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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 白頭大幹 ]
* 위 치 : 강원 홍천, 인제
* 산행일시 : 2023년 07월 16일
* 교통편 : 안내산악회 (좋은사람들)
* 산행코스 : 구룡령~갈전곡봉(인증)~왕승골갈림길~쇠나드리~조침령(인증)~접속~(1.5km)~진동리(약21.16km/11시간)
* 출발지점 : 구룡령(강원도 홍천군 내면 명개리 산 1-35 부근)
* 차량 대기장소 :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3-22 조침령터널관리사무소 앞
* 산행시간 : 02:51~11:21 (산행 08:29분/휴식시간:1시간 10분)
* 산행속도 : 3.09 km/h
* 산행거리 : 22.6km
* 날씨 : 흐림
* 기온 : 24-28
* 약수터 정보 :
* 조망점 : 정상
* GPX 트랙 : 별도 첨부
* 100대 산 정보 :
* 산행난이도 : 고도차:중 , 거리:상
* 주요 볼거리 : 능선길. 정상조망.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동쪽 해안선을 끼고 남쪽으로 흐르다가 태백산 부근에서 서쪽으로 기울어 남쪽 내륙의 지리산에 이르러 우리나라 땅의 근골을 이루는 거대한 산줄기의 옛 이름이다.
드디어 1년 4개월의 대장정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날이다.
일기예보에 비소식이 있어서 어찌할까..!
처음에 안내산악회 버스 2대나 편성되었으나 비 소식에 의하여 결국 버스 1대 인원이 취소하고서 36인승 1대로 출발을 했다.
가끔 비소식이 있었으나 산행 중에는 비가 오지 않았고.
협찬으로 대간 63기 산행에 60기 회원님들이 참석을 하여 축하를 해 줬다.
산행 시간은 넉넉하게 1시간 이상 추가를 해서 행사 및 점심을 같이 하기로 했다.
날씨가 흐려서 사진은 많이 담을 수 없었고.
딱히 풍경이 틀리지 않다 보니 정말 사진을 담은 것이 없는 것 같다.
[구룡령] 九龍嶺 1013m
본래 지명 장구목. 도로가 나기 전 강원도 홍천에서 속초로 넘어가던 고개다. 속담에 9개의 용이 지나갔다 하여 구룡령이라 한다. 구룡령의 미천골, 미천[米川]이라는 이름도 이곳의 수도승들이 많아 공양을 짓기 위해 씻은 쌀뜨물이 하얗게 흘렀다 해서 붙은 것이다.
아흔아홉 굽이의 고개가 마치 용이 꿈틀거리며 지나간 듯 하다고 해 이름 붙여진 구룡령 옛길은 지금의 정상에서 북쪽으로 30분 가량 떨어져 있는 옛 구룡령 정상~갈천리까지의 5㎞로 100여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걸어서 넘던 길이다. 구룡령 정상주변에는 50년생 천연활엽수림의 숲으로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봄철에는 철쭉꽃이 만개하여 장관을 이룬다. 또한 양양군과 홍천군의 경계를 정할 때 양양의 땅을 조금이라도 더 넓게 하려고 달리다가 숨진 청년이 묻혔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묘가 있으며 주변은 갈천약수와 미천골 자연휴양림도 있어 탐방코스로 손색이 없다.
- 구룡령 옛길
구룡령 옛길 정상과 갈천마을의 딱 중간에 자리한 '솔반쟁이' 주변에는 1980년대 후반 경복궁 복원공사 때 재목으로 잘려나간 노송들의 그루터기가 흩어져 있다. 이곳에 자생하던 수령 100년 이상의 금강송 40여 그루가 경복궁 대들보와 기둥의 재목으로 베어졌다고 한다. 지금도 갈천마을과 가까운 옛길의 아래쪽 길가에는 어른 둘이 껴안아도 모자랄 만큼 우람한 금강송이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서 있다. 신목(神木) 같은 형용의 금강송이 있는가 하면, 뿌리를 반쯤 드러낸 채 늠름하게 서 있는 노송도 있다.
