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토라이 모히 호사 관람을 마치고 택시를 타고 호텔 근처 라비 하우스(Labi Hauz) 앞에 내린다. 라비 하우즈에 도착했는데 Lyabi Hauz는 페르시아 말로 '연못가'라는 뜻이라 한다. 하우스는 연못이라는 뜻으로, 오아시스 도시답게 시내 곳곳엔 연못 100여 개가 남아 있다고 한다. 라비 하우스는 부하라 구시가지 중심에 위치한 인공 연못과 그 주변의 역사적 건축물들을 아울러 부르는 명칭이다. 실크로드 무역이 번성했던 시절, 부하라는 수많은 카라반이 머물던 오아시스 도시로, 라비 하우즈는 사막을 건너온 상인과 여행자들이 여독을 풀고 휴식을 취하던 중요한 장소였다고 하는데 지금도 라비 하우즈 바로 옆에 라비 하우즈란 레스토랑이 있고 연못 주변으로 빙 둘러 식탁이 차려져 있어 저녁을 먹으러 나온 현지인들과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점점 어두워지자 호수 주변으로 조명이 켜지고 음악이 흘러나오며 술잔을 기우리는 사람들로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라비 하우즈는 당시 부하라 통치자였던 나디르 디반베기(Nadir Divan-begi)가 만들었다. 당시 지금 라비 하우즈가 있는 자리에는 유대인 과부가 살았는데, 나디르가 이곳에 호수를 파고 건물을 지으려는 계획을 세우고 유대인 과부에게 토지 매각을 종용했으나 팔지 않자 이슬람 율법상 유대인들에게 토지매각을 함부로 강요할 수 없어 일단 당초 계획보다 조그맣게 호수를 파고 공사를 시작했는데, 결국은 그녀가 다른 곳에 유대인 기도원을 건설할 토지를 주면 자기 집을 팔겠다고 하여 이사를 보내고 현재의 큰 호수를 조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라비 하우즈 주변으로 수로가 잘 정비돼 있는데, 아마도 이 연못들을 연결하는 수로가 오래전부터 발달한 것이 아닌가 한다. 라비 하우즈를 중심으로 상가와 음식점, 숙박업소, 볼거리들이 몰려있어 부하라를 찾은 사람들은 이곳이 부하라관광의 시발점이 된다. 부하라의 볼거리들은 라비 하우즈를 중심으로 북쪽에 부하라 최대 마드라사인 Kukeldash Madrasah, 서쪽에 이슬람 수도자들의 숙소인 Khanaka Nadir Divan-begi, 그 뒤에 Magoki Attori Masjidi, 동쪽에는 Nadir Divan-begi Madrasah, 그 앞에는 호자 나스루딘(Hodja Nasruddin) 동상이 있다. 그리고 칼란 모스크를 가는 길에 Toqi Telpak Furushon Bazaar를 거치면 Abdulaziz Khan Madrassah와 Mir-i-Arab Madrasa, Kalan Mosque가 있고 칼란 모스크를 지나면 Ark성이 나오고 왼쪽으로 더 가면 구약성서의 욥기의 주인공 욥의 셈과 무덤인 Chashma-Ayub Mausoleum이 나온다. 결국 나는 부하라에 있는 동안 이곳을 2~3회 이상 오게 되었다. 이곳이 부하라의 볼거리의 시작이고 끝이기 때문이다.
