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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5일 성탄절 설교
성경 이야기의 구슬을 꿰어라
다섯번째 실: 보혈, 생명의 논리
요한일서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설교 개요
1.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2.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3.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신다!
4. 그 피가 너희를 깨끗하게 할 것이요
5. 성만찬의 의미
1.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절에 우리가 나누는 인사는 즐거운 성탄절이 되라는 축복입니다. 성탄절이면 선물과 트리, 그리고 축제와 같은 것이 떠오릅니다. 그것은 기쁨의 절기입니다. 왠지 아무라도 인사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음이 들뜨게 하는 절기입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인류에게 기쁨이 되는 이유는 예수님이 특별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점에서 특별한 분일까요?
마태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마리아와 요셉이 정혼한 사실을 언급합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요셉이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요셉은 정혼녀의 임신 소식을 듣고 조용히 파혼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요셉의 꿈에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마리아의 임신이 부정한 일의 결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된 것임을 알려줍니다.
요셉이 꿈에 천사가 들려준 말을 들었는데 마태는 그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소개합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태복음 1:20~21
이 음성을 듣고 요셉은 마리아를 데려와 돌보아주면서 그가 출산할 때까지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마태가 들려주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마태는 이 이야기를 들려준 후에 성경을 인용하여 예수님의 탄생이 어떤 의미인지를 해설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예언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나님이 미리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어떤 중요한 일을 하실 것이라고 들려주셨는데 그 일이 이제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복음 1:22~23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을 전하면서 그 사건이 어떤 의미인지를 예언자의 글을 통하여 설명합니다. 그것은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이 무슨 뜻이고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이길래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을 임마누엘이라고 소개하는 것일까요?
임마누엘은 기독교회에서는 정말 중요한 이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이 말은 수많은 교회의 이름이기도 하고 오늘까지 우리 교회가 나누는 인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말은 가톨릭교회의 미사에서도 중요한 인사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2.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말씀이 자주 나옵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직접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고 하시는 장면도 나오고, 사람들이 어떤 사람의 형통함을 보고 ‘하나님이 이 사람과 함께하시는구나!’라고 칭찬하기도 합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은 형통하고 성공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이웃에 사는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았음에도 모든 일이 잘 되고 형통하니까 그를 괴롭히던 사람들이 선물을 들고 찾아와 잘 지내자고 인사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범사에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도 지팡이 하나만을 들고 타향살이를 시작하지만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셔서 마침내 세 무리의 양떼를 거느린 거부가 되었습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아예 먼 나라에 팔려가는 신세가 되었지만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셔서 모든 일에 형통하고 성공하여 마침내 이집트의 국무총리가 되고 세상을 먹여 살리는 구원자가 됩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보면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면 한 걸음도 앞으로 갈 수 없다고 자신의 생명을 걸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함께하셔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설명은 사무엘과 다윗에게까지 이릅니다. 이 두 사람에 대한 성경의 설명을 소개함으로써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한번 더 강조하겠습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사무엘상 3:19~20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의 말에 힘이 실리고 사람들로부터 신임을 받는다는 것을 사무엘이 보여줍니다. 이제 다윗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사무엘하 5:10
그렇게 보니 우리 순복음교회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성령충만은 결국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삶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성령충만을 구하고 그렇게 축복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충만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일을 담대히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성령충만은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이 함께하심, 곧 임마누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요셉의 일대기에 나옵니다. 요셉이 이집트 왕의 꿈을 해몽하고 났을 때 왕이 이렇게 칭찬합니다: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창세기 41:38~40
이처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며, 형통한 사람이며, 하나님의 신, 곧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말이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3.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신다!
그러면 반대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가장 두렵고 불행한 사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함께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으면서도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 하나님을 배반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의 산에 올라가고 여러 날 동안 내려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두려운 생각에 빠져서 황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섬겼습니다. 그들의 신으로 받들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하나님을 등지고 배반한 백성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출애굽기 33:3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면 결코 성공할 수 없음을 모세는 잘 알았으므로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은 모세에게 허락을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들에게 먼저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과 함께하시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과 함께하시면서 그를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할 백성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길 때 하나님은 그들을 떠나셨습니다. 그들의 성전이 아무리 크고 화려해도 그들의 마음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하나님은 그 성전을 떠나십니다. 그 결과는 멸망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강대국에게 멸망하고 나서 이 사실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떠나셨으므로 나라가 망하고 성전은 무너져 폐허가 되었음을 그들은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잃고 성전을 잃은 백성들에게 있는 간절한 소원은 하나님이 다시 돌아오시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나라도 되찾고 성전도 회복되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던 백성에게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자기 백성에게 돌아올 것이니 준비하라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예언자들의 메시지 중에 하나가 임마누엘의 예언입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는 예언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오시는 길을 예비하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골짜기는 메우고 높아진 언덕은 낮추어서 주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라는 예언이 이사야에게 주어졌습니다. 그 수많은 예언들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살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비로소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마침내 우리 가운데 오셨구나!
그런 이유로 아기 예수님을 만난 동방박사들은 기쁨이 충만하여 돌아갔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도 죄를 용서받고 병을 고침받고 귀신에게 눌린 데서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주변에는 다시 기쁨이 가득해졌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다시 오셨음을 제자들은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승천 후에 성령의 충만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제 우리 가운데 성령으로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충만은 임마누엘이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 가운데서 우리를 통하여 일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교회가 인사말로 나누는 고백은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이 인사말을 나누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과 함께하셨는지를 기억합시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으셨는지를 기억합시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삶을 누리며 확신하며 그 뜻을 성취하며 살아갑시다.
