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인가 우리 아파트단지의 어느 분이 주관하여, 공구(공동구매의 줄임 말)
하여 설치했던 품목 중에 『노 빠루』라는 방범시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주민 중 많은 분이 “빠루”라는 이 낱말을 바로 알아듣고서
주저 없이 곧바로 신청하더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서울의 보통사람이 쉽게 알아듣고 일상으로 쓰는 “빠루”라는 이 말은
그러나 표준어가 아니어서, 교양 있는(?) 사람이 쓸 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서울에 살면서 교양 있는(?) 사람들이 쓰는 말이 곧 표준어거든요.
“빠루”의 원래 이름은 영어의 Crowbar였는데, 일본인에게는 느낌이 닿지 않는
Crow(까마귀)는 빼버리고 bar만 살려서 “바루”로 재탄생 시켰다지요.
그런 “바루”가, 우리나라에 도입되면서 경음화 현상으로 “빠루”로 바뀌어서
실제로는 일상에 많이 쓰이고 있으나 표준어로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빠루”와 마찬가지로 우리 귀에 익으면서 표준어가 아닌 “몽끼”도 있지요.
영어로 Adjustable wrench 또는 Monkey spanner 라 불리던 공구가, 마찬가지로
일본을 거치면서 그들이 이해하기 쉬운 “몽끼”로 변했답니다.
집마다 하나씩 가지고 있는 『뻰찌』는 프랑스 말인 팻시(Pincer)에서 시작하여
영어의 핀설즈(Pincers)를 거쳐, 다시 일본어의 “뻰찌”로 만들어졌다지요.
문제는, 이런 것들이 실제로는 우리의 일상에서 늘 사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래어로 인정하거나 아니면 우리말을 새로 만드는 노력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교양 있는 체(?) 하려면, 가게주인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원어들을 찾아
혀가 꼬이게 말하거나, 아니면 그냥 교양 없게 “빠루”라 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영어발음 나쁘고(?) 흉내 잘 낸다고(?) 우리가 욕하는 일본인은, 선진국의 문물
을 들여오면서 자신들의 말로 재창조하여, 혀 꼬이지 않게 잘 쓰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나라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일 때, 직수입하지 않고 그들 나름대로의
해석과정을 거쳐 일본식의 이름으로 바꾸면서 재창조를 수행하는 것이지요.
반면에, 영어에 능통한(?) 우리는, 혀 꼬부라지는 영어실력 자랑하느라 그런지,
외래 문물의 이해와 재창조를 거친 우리 식의 이름 만들기에 소홀합니다.
그러더니 요즘은 한 술 더 떠서, 멀쩡한 회사이름을 아예 영어로 바꾸는가 하면
아파트 이름마저 영어나 불어 스페인어 등을 직수입하는 게 유행이지요.
얼마 전 가락(可樂)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아파트가, 하필 “헬리오시티”라는
이름으로 바뀐다는 야기를 듣고는 짜증이 나서 해 본 이야기입니다.
정신 빠진 이런 짓을 국제화라 해야 하나요, 아님 얼 빠진 짓이라 해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