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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김정식목사/사랑에는 면허증이 필요하다 (아가 2:8-13)
로마 마담 뚜가 랍비를 찾아왔답니다. “당신의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면서요? 그 하나님이 지금은 무얼 합니까?” “지금은 남녀 짝을 찾아주려고 애쓰고 계십니다.” “예~이, 그런 일은 나도 하는데.”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하나님에게 그 일은 홍해를 가르는 일만큼 어렵답니다.”
로마 여인은 돌아가서 부지런히 학력, 가문, 재산, 미모, 키, 열쇠 등등 그러나 아무리 잘 맞춰주어도 행복하게 살기는커녕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서로를 괴롭히며 싸우며 원수가 됩니다. 다시 랍비를 찾아왔습니다. “짝지어 준다고 다 짝이 되는 건 아닌가 봐요!” “이 세상을 창조하기 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사람 짝지어 주는 일이랍니다.”
왜 그렇게 힘드냐? 왜 안 맞는다고 싸우냐? 여성은 남성의 갈비뼈를 뽑아서 만들었지만 남․여성이 서로 없는 쪽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잘 맞도록 정 반대 것을 준비시켰습니다. 화성에서 온 남성, 금성에서 온 여성처럼 다르다는 것입니다.
남성은 종족확산본능입니다. 열 여자 마다하지 않지요. 여성은 혈통보호본능입니다. 내 자식들이 한 혈통이라야 그 형제들이 경쟁을 해도, 싸워도 공평한 보호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남성은 육체를 만져 주기를 원하고 여성은 마음을 만져 주기를 원하지요. 남성의 육체는 항상 외로우니까 어슬렁 어슬렁 애인 사냥에 나섭니다. 정성을 다 쏟아 여성의 마음을 얻고 정복했다 싶으면 코 뀔까 봐 겁이 덜컥 나는 거예요. 도망갈 궁리만 하는 거지요. 외로운 늑대본성이라 심리학자들은 말하지요,
여성은 찬 바람이예요. 인내심을 갖고 정성을 쏟으면 ‘내 일생을 맡겨도 되겠다.’싶을 때 마음을 엽니다. 그러나 생체의 리듬이 배란과 관계가 되어 상승했다가, 예민해져서 신경질 내고, 우울증에 빠지는 하향곡선을 그으며 up & dawn 을 반복 합니다. 고로 원리를 모르면 싸우지요.
아가서는 솔로몬의 술람미 여인에 대한 사랑 노래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랑 되시는 우리 주님이 신부되는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몸을 죄 값으로 내어주셔 목숨으로 구원한 영혼 사랑의 노래입니다.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은 이 아가서를 암송하고 자랍니다. 청춘남녀가 만나도 이 아가서로 사랑을 고백합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을 어떻게 성장시키는지 사랑을 어떻게 지키는지를 아가서로 배웁니다.
운전에 면허가 있듯, 사랑도 면허가 있어야 합니다. 옛날엔 가난이 스승이 되어 양보와 이해와 사랑과 존경과 견딤을 가르쳤어요. 양반가에선 어머니가 늑대 같은 남성을 내 치마폭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비법을 가르쳤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사랑을 가르치지 않아요. 그저 본능적인 성적 끌림과 자기 편한 대로 상대를 이용해 먹으려니 세계 이혼 일등국이 되지요. 사랑도 연단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슴을 키워야 합니다. 사랑하는 생각의 기능을 훈련해야 합니다. 아가서가 주시는 은혜로 사랑을 품고 사랑을 키우는 남촌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일단 서로가 끌려야 합니다.
안 끌리는 사람. ◈나대로 형 ~무슨 일이든 자기 멋대로․․․. 남은 절대로 고려하는 법이 없는 고집통. ◈마마보이 형 ~뭐하나 결정 못하고 꼭 엄마에게 물어보는 타입. ◈라디오 형 ~아는 것도 많고, 입담도 좋아 혼자만 일방적으로 계속 떠드는 타입. ◈벽창호 형 ~여자는 종달새처럼 쉴 새 없이 지저귀는데 무표정 무반응 무응답. ◈니껀 니꺼, 내껀 내꺼형~ “더치페이 합시다.” 정나미 떨어지는 남자래요.
