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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로 세상 바꾸기, 언어의 틀짜기 양상
- 표현 효과를 위한 수사법의 새로운 이해 -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1. 열며
1) 언어란 무엇인가?
언어는 기호와 상징의 조직화된 체계로 정의된다. 이 체계에서 기호와 상징은 모두 서로에게 연결되어 꽉 짜인 전체를 구성한다. 따라서 모든 언어는 저마다 격자, 세계관, 전망을 구성한다. 언어를 통해 세계를 보는 것은 프리즘으로 보는 것과 비슷하므로, 언어의 체계를 바꾼다면 전망을 바꾸는 셈이다. 그러나 언어의 체계는 결코 닫혀 있지 않다. 오히려 열린 체계다. 언어는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유행에 따라 새말이 추가되기도 하고 옛말이 다른 뜻을 얻기도 한다. 한글의 40개 자모는 수십만 개의 단어를 생산해낸다. 이것은 사람이 문자를 배치하고 의미를 창조할 능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가능성에는 끝이 없는 법이다.
언어는 의식을 구성한다. 언어는 세계를 이해하고 지각하는 방식을 짜냄으로, 세계에 대한 성향까지 좌우한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 세계를 달리 지각하고 혹은 구상하는 것이 가능하다. 더 극적으로 말하면 언어가 달라지면 현실도 달라진다. 요컨대 언어는 사람의 정신에 개입한다. 언어가 다르면 이해도 달라진다. 언어 이면에 서 있는 절대적인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것만 존재할 따름이다. 본질적으로 언어를 쓴다는 것은 논의하는 것이 무엇이든 지각과 이해를 구성하는 것이다. 언어 바깥으로 나가는 출구는 없다. 언어를 쓸 때마다 특정한 전망이 따라 나오며, 그것에 따라 선택, 감정의 반응, 행위가 생겨난다.
언어는 문제의 틀을 짠다. 틀짜기는 언어와 의식의 관계를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모든 문제는 언어에 의해 틀이 짜이고, 그렇게 형성된 언어는 의식의 틀을 짠다. 언어의 틀은 이해의 특정한 창문을 짜는 것이다. 언어의 쓰임새 하나하나가 문제를 지각하는 방식을 바꾼다. 그런 식의 틀짜기가 이 글의 핵심 주제다. 수사법에 능통한 훌륭한 작가는 자신만의 관점과 신념에 따라 세상의 틀을 짜는 데 성공한다. 틀짜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존재한다. 첫째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의 틀을 분석할 것, 둘째, 자신의 메시지 전달에 이로운 언어의 틀을 사용할 것, 이 두 가지 모두 언어의 틀짜기 양상에 익숙해지면 해낼 수 있다. 늘 틀을 분석하라. 그런 다음 자신이 욕망하는 감동과 설득을 가져오기 좋은 틀을 사용하라.
언어는 맥락을 따른다. 언어가 일정한 맥락 안에 있다는 뜻이다. ‘맥락’은 소통이 일어나는 장소나 공간을 지칭한다. 맥락은 클 수도 작을 수도 있고, 개인적일 수도 비개인적일 수도 있고, 공식적일 수도 비공식적일 수도 있다. 맥락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언어적 효과란 소통의 맥락을 잘 알고 거기에 적응하는 것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맥락은 다른 작가의 언어를 해석하게 해주기도 한다. 독자가 작가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작가도 독자의 언어를 이해하고자 애쓴다. 물론 언제나 쉬운 것은 아니다. 언어는 적확하게 쓸 수 있어야 잘못된 소통을 피할 수 있고, 비유적 수사를 쓸 수 있어야 감동을 줄 수 있다.
2) 수사법이란 무엇인가?
