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너의 포인세티아
젖먹이 아이를 고립시켜놓고
그 앞에서 말하는 것을 금지시켰을 때 아이가
히브리어로 말할지 그리스어로 말할지 부모의 언어로 말할지
그게 궁금했던 것인데 아이는 죽어버렸다 했다
두루마리 휴지는 사 가는 사람이 없어서 팔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가게 주인 와얀에게
이곳에서 와얀이란 이름을 다섯 번째 만난다고 말했다가
첫째 둘째 셋째라는 말을 배웠고 카스트를 배웠다
개구리 삼키는 도마뱀이
개구리 소리를 내며 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바비 인형을 안고 바비굴링을 먹던 백인 아이가
아니야 돼지 아니야하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밤이 왔다고 속이기 위해
포인세티아에게 검정 비닐을 덮어두면
빨갛게 물들 수 있다 했지만 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했다
새파란 포인세티아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인사했다며 너는 웃었다
누군가 내 눈을 가리지는 않았지만
너무 쉽게 나는 얼굴이 빨개졌고 너무 쉽게 다시 멀쩡해졌다
올해는 새해 인사를 고르느라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못했다
복 많이 받으시라는 말을 할 수 없어 벙어리로 지냈다
침팬지와 살아서 침팬지인 줄 알고 산 아이에게
말을 가르쳤을 때 아이는 말을 알아듣기 시작했지만
얼마 못 가서 죽어버렸다 했다
인사말을 배워서 인사를 했다
계란 한 판을 사러 갔다가 두 개씩만 판다며
다시 한 번 단호하게 말하는 가게 주인 와얀에게
계란 두 개 주세요 하고 다시 말했다
[출처] 김소연, 너의 포인세티아|작성자 양양