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묵상
2022년 4월 21일 목요일
시편 55편
다윗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현악에 맞춘 노래
1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
2 내게 굽히사 응답하소서 내가 근심으로 편하지 못하여 탄식하오니
3 이는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 때문이라 그들이 죄악을 내게 더하며 노하여 나를 핍박하나이다
4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도다
5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
6 나는 말하기를 만일 내게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7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머무르리로다 (셀라)
8 내가 나의 피난처로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 하였도다
9 내가 성내에서 강포와 분쟁을 보았사오니 주여 그들을 멸하소서 그들의 혀를 잘라 버리소서
10 그들이 주야로 성벽 위에 두루 다니니 성 중에는 죄악과 재난이 있으며
11 악독이 그 중에 있고 압박과 속임수가 그 거리를 떠나지 아니하도다
12 나를 책망하는 자는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13 그는 곧 너로다 나의 동료, 나의 친구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14 우리가 같이 재미있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 하여 하나님의 집 안에서 다녔도다
15 사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임하여 산 채로 스올에 내려갈지어다 이는 악독이 그들의 거처에 있고 그들 가운데에 있음이로다
16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17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18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그가 내 생명을 구원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19 옛부터 계시는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들을 낮추시리이다 (셀라) 그들은 변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니이다
20 그는 손을 들어 자기와 화목한 자를 치고 그의 언약을 배반하였도다
21 그의 입은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그의 마음은 전쟁이요 그의 말은 기름보다 유하나 실상은 뽑힌 칼이로다
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23 하나님이여 주께서 그들로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시리이다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은 그들의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나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시편 5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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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친구의 배신으로 마음이 쓰라릴 때
시편 55편은 다윗의 시로서 가까운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고 그 고통 가운데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다윗은 날개가 있다면 멀리 날아가서 광야 같은 곳에 숨고 싶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원수로부터 들려오는 그 비방과 모함이 얼마나 가슴을 후벼 파는 고통이었는지 제발 그들의 혀를 잘라버려 주시라고 기도합니다(9절).
사실 다윗은 사울의 비방과 위협을 십년 동안 견딘 바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하는 고통은 원수가 아니라 가까운 동무요 친구의 배신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 친구들은 전에 다윗과 함께 재미있게 의논하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함께 다녔습니다.
다윗을 고통스럽게 한 그의 친구들은 누구였을까요? 그의 아들 압살롬이었을까요? 하지만 압살롬이 죽었을 때 다윗은 슬피 울며 괴로워했습니다. 다윗을 배신한 친구는 아마 그의 군대장관 요압이 아니었을까요? 저는 지난 2018년에 다윗과 요압에 대하여 자료를 모은 바 있습니다:
참고: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의 삶
https://cafe.daum.net/Wellspring/VNxu/15
요압은 다윗의 심복 중에 심복이며, 그의 친족(조카)였습니다. 하지만 요압은 다윗의 명을 어기고 압살롬을 죽였으며,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였고 다윗의 아들 아도니야가 반란을 일으킬 때 거기에 동참했습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길 때 요압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죽을 때까지도 자신을 괴롭게 한 가까운 친구였던 요압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를 제거한 이유가 아들 솔로몬의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함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살다 보면 뜻을 함께 하던 이들과 헤어질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이별은 환경의 변화로 인한 것이고, 어떤 이별은 달라진 상황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별 과정에서 비방과 험담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대적의 칼보다 더 큰 고통을 입히기 때문입니다(시 55:21). 이별이나 결별이 아쉽고 서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또 다시 만날 것입니다. 그러니 다음에 기쁨으로 만날 수 있도록 좋은 이별을 해야 합니다.
어젯밤에 시편 54편을 묵상하면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 가운데 과거에 어떤 일로 관계가 어긋난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을 축복했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반갑게 인사하고 악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관계가 소원해진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그들을 위해 더 많이 기도를 드려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기도가 쌓이면 우리 사이에 더 좋은 교제의 문도 열릴 것이라 기대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임하는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7:21). 여기서 말하는 ‘너희 안에’란 ‘너희 마음 속’(in your heart)을 의미하기도 하며 동시에 ‘너희들 사이’(among you or between you)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음식 문제로 다투는 교회에게 조언하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문제로 다투는 세상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롬 14:17). 이것은 모두 인간관계 속에서 누리는 복락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의무와 책임을 다하여 떳떳하게 사는 것이 의로움이며, 서로를 존중하면서 협력하는 것이 평강이고, 그 결과로 함께 기뻐하는 것이 희락이라면, 하나님 나라는 우리 사이에 임한다고 하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일을 위하여 힘을 모으는 일에 나서는 모든 이들을 축복하고 응원합니다. 그리고 어그러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기도하며 노력하는 이들에게 인복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