우리 문학 연구 풍토에서 수사법에 대한 논의는 아직 낯설게 느껴진다. 이러한 현상은 다음 몇 가지 사정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우리에겐 문학이란 인간의 총체적인 삶을 담고 있어, 언어를 다루는 기술에 불과한 수사법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관념이 일반적이다. 또한 굴곡의 한국현대사 속에서 문학은 항상 계몽주의적 시각에 기초하여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과정에서 언어의 미사여구에나 집착하는 것으로 보이는 수사학적 방법은 배제되기 십상이었다. 게다가 학문 연구에 있어 서구적 방법론에 대해 일종의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발생과 논의 자체가 서구적인 수사학에 경계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 근대 문학 연구에서 적지 않은 수사법 논의들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논의들은 명확한 논리나 일관된 체계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 논의 속에서 문학의 형식적 요인들, 특히 언어적인 측면에 대해 고려하고자 한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문학을 읽어내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서양의 수사법을 그대로 모방하는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전통적인 수사법을 우리 언어 토양에 맞게 나름대로 정리해야 한다. 문학에서는 뭐니뭐니해도 문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제일 크기 때문이다. 작품의 질은 문장을 어떻게 부리느냐에 따라 그 작품의 성패가 결정된다. 수필은 서술에 의한 정서적 구체화에 의해 주제 전달이 가능하므로 작품의 성공 여부가 문장력에 의해 결판이 난다. 따라서 수사법은 수필창작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효율적인 문장을 작성하는 데는 수사학이 필요하고, 그 수사방법에는 기본 원리가 있는데, 우리의 문장론에서는 강조의 원리, 비유의 원리, 상징의 원리, 변화의 원리 등을 들고 있다. 우리는 자신의 사상과 느낌 및 의도 등을 문장을 통해 다른 이에게 전달한다. 우리는 뜻과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려고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상황과 목적에 따라 상대방에게 더 잘 전달하려고 노력하게 마련이다. 어려운 개념은 쉽게, 추상적인 것은 구체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설명하려는 바를 효과적으로 이해시킬 필요가 있고,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할 것이며, 상투적인 표현에서 벗어나 좀더 참신하고 생동감 넘치는 글을 쓸 필요가 있는데, 이때 동원되는 모든 표현 수법을 수사법이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사법이란 글쓴이의 의도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어휘, 문장, 어조 상의 특수한 표현 방법이나 원칙을 가리킨다. 물론 이러한 수사적 표현은 단순히 글을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것만은 아니다. 수필가가 봉착한 문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러한 수사가 동원되는 것이다. "당신은 장미처럼 아름답다"고 하면, 상대방의 아름다움을 더욱 생동감 있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상대방의 아름다움을 강조함으로써 상대방에게 환심을 얻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수사 역시 그것 자체를 고립적으로 다루는 것은 무의미하다. 글 쓰기의 다른 항목과 마찬가지로 글의 전체 구조와 맥락 및 글 쓰는 이의 중심적인 의도와 목적에 비추어 수사의 문제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위와 같은 측면에서 비유법, 변화법, 강조법 등으로 분류되어온 이러한 수사법은 사실 일본의 분류법을 그대로 따 온 것으로서 우리 언어의 실정에는 맞지 않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분류법은 분류의 기준조차 명확치 않다는 문제가 있다. 또 종래의 경우 수사법은 변화와 강조의 요소를 복합적으로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설명 방식은 그 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부터는 수사를 (1) '개별 문장 내에서의 수사'와 (2) 특수한 문장 결합 방식에 의한 수사' 및 (3) '문맥에 의한 수사'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3. 수사법의 필요성과 효과
언어는 혁명의 무기로 활용 가능한 사회적 힘이다. 인간은 언어로 생각하므로, 언어가 바뀐다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법이 바뀌기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언어의 힘이다. 수사학의 힘이다. 말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지만 글은 생각이나 느낌을 세련되게 표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문학 작품일 경우는 작자의 생각이나 느낌이 깊고 독창적이어야 할 것이다. 수필은 아름다움이 나타나야 한다. 수필의 아름다움은 내용의 진실에서 나오기도 하고, 구성의 탄탄함에서 나오기도 하며, 그 표현의 아름다움에서 나오기도 한다. 전체 글의 아름다움은 이들이 합해져서 풍기는 것이다. 수사법은 글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기능과 동시에 작가가 글을 써나가는 과정에서 봉착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기능을 동시에 한다.
대상이 있고 나서야 그것을 가리키는 말이 있는 법이다. 말이 있기에 대상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언어는 지칭하는 기능 이상의 것이 존재한다. 언어는 실제로 생각, 지각, 경험, 현실을 창조한다. 이 창조성이야말로 언어의 힘이다. 작가는 감정이나 기분 같이 객관화되기 어려운 마음의 상태를 독자에게 눈에 보이듯이, 손에 잡히듯이 느끼게 하고 싶을 때 비유라는 표현의 기교, 즉 창조성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외로움'이란 객관화되기 어려운 마음의 상태로서 이를 글로 표현할 때에는 이 말만을 쓰면 그 뜻이 선명히 잡히지 않는다. 이 경우 '외로움은 석양을 등지고 서 있는 산마루의 전신주'와 같이 다른 구체적인 정경을 끌어다가 이 말을 도와주면 우리는 '외로움'을 확실히 바라보거나 느낄 수 있다. 여기서 사용된 수사법은 사용된 언어를 문학 언어답게 한다. 문학 언어로 쓰여질 때, 문학다운 글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관념화된 것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문학적 수법이기 때문이다.