그런데 죄와 허물이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을까요?
4. 그 피가 너희를 깨끗하게 할 것이요
성경 이야기를 보면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하시는 것이 그토록 중요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인간보다 하나님이 인간을 더 먼저 가까이하기를 원하시며 함께하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서신에서도 그 사실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한일서 4:10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5:16
성경을 보면 언제나 하나님이 먼저 사람에게 찾아오시고 사람을 부르십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인간은 허물과 죄가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실 수 있습니까? 구약성경을 보면 그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하시려고 하나님의 집을 짓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광야에서는 성막이었고 약속의 땅에 정착한 후에는 성전이었습니다. 성막과 성전은 하나님의 처소였고 그곳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만나시고 그렇게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함께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백성이 범죄하면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거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만나는 자리를 깨끗하게 만드는 법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백성의 죄를 이길 수 있는 강력한 것을 그 만나는 장소에 뿌리는 것이었습니다. 죄는 사망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그 사망의 권세를 이기는 것이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이 피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제물의 피로 하나님과 만나는 성소의 물건들을 깨끗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구약의 제사제도입니다.
성경의 제사제도는 피를 뿌려 거룩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그곳에 임하실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점이 다른 종교의 제사와 다른 점입니다. 최근에 살아있는 소의 껍질을 벗기는 무속행사를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나라에 있었습니다. 그런 광기어린 일은 사실 신에 대한 오해에서 빚어집니다. 신의 진노를 달래기 위해서 제물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고대로부터 거의 모든 종교의 제사에서 중심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제사는 이와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제사를 이교도의 제사와 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께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던 구약성경의 이야기를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함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오해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제사제도를 마련하신 것은 자기 백성의 죄와 허물로 인하여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거할 수 없게 되시고 동시에 그 백성도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게 된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삶이 그렇게 중요했던 것입니다.
제사제도의 본질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 가운데 오실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정신을 잊어버리면 짐승을 바치기만 하면 되는 줄로 착각하게 됩니다. 그때 예언자들은 하나님이 제물에 굶주린 분이 아니라고 그 백성들을 일깨워주었습니다. 피의 제사를 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피의 제사를 드리지 않도록 진실하고 따뜻하며 너그럽게 살라는 것이 예언자들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을 목격한 제자들은 예수님의 피흘리심에 대하여 새로운 깨우침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예수님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보내신 화목제물이라는 사실을 제자들은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사건은 구약의 모든 짐승제사로 이룰 수 없는 영원한 제사라고 제자들은 이해했습니다.
5. 성만찬의 의미
사실 예수님이 성만찬을 제정하신 것도 피와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 식사를 하신 때는 유월절이므로 유월절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떡과 포도주를 제자들과 나누셨습니다. 이 식사가 오늘날 우리의 성찬식이 되었습니다.
그 마지막 식사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따라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7~28
성찬식에서 예수께서는 포도주를 나누시면서 이것은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시고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수님 자신의 피를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율법에서 피를 마시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 중에
무슨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를 먹는 그 사람에게는
내 얼굴을 대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위기 17:10~11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그 피를 마시는 자는 그 생명을 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피에 생명이 있으므로 그 피를 제단에 뿌려 속죄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피에 있는 생명이 죄와 사망의 더러움과 권세를 씻겨낸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자기의 피를 마시라고 포도주를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피를 마신다는 말은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된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피는 제단에 뿌려 하나님이 그곳에 거하실 수 있게 한 것이 율법이며 제사제도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제 자신의 피를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초기교회가 교회와 우리 그리스도인들 개개인을 성전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성찬에 참여하여 그 피를 마심으로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됩니다. 이것이 성찬의 의미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런 이유로 히브리서에서는 예수님의 피를 기념하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히브리서 9:13~14
성찬의 피는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다. 그 피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짐승의 피도 제단을 거룩하게 하고 제사를 드리는 사람을 정결하게 하는데(레 14:14, 25) 예수님의 피를 마신 사람은 얼마나 더 거룩하고 정결하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피로 자기 백성을 정결하게 하신 이유는 그들과 함께하시고 그들에게 복 주시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마실 때 우리는 거룩하고 정결하게 되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통하여 일하십니다.
우리가 불렀던 복음송 중에 ‘시선’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그 가사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느낄 때
내 삶은 주의 역사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여기서 우리는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릴 때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시선이 주님을 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강력한 의식이 바로 성찬입니다. 우리는 성찬식을 통해서 비로소 우리가 거룩한 성전임을 다시금 확신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처소가 되어 하나님이 일하시는 동역자가 되었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믿음의 영웅들처럼, 신앙의 조상들처럼 빛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보혈에 담긴 생명의 논리입니다. 그리고 그 논리는 성탄절에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완성됩니다. 우리 모두 우리를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도록 친히 피를 흘리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예수님이 임마누엘이십니다. 그리고 그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의미인데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를 성전으로 삼으시고 우리를 정결하게 하셔서 마침내 우리가 임마누엘의 은총을 경험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것을 기념하는 날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