구룡령 옛길은 우리 사회가 옛길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구룡령의 지명과 위치가 현재 잘못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지리에 밝고 산을 잘 안다는 사람들조차 구룡령의 옛길은 모른다. 대부분이 구룡령 하면 지금 차가 다니는 56번 국도가 넘나드는 고개를 원래의 구룡령길이라 생각한다. 이 도로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자원 수탈 목적으로 구룡령 고개에서 1km가량 떨어진 곳에 개설한 비포장도로가 지난 1994년 포장된 것이다. 일제 당시 일본인들이 지도에 원래의 구룡령의 위치가 아닌, 차가 다니는 비포장도로를 구룡령으로 표기하면서 사람들은 구룡령의 위치를 잘못 알기 시작했다. 더욱이 94년 이후에는 모든 지도와 행정 표기에서 구룡령의 위치가 현재 차가 다니는 지점으로 정리됐다. 백두대간을 연구하고 관리하는 정부나 민간단체, 학자들조차 구룡령길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구룡령 옛길에는 조상들이 어떻게 길을 다녔는지를 보여주는 원형이 남아 있다. 요즈음 사람들은 영서와 영동을 차로 넘으면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백두대간의 험한 지형을 실감한다. 그래서 이런 급경사의 산지에서 말이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길을 걸어보면 구룡령 옛길에서 노새와 조랑말 등이 큰 등짐을 지고 다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게 된다. 그만큼 옛길은 힘겨운 고개를 가장 힘이 덜 드는 형태로 만들어놓았다. 비탈길이어도 최대한 경사를 누인 길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은 누군지도 모를 옛사람들의 지혜가 세월과 함께 쌓인 덕분이다. 어떤 빼어난 등산로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자연 속에 파고드는 절묘한 흐름이 길 구석구석에 배어 있다. 숲과의 조화가 자연스럽고 깊다는 점은 걸어보면 단박에 느껴진다. 똑같은 고도의 등산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여유가 길에 묻어 있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등 큰 산의 등산로를 오르다 보면 주변의 숲을 감상하기 어려운 비탈과 고빗길이 수없이 펼쳐진다. 그래서 산쟁이들 가운데서도 발품이 노련하고 옹골진 이가 아니면 대부분 숲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못하고 정상으로 오르기에 바쁘다. 하지만 구룡령 옛길은 숲의 모습을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다. 옛사람들은 요즘 일부 등산꾼들처럼 싸우는 듯이 산길을 걷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차피 갈 길이니 최대한 여유 있고 천천히 걸음이 이어지도록 길을 냈던 셈이다. 그러다 보니 숲의 원형이 훼손되지 않으면서도 다니기에 편안한 길이 되었다. 선조의 경험과학이 녹록지 않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솔반쟁이, 묘반쟁이, 횟돌반쟁이…
구룡령 옛길에는 굽이굽이 민중들의 꿈과 희망, 아픔과 좌절도 녹아 있다. 특히 일제 강점기 때 숯을 구웠던 재탄장과 함께 철광의 흔적이 남아 있다. 농경사회의 시작과 함께 철기문화가 열리면서 양양 일원으로 공급한 철로 만들어진 농기구의 원재료를 구룡령의 옛길 한쪽에서 생산해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철을 캐던 동굴이 그대로 남아 있다. 광산이 일제 강제수탈의 현장이었던 점도 흔적을 통해 확인된다.
숲으로 펼쳐진 구룡령 옛길의 또 다른 상징은 금강소나무다. 1980년대 말 경복궁 복원 과정에서 많은 금강소나무가 베어진 뒤 국내에는 금강소나무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드물다. 무리를 이룬 200~300년 된 금강소나무들의 붉은 기운이 하늘로 뻗어 있다. 굵은 금강소나무의 표본인 곳이라 해 '솔반쟁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젊은 청년 죽은 터는 '묘반쟁이', 장례식의 하관 때 회다짐을 하기 위해 쓰던 횟가루를 생산한 곳이라는 뜻의 '횟돌반쟁이'등의 지명도 남아 있다.
백두대간 완등을 축하하면 장식해 놓은 풍선과 함께 케이크이다.
이쁜 꽃 바구니는 60기 회원님들이 준비해 주셨는데.
후다닭님과 함께 죽순. 헨리님이 준비해 주셨다 들었다.
감사할 뿐이다.
그래서 63기 회원들 외에
참석을 해주신 분들에 답례로
남자용 카본 등산스틱 1세트와 함께 여자용 카본 등산스틱 1셋트
그리고 해드렌턴 1셋트를 추첨하여 선물로 드렸고.