수사법의 요체는 비유다. 문학은 곧 비유다. 비유를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문학가가 될 수가 없을 것이다. 수필의 문장이 '전달'보다 '표현'에 그 목적이 있다는 사실과 수필 문장의 본질이 직접화법보다 간접화법에 있다는 사실에서 볼 때 수필은 곧 비유라는 의미로 해석해도 무방할 정도다. 비유는 단순히 문장을 아름답게 꾸미거나 수사적 기교를 부리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비유를 통해서 언어에 새로운 생명을 공급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분명히 좋은 비유는 창조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일상적 언어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만 비유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비유란 미지의 것을 이해하기 위해 미지의 것을 기지의 것으로 바꾸어 부르는 양식이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미지는 주지이고, 기지는 매체로, 이 둘의 결합 구조가 바로 비유다. 문학의 비유는 일상적 비유를 뛰어넘는 참신성이 있어야 한다. 즉 창조적 비유여야 할 것이다. '내 마음은 호수요'보다는 '내 마음은 낙엽이요'가 더 참신한 비유다. 마음과 호수는 유사성이 강해서 그렇게 참신한 비유로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마음이 낙엽으로 전이되어 잠깐 그대의 뜰에 머물다 바람이 일면 떠나가야 하는 운명으로 제시된 '내 마음은 낙엽이요'가 두 대상 사이에 개입된 상상력의 진폭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더 참신하다고 하겠다.
언어를 바꾸는 것은 생각을 바꾸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수사학의 중요한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는 작가가 쓰는 언어를 바꾸어야 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 세상을 바꾸자는 것이다. 비유는 수사적 기능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세계, 진리의 세계를 선명하게 조명해 주는 힘이 있다. 유독 종교 경전들이 비유로 가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비유는 존재의 이동으로 새로운 의미, 정서적 충격, 새로운 이미지 등 다양한 효과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비유의 효과는 다층적이다. 결국 비유는 직유든 은유든 언어의 이동 양식인 셈이다. 즉 언어의 이동에 매개어를 사용하면 직유고, 그렇지 않으면 은유가 된다. 비유는 어떤 내용을 더 분명히, 더 멋지게, 더 감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사법의 일종이다. 그러나 너무 상투적인 비유를 쓰면 오히려 글의 효과를 떨어뜨릴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하겠다.
1) 개별 문장 내에서의 수사
개별 문장 내에서의 수사란, 한 문장 내에서 단어들을 특수하게 사용하거나 특수하게 연결함으로써 표현상의 효과를 얻는 수사법을 말한다. 그리하여 그 단어들이 여러 가지 의미를 동시에 함축하게 만들기도 하고, 다른 단어를 대신 사용하여 표현하기도 하며, 사실을 지나치게 과장하여 표현하는가 하면 불쾌한 느낌을 주는 요소를 배제하여 완곡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개별 문장 내에서의 수사로는 비유법, 대용법, 과장법, 빗대기법, 완곡어법, 세묘법, 속담인용법, 상징법 등이 있다. 송명화 수필가의 작품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다.
