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부모님 생애노정 - 2권 한국 해방과 섭리출발 제5절 부산 피난시절 (1951.1.27.~1953.9.17)
2. 범내골 토담집에서 재출발 준비 1951.8. ~ 1953.1.
토담집 건축 1951.8.-부산시 동구 범4동 1513번지
남한 땅에서도 부산 범일동, 거기에 그야말로 토굴을 짓고 혼자 있으면서 제2의 출발을 준비했어요. 거기는 공동묘지의 근처로 돌투성이의 골짜기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 한 곳에 선생님은 돼지우리와 같은 가건물을 지었습니다. 범일동 골짜기에서 내가 아예 짐통을 지고, 자갯돌을 나르고, 흙을 빚어 집을 짓던 생각이 가보니 새롭더라구요.
부산에서 제일 꼬라비, 꼬라비였어요. 집을 짓는 데는 삽이 있어야지요. 삽을 빌리려 해도 빌려 줘야지요. 피난민들이 전부 다 돈만 생긴다면 다 팔아먹으니까 안 준다 말이예요, 이게. 삽이 있어도 안 주는 거예요, 부엌에다 갖다 숨겨 놓고. 그래, 할수없이 부삽으로 했다구요. 삽이 요만한데, 여기는 이렇게 깨져 나가고, 요건 떨어져 나가고, 이런 것 가지고 했다구요. 곡괭이가 있어야지요. 그런 삽 가지고 범일동 터를 닦았다구요. 또, 벽돌 만드는 기계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미군부대에 가서 레이션 박스 있잖아요? 그걸 갖다가 귀퉁이를 째 가지고…. 이걸 펴 가지고 넓혀 가지고, 흙을 파다가…. 흙이 참 많이 들어간단 말이예요. 이만한 것 가지고 가서 이겨 보면 한 덩어리밖에 안 돼요.
누가 땅을 주나요? 그러니까 산비탈을 깎아 가지고, 산비탈을 가로 따 가지고…. 비가 오면 말이예요, 그 방에서 샘이 솟아요. 그러니 할 수 있나요? 이 땅을 한 반자쯤 파 가지고 돌을 갖다가 수문을 내는 거예요. 수문을 내 가지고 그다음에는 그 위에다 온돌을 놨어요. 그 온돌 아래에는 물이 흐르는 거예요. 그런 유명한 집이예요.
벽과 지붕을 진흙과 바위로 지은 아주 초라한 주거장소였습니다. 선생님에게는 집을 지을 만한 땅이 한 평도 없었어요. 산비탈에다 오두막집과 같은 것을 지었어요. 헌 박스로 임시 지붕을 만들었어요.
그리워했던 한 간 방
하꼬방도 그런 하꼬방이 없지요. 들어가 보면 바윗돌에다 집이라고 떡 지어 놓으니 바위가 하나 있고, 그다음에는 조그마한 테이블이 하나 있고, 그다음에는 그림 그리는 캔버스, 그 두 가지밖에 없다 이거예요. 그게 무슨 보물이라고…. 그거 비참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잠을 잘 때도, 이 지상의 어떠한 궁중에서 영광을 누리며 사는 사람보다도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효행을 할 수 있는 제일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따를 수 없는 깊은 내심의 기준에 도달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처마 밑이나 움막집에 있더라도 ‘내가 하나님을 여기서 모셔야 하는데 이 자리가 정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더욱이나 입동시절이 찾아들 때는 불편한 게 많아요. 비가 오지 바람은 불지 감기 기운은 돌지, 찬방에서 콧물은 찔찔 나지, 할 책임은 많지, 배는 고프지, 입은 것은 없지…. 요때가 제일 불편한 때라는 거예요. 이때 낙망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 길은 우리의 스승들이 간 길이요, 선생님이 뜻을 붙들고 가는 길이니 여러분들도 심정 일치점을 그런 기준에서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한 때는 방 한 간을 얼마나 그리워 했는지 모른다구요, 방 한 간. 세계의 누구보다도 방 한 간을 그리워 한 사람이라구요. ‘다 쓰러져 가는 헛간집 같은 방 한 간이라도 누구보다 사랑할 수 있는 방으로, 왕궁이상의 귀한 방으로 내가 살 텐데…’하며 그리워 했던 사람이라구요. 또, 지극히 작은 땅 한 짜박지라도 그리워 했던 사람이라구요. ‘내 땅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택한 내 땅에서 내가 정성을 들여 봤으면…. 내가 이 사탄세계의 땅에서 정성들이는 이것은 싫다’ 이겁니다. 얼마나 정성들였는지 모른다구요.