우선 라비 하우즈 주변부터 둘러본다. 연못가 한 켠에 호자 나스루딘이란 노인이 노쇠해 보이는 당나귀 등에 타고 익살스런 모습을 한 동상이 보인다. 현지인들도 관광객들도 이 동상에 흥미가 있는지 동상과 같이 사진 찍는 사람들로 동상 주변이 붐비고 아이들이 당나귀 등으로 올라타기도 한다. 그래서 당나귀 등과 호자 나스루딘의 바지는 황금색으로 벗겨져 있다. 호자(Hodja)는 스승을 의미하며 바보 같은 행동을 하면서도 귀족들을 풍자하고 서민들의 아픔을 이해해 주었던 호자 나스루딘의 상징인 당나귀를 타고 손을 흔드는 동상은 바보같은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사람으로 친근한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우스꽝스러운 당나귀에, 우스꽝스러운 사람이 타고, 우스꽝스런 몸짓을 하고 있어 그 당나귀에 그 주인이다. "현명한 바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이 시인이, 어느 날 당나귀를 잃어 버렸다. 그의 이야기를 듣던 사람이, "아저씨, 당나귀 잃고, 노래가 나와?"라고 물었다. 호자 나스루딘 왈, "내가 당나귀를 타고 있었으면, 당나귀나 나나 모두 잃어 버렸을 거 아닌가?"라고 했다. 나스루딘의 익살스러운 동상은 이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터키나 이란 같은 곳에도 있다고 한다. 호자 나스루딘(Hodja Nasruddin)은 13세기 터키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이름에 붙어 있는 Hodja는 터키어로 선생님, 스승이나 지도자를 뜻한다. 중앙아시아에서 호자는 무척 높은 지위의 종교지도자를 의미하며 이슬람 지역의 많은 이야기에 주인공으로 나오는 사람인데, 아주 유머러스하고, 재치가 있으며 웃긴 인물로 묘사가 되지만 그 유머와 재치 속에는 촌철살인의 뼈가 있고, 지혜가 숨어 있다고 한다.
나스루딘의 이야기는 우리들에게도 알려져 있는 '팔러가는 당나귀이다'. 부자(父子)가 당나귀를 시장에 팔러 가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냥 끌고 가는 것을 보고 혀를 차면서 타고 가지 그냥 끌고 간다고 하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타라고 한다. 마을을 지나가는데 나무 그늘에 있던 노인들이 젊은 아들이 타고 나이 든 아비가 걸어간다고 불효한 놈이라고 비난을 한다. 그러자 아버지가 아들을 내리게 하고 아버지가 타고 가는데 우물가에서 여인들을 만났는데 그 여인들이 어린 아들은 걷게 하고 아비가 타고 간다고 비난하자 아버지가 아들보고 너도 타라고 하여 둘이 타고 가다가 시장을 지나게 되었는데 상인들이 한 마디 한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둘이타고 가는 인정머리 없는 인간들이라고 비난을 하자 결국은 장대를 구해 와서 다리를 묶어 부자가 당나귀를 메고 장에 간다는 이야기이다.
또, 호자가 당나귀를 타고 갈 때, 당나귀를 거꾸로 타고 다녀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묻자 호자는 "내가 당나귀를 반대로 잘못 탄 게 아니고, 당나귀가 반대 방향으로 서 있는 거라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어떤 사람이 호자에게 당나귀를 빌려달라고 했다. 그러기 싫었던 호자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당나귀를 빌려주었다고 둘러댔는데 마당에서 당나귀가 우는 소리를 냈다. 이웃이 따지자, 호자는 이렇게 물었단다. "아니, 내가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었다는데, 내 말을 믿을 거요? 아님 당나귀 말을 믿을 거요?" 이렇게 그는 고정관념을 깨고, 권력자를 조롱하고, 인간의 본성을 꿰는 촌철살인의 일화를 많이 남겼다고 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나스루딘 호자를 주인공으로 이런 이야기를 많이 만들었다고도 한다.
