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해와 오병이어, 그리고 고대인의 메타포
— 텍스트의 역사성을 넘어 ‘실재’를 마주하다
안녕하세요! 오늘 하루도 성경과 고전의 바다를 헤엄치며 깊은 사색에 잠겨 봅니다. 요즘 저는 데니스 맥도널드(Dennis R. MacDonald) 교수의 연구, 특히 복음서와 그리스 고전 문학(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사이의 깊은 연결고리를 파고드는 중입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기적 중 하나인 ‘오병이어(마가복음 6장)’와 구약의 ‘엘리사 이야기(왕하 4장)’,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넬레우스의 환대(오디세이아 3권)’를 비교하며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흥미로운 점은, 이것이 단순한 ‘표절’이나 ‘문학적 차용’의 차원을 넘어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문득 시편 19편을 떠올리며 고대인들의 소통 방식을 조금이나마 엿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얻은 이 깊은 깨우침을 여러분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1. 오병이어, 엘리사, 그리고 호메로스의 만남
맥도널드 교수의 미메시스(Mimesis, 모방) 이론에 따르면, 마가복음 저자는 예수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인 사건을 기록할 때 철저하게 당대 독자들이 숨 쉬듯 잘 알던 문학적 장치를 활용했습니다.
1. 구약의 배경 (엘리사의 보리떡 기적):
열왕기하 4장에서 엘리사가 보리떡 20개로 100명을 먹였던 이야기(왕하 4:42-44)는 오병이어의 뼈대가 됩니다. 마가는 이 이야기를 확장하여, 예수를 엘리사보다 훨씬 더 위대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2. 고전의 배경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하지만 유대교 구약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세부 묘사들이 있습니다. 군중을 배에 태우고, 배고픈 채로 보내지 않으려 불쌍히 여기며, 잔디밭(정원 플롯)에 무리 지어 앉게 하고, 제자들이 웨이터처럼 서빙하며, 남은 음식을 거두어 정리하는 이 환대의 풍경은 놀랍게도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3권에 나오는 ‘넬레우스의 환대’ 장면과 정확하게 평행을 이룹니다.
현대의 우리는 이 대목을 보며 “그래서 이게 진짜 역사적 사실이야, 아니면 문학적 창작이야?”라는 건조한 질문을 던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고대인들의 생각은 우리와 달랐습니다.
2. 자전거 타기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고대인의 소통 방식
생각해 보면, 고대인들에게 이야기나 서사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직설적인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이나 건조한 문자로 다 담아낼 수 없는 거대한 실재(Reality)를 우회적이고 입체적으로 체감하게 만드는 ‘거대한 메타포(Meta-phor)’였습니다.
자전거 타는 법을 아무리 말로 길게 설명해도 몸으로 직접 타보기 전에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복음서 저자나 호메로스 같은 고대 작가들은 청자들이 이미 귀에 박히도록 듣고 익숙해했던 친숙한 영웅 서사와 환대의 플롯을 그릇 삼아, 그 안에 담긴 더 깊은 진리를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3. 시편 19편에서 발견한 비밀
이 지점에서 저는 문득 시편 19편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
(시편 19:1~6)
시편 19편 전반부는 궁창과 우주, 하늘의 태양이 온 땅에 비치는 찬란한 메타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감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경이로움은 자연스럽게 우리를 소성케 하고 눈을 밝게 하는 ‘율법의 찬란함’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시편 19편을 읽을 때, 태양의 물리적 온도나 궤도를 과학적으로 검증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 거대하고 찬란한 이미지와 메타포를 통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과 율법의 존귀함을 온몸으로 체감합니다.
오병이어의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요? 엘리사의 기억과 호메로스의 환대라는 찬란하고 선명한 이야기의 그릇(메타포)을 통해, 마가의 독자들은 예수가 베푸시는 긍휼과 나눔, 그리고 세상의 폭력과 지배 논리를 뒤엎는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오병이어의 이야기가 어떻게 ‘세상의 폭력과지배 논리를 뒤엎는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의미하는지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