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밀린다왕문경)
43. 출가자의 속퇴俗退에 관한 질문
왕은 또 말하였습니다.
"존자여! 불교는 가장 넓고 크며 가장 진실하고 깨끗하며 또 가장 원만하고 결점이 없어 말하자면 보통 범부들로는 대단히 닦기가 어려운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교단에 사람을 처음 출가시킬 때는 당장 속인俗人을 그대로 출가시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일단 俗世에 있을 때 부터 미리 가르쳐 일과一果의 수행과위修行果位에 까지 들게하여 다시는 世俗에 돌아갈 염려가 없어진 다음에 출가시키는 것이 마땅할 까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이러한 삿된 사람들이 직접 청정한 교단에 출가한 후 도로 세속에 물러나게 되어 결국 세상 사람들은 말하기를, '보라! 불교도 별 수 없는가 보다! 그들은 다시 속세로 돌아왔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 대왕의 질문의 뜻은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대왕이여! 비유컨대 여기에 깨끗한 물이 가득 채워진 연못이 하나 있다고 합시다. 거기에 어떤 더러운 때가 묻은 사람이 이 연못에 까지 왔건만 목욕하여 때를 씻지 않고 더러운 그대로 돌아갔다면 대왕이여! 세상 사람은 그 때묻은 사람과 연못, 어느 쪽을 나무랄까요?"
"존자여! 물론 세상 사람은 때 묻은 사람을 나무라지요. '그가 연못에 까지 갔어도 목욕을 하지 않고 돌아갔으니 목욕을 아니하는 그를 어찌 연못 스스로가 목욕을 시켜 주겠는가! 연못 자체에 무슨 허물이 있으리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이 부처님께서 최승정법最勝正法의 연못에 최승해탈最勝解脫의 물을 가득 채워놓고 '번뇌의 때가 있는 자는 여기에 목욕하여 번뇌의 때를 씻으라!'고 하시는데, 어떤 사람이 그 최승정법의 연못에 까지 갔어도 목욕을 하지 않도 번뇌를 가진 채 속세로 돌아 갔다면 세상 사람이 그를 이렇게 나무랄 것입니다. 즉,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다행히 입문했건만 아깝게도 다시 속세로 돌아왔다, 道를 수행하지 못하는 그를 어찌 가르침 스스로가 깨끗이 해 주겠는가? 부처님 가르침 자체에 무슨 허물이 있으리오'라고."
"대왕이여! 또 비유컨대 중병에 걸린 사람이 그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의사를 만나고서도 치료를 받지 않고 병을 가진 채 돌아갔다면 세상 사람이 의사와 병자 어느 쪽을 나무랄까요?"
"존자여! 물론 병자를 나무라지요. '그가 자기 병을 고칠 수 있는 의사를 만나고서도 치료를 받지 않고 갔으니 치료 받지 않는 그를 어찌 의사 스스로가 치료해 주겠는가? 의사에 무슨 허물이 있으리오'라고 말할 것입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이 부처님의 약총藥寵중에는 모든 번뇌의 병을 고치는 불사不死의 영약靈藥을 담아 놓고 '번뇌의 병에 신음하는 환자는 이 약을 먹고 번뇌의 병을 낫게 하라'고 하시는데, 어떤 사람이 그 영약을 보고서도 먹지 않고 번뇌를 가진 속세로 돌아갔다면 세상 사람이 그를 이렇게 나무랄 것입니다. 즉 '그가 다행히 부처님 가르침에 출가했건만 아깝게도 속세에 다시 돌아왔다. 道를 행하지 못하는 그를 어찌 가르침 스스로가 번뇌의 병을 낫게 해 주겠는가! 부처님의 가르침 자체에 무슨 허물이 있으리오' 라고."
청정무구淸淨無垢! 맑고 깨끗하여 더럽거나 속된 데가 없음을 뜻하는 연꽃! 우리마음 또한 닦으면 그리되지 않으리!
"대왕이여! 또 비유컨대 어떤 배고픈 사람이 마침 잔치하는 장소에 가서 밥과 음식을 만났지만 음식과 밥을 먹지 않고 배고픈 그대로 돌아왔다면 세상 사람들이 배고픈 사람과 음식과 밥 가운데 어느 쪽을 나무랄까요?"
"존자여! 물론 배고픈 사람을 나무라지요. '그가 배고파하면서 음식과 밥을 만나고서도 먹지않고 돌아왔으니 먹지 않는 그의 입에 어찌 음식과 밥 스스로가 들어가겠느냐! 음식과 밥 차체에 무슨 허물이 있으리요'라고 말할 것 입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이 부처님 교의敎義의 그릇에 가장 극승선미極勝善味롭고, 수묘감미殊妙甘味로운 불멸의 음식을 담아 놓고 '번뇌에 괴로워하고 갈애渴愛에 정복당한 자는 이 음식을 먹고 모든 번뇌와 갈애를 버리라'고 하시는데, 어떤 사람이 그 음식을 보고서도 먹지 않고 번뇌와 갈애를 가진 채 속세로 돌아왔다면 세상사람들은 그를 보고 이렇게 나무랄 것입니다. 즉, '그는 다행이 불교에 출가했건마는 아깝게도 속세로 다시 돌아왔다. 道를 행하지 못하는 그를 어찌 교의敎義 스스로가 번뇌, 갈애을 없애 주겠는가! 불교 자체에 무슨 허물이 있으리오'라고."
