 것입니다(계 9:11). 바울에 의하면 마귀는 "올무"를 놓습니다.
또한 외부 사람들로부터도 좋은 평판을 받아야 할지니, 이는 그가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딤전 3:8).
덫은 이사야 24:17,18과 예레미야 48:43,44에서처럼 문자적이고, 예수 그리스도 자신도 재림과 관련하여 그 단어를 쓰셨습니다(눅 21:35). "새 사냥꾼"은 새들로 비유된 사람들을 쫓습니다(전 9:12). 호세야 9:8은 그 새 사냥꾼이 '한 선지자'일 수 있다고 말하므로 그는 마귀를 위해 사람들을 잡는 거짓 선지자일 수 있습니다(계 13:11-14).
4-7절, "낮에 날아가는 화살", "백주에 황폐케 하는 멸망", "지독한 전염병", "어둠 속에서 만연하는 전염병"이 덮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이 시대 그리스도인에게 죽어진 것이 아니며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화살에 맞고 전염병으로 죽어갔습니다.
시편 91편의 약속들은 교리적으로 교회시대에 사는 누군가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며 대환란이라는 기간 동안 통과하는 주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 때는 지옥과 사망이 땅에 입을 벌리고 식인, 마귀 숭배, 기근, 홍수, 전염병, 지진, 육화된 마귀들이 땅을 횡행할 것입니다(계 6-19장).
8 오직 네가 네 눈으로 보게 되리니 악인의 보응을 보리로다.
9 네가 나의 피난처이신 주, 곧 지극히 높으신 분을 네 처소로 삼았으므로
10 어떠한 재앙도 네게 닥치지 못하며 어떠한 전염병도 네 장막에 가까이 가지 못하리라.
11 이는 그가 너에 대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하시어 너의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실 것임이라.
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이요
13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용도 발로 짓밟으리로다.
14 그가 나를 사랑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구해 낼 것이며 그가 나의 이름을 알았으므로 내가 그를 높이리라.
15 그가 나를 부르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고난 중에 내가 그와 함께할 것이며 내가 그를 구해 내고 그를 영화롭게 하리라.
16 내가 장수로 그를 만족케 하여 내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8절, 이 약속도 이 시대 크리스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며 재림 때에야 악인의 보응을 보게 될 것입니다.
경건에 대해서 적용하자면 이 시대 크리스챤도 휴거된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다라 아마겟돈 전쟁을 하기 위해 내려온다면 "악인의 보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행해지는 헛된 것이 있나니, 곧 악인의 행위에 따라 당하는 의인들도 있고 또 의인의 행위에 따라 당하는 악인들도 있다는 것이라. 내가 말하노니 이것도 헛되도다(전 8:14).
9절, 여기서부터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직접 적용되는 구절입니다.
시편 화자는 "제가 제 믿음을 둔 그 하나님께 당신이 당신의 믿음을 두셨으므로 어떠한 재앙도 당신께 닥치지 못하리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는 몇 번이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 안에 숨고, 하나님께 마음을 터놓고,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복주시고 숨기시기를 구하는 사람으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10-12절, 앞에서 설명했듯이 이 약속들은 이 시대 성도 누구도 확고히 주장할 수 없는 성격의 것입니다. 각종 사고와 전염병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에게 닥칠 수 있으며 다가와서 그들을 죽일 수 있습니다. 대환란 성도들도 이 약속을 온전히 주장할 수 없는데 그들 중 많은 수는 목베임 당해 죽고(계 20:4) 일부는 인육으로 '먹힐' 것이기 때문입니다(사 6:13).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가리키며(11절), 그분은 '사자와 독사...젊은 사자와 용'을 밟으실 것입니다(13절).
이 시대에 누구도 자기가 구원받았거나 "올바로 살고 있다'는 이유로 시편 91:7을 자기 것으로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직접적인 교리적 적용은 그리스도께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는 그가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하시어"(11절)는 마귀가 예수 그리스도께 인용한 것인데(마 4:6) 사탄이 성경을 인용할 때는 은사주의자들처럼 문맥을 벗어나서 인용합니다. 사탄이 인용하기를 싫어하는 단어가 있습니다(마음대로, 창 3:2).
그리스도의 "길"(11절)은 하나님의 길이며(히 10:7-9) 사탄은 제때가 되기 전에 그 일들을 행하시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유혹했지만 그분이 이 구절을 이루실 때는 계 11:15; 12:6; 19:11의 때입니다.
13절, 이 짐승들은 전부 사탄과 관련있는데 "용"은 문자 그대로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붉은 용입니다(계 12:3,4). 그 존재는 욥기 41장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고 신학자들이 가르치는 대로 '악어'가 아닙니다. 붉은 용은 지금은 '빛의 천사'로도 나타나며(고후 11:14), 어느 날 이 땅 위에 사람으로 나타날 것입니다(사 14:10,16, 계 13:18).
사탄이 육화된 그 사람은 뱀의 "씨"로서(창 3:15)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짓밟혀서(사 63:1-6) 머리가 부서질 것입니다(시 68:21, 합 3:13).
1.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이름 위에 있는 한 이름을 주셨습니다(14절).
2. 그분은 사탄에게서, 죽음, 지옥, 음부로부터 구해냄을 받으십니다(14절).
3. 하나님께서는 그분에게 응답하시고 그분을 구해내시고 영화롭게 하십니다(15절).
4.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그분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딛 1:1-2, 시 31:12-17; 69:14,15; 시 8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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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놀라운 필력입니다...쫌 어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