끌리는 사람~ 고대: 견우~ 소를 몰아 밭을 가는 남자. 중세: 두목형~ 말없고, 선이 굵고 힘센 남자. 근대: 학력 높고, 직장 좋은 남자. 현대: 매끈하고, 유머 있고, 가사일 잘 돕는 남자. 여자~ 고대: 직녀, 바느질, 음식 솜씨. 중세: 요조숙녀. 근대: A`B`C`D`E. 현대: 섹시한 여자. 일명 쭉쭉 빵빵. 실속이 없지요.
8)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빨리 달려갑니다. 만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억제합니까? 산이던 물이던 빨리 달립니다. 연애의 속성입니다.
다윗은 성전을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시122:6-7)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 137:5)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 지로다. 성전을 사모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범죄 했을 때 왕의 자리에선 쫓겨나게 될지라도 성전 문지기라도 하게 해달라고 매달렸습니다. 참으로 성전을 사랑한, 성전을 가까이 한 왕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늘 가까이 함께 계셨습니다. 승리의 비결이올시다.
예레미야는 안타깝게 (렘 6:8)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마음이 너를 싫어하고 너로 황무케 하여 거민이 없는 땅을 만들리라.” 외쳤습니다. 예수님도 (마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자식을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우셨지요. [예루살렘]은 성도를 일컫는 말입니다. 성령 받은 제자들은 성전을 가까이 했습니다. (행 3: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새, 때맞춰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주님을 사랑합니까? 끌림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교회에, 말씀에, 예배에, 성도들을 만남에 이끌림이 있어야 합니다. 정에 죽고 사는 한국인들은 담임목사에게 끌려야 신앙이 바로 서지요. 말씀으로 권면 받으면 고맙고, 말씀으로 책망 받으면 감사하고, 그동안 찜찜했던 삶을 털어버릴 기회로 삼고 새 출발하며, 사랑은 만나고 싶고, 사랑은 동행하고 싶고, 사랑은 달라붙는 성질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주님께 착 달라붙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함께 가야할 목표가 있습니다.
헬라의 플라톤은 <향연(饗宴)>에서 ‘천지창조 당시 사람은 남녀의 성이 구별되지 않은 네 개의 발과 네 개의 손을 가진 고등 동물이었다. 여덟 개의 수족으로 만사에 완벽한 능력을 행사하게 되자 오만해졌다. 감히 신들을 우습게 여기자, 신들은 화가 나서 남자와 여자로 갈라놓았다. 그러자 이들은 나이만 차면 서로 반쪽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커는 것이다. 이것이 <연애감정>이다. 반쪽을 제대로 찾아 결합하면 최상의 반쪽(better half)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쓴 반쪽(bitter half)이 되어 티격태격 싸움으로 지샌다.’
고로 최상의 반쪽을 향한 연애감정에는 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함께 가자” 동행의지입니다. 눈과 눈이 마주칠 때 ‘뿅~’ 하고 가버리는 타입이 있어요.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결혼을 못하는 청춘도 있습니다. 만나면 티격태격 싸우면서 정이 드는 타입도 있습니다. 싸워야지요. 그런가 하면 만나면 마음이 편하고, 친구 같고, 누이 같은 관계도 있어요. 연애감정이 없어서 결혼 못 한대요.
11-13)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시련, 반대, 장애의 맵고 시린 겨울도 지나가고, 춘삼월 꽃이 피었습니다. 이제 ‘일어나 함께 가자’ 지구에 계절이 있듯 인생에도 계절이 있습니다. 추운 겨울 찬바람이 쌩쌩 불 때도 있습니다. 일어나 함께 가야합니다.