"대왕이여! 그리고 또 당신이 앞에 하신 말씀과 같이 在家한 俗人을 미리 가르쳐 一果의 修行果位에 들게 한 후에 출가시킨다고 한다면 그 출가는 번뇌를 버리기 위함도 아니며, 청정을 닦기 위함도 아닌 것이 되어 출가는 별로 소용이 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대왕이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수백의 인력人力을 들여서 목욕을 위한 큰 연못을 만들어 놓고 대중에게 고하기를, '모든 사람들이여! 더러운 때가 있는 사람은 이 연못에 목욕하지 마시오. 더러운 때가 없는 사람만 목욕하시오.'라고 하였다면, 대왕이여! 이미 때가 없는 깨끗한 사람에게 그 연못이 필요하겠습니까?"
"필요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그 연못에 가기 전에 몸이 깨끗한 상태인데 또 무슨 연못이 필요하겠습니까?"
"대왕이여! 그와 같이 만약 부처님이 재가한 속인을 가르쳐 일과에 든 사람만 출가시킨다고 하면 그곳에서 이미 할 일이 다 마쳐졌는데, 또 무슨 출가가 필요하겠습니까? 대왕이여! 또 비유컨대 어떠한 환자의 병이라도 깊이 생각하여 병의 원인을 알아내며 유효하고 정확한 약을 쓰는 의사가 대중에게 고하기를, '모든 사람들이여! 병이 있는 자는 나에게 오지 말고, 병이 없는 사람만 나에게 와서 치료를 받으시오'라고 한다면, 대왕이여! 그들 병 없는 사람이 그 의사를 필요로 하겠습니까?"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의사를 찾기 전에 이미 병이 나아 있는데, 또 무슨 의사가 필요하겠습니까."
"대왕이여! 그와 같이 만약 부처님이 在家者를 가르치는 一果에 진입한 사람만 출가시킨다면 그곳에서 이미 할 일을 마쳐져 있는데, 무슨 출가가 필요하겠습니까? 대왕이여! 또 비유컨대 맛있는 요리를 수백 그릇 만들어 놓고 대중에게 고하기를, '배고픈 사람은 오지 말고, 배부른 사람만 오라'고 한다면, 대왕이여! 그들 배부른 사람이 그 요리를 필요로 하겠습니까?"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요리를 보기 전에 배가 불러 있는데, 또 무슨 요리가 필요하겠습니까?"
출가승(좌) / 당일 출가 동자승(우) 깨치기 위해서는 초지일관 출가할 때의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대왕이여! 그와 같이 만약 부처님이 在家者를 가르쳐 一果에 진입한 사람만 출가시킨다면 거기서 그들의 할 일이 이미 다 되어 있는데, 또 무슨 출가가 필요하겠습니까? 대왕이여! 그리고 또 출가한 사람이 세속에 다시 물러감은 도리어 그로 말미암아 불교의 다섯 가지 비할 수 없는 훌륭한 德을 보여줌이 되는 것이니, 무엇이 다섯 가지냐 하면,
1. 불교가 '심히 크다' 함을 보여주고,
2. 불교는 '심히 청정무구'하다 함을 보여 주고,
3. 불교는 '악한 사람이 함께 머물 수 없다' 함을 보여주고,
4. 불교는 '감히 범부로는 통달하기 어렵다' 함을 보여 주고,
5. 불교에서는 '많은 율행을 지켜야'함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첫째 '불교는 심히 크다' 함은 어떻게 보여주는가?
그것은 대왕이여! 비유컨대 지식도 없고 재력도 부족하며 별로 잘 나지도 못한 사람이 가령 큰 정권을 잡게 된다고 하면 오래지 않아 국민의 여망으로부터 추락되고 실각하여 결국 그 주권을 보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하면, 그 정권이 자기 능력에 비하여 너무도 크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이 사람이 뛰어나지도 못하고 지은 복덕도 없는 자가 불교에 출가했더라고 그는 그 극승최상極勝最上의 출가를 보전하지 못하고 오래지 않아 불교로부터 전락되고 실각하여 결국 속퇴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하면, 불교가 그의 능력에 비하여 너무도 크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그래서 속퇴하는 자로 말미암아 도리어 불교의 '지극히 큼'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둘째, 불교가 '심히 청정 무구하다' 함은 어떻게 보여 주는가?