전체적으로 돗자리를 구매하여 하나씩 나눠 주었다.
안내산악회 좋은사람들은 선물로 각자에게 칫솔 하나씩을 주었다.
내가 처음 3대 100대 명산 (산림청. 블랙야크. 한국의산하) 완등은 팔공산에서 했는데.
등산 수건을 맞춰서 20개를 짊어지고서 종주하면서 정상에서 만난 산우님들에게 선물을 드렸었다.
그때가 언제인가..!
2017년 7월인데 가다가 물이 떨어져서 약수터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물을 담아서 돌아와 종주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2018년 6월에 칠갑산에서 블랙야크 완등이 있었는데.
그때에는 지인이 드론 촬영도 하고 내가 선물을 준비하여 나눠주기도 했었다.
결론은 100개의 명산을 인증하던지 아니면 백두대간 인증지에서 인증을 하면서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자 내가 스스로 준비한 선물을 주곤 했다.
지금도 이렇게 수많은 산을 가면서 안전하게 즐겁게 산행을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항상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이 나의 마지막 인증지이다.
갈전곡봉..!
이곳을 오르면서 생전 처음으로 야생 고슴도치를 봤는데.
앞에서 어슬렁어슬렁 가는 것이다.
카메라를 꺼내는데 어슬렁 거리면서 가는 것도 나보다는 빨라서 사진으로 담을 수 없었다.
쫓아가면 담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야생 동물은 그곳이 생활의 터전이고 난 손님..!
잠시 지나가는 손님이 산의 주인인 동물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마땅치 않아서
가슴속으로만 담아왔다.
[갈전곡봉] 葛田谷峰 1204m
강원 인제군 기린면과 양양군 서면의 경계에 있는 산. 홍천의 내면과 양양의 서면, 인제의 기린면의 세 오지를 일구어 내는 교차점이다. '칡넝쿨 밭'이란 이름이다. 가칠봉(1,240m)·사삼봉(私參峰:1,322m)·응봉산(鷹峰山:1,016m) 등과 함께 태백산령의 일부를 이룬다. 또한 소양강의 지류인 방대천(芳臺川)을 비롯하여 계방천(桂芳川)·내린천(內麟川) 등의 발원지를 이루고 있다.
- 방동약수
백두대간의 구룡령은 56번 국도 상의 강원도 홍천군 내면과 서면 경계에 위치한다. 구룡령에 이어 백두대간 상의 갈전곡봉의 계곡물은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로 흘러가는데, 이곳 방동리에는 방동약수라는 유명한 약수가 있다. 방동약수는 무색투명한 광천수로, 특히 탄산 성분이 많아 사이다 맛이 나며, 탄산 이외에도 철분, 망간, 불소 등의 성분이 들어 있어서 위장병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또한 방동약수에서 백두대간 넘어 양양군 서면 갈천리에는 갈천약수가 있는데, 이곳의 약수도 방동약수와 성분과 맛이 비슷하다. 이렇게 강원도 지역 내의 백두대간에는 약수터가 많은 곳에 산재하고 있다.
풍수지리에서 기본적인 요소는 산과 물인데, 산은 인물과 관계가 있고, 물은 재물과 관련이 있다. 중국 청조에 심호(沈鎬) 선생이 지은 형기풍수 고서인 지학(地學)을 보면 물에 관한 설명 중 특히 수형(水形) 이외에 물에 관련하여 상세한 내용이 있다. 풍수지리에서 물은 수형(水形) 즉 물이 흐르는 형태로 분합(分合)과 내거(來去)의 방향·대소·원근 등을 보고 길흉화복을 판단한다.
조침령이 아직도 15 IKM나 남았다.
이렇게 야간 산행을 할 때에는 아침 해가 뜨기 전까지 아무것도 담을 수 없다.
그것도 그럴 것이
안개도 많이 있고.
날씨도 흐려서 조망도 되지 않고..!
그래도 다행인 것이 비 소식이 있었으나 산행 중 비를 맞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산행을 하면서 육산이라서 길이 정말 미끄러운데
잘 정비되어서 편하게 산행을 했다는 것에 대하여 감사할 뿐이다.
이렇게 길은 잘 정리되어서 편하게 걸을 수 있었다.
가는 길에 저렇게 작은 봉우리를 몇 개는 넘어야 하는데
육산이며 높지가 않아서 그냥 편하게 오를 수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길인데.
