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전은 중국 인민해방군 장교 차오량(喬良)과 왕샹수이(王湘穗)가 1999년 공동 저술한 군사 전략서 「초한전」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전쟁의 기존 한계를 초월하여 군사, 경제, 법률, 심리, 정보, 사이버 공간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상대를 무력화하는 '제한이 없는(혹은 제한을 초월한) 전쟁'을 의미합니다.
초한전의 개념 및 특징
한계 초월: 시간, 공간, 방법 등 어떤 한계도 초월하며, 규칙이나 수단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전방위적 공격: 군사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문화, 언론, 금융, 첩보 등 모든 분야를 전쟁터로 활용합니다.
비군사적 수단 활용: 군사적 수단 이외에도 국제법, 경제적 수단, 사이버전, 테러, 미디어를 동원한 여론전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모략과 기만: 상대를 속이고 약점을 파고들어 이기려는 모략적인 성격이 강하며, 특히 '기만'은 초한전의 핵심 전략입니다.
적응성 및 융합: 변화무쌍한 상황에 맞춰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창조적으로 융합하여 사용합니다.
점진적 침투: 전쟁의 형태를 띠지 않으면서 은밀하게 사회 전반에 침투하여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목표: 자신보다 군사적으로 우위에 있는 상대를 이기기 위한 전략이며, 궁극적으로는 상대 국가의 체제 자체를 무력화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중국 공산당의 초한전 전략
중국은 자신들이 군사력에서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열세임을 인정하고, 군사력 외의 분야를 활용하여 우위를 차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는 손자병법의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라는 사상을 계승한 것으로도 해석됩니다.
군사 전략 및 '삼전(三戰)':
중국 인민해방군은 초한전 이론을 바탕으로 군사적, 비군사적 작전을 포괄하는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특히 심리전, 법률전, 여론전을 아우르는 '삼전(Three Warfares)'은 초한전의 초군사·비군사 전술로 활용됩니다.
정치 및 사회 공작:
정치 공작 및 통일전선공작을 통해 상대 국가의 엘리트 집단을 포섭하고, 친중 세력을 육성하며, 유리한 정책 추진을 압박합니다.
미디어 및 여론 조작, 가짜뉴스 유포, 사이버 공격, 기술 탈취 등을 통해 사회적 혼란을 조성하고 상대 국가의 의지를 무력화하려 합니다.
화교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영향력을 확대합니다.
경제 및 금융 전략:
중국 자본을 이용해 상대국의 주요 산업과 기업을 장악하고, 경제적 의존도를 심화시켜 국가 안보와 직결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환율 조작, 과잉 생산을 통한 저가 수출, 금융 시스템 파괴 시도 등 경제적 수단을 동원합니다.
기타 수단:
인질 외교, 마약 유통, 테러 등도 초한전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5G 기술 선점과 인터넷 프로토콜 장악을 통해 미래 인터넷 세계의 주도권을 확보하려 합니다.
초한전에 대한 국제 사회의 반응
미국 및 서구 사회: 초한전 출간 당시 미국 정보기관과 서구 여론은 이를 "미국을 파괴하려는 중국의 마스터 플랜" 또는 "서방에 대한 더러운 전쟁의 청사진"으로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육군사관학교와 해군사관학교는 이 책을 필독서 및 정식 교재로 채택하며 그 내용을 재평가했습니다.
한국 사회: 한국은 중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경제 교류가 깊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초한전 전략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일부에서는 한국 사회의 엘리트들이 중국의 '순수한 교류'라는 포장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역사적 배경: 초한전(楚漢戰爭)
'초한전'이라는 용어는 현대 중국의 군사 전략 개념이지만, 역사적으로는 기원전 206년부터 기원전 202년까지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 중국을 두고 벌인 전쟁을 '초한전쟁' 또는 '초한쟁패'라고 부릅니다. 이는 진나라 멸망 후 천하를 놓고 벌어진 권력 투쟁이었습니다.
주요 인물:
항우: 강력한 무력을 지닌 맹장으로, 楚나라를 이끌었습니다.
유방: 보통 사람 출신이지만 뛰어난 인품과 포용력으로 인재를 모아 漢나라를 건국했습니다.
한신: 유방의 뛰어난 장군으로, '배수진'과 같은 전술로 유명합니다.
전쟁의 전개:
진나라 멸망 후, 항우는 제후들을 책봉하며 불공정한 정책을 펼쳐 불만을 샀습니다.
유방은 항우의 견제를 피해 세력을 키웠고, 여러 전투 끝에 항우를 垓下(해하)에서 결정적으로 격파하고 천하를 통일하여 한나라를 세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