그것은 대왕이여! 비유컨대 연꽃잎에 떨어진 물은 즉시 굴러 떨어져 꽃잎에 묻지 아니하는 것이니, 그 까닭은 연꽃잎이 너무도 깨끗한 까닭입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이 惡하고 거짓되고 꾸부러진 소견所見을 가진 자는 불교에 비록 출가했다 하더라도 청정무구하고 最勝極勝의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물러나며 굴러 떨어져 결국 속퇴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하면, 불교가 너무도 청정결백하여 그가 견디어 참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이래서 속퇴하는 자로 말아암아 도리어 불교의 청정무구함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또 셋째, 불교는 '惡한 사람이 함께 머물를 수 없다' 함은 어떻게 보여 주는가?
그것은 대왕이여! 비유컨대 바다의 물은 죽은 시체와 함께 머물지 아니합니다. 바다에 시체가 있으면 곧 언덕쪽으로 밀어 붙이거나 육지로 보내게 되는 것이니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하면 불교에는 사악한 사람은 함께 머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이래서 속퇴하는 자로 말미암아 도리어 불교는 '악인이 함께 머무를 수 없음'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또 넷째는, 불교는 감히 '통달하기 어렵다' 함은 어떻게 보여 주는가?
대왕이여! 비유컨대 재주도 없고 연습도 하지 않으며 지혜도 없는 사수射手는 '터럭의 끝'을 겨냥하며 화살을 쏘아도 그것을 맞히지 못하고 마냥 빗나가게만 하는 것입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이 지혜도 없고 어리석으며 귀먹고 벙어리 같으며 아둔한 자는 불교에 비록 출가했다 하더라도 극승미세極勝微細한 사성제법四聖諦法을 통달하지 못하고 빗나가게 되어 결국 속퇴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하면, 사성제법이 너무도 부드럽고 가늘어서 통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이래서 속퇴하는 자로 말미암아 도리어 불교는 감히 '범부凡夫로는 통달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전단향栴檀香나무(좌) / 전단향나무로 만든 염주 인도에서 나는 향나무의 하나로 목재는 불상을 만드는 재료로 쓰고 뿌리는 가루로 만들어 단향檀香으로 쓴다
끝으로 불교에서는 '많은 율행을 지켜야 함'을 어떻게 보여주는가?
대왕이여! 비유컨대 어떤 군인이 큰 전투가 벌어진 곳에서 적군에게 포위당하여 사방에서 적의 대군으로 부터 공격을 받을 때는 겁을 집어먹고 물러서며 달아납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하면, 지켜야 할 전선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이 지키지도 못하고, 막아내지도 못하며, 참을성도 없고, 부끄럼도 모르며, 졸렬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비록 불교에 출가했다 하더라도 배움과 행을 지키지 못하고 오래지 않아 물러나며 달아나게 되어 결국 속퇴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하면, 너무도 엄격하고 많은 율행을 지켜야하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이래서 속퇴하는 자로 말미암아 도리어 불교에서는 '많은 율행을 지켜야 함'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대왕이여!
육지에 나는 꽃가운데 가장 으뜸이라는 소형총素響叢중에는 벌레의 침해로 말미암아 향기를 잃고 시들며 떨어짐으로 인하여 소형총의 가치가 손상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떨어지지 않고 완전하게 남은 꽃들이 소형총의 본래의 향기를 그대로 주위 사바에 풍겨주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이 불교에 출가한 사람가운데 배움과 계戒의 향기를 잃고 설령 속퇴하는 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불교의 가치가 손상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왜 그럴까요? 거기에 남은 모든 비구들이 하늘과 인간세계에 본래의 최승계향最勝戒香의 향기를 두루 그대로 풍겨주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또 모든 욕망을 들어주는 마니보주에도 약간의 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약간의 흠으로 말미암아 마니보주의 가치가 상실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청정한 부분은 만사람을 기쁘게 해 주고 즐겁게 해 주는 까닭입니다.
대왕이여! 이와 같이 불교에 출가했더라고 속퇴하는 자는 하잘 것 없는 전락자, 낙오자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속퇴함으로써 불교가 무시당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거기에 남은 비구스님들은 인간과 하늘을 더욱 기쁘게 해 주는 것입니다.
대왕이여! 또 아무리 좋은 전단향목이라도 일부가 썩어 향기가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전단향목의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썩지 아니한 부분이 본래의 훌륭한 향기를 그대로 풍겨주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이와 같이 비록 불교에 출가했을지라도 속퇴하는 자는 마치 전단향목의 썩은 부분이 자연 버려지듯 스스로 제거될 뿐, 그로 말미암아 불교 본래의 가치성이 손실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남은 모든 비구스님들이 하늘과 인간세계를 최승계향의 본래 향기를 남김없이 그대로 풍겨주는 까닭입니다."
"네 잘 알았습니다. 존자여! 과연 불교 자체에 허물이 없음을 알겠으며 퇴속하는 자로 말미암아 도리어 불교의 위대함이 증명되었습니다."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출처]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밀린다王問經)(제43회)|작성자 래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