왕승골삼거리라 되어 있다.
날이 어두워서 사진을 담으면 다 흔들리고.
그래서 사진도 별로 없다.
[연가리골 샘터(안부)]
정감록에 보면 인제군 기린면과 홍천군 내면 일대는 난리를 피할수 있는 최고의 피난처로 3둔(살둔, 달둔, 월둔) 4가리(적가리, 아침가리, 연가리, 명지가리 또는 곁가리)를 꼽고 있는데, 그만큼 이 주변은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오지였다.
길은 이렇게 활엽수 참나무들로 이루어져 있다.
때때로 고도가 높고 강원도 산이라서 그런지 울창한 숲길과 아름들이 나무들이 있었다.
가끔 이렇게 야생화들이 피어 있었다.
말나리 꽃이다.
웬걸..!
이 영아자는 보통 길거리에 많이 있는데
1천 고지의 높이에 이런 영아자 군락지가 있었다.
가끔 여로가 많이 보이기는 했는데.ㅇ
이렇게 초록 여로도 몇 그루 볼 수 있었다.
작은 마이치골이라 한다.
처음 들어보는 명칭이다.
쇠나드리 언덕..!
[쇠나드리고개(옛조침령)]
쇠나드리는 진동리의 설피밭에서 방태천을 따라 두무터와 연결되는 나들목이다. 대간상 '솨나드리고개'는 쇠나드리의 뒷산 노루목으로서 설악산의 험준한 산줄기와 오대산의 산줄기가 만나 살작 허리를 낮춘 곳이다. 쇠나드리는 '쇠(소)나들이'가 본디말로 옛날에 '소 등에 올라타고 넘나들던 먼 길'이어서 붙여졌다. 대간 종주자들이 가끔 탈출로로도 이용한다. 동쪽의 서림으로 경사가 급해 내려서는 길이 마땅치 않다. 이 구간은 흔히 산거머리와 검은 진드기가 많아 산행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곳인데, 최근에는 산림방제의 효과인지 검은 진드기만 가끔 보이고 산거머리는 아예 눈에 띄지 않는다. 송충이나 쐐기도 없다.
세 계곡 물이 합수된 지점에 다리가 있는데 이곳은 바람이 매우 세차 세나들목이라, 강원 어휘 변형으로 쇠나들이라 하였다.
일명 風趣洞. 봄에는 땅을 메마르게 하는 흙바람, 여름에는 길을 가로막는 비바람, 가을에는 억새를 뒤흔드는 낙엽바람, 겨울에는 눈보라에 살을 에는 칼바람이 불어, 황소까지 날려버릴 세찬 바람이 불었다 하여 쇠나드리 마을이 되었다 한다. 또한 마을 안에 있는 개천의 여울이 급하고 바람이 세차 소들이 건너다니기 힘들었다고 한다.
바람이 거세기로 유명한 쇠나들이는 바람불이로도 불린다. 억새와 닮은 속사가 널려 있는 '버덩'이 색다른 느낌을 준다. 원래 세 줄기 험한 물줄기가 길을 막는다고 해서 세나들이로 불리던 곳인데 '버덩'에 소를 방목하면서 쇠나들이로 바뀌었다고 한다.
또다시 이렇게 초록 여로를 보았다.
길이 아무리 길어도 이렇게 끝은 있나 보다.
이제 조침령까지 0.9KM이니까 내리막길에 300M는 임도길이라서.
이제는 산행이 다 끝난 것이다.
생각지 못하게 등산화를 잘못 선택하여 신어서
발에는 물집이 잡히고
신발은 젖어서 힘들기도 하고..
하여간 그래도 이렇게 즐거운 마지막 대간 길을 걸어본다.
조침령 표지석이다.
조금 더 가면 큰 표지석이 있는데 길가 한편에 이렇게 작은 조침령 표지석이 위치하고 있다.
조침령 표지석이다.
[조침령] 曺枕嶺 877m
강원도 양양군 서면 서림리와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를 연결하는 조침령은 원래 소금을 지고 오던 길이었지만, 일제 강점기 자원 수탈을 위해, 유신 당시에는 고관대작의 정원 조경수와 원석을 실어나르는 데 이용되었다고 한다. 증보문헌비고에서는 '떨어질 조阻', '가라앉을 침沈'자를 써서 험준하다는 뜻의 조침령(阻沈嶺)이라 하였으나, 산경표에는 조침령(曺枕嶺), 근래의 백두대간 종주자들은 '새도 자고 넘는다는 고개'라는 뜻으로 조침령(鳥寢嶺)으로 표기하고 있다.