토담집 시절의 외모
이때까지도 그 누더기 옷을 넉달 동안 입은 그대로 입고 있었어요. 세탁할 곳이 없었으니까요. 그때는 따라지 중에서도 왕따라지였어요. 옷도 없어 가지고 바지는 한복바지, 겹바지인데 그것도 아껴서 입으려고 안껍질 겉껍질을 따로 해서 퍼런 물을 들여서 입고, 위에는 옷이 없으니까 미군 작업복인 푸른 옷을 입고, 신은 운동화, 그 운동화는 왜놈들이 갖다 준 거라구요. 그렇게 3국의 옷을 떡 입고 다녔다구요. 그렇게 하고 다니면서도 ‘이건 다 탕감복귀다. 탕감복귀하려니 미국의 누더기, 한국의 누더기, 일본의 누더기를 내가 입고 다닌다’이랬어요. 그게 얼마나 근사해요? 그렇게 입고 다니면서도 내가 부끄러워하고 그런 게 없었다구요.
그 당시에 외면적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한푼어치의 가치도 없는 사람 같았습니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얼굴은 검을 대로 검어 있었고, 복장은 동양옷과 서양옷을 섞어 입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날 굉장한 힘을 발휘합니다. 대포보다도 원자폭탄보다도 그 힘이 더 큽니다.
부산 항구를 바라보며
그래, 범일동에서 내가 산에 올라가 기도를 했는데, 사탄의 멱살을 잡고 배를 칼로 찌르고 싸우는 이런 입장에 서 가지고 영적으로 많이 격투를 했어요. ‘이 싸움에서 너희들이 이기지 못하는 한 너희들은 한날에 굴복할 날이 있을 것이다’하면서 싸운 것입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출발한 거예요. 형편없이 불쌍한 그 자리에서 피를 흘리고 눈물을 흘리고 땀을 흘리고 다 흘렸어요. 그 비통한 역사적 시대에, 민족 이념이 갈 데 없는 원망의 그 한계선에서 태평양 바다에 들어가느냐, 안 들어가느냐? 그 방파제가 된다는 입장에서 민족을 대표해 기도한다는 심정을 가지고 혼자 그 외로운 길을 개척했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그 많은 배들이 들어와 가지고 ‘부웅, 나 쳐다봐라!’ 하면서 연기를 뿜는 것을 볼 때 ‘나도 저런 배를 내 손으로 만들어서 부산항으로 환고향하는 금의환향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라고 기도하던 것이 엊그제 같다구요. 그렇게 하고 앉아 가지고 ‘저 대해를 건너 내가 마음으로 기대하던 심정의 인연을 저나라에 가서 뿌려야지, 씨를 뿌려 놓아야 돼’라고 생각했어요. 부산 바다를 바라보면서 그런 기도를 하면…. 하나님은 농을 참 좋아 하시는 분입니다. ‘야, 너 봐라. 앞으로 세계가 이렇게 되는 거야’하시며 큰 상선, 하늘 상선에 나를 태워 놓고는 수많은 군중이 환호하는 걸 보여 주고 위로하시더라구요.
부산 범냇골 성지? 선생님이 바위를 붙들고 비통해 했던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그 6.25동란 때 화물선이, 전부다 무기를 나르느라고 배들이 꽉찬 그 부산항구를 바라보면서 무슨 기도를 했는지 알아요? 그걸 알아야 돼요. 다 이루어 졌다구요.