<예문1>
별은 떠나보낸 내 이십대다. 크리스탈 샹들리에처럼 흩뿌리는 빛줄기 속에 발랄한 웃음소리가 통통 튀어나와서 어울리고 부딪히며 생동하고 있다. 양치기 소년과 스테파니 아가씨가 함께 바라보던 그 별들이다. 밤늦게 책을 읽다 문득 창을 열었을 때 순수한 가슴에 보석처럼 빛 뿌리던 바로 그 별들이다. (“별”)
밑줄 친 표현은 작가의 정서적인 태도를 감각적이고 복합적으로 드러내는 미적인 효과를 발휘하고 있고, 이럴 경우에는 친숙하게 보이던 것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질 정도의 독창적인 보조관념을 사용하는 편이 좋다. 왜냐 하면 문학적인 글은 대상에 대한 상투적인 인식, 곧 자동화된 인식을 깨트리고 그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예문1은 정서적인 결합을 하고 있고, 이럴 때는 낯설고 돌발적인 것이 좋다. 정서적 결합의 직유는 독자의 잠재의식 속에 내재에 있던 독자의 상상력을 왕성하게 작동시키고, 섬세한 감각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예문2>
축복처럼 휘날리는 눈송이들이 불러대는 찬란한 축가 속에 그 사소한 설치미술은 빛을 발하고 있다. 절망과 고독에 절여진 한 남자가 눈천사의 품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그 남자는 누군가 효과가 영험한 내용물만 마시고 내버린 박카스 병이었다. 며칠 전 그는 지금 설치미술이 자리한 바로 그곳 지하철 난간에 위태롭게 걸터앉아 있었다. 꼬질한 옷차림을 하고 술에 절은 듯 목을 떨어뜨린 채 상체를 흔들며 자리를 떨 줄 몰랐다. ("설이")
위의 글은 실직자의 구체적인 삶의 현실에 밀착된 글이다. 이 글은 구체적인 실직자들의 삶 내부에서만 발견 가능한 보조관념이 사용됨으로써, 경험을 하지 않은 다른 이가 어떤 상황에 대해 관념적으로 쓴 글에 비해 깊은 진실성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사용된 '절망과 고독에 절여진'이라는 보조관념이나 "누군가 효과가 영험한 내용물만 마시고 내버린"과 같은 보조 관념은 눈 속에 쌓여있는 박카스 병이 실직자의 삶을 내면으로 보이게 하는 당위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표현에는 졸지에 설치미술가가 되어버린 실직자의 삶이 위협당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현실인식이 깃들어 있다. 자연처럼 우리도 깊은 상처로 인해 끙끙대는 이들의 불행을 두텁게 감싸 조금씩 아물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게 그의 힘겨운 삶도 제자리를 찾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작가의 인간애가 직유의 도움을 받아 ‘그의 삶이 다시 물꼬를 터서 흘렀으면’하는 작가의 소망에 설득력을 부여하였다. 위의 글은 논리적인 결합을 하고 있다. 이럴 때는 친숙하고 평범한 것이 좋다. 논리적 결합의 비유는 설득력을 발휘하는 역할을 한다.
<예문3>
밤은 우물 속이다. 시간과 일들이 혼란스럽기만 하던 사춘기 때였다. 온 몸이 매달려서 눌러야 물이 조로록 나오던 거칠게 생긴 펌프를 설치한 우물 뚜껑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을 때, 수면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 흔들림 없는 비장한 몸짓이라니. 시집가는 고모의 빌로오드 치맛자락처럼 매끄럽던 물의 정지된 고요함에 이끌려 몇 번이고 우물 곁에 섰지만 다시는 그 뚜껑을 열어보지 못하였다. 그것은 도망이라도 갈까봐 자물쇠를 꼭꼭 채운 성장기의 기록처럼 은밀하였다. 그저 무의식에 깃든 꿈이 되었다.(“밤”)
밑줄 친 글은 직유가 이해를 돕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이 수필은 밤의 속성을 묘사하는 글인데, 여기서 '우물 속'은 직유에 의하여 '자물쇠를 꼭꼭 채운 성장기의 기록'과 연결되고 있다. 그럼으로써 우물 속이 독자로 하여금 상상적으로나마 은밀한 것을 체험케 하는 공간임을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게끔 해 주고 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직유법의 기능 및 효과는 세 가지 정도를 들 수 있다. 첫째 기능은 글쓴이의 정서적 태도를 복합적으로 표현하는 미적 기능이고, 둘째는 주장하는 바의 설득력을 높이는 기능이며, 셋째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좀 더 쉽게 이해시키는 기능이다. 예문2는 논리적 결합을 하고 있다.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할 경우에는 평범한 것이 좋다.
<예문4>
"보는 어머니의 비밀일기장이요, 사진첩이다. 공중에서 살짝 털어 앞쪽 양끝을 잡고 놓으면 살포시 자리 잡는 정사각형의 넓이 속에 온갖 이야기들이 피어난다. 꽃 다져 손가락마다 동여매던 댕기머리 시절의 친구들 얼굴, 혼인날 새벽 삽창을 열고 앞산을 대면한 채 남몰래 한 자신과의 맹세, 층층시하 매운 시집살이 견디던 눈물받이 행주치마, 무디기 그지없던 지아비가 남 말하듯 툭 던진 한 마디 정담, 사랑스런 내 자식 첫 월급 정표인 이중직 내의, 아들이 머리에 씌워준 사각모의 기억까지 차곡차곡 내려앉는다. ("보")
누구나 ‘보자기’에서 향토적 서정을 느낀다. 그러나 누구나 송명화처럼 ‘보’를 "어머니의 비밀일기장이요, 사진첩"이라고 인식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누구나 범상하게 표현하기 쉬운 ‘보자기’를 의도적으로 낯설게 표현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보자기라는 대상이 비로소 생동감을 지니게 된다. 이에 따라 읽는 이도 이러한 은유적 표현을 통해서 보자기의 신선함과 소중함을 새삼 새롭게 느끼게 된다. 정서적 결합인 경우 미적인 기능 강화한다.
