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족선사와 동백사 주지
제3회 대상
구 활
지족선사란 선승이 계셨다. 스님은 삼십 년 세월 동안 성불하기 위해 옆을 돌아보지 않고 수행에만 몰두했다. 그는 송도삼절 중에 첫손에 꼽히는 화담 서경덕과 쌍벽을 이루는 학식과 지혜가 뛰어난 승려로 모든 이들로부터 우러름을 받아 온 그런 유명 인사였다.
지족선사는 동자 하나를 데리고 기거하던 개성의 천마산 청량봉 밑 지족암을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무無’자 또는 ‘병 속의 새’와 같은 도저히 풀 수 없는 화두 하나를 들고 면벽 가부좌한 채로 용맹정진하고 있었다. 수도 과정에서 독이 되는 여자 중생은 얼씬거리는 것조차 싫어했다.
어느 날 서화담 꼬시기에 실패한 황진이가 지족선사를 겨냥하고 다가왔다. 황진이는 제자가 되어 수도하기를 청했다. 선사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런다고 물러날 황진이가 아니었다. 소복단장에 청춘과부 복색을 하고 죽은 낭군을 위한 백일기도에 들어간다는 소문을 냈다. 그리고는 지족암 선사 옆방을 침소로 정했다.
그녀는 야심한 밤에 직접 지은 축원문을 울음 섞인 나긋나긋한 음성으로 읽어 내려갔다. 그 목소리가 너무 맑고 청아하여 지족선사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황진이가 암자에 들어온 후론 염불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맘속에 마귀 떼가 들끓어 가부좌한 두 다리가 후들거려 참선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럴수록 황진이의 목소리는 선사의 가슴에 비수처럼 파고들었다.
지족선사도 승려 이전에 남자였다. 삼십 년을 갈고 닦은 마음 거울은 황진이의 요염기로 가득 찼고, 그녀를 품고 싶은 욕망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프로이트는 ‘쾌감 원칙의 피안’ 이란 책에서 ‘인간은 생존본능(Eros)과 죽음본능(Thanatos)이 서로 공존하고 있는데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원동력인 생존본능이 항상 죽음본능을 제압하고 앞서 달린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지족선사도 삶과 죽음이란 갈림길에서 황진이를 범하는 생존본능의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지족선사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이다. 그는 참으로 매력 있는 남자다. 돈다발 사고가 터지기만 하면 오리발부터 먼저 내미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이나 혼외 아들 시비로 만신창이가 된 검찰 총수의 비열한 짓거리에 비하면 지족선사는 얼마나 당당한가.
지족선사는 황진이를 안아 본 바로 그 다음날 목탁과 염불을 팽개치고 제 발로 암자를 내려와 야인의 길로 걸어나갔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는 마태복음의 말씀을 읽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마음으로 간음하느니 차라리 실행에 옮기는 이판사판의 길을 택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나이의 길이었다.
나는 지족선사를 존경한다. 입맛에 딱 맞기 때문이다. 견성성불이 별것이며 해탈이 별것인가. 황진이의 살 속에 선사의 살을 박는 순간 해탈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리고 완성되었다. 지족선사는 황진이를 만난 후 번뇌의 껍데기를 벗어 던진 대자유인이 되었다.
나는 이번 남도 여행에서 지족선사와 비슷한 선승 한 분을 만났다. 그는 진도군 지산면 지력산 밑에 있었던 동백사 주지였다. 스님은 득도하기 하루 전 날 밤 염불중에 잠시 졸았는데 “스님 스님, 저 왔어요.” 하는 여인의 소리에 깜짝 놀라 법당 문을 열었다. 마당에는 속세에서 사랑했던 여인이 하얀 소복 차림으로 서 있었다.
너무 반가워 목탁자루를 관세음보살을 향해 던져 버리고 맨발로 뛰쳐나가 여인을 맞아들였다. 수행도, 해탈도, 성불이 되려는 욕심까지 모두 날아가 버렸다. 남은 건 법당 안 삼존불 앞의 벌거벗은 두 육체뿐이었다. 보디빌 선수처럼 온몸에 금칠을 하고 앉아 있는 부처님은 항마촉지인을 풀지 않고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데 하늘이 먼저 노했다. 폭풍과 벼락천둥을 내려 보내 동백사 법당을 작살 내 버렸다.
절집 안에 있던 모든 것들이 산지사방 흩어졌다. 주지스님의 가사는 날아가 가사도가 되었고, 장삼은 장산도가 되었다. 스님이 벗어둔 하의는 하의도로, 여인의 은장도는 장도로, 주지와 여인이 운우지정을 나눌 때 박자를 맞추던 목탁은 불도로 날아가 지금도 불도의 석가탑은 파도가 심하게 칠 땐 목탁소리를 낸다나 어쩐다나. 지금도 궂은비가 내리는 날이면 해무 속에 음기가 서려 주지도가 남근바위로 불끈 일어서기도 하고 때론 젖무덤으로 봉긋 솟아오른단다.
남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마음속에 지족선사 외에 존경해야할 스님이 또 한 분 늘어났다. 바로 동백사 주지다. 두 스님들은 사랑을 위해 몸과 목숨을 던질 줄 아는 멋쟁이다. 어쩌면 나와 친했던 걸레 스님 중광도 그 패거리의 후예일 것 같다. 나무관세음보살 타불 타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