전시상황 감지
이 범일동에 기거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때만 하더라도 6.25사변이 계속될 때예요, 1953년에 휴전협정이 됐으니까. 그때 미국에서 들어오는 군수물자 선단들이 줄지어 이 항구에 꽉 들어왔어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선생님은 그것을 헤아리는 것을 취미로 삼았다구요. 하나, 둘, 셋, 넷…. 보통 50척이고, 어떤 때는 100척이 넘을 때도 있었다구요. 그럴 때 전시상황이 어떻게 되겠느냐 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군수물자를 보급하는 배의 수가 많아진 것을 볼 때 ‘아, 이 전쟁이 치열해지겠구나’ 이렇게 생각했고, 배들이 적어지면 ‘아, 이제는 전쟁이 그저 이럭저럭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러던 것이 엊그제 같다구요.
원리원본 집필과 제자에 대한 정성
원필이가 자신이 돈을 벌어 오겠다고 해서 선생님이 그러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원리원본을 쓰고 있었는데 동지가 얼마나 귀하고 따르는 사람 하나가 얼마나 귀했는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필이가 회사에 나가게 될 때는 반드시 한 1킬로미터 이상 따라 나가곤 했는데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또 저녁이 되어 돌아올 때가 되면 반드시 마중을 나갔는데 그 만나는 맛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심정적인 기준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심정은 그리움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원필이를 데리고 범냇골에서 살던 때가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때가 좋은 때였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때 원리원본 초고 쓸 때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때 그 인상을 지금도 잊지 않아요. 그 원필이도 잊어지지 않고, 선생님에 대해서 고맙게 했던 일, 피난 와 가지고 외롭고 서러워 같이 달을 바라보고 생각하며 살던 일, 그 인상이 뗄 수 없을 정도로 남아 있는 거예요. 그때 원필이는 회사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것이 자기 연인을 찾아오는 것보다도 더 재미있어 했다구요. ‘너 좀 집에서 쉬고 있으라’해도 ‘아! 저 싫습니다.’ 하고 선생님만 따라다녔다구요. 변소에 가서 30분만 앉아 있으면 변소 문을 두드린다구요. 변소에 가서 졸 때가 많았어요.(웃음) 그만큼 심정적으로 가까워져 있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피난 나올 때도 자기 어머니와 집을 다 버리고 나왔다구요. 거기 있으라고 해도 다 집어 던지고, 선생님을 따라나선 거라구요.
미군들 초상화 그리는 부업
내가 범일동에서 살던 집, 제일 비참할 때, 테이불 요만한 것, 우리 식구 한 사람이 초상화를 그리고 내가 전부 치다꺼리하던…. 그건 뭐 비참한 거예요, 비참해. 그 집이 비참해!
거기서 미군 부대 병사들의 초상화를 그렸어요. 김원필이 그림을 그릴 줄 알거든요. 그때 요만한 천 한 장으로 틀을 전부 짜 가지고 했어요. 그림 그리려고 만든 풀이 있는데, 이것을 끓여 가지고 천에다 완전히 발라야 팽팽해지는 겁니다. 팽팽해야 구멍이 다 막히게 돼요. 그때 한 장 그리는데 4불이었다구요.
그 부대가 무슨 부대냐 하면, 미국 사람들이 1년 반이라든가, 2년 반 정도 있다가 순환하는, 집에 돌아가는 부대예요. 몇 개월 만에 교체해서 집에 돌아가는데, 거기가 마지막 처소, 부대라구요. 그 부대에서 자기 고향으로 갈 텐데 선물이 필요하거든요. 선물이 필요한데 가져갈 것이 뭐가 있어야지요. 그러니까 여편네 초상화 그려 준다고 해 가지고, 4불이면 싸지요? 그것을 어떻게 빨리 그리느냐? 맨 처음에는 한 장, 두 장 가져왔거든요. 돈이 무한히 필요하기 때문에, 하루에 20장, 30장까지 받아 와라 이거예요. 보통 거기서 일주일 묵고 가요. 그래서 주문하게 되면 주문받아 가지고…. 어떤 날은 30장 가까이 그릴 때가 있다구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줄을 전부 다 펴 놓는 거예요. 그러면 원필이는 4B 연필을 가지고 틀에 들어 있는 수와 같이 똑같은 사이즈로, 작지만 전부 다 금을 긋는 겁니다.