양양문화원에서 발행한 <양양의 땅이름>과 <양주지>에서는 증보문헌비고와 표기는 같으나, 다만 침자만 '베개 침枕'자로 표기하고 있다. 하여튼, 한계령이 1004m이고, 구룡령이 1013m인데, 그보다 훨씬 낮은 조침령을 새도 자고 넘는다고 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예로부터 조침령은 말을 타고 다니기는 쉽지만 실제론 먼 길이라 했던 걸로 봐서는 구절양장 먼 길이라 그리 부른 듯싶다. 그래서 조침령을 '좆칠령'이라고도 했다 한다.
조침령도 구룡령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길이 본래의 옛길이 아니다. 본래의 옛길은 현재의 조침령보다 남서쪽에 위치한 쇠나드리 근처를 넘었다. 지금의 조침령은 20여 년 전 군부대가 놓은 새길이며, 83년 6월~84년 11월 제3군단 공병여단이 21km 군사도로를 개설한 것이다. 예전에는 '반평고개'라 불렀다 하며, 지금도 주민들은 반평고개로 부른다. 반평고개라 한 까닭은 서림마을에서 조침령으로 가는 중턱에 5만여 평에 달하는 평지가 있는데, 소반 같이 평평하다 하여 '반평(반부둑)'이라 부른데서 따온 것이다. 그 반평고개에 지금은 동홍천-양양간 고속국도를 닦느라 터널도 뚫고, 포장공사도 하고 해서 옛길의 정취를 모두 삼켜버렸다.
- 양양의 다섯 고개
양양과 백두대간 너머 지역을 잇는 고개 중 한계령과 구룡령 외의 고개를 제외하고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은 고개들이 조침령, 북암령, 단목령이다. 양양에 있는 이 다섯 개의 고개 모두가 양양군 서면에서 인제 혹은 홍천으로 넘어가는 길에 자리 잡고 있다. 서면뿐 아니라 양양군 현북면 또한 백두대간과 접해 있지만, 유독 서면에만 고개들이 나 있는 까닭은 대간 너머에 마을과 주민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조침령, 북암령, 단목령은 대간을 가운데에 두고 양양, 인제, 홍천에 살던 선질꾼, 마꾼과 같은 생선장수, 소금장수, 젓갈장수들이 양양장을 보거나, 수산물을 팔기 위해 왕래했던 고개이다. 선질꾼은 등에 바지게나 통지게를 지고 물건을 싣고 다니며 팔던 이들이고, 말을 가지고 물건을 실어 날랐던 이들은 마꾼이라 한다. 서림에서 조침령으로 올라가다 보면 초입의 새림골부터 굴아우골까지 11개의 골들이 고개길 좌우로 있는데, 이 골들에 이들이 쉬어가던 주막이 십여 개 남짓 있었다고 한다.
좁쌀풀인 것 같다.
이제 임도길이다.
하산을 하는 길이다.
쉬땅나무이다.
이 야생화도 그렇게 많이 볼 수 없는데.
이곳에 군락으로 많이 피어 있다.
실은 우리 아파트에 이 개쉬땅나무가 정원수로 정말 많이 피어 있는데..!
이렇게 야생에서 보는 꽃들이 더 이쁜 것 같다.
선물 증정행사에 앞서서 즐거운 인증 사진을 담았다.
백두대간 졸업하는 행사이나 완등자들만 각출을 하여 선물을 준비했다.
그래도 이렇게 무탈하게 완등을 한 것에 감사한다.
이런저런 선물도 준비하고 하다 보니 각출한 비용에서 나 혼자 들어간 비용도 상당한 것 같다.
그래도 마지막이니까 즐겁게 들어간 돈은 아깝지 않았다.
백두대간 63기 회원님들의 단체 사진이다.
아래에 이름을 써 놓고서 그곳에 이렇게 다들 서 있다.
그렇지만 대장과 한분 그리고 2분이 오늘 참석을 하지 못하여 마지막에 사진이 남지 않았다.
마지막에 구간에 완등을 하는 사람은 나하고 아자자님 하고 2분인데.
