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 15일로 기억된다. 고등학교 36년 교직생활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고등학교는 12월로 겨울방학이 끝나면 대개 졸업식을 2월 12일쯤에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주 16, 17일부터는 봄방학이다. 봄방학 전날까지는 수업을 했다.
12월 초에 교장선생님이 나를 보고.
“이제 선생님은 집에서 쉬셔도 되는데…. 너무 교생 했는데 마지막이라도 쉬시게 해 드려야죠.”
하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고맙게 느껴지면서도 그만둔다는 아쉬움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에 15일까지 수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2월 15일로 한 학년 수업이 끝나고, 나의 교사 생활도 끝나는 날이었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늘 아쉽고 쓸쓸하고 서글픈 생각이 든다. 그날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아침부터 조금 흥분이 되었다. 며칠 전부터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생각했다.
마지막 수업 날, 프랑스어 선생님인 아멜 선생님은 장학사가 학교를 방문할 때나 입던 정장을 입고 교단에 선다. 아멜 선생님은 동네의 어른들이 참관하고 있는 가운데
“베를린에서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독일에 귀속된 알자스-로렌 지방의 모든 학교에서는 프랑스어 수업이 아닌 독일어로 수업을 하라고 했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 수업이 마지막 수업이라는 것이다. 드디어 수업이 끝나는 시간인 12시가 되었다. 건너편 교회 종탑에서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프로이센 군인들의 군화소리가 들리자, 아멜 선생님은 말을 잇지 못한다. 이어서 아멜 선생님은 교실 칠판에 ‘Vive La France!’(프랑스 만세!)라고 쓰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 이야기는 알자스 지방에 살던 소년 프란츠에 관한 마지막 수업이기도 하지만, 아멜 선생님의 마지막 프랑스 수업이기도 했다.
이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나도 이렇게 멋지게 아니 감동적으로 끝낼 수가 있을까? 하면서 날이 갈수록 말을 안 듣는 학생들이라 어떻게 하면 멋지게 마무리를 지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마지막 날은 문학 시간이었다. 마침 윤동주의 ‘서시’를 마지막으로 배우게 되었다. 마지막 시간에 배우기에 딱 알맞은 제목이었다. 이 시는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두에 붙여진 작품으로, ‘서시(序詩)’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집 전체의 내용을 대변해 주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먼저 내가 낭송을 하고, 학생들 다 같이 낭송하도록 했다. 그 다음에 한 구절씩 설명을 한 다음에 학생들로 하여금 주제와 감상을 말해 보라고 했다.
학생들은 똑똑했다. 어떤 학생은
“순결한 도덕적 삶을 살고자 하는 화자의 의지와 고뇌를 볼 수 있습니다”
라고 했다. 어떤 학생은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결백한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다.”
또 어떤 학생은
“살아 있는 존재에 대한 한없는 연민과 사랑을 나타내면서 미래의 삶에 대한 화자의 결의를 다짐하고 있습니다.”
라고 했다. 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끝으로
“이 시는 배경이 일제 강점기로, 현실의 어둠과 괴로움 속에서 자기의 양심을 외롭게 지키며, 맑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자 했던 한 젊은 지식인의 모습을 간결한 언어와 상징어들을 통해 보여 준 작품입니다. 그리고 화자는 밤하늘에 빛나는 맑고 밝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삶의 고통에 부대끼는 모든 생명들을 사랑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길’, 즉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향해 꿋꿋하게 걸어가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일종의 저항십니다.”
라고 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아직 10분쯤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 시간은 나의 교사 생활 중 마지막 황금 같은 시간이었다. 나는 이 시간이 학교생활의 마지막 시간이라고 말하자, 아이들이 갑자기 숙연해졌다. 눈동자들이 모두 나를 향했다. 순간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처럼…. 나는 십여 분 남은 시간을 어떻게 시간을 보낼 것인가를 생각했다. 끝 시간을 알리는 벨이 울리자 아멜 선생님이 교실 칠판에 Vive La France!(프랑스 만세!)라고 쓰며 끝낸 것처럼, 나도 무슨 말을 쓰고 싶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로 쓸까 하다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 시간에 배운 시구를 칠판에 크게 쓰고 “열심히 하는 사람만이 꿈을 이룬다”는 말을 덧붙이고, 인사를 받고 교실에서 나왔다. 아쉽게 끝난 마지막 수업이었다. 교실문을 나오는데 학생들이 뒤에서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면서도 어쩐지 처량하고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더 멋지게 하지 못하고 마무리를 지은 것이 좀 아쉬웠던 것이다.