금을 그어 놓으면, 사람의 형을 잡을 때는 그 금을 따라서 그리면 되거든요. 눈은 어디 있고…. 얼마나 빠른지, 몇 배가 빠르다구요. 입술도 싹 그려 놓으면 빨간 칠은 내가 하고. 머리도 싹 그려 놓으면 머리 색도 내가 해주고. 그러다 보니 그거 다 배우는 거예요. 맨 처음에는 뒷전에서 훈수하던 입장에서 하나하나 배워 가지고 나중에는 옷 같은 것은 전부 다 내가 해주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돈 많이 벌었지요. 하루에 백 불 가까운 돈을 벌었어요. 굉장한 돈이지요. 그렇게 가르쳐 주는 걸 그리다 보니 내가 선생이 되더라 그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출세하려면 천만 사람을 출세시키라구요. 그런 사람은 출세해도 망할 길이 없다 그거예요.
그래 가지고 돈을 벌어서 전도 경비를 하고, 전부 다 이래 가지고 개척한 것입니다. 그렇게 번 돈이예요. 그렇다고 그 돈 가지고 내 자신을 위해서 쓰지 않았다구요.
미군부대 목공 일
선생님은 사진틀 같은 것도 짤 줄 압니다. 피난 가 가지고 미군부대에서 8개월 동안 목수 노릇 해먹었다구요. 그걸 배운 게 아니라구요.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모든 이론보다 앞선다구요. 보통사람은 전문가의 3배 노력하면 따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빨리 하지만 난 정성을 들여 천천히 한다구요.
목수질하는 것을 옛날에 내가 봤기 때문에, 눈썰미 가지고 한 거예요. 그냥 안다구요. 첫날 가서 전부 다 한다구요. 건축현장에 나가면 집 짓는 것이 뭐 어떻다는 것을 대번에 다 안다구요. 배워 가지고 하나요? 사리를 비판해 가지고 원칙을 따져 가지고 하게 되면 전부 다 통하게 돼 있다구요.
식구 기다리는 그리움
선생님이 부산 범일동에서 하나님과 인연될 식구들을 그리워하던 때에, 선생님은 온갖 정성을 다하며 그들을 기다렸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그들이 오기는 오는데, 실제로는 가까이 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간막이 터지지 않았다구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그 갈 길을 찾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 것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것이 터져 나가기 시작하면 길이 열리는 거라구요.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탕감기간이 있는 겁니다. 자기 개인의 탕감기간이 있고, 그 다음엔 동네 탕감기간이 있어요.
그 때가 아직 안 되었기 때문에 기다리는 때다 이거예요. 백지 한 장 가리워졌어요, 백지 한 장. 함성이 ‘선생님! 선생님! 아버님! 아버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구요. 수많은 군중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구요. 요 구멍만 뚫어 놓으면 터져 나올 것 같은데 여기에 막이 가려져 있다 이거예요. 그것이 1년, 2년, 해가 가면 점점 가까워진다구요. 그럴 때에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그립겠느냐? 아침에 일어나 척 먼산을 바라보게 된다면, 사람이 이렇게 보이는 거예요. 수많은 군중이 행렬을 지어서 오는 거라구요.
아침에 산에 올라가게 되면 저녁까지 점심을 잊어버리고 기다리는 거라구요. 그 얼마나 기다렸더냐?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잃어버린 타락한 인간을 기다리는 그 심정적 체휼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석양이 되게 되면 ‘안 오나’, 아침이 되게 되면 새벽같이 일어나 가지고 닭이 울기 전에 ‘안 오나’ 그렇게 오매불망의 심정이 돼야 된다 이거예요.
오늘날 여러분이 선생님이 그립고 다 이런 것은, 다 그런 동기의 기원이 천상세계에 터전으로 남아 있고, 이 삼천리 반도에 여러분은 모르지만 이 운기 가운데 그러한 터전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운기권내에 사는 사람은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 하고 선생님이 생각이 난다구요, 자기도 모르게. 생각 안 할래도 문득문득 생각나는 것은 다 그러한 동기의 기원을 심어 놓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옛식구 수습
남한 땅에 다시 돌아 왔을 때 선생님을 원망하고 배반했던 그 무리들에게 아직도 하늘의 슬픈 역사의 사연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사연을 나누고자 찾아갔습니다.