그런데 비유에 있어서 원관념과 보조 관념이 논리적으로 연결되는 경우에는 두 가지가 유사성으로 맺어지지만, 그것이 정서적으로 연결되는 경우에는 그에 못지않게 이질성이 양자에 끼어들게 되어 미적인 긴장감이 감돌게 된다. 윗글의 경우에도 보자기와 비밀일기장, 사진첩 사이의 유사성은 분명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하나의 유사성이 아닌 여러 가지 유사성이 양자를 이어주고 있는 듯하기도 하고, 유사성과 이질성이 역방향으로 서로 팽팽하게 줄다리기하는 듯도 하여 그 긴장감이 배가되고 있다.
<예문5>
만학의 한 대학생이 죽었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수순을 자연스레 밟지 못하고 5개월이나 혼자서 방 안에 누워 환골 탈태하고 있었다. 부모를 떠나 자취를 하고, 학비를 벌기 위해 노동을 하고, 허리를 다쳐 복대를 한 채 영양실조의 상태로 유명을 달리하였다. 그가 찬 방바닥에 마지막 숨을 몰아쉰다. 점점 힘이 빠지고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형제들, 친구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르는데 그 이름을 부를 힘이 없다. 옆방의 학우들에게 연락하고 싶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 주위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삶의 군더더기로 여겼던 탓에 이 시간에 자신을 찾아줄 이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한스러워 한 줄기 눈물이 바닥을 적신다. 그리고 눈을 감는다. ("고도")
현대 사회의 단절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몸부림치는 작중 인물의 절망적 처지를 바다 한 가운데 외롭게 떠 있는 섬, ‘고도’에 비유하고 있는 수필이다. 이러한 비유는 거대한 사회조직이나 제도의 틀 속에 얽매인 현대인의 소외된 상태를 표현하는 데 적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작중 인물이 주위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삶의 군더더기로 여겼던 탓에 이 시간에 자신을 찾아줄 이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한스러워 흘리는 눈물로 적셔진 방바닥이 ‘바다’에 비유되고, 주검이 망망대해에 외롭게 앉은 '섬'에 비유되고 있는데, 이 비유는 ‘바다’와 ‘섬’이라는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자연물의 속성과 관계를 통해서 외부와 단절된 절망적 소외 상황을 적절히 암시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논리적 결합인 경우 설득력을 높이는 기능을 한다.
11) 특수한 문장 결합 방식에 의한 수사
'특수한 문장 결합 방식에 의한 수사'는 문장과 문장을 특수한 방식으로 결합함으로써 일정한 효과가 나타나도록 하는 수사법을 말한다. 서로 반복되는 뜻을 지닌 문장을 나란히 배열함으로써 차이점을 강조하는 대조법, 내용상 일정한 유사성을 지닌 문장들을 열거하는 열거법, 똑 같은 문장이나 어구를 반복하는 반복법, 정도를 점차 강화시켜 가며 문장을 배열하는 점층법, 같은 구조의 문장을 운율적으로 서로 대응시키는 대구법, 어조를 급격하게 바꾸는 억양법, 앞 문장의 끝과 뒷 문장의 머리 부분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연쇄법, 물어 보고 대답하는 형식의 문답법, 문장 성분의 배열 순서나 문장 자체를 뒤바꾸는 도치법, 문장의 어느 한 성분을 생략하여 여운을 남기는 생략법 등이 이에 속한다.
수필은 비교와 대조 기법만으로도 멋진 수필을 쓸 수 있다. 비교와 대조만 가지고도 수필의 전개는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쉽게 한 곳으로 결론이 나지 않는 쟁점으로 점철되어 있다. 세상의 모든 가치나 현상은 대립항을 가지고 존재한다. 이런 사실을 인식하고 상호 비교하는 가운데 자신이 담고자 하는 뜻을 함축하면 주제의식을 인상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 비교와 대조는 인식의 어머니다. 수필의 전개는 현상을 상호 대비하는 가운데 나의 사상이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논리적인 사고의 과정이다. 수필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수필은 두 가지 사실의 비교와 대조만 가지고도 훌륭한 주제의식을 구체화할 수 있다.