교무실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내 의자에 앉아 보았다. 감회가 깊었다. 뭔가 허전하면서도 아쉬운 감정이 몰려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 할 일을 다 마치고 떠난다는 것에 자랑스럽기도 했다. 어떤 선생님이
“선생님 오늘도 수업하셨어요?”
“그만둔다는 것이 어쩐지 아쉬워서요.”
조금 후, 참고가 될 만한 책들을 후배 교사에게 물려주고, 나머지 책과 물건들을 싸서 아이들에게 시키고 그 뒤를 따랐다. 동료 교사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교무실 문을 나설 즈음 한 동료 교사가 쫒아오더니 앞질러 가서 택시를 잡아주었다.
착잡하고 허전하며 쓸쓸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생각지도 않게아내와 두 딸이 일렬로 문 앞에 서서
“수고하셨어요.”
하고 박수를 쳐주었다. 그리고 꽃다발을 안겨 주었다. 조금 전의 허전하고 쓸쓸했던 기분이 싹 사라져 버렸다.
“나보다도 당신이 더 고생했소.”
내가 말했다.
36년 동안 새벽마다 출근길에 내 뒷바라지한 것이 미안하고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나는 아내와 아이들과 포옹을 했다. 모두가 다 고마운 것이다.
내 서재로 가서 책상 앞에 앉으니, 학교에서 느꼈던 그 감정, 내 할 일을 이 제 다 마쳤다는 생각에 시원하면서도 한편 어딘가 텅 빈 듯 허전함이 다시 엄습해 왔다. 아내가 꽃다발에서 꽃을 뽑아 화병에 꽂아 내 책상 위에 갖다 놓았다. 꽃에서 향기가 났다.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고 조용히 무릎을 꿇고, 그동안 아무 탈 없이 지내면서 내 할 일을 다 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우스갯소리로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교직생활을 하게 한 ‘길동’이와 ‘춘향’이가 참으로 고맙다. 그리고 심청이도 고맙고, 구운몽의 성진이도 고맙고, 사씨남정기의 사씨도 교씨도 고맙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춘향전 홍길동전이 없으면 내가 국어 선생을 할 수 있었겠니?
그제야 아이들이
“ 아!”
하고 말했다.
그날 밤 나는 나만의 작은 공간에 누워 지난 36년 동안의 즐거웠던 일과, 물 흐르듯 흘러간 애증(愛憎)의 세월들을 회상해 보았다. 그동안 ‘최선(最善)을 다 했는가’였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학생들에게 좀 더 잘해 줄 것을 하는 후회의 감정이 밀려오기도 했다.
한편 세월이 참으로 빠르게 흘러갔다는 것을 생각하며, 남을 세월을 계산해 보기도 했다. 내 나이 스물여덟에 교단에 처음 들어선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정년이 되어 이제는 더 가르치고 싶어도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활동할 수 있는 세월의 거지반을 학교에서 보낸 것이다. 이제 인생의 후반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제 나는 지금까지의 내가 아니라, 새로 탄생하는 새 세상과, 새 환경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 살아가는 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날의 세월도 소중했지만, 이제 남은 인생도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것이다. 아니 인생의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면에서는 내 인생의 후반이 더 중요한 시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푯대 잃은 하나의 나뭇잎처럼 시간이라는 물결에 휩쓸려 출렁이며 정처 없이 흘러가다 걸리고 마는 인생이 아니라, 이전보다도 더 아름답고 찬란한 나만의 후반기(後半期) 인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바울이 한 말이 생각났다. 그는 <디모데 후서>에서 “내가 선한 싸움 싸우고, 달려갈 길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라고 했다. 여기서 달려갈 길을 다 마쳐야 된다는 것은 유종의 미를 말한다.
부질없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잠을 설쳤다. 먼 훗날 나의 이 교사생활이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했다. 그러고 우선 내일부터는 출근하지 않으니 이제까지와는 달리 아침부터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니 좀 이상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 좀 늦게 일어나도 되겠구나’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2021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