호자 나스루딘 동상 옆에 있는 Nadir Divan-begi Madrasah는 1622~1623년 나디르 디반 베기에 의해 건설되었는데 원래 카라반사라이로 지어졌으나, 이후 이맘 쿨리 칸(Imam Quli Khan)의 명령으로 마드라사로 전환되었다. 참고로 지역의 행정 책임자를 디반 베기라 불렀으므로, 엄밀히 말하면 나디르 통치자가 건설한 마드라사인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나디르 디반베기는 부하라 왕국의 고위 관료로 엄청난 부잣집에서 태어나 성인이 되어 결혼식을 올릴 때 신부에게 아주 검소한 귀걸이 하나만을 선물하자 부잣집으로 시집을 가게 되어 좋은 선물을 기대했던 그의 부인은 크게 실망하고 기분이 나빴지만, 할 수 없이 참고 지냈는데 수년이 지나고 디반 베기가 마드라사와 모스크 등 각종 건축물을 완공한 후 부인에게 "결혼식 때 당신에게 귀걸이 하나만 선물했기 때문에 이 아름다운 건축물을 완성하였소. 이 모든 건축물이 진정한 나의 결혼 선물이오." 라고 했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안뜰에선 현재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다양한 문화 행사와 민속 공연이 열리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디반 베기 안은 마당에는 공연을 구경할 수 있는 넓은 마당이 있고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의 방들은 점포들로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을 판다. 공연이 막 끝났는지 관광객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나디르 디반 베기 마드라사(Nadir Divan Begi Madrasa) 건물 크기는 52x49m로, 내부에는 2층으로 이루어진 71개의 작은 방(후즈라, hujra)들이 네 면을 둘러싸고 있다. 건물의 외관은 보통 비슷한 모자이크와 타일 장식으로 꾸며져 있으나, 이 마드라사가 독특한 점은 입구 피쉬탁에 황금빛 태양을 향해 두 마리의 거대한 환상의 불사조 세무르그(Semurg)가 흰 사슴을 발톱으로 쥔 형상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슬람에서는 사람 얼굴이나 동물 형상을 우상숭배라 해 금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불사조는 튀르크 민족신화에서 행복과 보호를 상징하는 시무르그(Simurgh)라고 하며, 사슴은 고통을 상징하기 때문에, 행복이 고통을 물리치는 상징인 것이다. 또한 위 중앙에는 태양 안에 사람 얼굴이 그려져 있는데, 사마르칸트의 쉬르도르 마드라사에도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슬람에서 우상숭배를 금하는데도 이렇게 한 것은, 당시 집권자들이 종교를 뛰어넘는 힘을 과시하기 위해 건축했다고 한다.
부하라 칸국 시절에 50개나 되던 연못이 전염병의 원인이 되자 구소련 시기에 47개 연못이 폐쇄돼 지금은 부하라에 3개 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주위에는 500살이 넘었다는 거목인 죽은 뽕나무가 있다.
Nadir Divan-begi Madrasah에서 수로 옆 Toqi Sarrofon Bazaar를 구경하며 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그 옛날 실그로드 대상들이 묵던 Gulomdzhon 카라반사라이가 나온다. 내부로 들어가 보니 지금은 음식점으로 사용되고 있다. 카라반사라이에서 서쪽으로 좀 더 걸어가니 마고키 아토리 모스크(Magoki Attori Mosque)가 보인다. 이 모스크의 기존 자리에는 원래 불교 사원, 조로아스터교 사원이 존재했고, 뒤이어 12세기 쯤 무슬림 사원이 세워져 각 종교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부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모스크인 마고키 아타리 모스크는 오랫동안 묻혀 있다 1936년 러시아 고고학자 시슈킨이 발굴했다 한다. 마고키는 '굴안' 이란 뜻으로 둘레가 굴처럼 파인 데서 붙은 이름이며, 아타리는 '약을 판매한다' 란 뜻으로 전에는 모스크 주변에서 약을 많이 팔았다고 한다. 모스크 벽면은 3층으로 나뉘어 아래에 조각된 조르아스터교 아라베스크 무늬 벽돌층, 그 위 불교양식 기단 그리고 그 위에 이슬람 건축양식을 보여 줘 그 역사를 말해준다. 아마 종교가 유입되는 순서대로 그 위에 계속 건물을 세웠기 때문으로 이곳에서 조르아스터교, 불교, 이슬람교에 의한 건축 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현재는 부하라 카페트를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사용한다.
밤이라 그런지 방향 감각도 둔해지고 피곤하기도 해 호텔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