<예문6>
'뷰티풀 마인드'의 마지막 장면이 아름다운 울림으로 남는다. 영화관 밖으로 나오자, 흠뻑 젖었던 눈시울이 햇살에 부셨다. 가늘게 뜬 눈에는 광고 문안 그대로 영화의 바다에 빠진 인파로 PIF광장이 넘칠 지경이다. 그 물결에 휩쓸려 가다 멈춰서고 보니 남포로 건널목이다. 떠밀리듯 횡단보도를 건너자, 짙은 비린내가 바로 자갈치 시장이라고 알린다. 비린내뿐만 아니라 부산의 정서까지 배어 있는 자갈치만의 냄새가 싫지 않다.(윤자명, "남포로 건너기")
남포로를 사이에 두고 대비를 이루고 있는 극장가와 자갈치 시장을 대비시키고 있다. 한 공간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작가는 정신 영역과 물질 영역, 문화와 생존의 영역이라는 상반된 속성을 대조하여 서술하고 있는 글이다.
대조법이란 서로 모순되는 사물이나 같은 사물의 모순되는 측면을 대비하여 묘사하고 설명하는 수사법을 말한다. 비교법이 두 대상 사이의 공통점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대조법은 두 대상 사이의 대립 또는 모순 관계를 밝혀냄으로써 현상의 본질을 보다 명확히 드러내려는 수사법이라 할 수 있다.
<예문7>
지붕 한켠에 구멍이 뚫렸다. 서러운 하늘이 꺼진 건물 바닥을 내려다본다. 성급하게 박힌 돌들이 엮어낸 흙담의 틈바구니에는 가느다란 외떡잎식물이 하늘거리고 무너져 내린 공간을 통해 멀리 바다가 건너다보인다. 녹슨 철조망 군데군데 국방색 군용막사 헝겊 조각이 바람에 깃발처럼 흔들린다. 후미진 곳곳에 피로 쓴 낙서의 흔적이 난수표처럼 어지럽고 쌓인 돌무더기 근처로 낡은 양은밥그릇이나 흙으로 못다 빚은 주름진 어머니상이 나뒹군다.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벽체에서 붉은 흙가루가 사그라져 부연 먼지로 떠돈다. 그런 장면을 상상하였다. 철 이른 잠자리 한 마리 낡은 사이렌 위에 무심하게 앉아 삶의 우아성을 잠시 잠재우는 그런 장면을 기대하였다, ("폭풍의 언덕")
수필가 송명화의 "폭풍의 언덕"에서 인용한 글이다. 이 대목은 상상의 틀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언어를 발견하게 하는 예술적 산문이다. 글쓴이가 유월을 맞아 전적지 순례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거제포로수용소’를 찾아 가면서 수용소의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문구는 상상이 부족한 수필의 한계를 극복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장면의 나열은 단락의 마지막 문장 "철 이른 잠자리 한 마리 낡은 사이렌 위에 무심하게 앉아 삶의 우아성을 잠시 잠재우는 그런 장면을 기대하였다"라는 문장과 관련을 맺으면서, 작가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열거법은 구체성과 정밀성을 확보하는 가운데 글쓴이의 집필 의도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러한 열거법을 구사할 때에는 열거하는 사물이나 현상들이 글쓴이가 의도한 단일한 범주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열거법의 효과는 전체가 하나의 집약된 의미로 강한 표현력을 갖는다는 것과 비슷한 상황을 반복함으로써 문장에 변화를 주고 뜻을 강조하며 리듬을 고르게 한다.
111) 문맥에 의한 수사
'문맥에 의한 수사는 단어와 단어의 특수한 결합이나, 문장과 문장의 특수한 연결 방식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고, 문맥에 의존하여 단어나 문장이 특수한 의미와 효과를 가지도록 하는 수사법을 말한다. 표면적으로는 의문문이지만 문맥에 따라 강조의 의미를 띤 평서문으로 읽히는 설의법, 표면적으로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의미들을 이면적으로는 거꾸로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의미로 파악하게 하는 반어법, 표면적으로는 단어와 단어가 모순되게 연결되지만 이면적으로는 타당성을 지니게 되는 역설법, 또 표면적으로는 시치미를 떼면서도 이면적으로는 대상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풍자하는 풍유법 등이 이에 속한다. 이와 같이 문맥에 의한 수사는 표면적 의미와 이면적 의미가 서로 대립을 이루는 특징을 갖는다.
