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 칼국수
황 순희
그녀는 억척스레 들깨를 빻아댔다
눈물로 간을 맞춰 치대다가 접질린 날
밀반죽 잘 벼린 칼에 토막 나는 푸념들
1980년 5월 광주 공장 숙소 폐쇄되고
고향길도 갈 수 없어 친구를 따라갔제
갸 오빠 윽박지름에 사달 났제 기연치
새끼는 딸팍 생겨 오사할 주태백이
허드렛일 몇 푼 벌면 노름에 다 날리고
놔달라 애걸복걸에 돌아오는 주먹질
딴 여자 생긴 후에 포도시 벗어났어
서방인지 남방인지 웬수가 따로 없제
손샅이 물크러져도 이게 사람 사는 거지
오늘도 악착스레 들깨를 갈아댄다
움푹한 사연들은 옹심이로 동글리며
시간을 돌리고 싶어 어제를 써는 그 여자
연필 속에 밤이 있다
그들은 나무 아래 은밀하게 내통했다
수습한 저잣거리 소문이 우거져도
직립은 굽히지 말자 부러져도 괜찮아
어둠을 깎아 놓은 그늘이 촘촘하다
귀 접힌 책장마다 별똥이 매달린 채
책갈피 잠을 누른다 뾰족해진 새벽별
불면을 부추기며 새어 나온 중얼거림
짜그르 졸인 밤에 갇힌 말이 뒤척인다
뿌리를 내리지 못한 내 문장은 헐겁다
<오늘의 시조 2024년 18호>
카페 게시글
황순희
들깨 칼국수/연필 속에 밤이 있다 / 황순희
황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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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9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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