어떤 집을 찾아 들어가니 세 모녀가 선생님의 면전에서 ‘그 길을 가지 말라고 말려도 가더니 결국은 거지 모양이 되어서 찾아 왔다’고 서로 눈짓을 하면서 비웃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이 그 집을 찾아간 것은 밥이 그리워서 찾아간 것이 아니라 천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같이 눈물을 흘렸고 같이 사연을 나누었던 하늘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인연을 거룩하게 심었으니 심은 것을 거룩하게 거두어들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찾아갔던 것입니다.
또 선생님이 그 누구보다도 잊을 수 없었던 동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업을 시작해서 회사를 설립했는데 장안에서 이름이 났습니다. 선생님은 일주일 동안 얼굴도 씻지 않고 이도 닦지 않은 상거지의 모습을 해 가지고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가 선생님을 어떻게 대하나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역시 선생님을 배신했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저런 별의별 곡절의 노정을 거치며 먼저 동지들을 찾아 다녔던 것입니다. 남들 같으면 다시 남한 땅을 찾아 왔으면 처자를 먼저 찾아가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선생님은 동지부터 찾아갔던 것입니다. 가까운 동지로부터 찾기 시작해서 먼 동지까지, 또 이북에서 선생님을 따르던 식구들을 비롯해서 선생님과 인연된 동지들을 찾는 데에 2년이 걸렸습니다. 여기 승도 할머니는 그것을 압니다. 그들을 다 찾은 후에야, 찾고 찾아서 그들을 다 만난 후에야 집으로 연락을 했습니다. 하늘은 이렇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남은 사람이 원필이, 지승도 노친네, 옥세현 노친네예요. 이기완씨 같은 이는 이남에 있을 때 옛날부터 아는 사람이고, 그 사람들 중심삼고 이남에 나와 가지고 범일동에서부터 교회 출발한 거 아녜요? 그때 출발할 때는 전부가 반대지요. 전부가 반대한 것을 이북에서부터 남한까지 탕감조건을 세우면서 세계적 기준까지 탕감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나온 거예요.
‘원리원본’ 탈고와 전도 개척 1952.5.10.
여러분 동네에 원리책을 갖고 갈 때에는 지나치리 만큼 소중히 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일 이 책이 한 권밖에 없다고 생각해 보라구요. 그러니 선생님이 이 책의 원고를 초잡을 때, 그 원고의 관리를 얼마나 심각하게 했겠는가 생각해 보라구요. 만일 그게 없어지고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세계가 왔다갔다한다구요, 세계가. 여러분, 그런 걸 생각해 봤어요? 혼자이면서 그때 내가 원리원본 쓴 것을 뿌릴 때 그걸 누가 혼자 그렇게…. 이것이 세계의 영적 양식이 되고 만민이 추앙할 수 있는 원리의 말씀일 줄 누가 알았겠어요?
선생님이 처음 부산에서 뜻길을 출발할 때, 다른 사람들과 그 모습은 같았으나 내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비록 옷은 남루하고 밥은 굶는 처지에 있었지만 생각만큼은 이 세계를 정복하고 하늘나라를 꼭 이루겠다고 했고, 그럴 수 있다고 큰소리를 꽝꽝 쳤습니다.
맨 처음에는 범일동에서 집을 짓고 세 사람이 모여서 전도하고 기도하고 그랬어요. 그때 그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할 때는 선생님이 세 사람을 놓고 기도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지금 이 사람들에게 얘기하지만 현재 수억의 기독교인과 수많은 인류를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동네에 우물이 있었는데 거기에 물을 길르러 온 사람들이 저 집은 싸움을 안 한다고 소문이 났는데 요즈음 싸움을 한다고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차려 입은 모습을 보면 형편 무인지경이고, 도깨비가 나올 것 같은 그런 집에서 살지만 세계를 한 주먹에 말아 먹고, 하늘땅이 뒤집어지고, 한국이 한꺼번에 세계를 다 통일한다고 하는 엄청난 얘기를 하니까 소문이 난 것입니다.