<예문8>
어머니는 큰댁에서는 작은 아들네 간다고 보따리를 챙기고, 작은 아들네에서는 큰 아들네 가야 한다고 서둘러 문고리를 흔든다. 세월에 시달린 시간을 잊고 다른 사고의 틀에 사로잡혀 버린 지금에 와서도 생각의 반경은 오로지 자식들 주위를 맴돈다. 어머니는 혹시 아침마다 보에 자식을 싸는 게 아닐까. 머리카락 희끗희끗한 자식은 어머니의 품에 머리 정도나 싸안길까. ("보")
송명화의 <보>의 일부이다. 여기서 글쓴이는 치매에 걸린 이유로 자식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친구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면서 며느리 입장에 있는 친구의 고통스런 삶과 치매 걸린 노인의 안타까운 자식 사랑의 마음을 서글프게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작가는 “어머니는 혹시 아침마다 보에 자식을 싸는 게 아닐까. 머리카락 희끗희끗한 자식은 어머니의 품에 머리 정도나 싸안길까”하는 진술을 통해 어머니의 자식 사랑에 대한 원초적인 마음을 설의법을 사용함으로써 강조하고 있다. "아닐까", “싸안길까”라는 의문문은 형식상의 의문문일 뿐이며, 내용상으로 전자는 어머니의 원초적 자식 사랑을 강조하는 표현이고, 후자는 이런 어머니의 본질적 사랑에 따라가지 못하는 자식들의 마음을 비판적으로 보는 표현이다. 설의법은 독자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결론을 의문형 종결 어미로 끝나는 의문문으로 표현함으로써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 강력하게 표현한다.
<예문9>
경이는 또 이 동네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로 불량 소년이다. 경이는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나면, 이 추운 겨울에도 도무지 집에 붙어 있지를 않는다. 어느 새 뛰쳐나와서는 이웃집을 쏘다닌다. 어떤 집에 가서는 밥을 내라 해서 먹고, 어떤 집에 가서는 남의 자명종을 낱낱이 해부해 놓고, 또 어떤 집에 가서는 남의 색시 분갑, 크림 병을 둘러엎어 놓고 부숴 놓곤 한다. 바로 뒤에 있는 내 집이 이 악소년의 습격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양하, "경이, 경이")
여기서 작가는 경이라는 어린이를 '불량소년', '악소년' 등으로 나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작가는 경이에게 애정을 듬뿍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면적으로 이 표현들은 '비록 번잡스럽고 말썽은 좀 부리지만 그래도 퍽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아이'라는 좋은 뜻으로 이해해야 된다. 반어법이다. 이는 표면에 나타난 의미와 이면에 숨은 의미가 서로 상반되도록 함으로써 의미를 강조하는 수사법이다. 겉으로는 나쁘게 이야기하는 듯하면서 이면적으로는 긍정적인 의미를 담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예문10>
(1)성인의 가르침은 알기 쉽다. (2)그런데 성인의 가르침을 연구하는 학자가 성인의 가르침을 어렵게 한다. (3)학자는 성인의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연구하지 않고, 성인의 가르침을 나타낸 말을 복잡하게 따지기 때문이다. (법정, "인형과 인간")
여기서 둘째 문장이 역설에 해당한다. 연구는 연구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을 알아내려는 활동이다. 알기 쉬운 것을 모르게 하는 활동은 연구의 본래 목적에 어긋난다. (2)와 같은 활동은 독자의 상식이나 기대에 어긋나기 때문에 (2)와 같은 말은 거짓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1)과 (3)의 문맥에 의하여, 거짓 같은 (2)의 말이 참이 되므로 (2)는 파라독스다. 역설은 처음에 듣거나 읽을 때 정상적인 경험과 보편적인 지식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거나 거짓처럼 보이지만, 한참 따져보면 참을 뜻하는 표현이다. 역설은 사실과 모순되는 듯하기 때문에 독자를 당황하고 긴장하게 한다. 그리하여 주의를 끌고 의미를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수사법은 삶의 양면성을 동시에 포착하거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초논리적 진실을 표현하는 데에 동원되기도 한다.
