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미, 아티스트가 되다
'가시나' '주인공'에 이어 '사이렌'까지 대중을 홀리며 자신만의 장르를 구축한 선미
D데이까지 5일 남았네요. 이럴 때 속마음은 어떤가요
공개 전날까지 아무래도 신경이 예민해져요. 편안하다가 갑자기 막 걱정되기도 하고. 하루하루 기분의 높낮이가 자주 바뀌어요.
늘 중의적인 단어와 이미지를 컨셉트로 잘 활용하는 것 같아요. 새 앨범 <워닝>의 타이틀곡 ‘사이렌’도 인어와 경고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죠
‘가시나’도 그렇고 ‘주인공’도 그렇고 뭔가 경고의 의미를 지녔잖아요. 이를 극대화해서 세이렌에 관한 신화를 떠올렸어요.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공을 유혹해서 바닷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위험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존재! 우리가 말하는 ‘사이렌이 울렸다’는 말의 어원도 여기서 왔다고 해요.
3년 전에 써둔 곡이라고
맞아요. 인어란 소재를 생각하고 난 뒤 이 곡의 가이드를 들어보니까, 흘러가듯 허밍으로 불러둔 게 너무 잘 맞더라고요. 완성된 곡에서도 사이렌이 울리는 소리랑 제가 홀리듯 노래하는 게 겹쳐지는 파트가 있는데 되게 특이해요. (스마트폰을 꺼내며) 들어보실래요?
파워플하네요. 목소리도 단단하게 들리고. ‘인어’란 티저 이미지를 봤을 때는 좀 더 몽환적일 줄 알았어요
너무 딥하게 들어가면 대중성이 떨어지니까요. 제가 음악을 만들 때나 뮤직비디오를 준비할 때 항상 고려하는 게, 내 취향과 대중의 취향을 취합하고 절충하는 거예요.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가수란 대중을 상대로 하는 직업이니까요.
‘가시나’ ‘주인공’을 잇는 3부작 프로젝트의 완결판이라고 표현하던데, 서로 어떤 연결 고리가 있나요
셋 다 지고지순하게 사랑하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내가 널 유혹하겠다는 느낌도 없고요. ‘사이렌’에서도 “네 환상에 아름다운 나는 없어”라면서 일부러 얼굴을 일그러뜨려요. 갇혀 있거나 수동적인 여자의 느낌이 아니라, 스스로 뭔가 말을 내뱉는다는 점에서 3부작이 완성됐어요. 경고, 경고, 경고!
전곡의 작사를 맡았고 주요 수록곡의 작곡에도 참여했어요. ‘사이렌’ 외에 자랑하고 싶은 곡은
‘블랙펄’이요. 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풀어낸 곡이에요. 조개가 자기 안으로 들어오는 이물질을 방어하기 위해 액을 뿜어내서 만들어지는 게 진주잖아요. 그게 너무 요즘 사람들, 우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속으론 슬프고 힘든데도 겉으로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을 포장하고 살아가는, 어쩌면 저일 수도 있고 당신일 수도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로하는 곡이에요.
‘사이렌’ 뮤직비디오를 위해 직접 만들었다는 파일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가사마다 원하는 느낌의 공간과 연출에 관한 이미지를 스크랩했던데
네, ‘가시나’ ‘주인공’ 다 이렇게 작업했어요. (다시 한 번 스마트폰을 꺼내며) 의상에 대한 것도 있는데 보실래요?
헬무트 랭부터 마르지엘라 쇼까지 레퍼런스가 촘촘하네요. 100% 선미가 기획한 앨범이라 할 수 있겠어요
열심히 공부해야 해요. 왜냐면 저는 지금 프로듀서가 없잖아요. 내가 나를 프로듀싱할 수밖에 없으니까, 내게 뭐가 어울리고, 뭘 잘할 수 있을지 다 알고 있어야 해요. 그렇다고 저 혼자 다 한 건 아니고요, 제가 아이디어를 내면 스태프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서 함께 만들죠. 회사에서 검수도 해줘요.
무대 위의 선미는 대중을 ‘홀리는’ 스타임이 확실해요. 사람들은 선미의 어떤 점에 홀리는 걸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전에 보지 못한 캐릭터라서(웃음)? 다만 저는 눈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화보를 찍거나 공연할 때 항상 사람들과 눈을 맞춰요. 카메라를 볼 때도, 그게 단지 기계가 아니라 제가 사랑하는 사람, 대화 중인 누군가의 눈이라고 여겨요. 그런 점에서 관객이 나를 보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나 싶어요.
