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29일 수요일
성동구청 신우회 예배 설교
제목: 성도가 서 있는 곳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16:8
https://www.youtube.com/watch?v=-Fe0-4vl9qM
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와 있는 곳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본문은 히브리서 12장 22절부터 24절까지였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우리가 누구인지(정체성),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본분), 그리고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위치), 우리는 무엇을 바랄 수 있는지(소망)을 들려줍니다. 성경은 기나긴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의 정체성과 본분, 소망과 위치에 대하여 들려줍니다. 그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짐승과 구별되는 사람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살아 있다 또는 죽었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것은 신체적인 상태에 대한 설명이면서 동시에 어떤 가치의 현재 상태에 대한 설명입니다. 신체적인 상태가 정지되었을 때 의사의 판단 아래 사망선고를 합니다. 그런데 어떤 가치가 작동하는지 여부에 따라 우리는 그것이 살았다고 말하기도 하고 죽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죽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정의는 살아있다! 대한민국의 사법정의는 살아 있다! 시민의식이 살아 있다! 또는 양심이 죽었다! 군인정신이 살아 있다! 또는 교권이 무너진다! 이런 말은 우리 사회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에 대한 평가입니다. 이것들은 우리에게 그만큼 소중한 가치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식량 외에도 사람에게는 필요한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모여 사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공동체를 바쳐주는 든든한 기초가 필요하고 서로를 연결하고 묶어 주는 고리가 필요합니다. 공동체가 깨지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최종적으로 개인입니다. 그리고 그 개인은 자기 혼자 생존할 수 있는 음식이나 은신처를 마련합니다. 그것이 최소한의 필요조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동체를 이루어 그 안에서 서로를 지켜주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었기에 사람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영묘한 능력을 가진 우두머리 집단이 될 수 있었습니다.
민주주의나 사법정의, 양심, 시민의식, 교권, 상도덕, 군인정신 같은 것은 혼자 사는 데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이루는데 필수적입니다. 그것이 무너지면 공동체는 더 이상 건강하게 작동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개인의 안전도 위태롭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최근에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부러워하면서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길거리에서나 공공장소에서 물건을 도둑맞을 염려가 적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안전하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우리는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서 선거법을 개정하고, 국민의 대표를 공정하게 선출하며, 선출된 사람들이 그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동시에 감시하는 절차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시민단체들이나 언론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작동하는지를 계속 점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점차 발전하고 개선되고 있습니다.
다른 영역에서도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면서 주어진 권한을 사용하여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들고자 노력할 때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일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한을 맡은 사람들이 사욕을 위해 공동체의 질서를 깨뜨리는 행위를 할 때 우리 사회는 위태로워집니다. 최근에 개봉된 영화, ‘서울의 봄’은 군대 내의 사조직이 어떻게 군대를 무너뜨리고 대한민국을 어지럽게 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신앙이나 믿음에 대해서도 비슷한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죽은 믿음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야고보서의 말씀이 그것입니다(2:17).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살아 있는 믿음은 행동하는 사람이 가진 믿음입니다. 믿음이나 신앙에는 행위가 필수적입니다. 그 행위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배우는 소중한 가치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살아있게 하려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듯이, 또한 공직사회의 기강이 잘 세워지려면 절차와 제도가 정비되어야 하고 구성원들이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 하듯이, 우리의 신앙도 살아있는 것이 되게 하려면 신앙인의 노력이 필수적입니다.
신앙이나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과 말씀을 배우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배우고, 우리의 임무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배우거나 예배에 참석함으로써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지 않는다면 신앙은 저절로 약해지고 나중에는 기능을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신우회 정례예배는 우리가 성동구청에서 기독인으로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고 든든하게 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저는 이 시간에 성경을 읽고 그 의미를 생각해 보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 앞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정체성과 본분을 확인하고 현재 우리의 위치를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난 주에 저는 우리가 현재 와 있는 곳이 어디인가를 알려주는 성경본문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히브리서 12장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은 시온산에 도착해 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는 장소입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온 세상을 비추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들려주는 약속입니다.
그 외에도 우리는 하늘의 거룩한 도성인 예루살렘에 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지위가 하나님의 도성에 사는 시민임을 일깨워줍니다. 우리가 천만 천사의 앞에 있다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천사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행하는 사람들임을 일깨워줍니다. 또한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 앞에 우리가 있다는 말은 우리 공동체가 옛날 이스라엘의 장자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구별된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서는 우리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 있다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함께 있다고 우리의 위치를 소개합니다. 이는 우리가 그들처럼 온전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서는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히 10:14)라고 우리의 영적 신분을 알려줍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온전하게 다시 지음을 받았으니 그렇게 살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또한 우리가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 앞에 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 앞에서 살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중보자(μεσίτῃ mesitē))라는 말은 두 사람 사이에서 우리를 변호해주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중보하시는 방법은 그의 의로운 피로 우리를 깨끗하게 씻어서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종합해 보면, 우리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는 명확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우리는 어떻게 여기에 올 수 있었는지를 깨닫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리는 지금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구약의 백성들도 이와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16:8
하나님을 항상 자기 앞에 모시고 사는 삶이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와 있다는 신앙고백이나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주에 여기에 추가하여 우리가 에덴동산의 생명나무 앞에 와 있으며 우리가 지성소에 들어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거룩한 제사장처럼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늘 생각하자는 권면이었습니다. 에덴동산의 생명나무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는 본래 아담과 하와입니다. 그들이 거기에 서 있는 이유는 하나님으로부터 만물을 맡아 관리하라는 명령을 받고 그의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의 영적 지위와 신분, 그리고 우리의 본분을 기억할 때 우리의 신앙은 점차 명확해지고 우리는 삶 속에서 우리의 신앙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를 분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 결과는 더 건강한 삶이며, 더 확신 있는 삶이며, 더 모범적인 삶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우들에게 새로운 기도를 소개했습니다. 이 기도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기억하며, 어떤 존재인지를 기억하며, 우리가 왜 거기에 올 수 있었는지를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기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제가 주님 앞에 있습니다!
이 기도는 시편 기자의 신앙고백이며, 동시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고백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신앙고백이 나옵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요한복음 8:29
오늘 제가 소개해 드린 짧은 기도문으로 매 순간 우리의 영적인 신분과 본분, 그리고 위치를 점검하고 확신하며 살아갑시다. 우리의 신앙은 그 기능을 충분히 해낼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