나는 백두대간을 하지 않아서 63기가 끝나는 시점에서 이렇게 완등을 할 수 있었다.
원래 시작 전에 블랙야크 백두대간이 70% 정도 완료되어 있었으나
그때에는 100개소 인증이 아니라 150개소 인증이 있었기 때문에 진행율이 많이 되어 있었다.
얼마 하지 않았는데 진행율이 100%가 되더니 더 이상 올라가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다시 진행율이 75%로 떨어지고 나머지 구간 다 인증을 해야만 진행율이 올라가곤 했다.
그래서 갈전곡봉이 마지막 구간에 남아서 오늘의 코스로 모든 백두대간이 마무리되었다.
원래 이곳 조침령이 마지막이 아니라 갈전곡봉인데.
날이 밝기 전이라서 이곳 마지막 인증지인 조침령에서 기념사진을 담았다.
조침령에서 마지막 백두대간 마무리를 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다 같이 마지막 63기 회원들과 함께 참석한 산우님들과 기념 사진을 담았다..!
완주증과 함께 완주패를 들고서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앞으로 내년 초. 중반에 다시 백두대간 남진을 하던지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다시 걸어봐야겠다.
1번 2번 아니 10번을 가도 기억이 별로 없을 것 같다.
비슷한 등산로와 함께 조망이 없는 곳은 기억이 남지 않는다.
그냥 산 능선을 하염없이 걷는 것이다.
때로는 비가 오는 동안에
때로는 영하 28도의 추운 날씨에
어떤 때에는 시작지점에서 비가 오더니 산능선을 타면서 영하의 추운 날씨에 바람도 불고..
옷을 다시 갖추어 입고 일부는 중탈 하는데 걸어보지 않은 길이 있어서 긴 거리를 산행을 하는 해야만 했다.
백두대간에서는 일부가 비법정 탐방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완주를 하려면 걸어야 하는데
새벽부터 잠도 잘 못 자고서 걷다 보면 힘들기도 하고..!
사람들이 없어서 겨우 차가 출발해서 가는데 때마침 국공들에게 걸려서 범칙금도 발부하고..!
하여간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렇지만 안전을 위해서
내가 선두를 서고서 이끌고 안전하게 비탐지역을 완주할 수 있었다.
해가 뜨기 전까지는 페이스를 유지하고 전체가 다 같이 가다가
해가 뜨고서는 각자 가라고 했으며.
트랙에 갈림길 위험한 길 또 남은 거리와 함께 백두대간 인증 지를 입력하여
그곳에 가면 음성으로 알려주는 트랙도 만들어서 배포하였다.
GPS 트랙
본산행의 GPS 트랙
설명이 포함된 GPS 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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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무탈한 완등 축하드려요
ㅎ ㅎ
졸업하던날이 생각나 웃음이나고
백번 공감합니다
역시 강원도 깊은산속이라 고슴도치 녀석이 .....
영아자는 처음보네요
수고많으셨어요
그냥 그러느니 해요..!
무탈하게 완등한 것에 대하여 감사할 뿐이죠..!
서운한 감정도 있는데.
그냥 글도 수정했네요..!
영아자 그래도 제법 있는 꽃인데.
자세하게 보지 않으면 잘 볼 수 없으니까요..!
짝짝짝!!!
조침령에서 마무리 하셨군요.
완등 축하 합니다.
무박 대간길이 다 그렇지요. 야간에 걷기만 하고, 또 대간길 자체가 그리 조망 좋은곳이 많지가 않아요.
다 내맘 같지 않으니 섭섭했던 부분이 있어도 그러려니 해야지요.
어디선가 산길에 다시 만날수 있기를 기대 합니다. ^^
감사합니다.
네..!
예전에 점봉산에서 조침령으로 내려왔는데..!
대간길이 그렇네요.
그래도 장거리 그렇게 길지는 않지만 그래도 걷는것이 좋은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대간을 하면 명산은 너무 짧아서 양이 차지 않는다 하네요.
그래서 그런지 저도 앞으로 잘 보지 못한 대간길 다시 걸어보려고
일전에는 토요무박인데 이번에는 금요무박으로 해보려고요.
아무래도 한번 해봤기 때문에 북진해봤으니 남진으로
좋은 사람들 74기로 따라가려고 하는데.
했던곳이라서 일이 있으면 빠지고 그럴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