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정리:2005.3. 26
07:30산내중학교-08:00서진암-08:10백장암갈림3거리-08:30헬기장-09:10무명봉-09:25투구봉-조식-01:40출발-11:30삼봉산-13:10등구재-14:00백운산-14:30금대산-13:30주차장
지리산 국립공원이 봄철 산불 예방 기간으로 출입이 통제되었다. 하지만 지리 산꾼들은 쉬지 않는다. 이때도 그들의 열정은 식지 않아 지리산 외곽지역을 산행하면서 멀리 지리산을 바라보면서 그리움을 달랜다. 오늘의 산행지는 경남 함양 마천의 삼봉산. 광활한 지리산을 마주하며 자신만 떨어졌다는 마음에 한없이 그리워하는 애틋한 산이다. 지리산에서 지리산을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최고의 주목을 받는 곳은 당연 삼신봉이지만, 삼정산, 바래봉, 만복대, 웅석봉, 성제봉 등도 훌륭하다. 하지만 삼정산 너무 가깝고 성제봉은 멀다. 웅석봉은 지리산의 동부만 조망되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삼봉산은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지리산을 거의 완벽에 가까울 만큼 모두 볼 수 있기에 지리산 최대의 조망처는 삼봉산이 아닐까 싶다.
삼봉산 산행을 위하여 남원O적과 인월에서 오전 7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고 일요일 새벽 2시 집을 나선다. 인월에 도착할 때까지 운전하며 졸음을 참느라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학기 초 연일 모임에서 곡차를 많이 마셨더니 몸이 몹시도 피곤했던 모양이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남원O적이 기다리고 있다. 남원O적의 차를 마천면 직전 금대암 앞 입구 주차장에 세워놓고, 나의 애마로 다시 산내면으로 되돌아간다.
들머리는 산내중학교. 산내중학교 뒤 마을을 따라 비포장도로 끝에 애마를 세워놓고 오늘의 산행이 비로소 시작된다. 마음이 한껏 들떠 졸음은 어느새 달아난 지 오래다. 코스는 서진암을 거쳐 투구봉을 오른 후 삼봉산에서 한껏 지리산 조망을 한 후 남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금대암으로 방향을 잡았다. 올겨울은 많은 눈도 강한 추위도 없었다. 그 겨울의 끝자락을 지나 이제 봄이 성큼 다가왔다. 그동안 헐벗고 바싹 마른나무는 겨우내 인내하고 서서히 싹틀 준비를 하며 새 생명을 만들려 한다. 양지바른 남녘엔 눈이 녹아 질퍽하다. 경사가 급한 된비알을 조금 차고 오르니 곧 서진암이다.
서진암에서 식수를 확보하고 암자를 살피나 인기척이 없다. 날씨가 따뜻하여 복장을 날렵하게 꾸미고 앞이 훤히 보이는 산마루를 향한다. 곧 백장암에서 올라오는 능선을 만나니 바로 삼봉산의 주 능선이다. 아래를 내려보니 인월면이 가깝다. 이 능선을 따라 북과 남의 명암이 갈리는데 북쪽은 하얗게 잔설이 그대로 남아있으며 그 능선을 따르는 길은 발목까지 빠져 미끄럽다. 아직 조망은 트이지 않는다.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천왕봉과 지리산 주능선이 슬쩍 보인다. 걸으면서 뒤를 바라보니 동쪽으로 지리산의 막둥이 덕두산이 씩씩하다. 헬기장을 만난다. 조망권은 많이 확보되었지만 아직은 아니다. 진행 방향 동쪽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삼봉산을 슬쩍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능선을 따라 천천히 걸어 올라 봉우리에 오르니 투구봉과 그 너머로 삼봉산이 보인다. 아마도 이 봉우리는 투구봉보다 수십 미터는 더 높을 듯싶다. 그러나 무명봉이다. 아침을 걸러 뱃속이 서운했으나 투구봉에서 식사하기로 한다. 그동안 투구봉은 산불 감시사와 대형 안테나 탑도 들어섰다. 그리 강하지 않은 바람을 슬쩍 피해 투구봉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남원O적이 준비해온 도시락을 맛나게 먹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는데. 오늘은 그 말이 지리산이 해당이 되겠다.