‘저 동네에 가 보았더니 우물에서는 말이 없던 그 사람이 굉장하더라’ 이렇게 소문이 나니 사람들이 자꾸 모여들 것 아닙니까? 어떤 때는 무슨 신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이 와가지고는 ‘역사상에 당신보다도 훌륭한 사람이 많이 와서 통일세계를 꿈꾸었는데도 다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당신이 통일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내가 얘기를 하다가 가만히 생각해도 참 처량했습니다.(웃음) 물이 흘러 가게끔 도랑을 파고 그 위에다 집을 지었기 때문에 방구들 아래에서는 쫄쫄쫄 물 흐르는 소리가 나는 데 그런 집에 앉아서 그런 엄청난 말을 하니 누가 믿겠느냐는 것입니다.
이화여대 교수 짜박지들이 왔다 가더니 소문 나기를 ‘저 산꼭대기에 있는 미남자, 아까운 사람이 미쳐서 병신이 되어 간다.’이렇게 소문이 났습니다. 그래도 내가 미남자처럼 생긴 모양입니다. 그래서 나를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까지 있었다구요. ‘어떤 미남자가 수도하다 미쳤다는 데, 저사람인가보다!’하고 보러 온 것입니다.
강현실(姜賢實) 전도사 입교
자, 그렇게 꿈을 가지고 참고 일을 하는 사람이 있으니 하나님 보실 때 얼마나 동정이 가겠어요? 그래서 ‘야 야, 너 레버런 문을 찾아가라!’해 가지고 전부 다 자기 사람을 호출 명령을 내려 찾아오게 하시는 거예요. 이런 걸 보면 하나님이 나를 좋아하는 모양이예요. 그렇게 명령을 하셔서 보내는 거예요. 그러므로 현실은 어렵지만 미래의 꿈을 가지고 현실을 미래의 것으로 알고 살고 있는 사람은 하늘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이 기억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여기 강현실이가 처음 범냇골에 찾아올 때도 그랬어요. 산에 올라가면 잃어버린 자식 그리워하는 마음이지요. 요 담을 심정으로 터친 거예요. 타락의 심정으로 막혀진 것을 하늘의 심정으로 터친 거예요. 그러니 몰아 들어오는 거예요. 그리하여 기성교회 전도 문제라든지…. 그때 강현실 전도사가 들어왔지만 말이예요. 그렇게 해서 한 사람, 두 사람 뜻 맞는 사람을 하늘이 보내 줘서 다시 규합하였습니다.
강현실 전도사라고, 범일동 천막교회 전도사로 책임지고 있던 그 아줌마가, 지금 저 산골짜기, 그때 범일동 산골짜기 하게 되면 그 위에는 절간밖에 없었는데, 맨 마지막 집에 이상한 청년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전도하겠다고 찾아왔댔지요. 찾아와 가지고 방문할 때의 내 모습은…. 이렇게 삼층 옷을 입고 있을 때 찾아오던 것이 엊그제 같다구요. 그래서 그때 말씀했는데 하나님이 역사해서 매일매일 찾아오게 된 거예요. 그러다가 그 교회를 버리고 통일교회 믿을 결심을 하였습니다.
이래서 영계에서 전도하는 거예요, 영계에서. 그렇기 때문에 가다가 발이 붙어 가지고 못 가게 하면 이리 들어가고…. 이런 전도 했습니다. 통일교회 기원이 그래요. 성경에 있는 이상의 내용이 있어요. 별의별 이적기사의 길을 통하면서 나온 거예요.
성진님 모자와의 재회
내가 이남에 나왔을 때는 성진이와 성진이 어머니가 어떻게 지내는지를 다 알고 있었다구요. 어디에 가면 반드시 만날 수 있다 하는 것도 알았지만 안 갔다구요. 내가 만나야 할 사람,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약속한 몇몇 사람을 못 만났으니, 그들을 만날 때까지는 기다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만나자 마자 연락을 한 것입니다. 연락을 하니 대번에 왔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내가 남편이라는 사람인데 자식이 일곱 살이 되어서야 만난 거라구요. 그때는 식구들과 같이 지내던 때였습니다. 할머니들을 데리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내 아들이 왔다고 내가 기뻐하며 맞이했다가는 조건에 걸리는 것입니다. 아벨은 누구를 통해서? 가인을 통해서 소개받아 가지고 사랑해야 됩니다. 가인이 ‘오냐! 네가 성진이냐’ 해 가지고 ‘선생님, 성진이가 돌아왔습니다’ 해서 품고 사랑의 표시로 하나되어 맞이해야 됩니다. 이것이 원리의 법도입니다.