본인은 어떤 것에 홀리나요? 선미를 사로잡는 것들은
잡동사니? 쓸모 없는 ‘예쁜 쓰레기’를 모으는 걸 너무 좋아해요. 집에 가면 그런 것들이 한가득이에요. 현관에는 홍학 인형이 하나 서 있고요, TV 옆에는 제 키만 한 튤립 조명이 있어요. 유니콘 인형, 자기로 만든 총 모양의 오브제도 있어요. 활동을 안 할 때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저는 집이 재미있는 공간이면 좋겠어요.
곧 TV에서 엿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매니저인 이해주 팀장과 함께 <전지적 참견 시점>에 출연했다고요
관찰 카메라에 담긴 저랑 해주 언니의 일상을 보니, 재미있더라고요. 해주 언니는 아빠 같고, 스타일리스트 지은 실장님은 엄마 같고, 나는 애교 많은 딸 같은. 서로 놀리고 챙겨주는 모습들이 되게 궁합이 좋아 보였어요. 저는 일할 때도 수직적이거나 딱딱한 관계는 싫거든요. 제가 추구하는 일의 환경도 드러나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우리 정말 화목하게 지내거든요.
행복하게 일하고 있네요
네, 그래요. 일할 때 까탈 부리기 싫어요. 내가 까탈 부리면 다들 내 눈치를 보게 되고 예민해져요. 이게 아니다 싶을 때는 제 의견을 솔직히 전하려 해요. 다들 열심히 일하는데, 현장 분위기라도 좋아야 덜 힘들잖아요. 나 하나 좀 더 신경 쓰고 밝게 해서, 모두 기분 좋게 마치게 하자, 이런 주의예요.
그런 사람들이 안으로는 스트레스가 많던데
맞아요. 제가 ‘블랙펄’에 쓴 이야기와도 연결되죠. 제가 뭔가 의식적으로 하는 건 아닌데, 장녀이기도 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까 습관이 된 부분도 있어요. 사실 그렇게 하면 에너지 소모가 크죠. 그런데 성격이 이런 걸 어떡해요. 이게 나인 걸(웃음). 굳이 바꿀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오래 몸담았던 회사에서 독립해서 ‘가시나’ ‘주인공’ ‘사이렌’에 이르기까지, 어떤 여정이었나요
선미라는 장르를 만드는 첫걸음? ‘주인공’ 인터뷰 때 얘기했어요. 선미라는 장르를 만들고 싶다고. 저는 ‘제2의 누군가’가 되고 싶지 않거든요. 다행히 나만의 장르를 만드는 과정에 디딤돌 하나는 놓은 것 같아요.
자신만의 색을 지닌 솔로 아티스트로 성장하면서 스스로도 변화된 모습을 느끼나요
회사를 나온 뒤 저라는 사람을 브랜딩하기 위해 내가 가진 게 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계속 생각했어요. 나는 감정 변화가 잦은 사람이라는 결과가 나왔고, 그걸 ‘가시나’에서 온전히 표현했어요.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제 캐릭터를 장점으로 승화한 거죠. 그래선지 요즘은 일상에서 좀 더 편해졌어요. 혹여 나쁜 일이 생기더라도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어’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해요. 어떤 일이든 결국 내 삶에 일어날 일이었고, 그 뒤에는 또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믿고 나니 감정에 압도되는 일이 줄어들었어요.
선미의 노래가 지닌 독특한 내러티브와 스타일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궁금했는데 전부 자기 안에서 나오는 거였네요
남의 것을 표방하면 금세 티가 나요. 또 모든 게 한때라서, 곧 어디선가 ‘제2의 선미’를 표방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요? 음악이든 패션이든 그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것 같아요.
계속해서 진화하는 뮤지션도 있잖아요. 비욘세처럼. 3부작 프로젝트 이후의 계획은
저도 아직 모르겠어요. 늘 그래왔듯 내 감정대로 감수성에 따라 움직일 것 같은데…. 갑자기 베이스 기타를 들고 나올 수도 있고, 제가 좋아하는 옛날 음악 같은 앨범을 만들 수도 있고요. 다만 제가 뭘 하든 대중과 멀어지진 않을 것 같아요
오늘 이야기하는 내내 ‘대중’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에 놀랐어요. 선미에게 ‘대중’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인생의 동반자죠. 누군가 동반자가 있다면 미울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고,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 답답할 때도 있을 것 아니에요. 똑같아요. 분명한 건,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거예요.
출처 : EL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