<예문11>
시골 부잣집의 주인 영감 생일이 다가오자, 그 집에 살고 있는 동물들이 회의를 열었다. 누가 잔치 상에 오를 것인가를 토론하기 위해서다.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소다. "지금은 농사일이 한창 바쁠 때니 설마 나를 잡지는 않을 거야" 그 말을 들은 말이 말했다. "주인은 나를 타고 다니지. 아무리 주인이 바보라고 해도 나를 잡아먹고 걸어 다니지는 않겠지" 한 동안 말의 얘기를 듣던 양이 말했다. "나는 곧 새기를 낳아 주인을 돈 벌게 해 줄 거야. 주인은 내 젖을 먹고 건강을 유지하며 털까지 깎아 팔아 돈을 모으는데 나를 잡겠어?" 암탉이 꼬꼬 대며 수다를 떤다. "나는 알을 낳고 병아리를 까서 주인을 위해 봉사하는데, 나는 예외야" 먼 산을 바라보던 개가 입을 연다. "나는 주인을 위해 밤새워 도둑을 지킨다. 내가 없으면, 이 집은 도둑들이 들끓을 걸" 이때 돼지가 한숨을 쉰다. "죽을 놈은 나밖에 없구나" (이상헌, "정년 이후)
이 수필은 풍자성을 지닌 교훈적인 글이다. 동물들의 자기 합리화 이야기를 나열하면서, 돼지의 "죽을 놈은 나밖에 없구나"라는 표현을 통해 기업의 감원 열풍 속에서 능력도 없고 백그라운드도 없는 사람들의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너나 없이 자신이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영악한 직원들은 논리적 근거를 대면서 설마 자신은 감원 대상이 안 될 것으로 자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돼지 같은 영악하지 못하고 자신이 하는 일이 회사에 도움이 되는지를 계량하지도 못하고, 식량만 축낸다고 생각하는 자포자기형 인간들의 비애를 우화를 사용하여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풍유법은 상대방의 부정적 속성을 직접 이야기하기 곤란한 경우, 우화나 일화, 경구 등을 이용하여 간접적으로 표현하거나 아니면 독립된 이야기를 구성하여 대상을 희화화시킴으로써 대상의 부정적 속성을 확대하여 풍자하거나 이해를 쉽게 하는 수법을 말한다.
3. 닫으며
이상으로 언어로 세상 바꾸기 차원에서 언어의 틀짜기 양상을 전통 수사법 갈래의 비판적 고찰을 통해 알아보았다. 문장과 문체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작품의 형식과 내용에 걸맞게 늘 변용시켜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주제와 구조, 분위기에 따라 언어의 형식도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수사법은 수사를 고립적으로 다루어옴으로써 이러한 작가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그리고 수사는 단순히 글을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만은 아니다. 글 쓰는 이가 봉착한 문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수사가 동원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수사법이 변화와 강조를 동시에 나타내기 때문에 종전처럼, 수사법을 비유법, 변화법, 강조법 등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하겠다. 수식 자체에 매달려서 수사가 지나치게 적절하지 못하면 문장은 본말이 거꾸로 될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수필 문장의 수사는 어디까지나 진실성과 진솔성을 벗어나서는 아니 된다.
수사는 표면적으로는 언어간 이동되는 단순한 현상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두 대상이 만나서 관계를 맺는 두 개의 플러스가 아니라 두 개의 곱하기가 될 만큼 엄청난 의미와 정서적 증폭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언어의 원자 폭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효과의 극대화는 물론, 인습적인 수사가 아닌 참신한 창조적 수사일 때 드러난다는 것이다. 갈등이 없는 수필은 단조로움을 주기 쉽고, 입체감 있는 플롯이 없어 내용 전개가 평면적으로 흐르기 쉬운 수필은 독자들에게 권태감을 주기 쉽다. 아무리 고량 진미라도 늘 먹으면 신물이 나고 듣기 좋은 콧노래도 계속 들으면 범상해지는 법이다. 따라서 수사법을 통한 낯설게 하기는 수필문의 표현 효과를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수사법의 새로운 이해를 통해 수필 쓰기에 있어서 표현 효과를 극대화한다면, 미적 구조로서의 수필이 갖는 특성이 제대로 발휘되어 고상한 쾌락을 독자에게 안겨 줄 뿐만 아니라 주제 의미화의 취약성을 극복하는 데도 도움을 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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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근]
88년 월간 <동양문학> 등단, <경북신문>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0 중국연변대 초청 수필특강(중국 연변)
2016 국제PEN토론토지부 초청 문학특강(캐나다 토론토)
2016 미주 중앙일보 주최 문학특강(미국 달라스)
2018 해외한국문학학술강연 (영국 런던)
2018 미주 중앙일보 주최 문학특강(미국 달라스)
2019 한국문협 인니지부 초청 특강(인도네시아 자카르타)
2021 미주 LA한국문인협회 초청 문학특강
현) 대신대학원대학교 문학언어치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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