성진이와 성진이 어머니가 나한테 왔을 때, 선생님이 ‘얘가 성진인가?’하고 말았습니다. 그게 성진이 어머니에게는 일생 동안 원망스러운 것입니다. 들어오라는 얘기는 식구들이 해야 되는 거예요. 나는 원리적으로 살려고 지금까지 별의별 비참한 경지를 다 거친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성진이 어머니는 ‘아! 목석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건 사실이예요. 뜻을 모르니까….
그 어머니가 나를 대해서 인사하기를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소? 남 모르는 이 길, 몰리는 길을 가기에, 뜻을 위해서 그렇게 수난길을 가기에 얼마나 힘들었소? 그동안 내게 고생스러웠던 그 일들은 고생이 아니었소. 나를 핍박하는 사람도 많고 가로막는 사람도 많은데 죽지 않고 몰려 쫓겨나지 않고 살아왔으니 감사할 뿐이요’ 이렇게 인사를 먼저 하고 난 후에 그 어머니 입으로 아들에게 ‘훌륭한 아버지, 내가 가르쳐 준, 교육하던 이상의 아버지가 왔다. 인사해라’고 할 수 있는 아내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아들의 모습을 바랐던 것입니다. 그걸 보면 부모로써 불쌍한 사람이지요. 남편으로서 안된 남편이지요. 천도가 엇갈린 자리에서, 하나님이 슬퍼하는 그 자리에서 자식이 있으면 뭘하고 아내가 있으면 뭘해요!
반대와 핍박의 고조
이 곳, 부산 범일동은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으며 뜻길을 출발하였던 곳이기에 한스럽게 생각하면 한스러울 수 있는 곳입니다. 내가 범일동에서 욕을 얼마나 먹었는지 모른다구요. 범일동 하게 되면 여러분들은 뭐 좋은 곳으로 알는지 모르지마는, 선생님으로서는 선생님의 머리에 다 기억되지 않을 만큼 반대를 받고 잊혀지지 않는 곳인데 좋아서 잊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구요.
기성교회가 반대하기 때문에 성진 어머니가 반대하게 되어 있다구요. 그때 말을 하면 역사에 없는 핍박을 받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입을 다물고 가만 있었던 거예요. 만난 지 1년밖에 안 돼요, 1년. 원리예요, 원리. 원리대로 되는 거예요. 별의별 짓 다 한 거예요. 세상에 나쁜 소문 다 내놓고, 그저 죽일 사람이라고 별의별 소문 다 내놓았다 이거예요. 뜻이고 뭣이고 내가 당신을 제일 사랑하고, 당신이 일 안 해도 내가 먹여 살리고…. 또 먼저 들어온 할머니들에게 ‘저 할머니들이 전부 우리 남편 빼앗았다’고 하면서 할머니들을 들이 패지를 않나, 별의별…. 여자 식구들이 나오면 멱살 잡고 ‘이 간나들, 왜 와?’하는 거예요. 그럴수록 반대로 그 여자들이 ‘이 여우 같은 여자 같으니라구. 내가 당신 남편을 옹호해야 되겠다’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게.
그런데, 성진이 어머니가 한참 반대할 때 성진이가 나이 일곱살 때구만, 어머니를 버리고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금이야 옥이야 사랑하면서 일곱 살 때까지 업어 길렀는데, 그런 어머니를 버리고 자기를 위해서 아무 것도 안 해주는 아버지를 찾아 왔다는 거예요. 그리고 어머니가 반대하면 미리 와서 전부 다 알려 주는 거예요. 내가 그런 성진이에게 미안한 것이, 그 애한테 언제 한번 교육 못해준 거예요. 원리는 이렇다고 교육을 한번 못 해주었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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