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나 하는 짓이 마음에 거슬리고 밉살맞을 때 ‘아니꼽다’는 표현을 쓴다. 요즘은 줄인말로 ‘꼽냐’는 말도 많이 쓰고 있다. 어디서 온 말일까. 조선시대 시조 한수를 예습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조선시대 왕방연은 단종을 영월 귀양길로 호송한 후, 다음과 같은 시조를 남겼다. 학창시절 여러번 접해봤던 시조다. ‘천만리 머나먼 길 고운님 여의옵고 / 내마음 둘데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여기에도 종장 중간 부분에 ‘안’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여기서의 ‘안’과 아니꼽다의 ‘아니’는 같은 말이다. 바로 중세 때는 속마음을 ‘안’이라고 불렀다. 원래는 창자를 의미했으나 점차 속마음을 지징하는 말로 어의가 확장됐다. 그래도 이해가 안가면 ‘안달이 난다’는 표현을 떠올리면 된다. 이는 말 그대로 ‘안’이 달아 오른다는 뜻으로 ‘속이 탄다’와 거의 같은 표현이다. 뒷말 ‘꼽다’는 ‘굽다’의 변형어다. 길이 굽거나 철사가 휘어진 것을 ‘굽다’라고 한다. ‘굽다’가 강하게 발음되면서 모음 일부에도 변화가 왔다. 바로 ‘아니꼽다’는 창자 즉 속마음이 뒤틀어지는 것을 말한다. 방향은 다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티껍다’와 ‘고깝다’를 아니꼽다와 같은 말로 알고 있다. 언뜻보면 그런 것도 같다. 그러나 전자는 맞으나 후자는 틀립니다. 전자 티껍다는 북한 사투리로 아니꼽다와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 반면 후자 고깝다는 ‘섭섭하다’ ‘야속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