예전엔 젊어서 미국 유학가면 학위 받고 돌아올 때까지 10년, 15년 홀로 살림을 꾸려나가며 자식 키우고, 학비 보내주며 참고 견디며 살았습니다. 그래도 서로를 기다리면서 풍성한 인생의 추수 때를 향하여 함께 갔지요. 우리나라 중흥기의 한몫을 감당한 인물들입니다. 추웠던 겨울을, 힘들었던 고비를 믿음으로 이겨낸 장한 승리자를 본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아야 합니다. 15)
포도원에 꽃이 피면 작은 여우들이 틈을 봅니다. 이 여우를 잡아야 합니다. 옛말에 ‘호사다마’라 했습니다. 귀한 아들 낳으면 천한 이름 지어 주었어요. 참 지혜롭고 여유 있는 삶이지요. ‘집짓고 삼년, 새 사람 들이고 삼년’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집짓는 일은 큰 돈 들어가는 큰일이니 문제도, 갈등도 많지요. 마무리를 잘하라는 거예요. 20여년 자기 나름대로의 습관을 새 사람들과 맞추자니 갈등, 충돌, 상처가 생기니 조심하라는 경고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식구들에겐 ‘믿거라’ 하고, 손님에게만 잘 보이려고 애씁니다. 그런 걸 ‘뭐라’ 하면 “쫀쫀하다”고 쥐어박습니다. 그런 게 쌓이면 떫은 감정이 되고 쌓여서 화산처럼 이유 없는 미움을 폭발하는 거예요. 어떤 아내는 여왕처럼 남편을 부려먹어요, 어떤 아내는 애정 관리에는 관심도 없이 식모처럼 그냥 일만하고… 어떤 아내는 바가지만… 이것이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예요. 미련 곰퉁이지요.
부모님의 결사반대를 무릅쓰고 천신만고 끝에 청춘 남녀가 드디어 결혼식을 했대요. 늠름한 신랑이 들어오고 천사처럼 아름다운 신부가 들어와 맞절을 했습니다. 대학 은사의 주례사 “에헴~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아니, 검은 머리가 대머리가 될 때까지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순간 폭소가 터졌지요. 그 교수님이 대머리였답니다. “대머리를 유식한 말로 하면 光머리입니다. 우리말로 빛나는 ‘빛 머리’인데 검은머리가 光머리가 될 때까지 해도 좋습니다.”
신랑의 흰 장갑을 낀 손이 계속 까불까불 하더래요. ‘왜 신랑이 저렇게 방정맞을까’ 자세히 보니 신랑이 신부에게 주례사를 수하로 통역하는 거지요. 그 수화를 보면서 신부는 해맑은 웃음을 머금고 있는데 천사가 와 있는 것 같더래요. ‘아하 신랑 집에서 반대할 이유가 있었구나!’ “여기 가장 훌륭한 신랑이 가장 아름다운 신부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주례사를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군자는 행위로써 말하고 소인은 혀로써 말한다고 합니다. 혀로 말하는 저는 소인이고, 행위로 말하는 신랑은 군자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사랑하셨습니다. 조건을 보고 사랑한 것은 아닙니다. 죄인에게 무슨 희망이 있으며, 낙이 있습니까? 죄에 얽혀 지옥으로 끌려가는 주제에 무슨 행복이 있겠으며, 행복을 준들 행복하기나 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셨습니다. 이 사랑이 아가서의 중심입니다. 솔로몬 왕이 포도원에서 머슴처럼 일하는 술람미 여인을 찾아가서 밤이슬 맞아가며 문을 열어 달라고 애원하는 것입니다. (계3:20)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사랑을 이어주는 끈은 이해와 존경입니다. 존경하는 마음은 억지로 안 되지요. 감격하는 사건이 있어야 합니다. 까분다고 지붕위에 던져진 꼬마신랑이 위기의 순간에 능청을 떨면서 “엄마 큰 호박 딸까요? 작은 호박 딸까요?” 하면서 아내를 감싸줄 때의 감격이 일생 섬김을 받게 했다는 뼈있는 옛말도 있습니다. 깊은 속, 넓은 가슴이 위기의 순간을 감격의 순간으로 만들게 하는 것이지요.
성령에 이끌리어 말씀으로 마음을 채우세요. 삶의 온갖 지혜가 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까발리는 쫀쫀한 사람이 아니라 능청스럽게 덮어주고 감싸주는 유머 있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식구로 짜증나게 하는 곰퉁이 같은 미련한 아내가 있습니다. 사랑도, 결혼도, 엄마도, 아빠도 전혀 준비 없이, 교육 없이, 면허도 없이 결혼했다가 서로를 자기 틀에 맞추려고 티격태격 싸우다가 끝나버리는 인생이 너무 많아요. 아가서를 통해 제대로 배우고 익혀 행복하게, 알차게 만들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사랑받는 주님의 배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