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록 2막12장 (4부)
1973년에 완공한 소양강댐, 1985년에 완공한 충주댐 ,1974년에 완공한 팔당댐등 남한강 북한강을 통틀어 "청평댐"밖에 없던 그시절.
한강에 물난리가 나고 말았다.
7월 중순
찌는등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어느날
조그마한 비에도 서울은 물난리를 겪어야 하였다.
하수도 시설도 미비하고 상수원 미확보로 수도물 보급도 엉망이었던 시절.
요사이 아프리카의 흑인 나라를 연상하면 될것이다.
유일한 제1한강다리 교각 바로위까지 물이 차고 말았다(요새는 상상도 못할일 .그러나 엄연한 실화임)
한강다리가 떠내려 갈뻔한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당시 물난리가 나면 소돼지가 한강으로 떠내려오는 것을 보기도 하였다.
요사이 일기예보처럼 예고도 없이 쏟아지는 장마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여만 하였다.
몇일째 오는 비에 홍수가 나고 만것이다.
점점 불어난 한강물은 마포의 제방을 위협하였고 저지대인 뚝섬이나 잠실은 물에 잠기고 말았고
한강은 청평댐에 의지한채 홍수와 사투를 벌어야 하였다.
그당시 고지대에 살던 나는 아버지 회사가 걱정되여 회사로 달려가 보았다.
한강 근처에 있던(마포구 대흥동) 차고지에는 블록으로 담장을 쳐놓았고 내가 갔을때에는 담장 바로 앞까지 한강물이 넘실대고 있었다.
물이 차고로 범람하기 일보직전 이였다.
우리의 전재산이 날아가기 직전이였다.
나는 장마비를 맞으며 한강을 쳐다보았다.
무심한 아니 무지막지한 물은 화염처럼 혀를 낼름거렸다.
어린 내가 할수 있는 일이 없었다.
물은 담장을 타고 넘실댄다
한뼘정도 담장을 넘실대며 담장의 틈새를 노리고 있었다.
나는 그때 무서워서 아버지 회사를 나와서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코
이를 어찌할꼬,
회사가 물난리나면 우짤까. . .
어린 나는 어머니,할머니한테 하소연 하였다.
다음날 비는 멈추었고 한강물은 서서히 줄기 시작하였다.
나는 아침에 아버지보고 물어 보았다.
"아버지 회사는 괞찮아요?"
" 그래 다행히 담장 덕분에 물난리를 면했다."
그후 나는 길거리에 쌓은 블록 담장의 고마움을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담장은 도둑만 막아주는것이 아니라 ,홍수도 막아준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