곧 조망에 들어간다. 날씨가 썩 좋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래도 황사가 없어 다행이다. 투구봉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날카로운 삼봉산 정상이 우뚝 솟았고, 정남에는 창암산이 가깝다. 왕등재를 시작으로 쑥밭재, 하봉, 중봉, 천왕봉과 주능선, 반야봉을 거쳐 성삼재, 고리봉까지 지리산을 스캔한다. 10시까지 지리산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삼봉산을 향해 길을 떠난다. 아래로는 실상사와 상황, 중황, 하황마을이 줄줄이 보인다. 약간의 오름길 끝에 삼봉산 정상에 섰다. 정상석에 표기된 1,186.7m의 삼봉산은 경남 함양 마천에 위치한 지리산의 자매 산으로 백두대간의 삼봉산과 다르며 삼봉산에서의 조망은 투구봉보다 더 확장된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거칠 것이 없다. 남쪽으로는 눈높이의 지리산 주능선이 하늘금과 맞닿으며 여러 폭의 병풍처럼 연이어진다. 천왕봉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하봉, 쑥밭재, 왕등재 왕산까지. 오른쪽으로는 제석봉, 촛대봉 등 지리 연봉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또한 만복대, 정령치, 세걸산,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이 장쾌하다. 멋지다. 그 어디에서 이렇게 지리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는 말인가. 탁 트인 일망무제의 조망에 마음이 풀리며 누그러진다. 산에 오르면 속세에서 어떠한 애증도 미움의 그림자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나 산에서 내려서면 며칠도 채 지나지 못해, 마음은 다시 욕심으로 가득 채워지고, 조그만 이익을 따라 쫓으며 다시 평범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도를 닦는 스님들이 있는 사찰은 산에 있는가 보다.
오도재와 법화산 용유담 쪽에 정신을 빼앗겨 한참을 바라보다가 남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내려선다. 이 길은 백운산과 금대산을 잇는다. 초반 내리막이 가파르다. 우리가 내려서는 능선은 경남과 전북을 가르는 도계능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함양 마천면과 남원 산내면을 가른다. 고도가 낮아지면서 부드러운 능선길이 열린다. 그러나 길이 미끄러워 조심한다. 1시간 정도 내려서자 등구재에 닿는다.
등구재 사거리. 내리막길에서 보면 좌측은 마천의 창원마을과 우측의 상황마을이 갈리는 고개다. 이 고개 역시 경남과 전북을 가른다. 직진한다. 백운산을 향하여 다시 오름길이 시작된다. 등구재에서 백운산으로 오르려면 고도를 300m 정도 올려야 한다. 오르다 뒤를 돌아보니 삼봉산 능선이 준엄하다. 낙엽송과 잣나무가 가득한 숲길엔 지난가을에 떨어진 낙엽이 수북하다.
오후 2시가 되어 백운산(902m)에 올랐다. 이곳에서 바라보니 지리산이 한층 더 가깝다. 창암산과 마천마을은 코에 닿을 듯 바로 지척이고 도마마을로 오르는 구불구불한 산길과 산사태로 벗겨진 산자락도 보인다. 지리 주능선이 더 가깝고, 지리산 중북부 능선의 삼정산 아래 눌러앉은 문수암도 시야에 들어온다. 삼봉산에서 지금까지 걸어왔던 능선이 뒤로 한참이나 물러섰으며 오도재에서 마천으로 내려서는 굽이굽이 도로와 산골 마을이 평화롭다.
백운산에서 상황마을로 내려서는 길을 버리고 계속 걸어 금대산을 향한다. 바위로 이루어진 금대산에 오르니 산불감시 요원이 홀로 서 있다가 반갑게 맞이한다. 그 노고에 감사하며 초코파이를 몇 개 권한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금대암. 금대암은 합천 해인사의 말사로써 김종직과 김일손의 지리 산행기 유두류록(遊頭流錄)에도 나오는 오래된 암자이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치고 내려오니 시멘트 도로와 만난다. 도중에 금대암으로 내려서는 길을 찾지 못했는지 없었던 건지 지금 와 생각하니 모호하다. 금대산 정상 가까이 이 도로가 왜 만들어졌는지 이해가 안되며 난감하다. 곳곳에 산을 깎아 길을 만들어 사태 지역이 발생했으며 경관 또한 크게 헤쳤다.
금대암 1.2km. 아쉽지만 금대암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 갈지자 길을 버리고 지름길로 마천으로 나가는 국도를 만난다. 시간도 널널해 점심은 생략하고 일단은 남원 시내로 나가기로 한다. 따끈하게 목욕 후 남원시청 건너편 대성식당의 얼큰하고 맛난 생태탕에 소주 한잔 생각이 간절했다. 다시 인천까지 돌아가야 할 멀리 있는 길은 차후의 일이었다. 이른 봄 어느 지리산꾼의 하루는 이렇게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